법정에 가져간 것은 수첩이 아니라 표였다.
나는 표를 세 칸으로 나누었다. 왼쪽에는 확실히 확인된 제작 시점, 가운데에는 문서에 적힌 날짜, 오른쪽에는 그 날짜가 의미하는 일의 종류를 적었다. 영번 기록봉은 삼백 년 전 공동 증언 보관물, 영번 전사본은 최근 작성된 필사·인쇄물, 내 수첩은 왕국에 온 뒤 적어도 일부가 작성된 개인 기록. 셋을 한 줄로 이어 놓으면 누군가의 서사가 완성되겠지만 실제 기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브란트 법관이 내게 물었다. “징수관께서는 이 표로 무엇을 입증하려 합니까?”
“제 개인 수첩의 문장이 오래된 영번 기록봉에 있었다는 주장부터 분리하고 싶습니다. 동일한 문구가 있다고 해도 같은 시기에 적혔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브의 대리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개인 수첩의 작성 시점을 모른다면 그 표 전체가 의미 없지 않습니까?”
티르센이 입을 열었다. “원본 전체의 제작 연대를 확정하지 못해도 일부 압흔의 전후 관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사본의 표제 활자는 최근에 교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이 언제입니까?”
“작업기록과 실제 마모를 종합해 열하루 전을 전후한 기간입니다. 특정 하루까지 좁히려면 추가 자료가 필요합니다.”
법관은 그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나는 모브가 그 말을 '강태준이 거짓말했다'는 이야기로 바꿀까 봐 걱정했지만, 그가 말할 시간을 주기 전에 법관이 먼저 덧붙였다. “문서 진정성 감정은 당사자의 인격 평가가 아닙니다.”
에리카는 공동구매단의 표지 납품 전표를 제시했다. 수첩 표지에 있던 도장은 화재 뒤 사용된 공용 기증품 표식이며, 특정 한 사람의 소유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케른은 새 이름으로 출석해 자신이 운반한 표지가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는 법정 안에서 옛 이름을 밝힐 의무가 없었다. 필요한 신원 확인은 비공개로 끝났다.
“열두 장 중 하나가 강태준의 수첩이었습니까?” 모브가 물었다.
“모릅니다.” 케른이 대답했다.
“그럼 왜 증인으로 나오셨습니까?”
“아는 만큼 말하라고 해서 왔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증언이라면 그걸 하러 왔죠.”
법정 뒤쪽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나는 고개를 숙여 웃음을 감췄다. 사람들은 놀라운 사실을 말하는 증인을 좋아하지만, 나는 모른다는 말을 정확히 할 줄 아는 증인을 더 믿었다.
심리 중간에 법관은 잠시 휴정을 선언했다. 방청석에서 고성이 오갔기 때문이다. 한 유족은 영번 전사본이 거짓이면 삼 년 전 사망 보상금도 거짓이냐고 물었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되면 가족의 사망 기록이 전부 취소되는 것 아니냐며 울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즉시 답하지 못했다. 영번 전사본의 최근 제작 흔적과 삼 년 전 화재 기록의 진위는 별개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모두 같은 기관의 이름으로 온 문서였다. 한 장이 흔들리면 다른 장도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오딜이 사람들 사이에 섰다. “오늘 결정은 누가 죽었다는 기록을 한꺼번에 지운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서류가 제대로 작성됐는지부터 나눠 보는 거래요.”
그녀의 말에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뒤늦게 나아가 설명했다. 사망 여부, 생존 정정, 근무 일수, 임금, 보상금, 대리 수령 권한은 각각 별도의 근거가 필요했다. 확인된 부분은 보호하면서 잘못된 부분만 바로잡아야 했다. 잘못된 서식 하나 때문에 정당한 권리까지 사라져서는 안 됐다.
한 노인이 물었다. “그럼 우리 딸이 죽었다는 기록도 다시 보는 겁니까?”
“원하시면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창구를 안내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심리만으로 따님의 기록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늘 확답을 못 합니까?”
나는 그를 바라봤다. “제가 모르는 부분을 아는 척하면 언젠가 또 다른 가족이 잘못된 서류 때문에 울게 됩니다.”
그는 한참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증언을 요구받은 사람이 원치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정식 상담 창구의 위치를 종이에 적어 건넸다.
휴정이 끝난 뒤 티르센은 재료 감정을 추가로 설명했다. 전사본의 본문 글씨와 새 표제 부분은 잉크가 스며든 깊이가 달랐다. 그렇다고 한쪽이 삼백 년 묵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잉크 종류와 종이의 처리 방법이 달라도 차이가 날 수 있었다. 그는 같은 종류의 종이에 서로 다른 잉크를 쓴 시범 자료를 보여 주었다.
“그럼 정확한 날짜를 맞히는 건 불가능합니까?” 모브의 대리인이 물었다.
“특정 하루를 맞힐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새 활자를 장착한 인쇄기와 일치하는 흔적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추정이군요.”
“감정은 관찰 사실과 그로부터 가능한 해석을 분리해 보고하는 일입니다.”
법관은 그 답변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나는 마음속으로 티르센에게 감사했다. 그는 나를 돕기 위해 결론을 부풀리지 않았다. 그의 엄격함이 오히려 내 사적 기록을 지켜 주고 있었다.
오후의 마지막 증인은 네일이었다. 그는 왕궁 제이 인쇄실에 청동 받침을 납품한 적은 있지만, 어떤 문서를 찍었는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내 수첩 모서리와 비슷한 사각형 틀은 당시 여러 공문에도 쓰였다고 했다.
“그 사각형 때문에 누가 다른 사람을 검증자라고 지정할 수 있습니까?” 법관이 물었다.
“저는 기계를 고치는 사람입니다. 그럴 권한이 있는지는 법관님이 판단하셔야죠.”
법정에 작은 웃음이 났다. 네일은 자신이 한 말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가려 준 덕분에 사건이 한 걸음 앞으로 갔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법원 기록관은 열람 신청서 원본을 내게 보여 주었다. 제삼 결제소 측은 한 번도 내 수첩의 글씨 전체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청서에 적힌 것은 크기와 첫 장 사각형의 모양이었다. 그 정보가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조사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 내 기억이 빼앗겼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래된 습관대로 칸을 그어 기록했다. '확인됨'과 '확인 필요'. 두 칸 사이에 사람의 미래가 걸려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렌의 대리인은 '제12석 임시 관리' 표식을 사망 보상금 지급 승인으로 사용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서를 냈다. 본인은 출석이나 대리 승인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살아 있다는 신원 정정과 임금 지급은 독립된 절차라고 했다. 법관은 이를 별도 기록으로 접수하고, 해당 표식이 단독으로 사적 보관금의 인출권을 주지 않는다는 임시 판단을 유지했다.
모브가 언성을 높였다. “그 표식이 없으면 오래된 물건을 반환할 수 없습니다!”
“반환받을 정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야죠.” 나는 말했다. “그게 불명확하면 보관 상태를 유지하면서 적법한 심리를 하면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거짓 출석을 요구할 이유는 없고요.”
법관은 모브에게 물었다. “반환 요청 물건의 실물을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까?”
그는 침묵했다. 마침내 대리인이 답했다. “제삼 결제소의 직접 보관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답을 들으며 며칠 전부터 찾던 미반환 상자를 떠올렸다. 누가 보관하지도 않은 물건을 반환하라고 하면서 왜 특정 증인의 출석을 조건으로 걸었을까.
그날 오후 에리카는 내게 감정 표의 보완을 부탁했다. “수첩 첫 장의 사각형 압흔은 무슨 의미인지 아직 알 수 없잖아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빨간색으로 표시합시다.”
나는 동의했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전사본 표제에 최근의 기계 압흔이 남았다는 사실, 같은 사각형 틀을 쓰는 장치가 여러 곳에 있다는 사실, 국고 열일곱 닢이라는 숫자가 이미 공개된 정보였다는 사실뿐이었다. 내 개인 기록이 실제로 유출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루카스가 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누군가 일부러 징수관님을 검증자로 보이게 만든 걸까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것도 가설이야. 사건에 무관한 사람이 같은 활자를 썼을 수도 있거든.”
“이렇게 확실한 범인이 없으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잖아요.”
“끝나지 않는 동안에도 해야 할 일은 있지. 피해자 돈을 보호하고, 잘못된 권한으로 더는 사람이 끌려가지 않게 하는 것.”
법정 정문에서 기다리던 로웬은 나를 보자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금화는 한 닢도 안 들어왔군.”
“그 대신 잘못된 보상금 지급을 막았습니다.”
“그게 예산서에는 어떻게 적히나?”
“피해 방지로 적고, 세입으로는 적지 않죠.”
로웬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그에게 정상 징수 업무가 지연되지 않도록 인원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때문에 나라가 멈추면 조사도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된다.
법정이 끝나갈 무렵 국왕이 보낸 서신이 도착했다. 왕은 감정 결과를 보고 내 수첩을 돌려주는 일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다. 서신에는 '모든 기록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오래된 왕실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그 아래 왕이 직접 다른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나 개인의 기억은 본인의 것임을 인정한다.'
브란트 법관은 서신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왕께서 법정의 결정을 기다리시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개인 수첩을 당장 돌려받고 싶었다. 그 안에는 아마 다시 떠올리지 못할 한국의 장면들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 도중 물건을 꺼내 훑어본다면 누군가 나중에 기록이 바뀌었다고 주장할 틈을 줄 수 있었다. 그 틈을 만든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평생 아쉬울 것이다.
에리카는 낡은 책갈피 하나를 내밀었다. 그녀의 부친이 쓰던 것이었다. 단단한 나무 조각에 '확인할 때까지 보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제가 아버지의 글씨를 검증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네.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론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며 견뎌 온 시간을 생각했다. 내 고향의 기억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그녀가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달랐지만 닮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해 줬다.
“기록이 잘못됐다는 걸 발견해도 그 사람을 잊는 건 아니에요.”
“당신도 수첩의 날짜가 잘못됐다고 해서 고향을 잊는 건 아니고요.”
그날의 대화는 법정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중요한 증언이었다. 사람에게는 국가에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기억이 있고, 그런 기억을 지킨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에 티르센은 봉인 감정 보고서의 예비 결론을 내게 보여 주었다. 가장 흥미로운 문장은 수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영번 전사본의 날짜칸에서 먼저 찍힌 것은 월·일이 아닌 보관 지점 번호의 압흔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날짜라고 읽은 숫자는 뭡니까?” 내가 물었다.
“아직 대조 중입니다. 다만 왕궁 제이 인쇄실의 바탕판에 같은 형식이 있습니다.”
나는 손바닥에 땀이 나는 걸 느꼈다. 누군가 내 세계에 온 첫날을 암호처럼 붙여 놓았다는 주장, 그럴듯한 기적의 설명이 한 번에 흔들렸다. 기적이 사라져서 실망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록 하나로 다른 사람의 삶을 결정하려던 권한이 흔들리는 게 반가웠다.
그때 하엘이 비공개 경로로 편지를 보내왔다. 날짜를 다시 먹였던 밤에 작업대 위에 수첩 모양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표지만 보았고 안쪽 글씨는 못 봤다고 했다.
나는 편지를 읽고 조심스럽게 적었다. '표지 목격. 글씨 미확인. 내 수첩과 동일 여부 미확인.'
마지막 줄은 뜻밖이었다. 하엘이 보았던 표지에는 작은 붉은 끈이 붙어 있었다. 내 수첩에는 붉은 끈이 없었다.
나는 수첩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법원 감정 절차를 망가뜨리면서 얻을 결론은 없었다. 대신 티르센에게 원본 겉표지 사진과 당시 봉인 사진을 비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누군가 내 기록을 복제하려 했다면 실패한 부분이 그를 드러낼 것이다. 범인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그 차이가 그의 무죄를 지켜 줄 것이다. 둘 모두를 위해 우리는 붉은 끈을 찾아야 했다.
제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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