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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서로 다른 두 시계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188자

오프라인 책장
티르센의 감정실에는 시계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왕궁에서 내려온 물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인쇄기 옆에 달린 기계식 계수판이었다. 둘은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 않았다. “이러니 다들 문서 날짜를 못 믿는 거군요.” 내가 말했다. “물시계는 시각을 재고 계수판은 작업 순서를 셉니다. 둘을 같은 숫자라고 읽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고 싶었지만 원본 수첩은 봉인실에 있었다. 루카스가 대신 종이를 건넸다. 그는 아예 새 종이에 '오늘 관찰'이라고 크게 적어 두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을 보전하려 만든 수첩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놓쳐선 안 됐다. 우리는 영번 전사본 아래에서 발견된 압흔의 순서를 조사했다. 전사본은 영번 기록봉에 새겨진 문구를 최근 양식으로 옮긴 종이였다. 고대 기록봉과 전사본은 같은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을 작성한 사람이 삼백 년 전 기록의 모든 뜻을 이해했다는 보장도 없었다. 티르센은 얇은 종이 세 장을 포개고 잉크를 묻히지 않은 나무 활자를 눌렀다. 맨 위 종이는 멀쩡했고 아래 장에는 비스듬히 빛을 비추자 얕은 흔적이 나타났다. 압흔의 방향은 언제 어느 장을 쌓았는지에 따라 바뀌었다. 내 수첩의 사각형과 전사본 받침 종이의 사각형은 닮았지만 획의 순서가 같지는 않았다. “그럼 제가 그린 걸 베낀 게 아니겠네요?” 내가 물었다. “그렇게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틀을 쓰더라도 사람 손이 더해지면 달라집니다. 지금은 양쪽을 같은 작업대에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죠.” 루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 번도 확실하다고 말해 주시질 않네요.” “정확한 말은 확실한 결론만큼 귀합니다.” 티르센이 대답했다. 그날 왕실 인장실에서 낡은 기계 대장 두 권이 도착했다. 두 권 가운데 하나는 수리 기록, 다른 하나는 보관용 표제 제작 기록이었다. 유리판 두 장과 청동 가름판의 크기가 함께 적혀 있었다. 세모난 바퀴를 가진 수레가 운반한 상자가 그 물건들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크기가 맞는 지점은 따로 표시해 두었다. 나는 항목 하나를 짚었다. '형판 가로 폭: 손바닥 반.' “이 나라에서는 손바닥으로 기계를 재나요?”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네일이 설명했다. “지금은 규격자를 쓰죠. 그런데 이 수리 대장에 옛 단위를 쓴 사람은 이상합니다.” “왜죠?” “같은 줄에 최근에 만든 규격자의 눈금도 적혀 있거든요. 오래된 장부를 복사한 사람이 새 치수를 덧붙였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네일은 자기가 그 인쇄기를 수리했을 때의 임금 장부도 가져왔다. 예전에 실제 받은 돈보다 세 배가 적혔던 수리 내역이다. 그는 그 문서를 사본과 원본으로 구분해 내밀며 말했다. “인쇄기 나사 한 개가 빠져 있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다만 어느 판을 찍었는지는 못 봤어요.” “못 본 부분을 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징수관님께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건 아닙니다.” 그는 투덜거렸지만 수리점에 남은 부품 주문서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오후에는 모브가 감정 결과의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계약서에 찍힌 검은 깃털 문양과 전사본 압흔의 모양이 닮았으므로 모두 한 계통의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브란트 법관은 공개할 수 있는 일반 규격 정보만 허용하고, 개인 수첩의 비공개 내용은 봉인된 상태로 두었다. “국가가 자의적으로 진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모브가 목소리를 높였다. 에리카가 차분히 말했다. “감정은 진행 중이며, 귀하의 계약서 원본도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첩을 먼저 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브가 그녀를 흘겨보았다. “벨란 가문의 딸이 객관성을 말하다니.” “제 아버지의 죽음과 이 사건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제가 이해관계로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록은 다른 감정관이 맡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뒤늦게 깨달았다. 에리카에게 이 사건은 나보다 오래된 사건이었다. 내가 고향의 기억을 지키고 싶듯, 그녀는 부친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원한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매번 더 힘든 길을 택했다. 감정실 창밖에서는 북문 상인들이 세관 재정비를 두고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다. 수입신고를 다섯 번 하는 게 귀찮다는 상인과, 그 덕분에 뇌물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상인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나는 로웬에게 정상 세관의 접수 양식을 줄이는 방안을 제출했다. 증빙을 지키는 것과 시민에게 서류를 무한정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로웬이 회신했다. ‘감정 일정이 늘어나면 국고에 부담이 된다. 필요한 검사만 하라.’ 당연한 지적이었다. 나는 법정 요청에 감정 항목마다 필요한 시간과 예상 비용을 적었다. 불분명한 표제를 전부 다시 인쇄하는 대신, 문제가 된 날짜와 판의 압흔을 먼저 비교하기로 했다. 돈을 무한히 쓰면서 돈의 행방을 추적한다면 그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티르센은 우리를 오래된 인쇄기 앞에 세웠다. 인쇄기 옆에는 이름 대신 번호가 적힌 작은 판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왕실의 명령서, 급식 대장, 공동 보관 장부는 각기 다른 판을 썼다. 외부에서 보면 모두 비슷한 직사각형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판을 갈아 끼워도 종이를 받는 사람은 쉽게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여기서 인장이 찍히는 부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티르센이 말했다. 그는 실제 왕실 인장을 쓰지 않았다. 나무에 새긴 연습용 동그라미를 대고 빈 종이를 한 번 밀었다. 판이 내려갔다 올라오자 동그라미는 종이 오른쪽 아래에 찍혔다. 같은 자리에 다른 받침을 넣자 동그라미가 조금 왼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위치가 조금 달라지면 다른 사람이 작성한 문서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받침이 낡아 흔들려도 달라지죠.” “그럼 왜 이런 걸 조사해요?” “사람이 쓴 글씨가 아니라 기계가 남긴 버릇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종이 아래에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작은 돌기를 보여 주었다. 두 번 인쇄할 때마다 오른쪽 모서리에 낮은 흠집이 생겼다. 오늘 만든 종이에도 같은 흠집이 있었다. 작업자가 어느 판을 썼는지 몰라도 받침의 손상 상태를 비교하면 사용 순서를 좁힐 수 있었다. 물론 종이가 나중에 다른 장치에 걸렸다면 혼동될 수 있었다. 그래서 티르센은 언제나 '같은 장치에서 나왔음' 대신 '같은 종류의 손상을 가진 장치와 양립함'이라고 적었다. 네일은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제가 기계 수리비를 세 배나 지급받았다고 적힌 날에도 판 하나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판의 모서리에 비슷한 흠집이 있었어요.” “그 기록을 갖고 계십니까?” “원본은 군무청에 냈습니다. 저는 사본만 가지고 있죠.” “사본도 확인 자료는 됩니다. 다만 원본 보관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네일에게 사건 때문에 다시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물었다. 그는 최근 북문 수리소에서 일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인쇄기가 고장 나면 자신을 부르면서, 감정 절차에는 그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나는 발주 기관에 보복성 계약 배제가 없는지 조사해 달라는 공식 요청을 냈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 능력을 무조건 보증하는 추천서를 써 주지는 않았다. 그건 감사 권한과 다른 일이었다. 왕궁 재무청의 예산 담당자는 검사 한 번에 드는 비용을 따져 물었다. 오래된 판을 매번 빛 아래에 세우고, 참관인을 불러야 하니 급여가 쌓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검사 대상을 좁히기로 했다. 이미 확인된 판 전체를 다시 훑는 대신, 영번 전사본에 남은 세 가지 특징과 맞는 판만 선별했다. “시간을 절약하면 진실이 덜 정확해지지 않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필요한 검사를 생략하는 건 위험하지만, 관련 없는 물건을 전부 조사하는 것도 낭비야. 무엇을 왜 봐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지.” 재무청 복도에서는 임금 지급 신청서를 들고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누군가는 종이를 잘못 써 세 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에리카는 그 모습을 보고 안내문을 바꿨다. 수입 계정과 지급 계정이 다른 기관에 있다는 이유로 시민을 왕궁 사이로 계속 보내서는 안 됐다. 한 창구에서 접수하고 담당 기관으로 서류를 보내는 방식으로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조사 때문에 바빠도 이런 일은 해야겠죠.” 에리카가 말했다. “당연하죠. 나라가 문서를 감정하는 동안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요.” 한 노인이 서류에 적힌 '대리인'이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그는 글을 잘 모른다고 했다. 루카스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대리인은 대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권한으로 무엇을 대신하는지 별도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내 손녀가 글을 대신 써 주는 건 되지만 내 돈을 가져가는 건 안 된다는 거군.” “맞습니다.” 루카스가 웃었다. 나는 그의 설명이 우리 사건의 요약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서류에 이름을 쓰고, 누가 돈을 실제로 받는지. 두 행위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왕국 전체가 알아야 했다. 오후에 티르센이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누군가 영번 전사본을 일부러 내 수첩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다면, 그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수첩 속 문장보다 수첩의 크기와 표지 모양일 수도 있었다. 표지만 보여 준 목격이 여러 명 있었다. 나는 그 가설을 작업표에 적었지만 결론으로 옮기지 않았다. 동일한 크기의 수첩은 시장에도 많았으니까. 왕실 기계감정이 길어지자 북문 수리소의 현장 책임자가 항의문을 보내왔다. 인쇄판을 제출하라는 명령 때문에 창고 출입증을 만들 수 없고, 창고 출입증이 없으면 물자 수령이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서류 한 장을 조사하느라 수리 자재가 묶이고 있었다. 나는 티르센에게 물었다. “원본 판을 계속 보관해야만 합니까?” “필요한 감정은 마쳤습니다. 다만 원상 보존 장치 없이 돌려보내면 나중에 마모 흔적이 바뀔 수 있어요.” “그럼 대체 판을 승인된 공방에서 만들고, 실사용과 증거 보존을 분리하면 어떻겠습니까?” 티르센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법원에 비용과 관리자를 명시한 대체 장치 사용 신청을 냈다. 판을 돌려주는 것보다 느릴 수 있었지만 현장의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원본을 보존할 수 있었다. 누군가 기록을 남기지 않아 생긴 문제를 현장의 노동자가 전부 떠안을 이유는 없었다. 네일은 작업 도중 내게 오래된 나사 하나를 보여 주었다. 같은 규격으로 만든 부품에도 제작자마다 끝을 다듬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왕궁 판의 나사 끝은 비스듬했고 북문 판의 나사 끝은 평평했다. 그러나 수리 과정에서 교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걸로 만든 사람을 알 수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어느 공방의 작업법인지 추정할 수는 있소.” 네일이 말했다. “하지만 나사는 시장에서 사고팔기도 하니 누가 끼웠는지는 다른 이야기지.” 나는 그 차이를 작업표에 또 한 줄 적었다. 우리의 질문은 점점 촘촘해졌지만 답은 느렸다. 그래도 그 느림 덕분에 지금까지 억울하게 의심받은 목수와 인쇄공이 많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었다. 저녁에 네일이 주문서를 가져왔다. 부품은 북문 수리소가 아닌 왕궁 제이 인쇄실로 청구돼 있었다. 주문 수량은 고정 나사 네 개와 활자 받침 두 개. 그 옆에 형판 보정 작업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기계의 모서리 치수도 내 수첩 첫 장의 사각형 크기와 가까웠다. “두 기계가 같은 곳에 있다는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니.” 내가 답했다. “같은 종류의 부품을 주문했다는 뜻이지. 어디에 장착했는지는 찾아야 해.” 우리는 주문서 뒷면의 유통 상인 도장을 보았다. 도장은 오래전에 폐업한 인장 재료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잉크는 비교적 깨끗했고, 계좌 정산일은 불과 열흘 전이었다. 서류 위에는 아주 작은 손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두 번째 찍은 것은 왕궁으로, 첫 번째 찍은 것은 북문으로.' 무엇을 찍었는지 적지 않은 문장이었다. 티르센은 내가 뭔가 말하기 전에 고개를 저었다. “같은 문서를 두 번 찍었다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같은 날 다른 서식을 두 벌 만들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원본 인수증을 요청하죠.” 루카스가 질문했다. “어느 쪽부터요?” “북문이든 왕궁이든. 둘 다 같은 번호를 적었는지 확인하면 돼.” 다음 날 새벽, 북문 수리소에서 온 회신에는 받침 둘을 반납했다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왕궁 제이 인쇄실에서는 반납한 물건이 없다고 했다. 단순한 기록 누락일까. 아니면 같은 번호표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한 걸까. 나는 나란히 놓인 두 회신을 보며 말했다. “오늘부터는 시간을 세기 전에 물건의 수를 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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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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