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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9화
PAYLUA ORIGINAL · 제9화

9화. 금화 백만 닢의 주인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033자

오프라인 책장
“이 금의 대부분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용의 말을 곧장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보이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대한민국에서 건물 등기부를 수없이 봤던 내게 그 구분은 낯설지 않았다. 차명 재산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보관만 맡은 재산도 있다. “누구의 금입니까?” 카르디온이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쌓인 금화 뒤편에 검은 돌문 하나가 있었다. 그 앞에는 작은 석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용이 앞발로 석판 하나를 밀었다. “옛 드워프들의 것이다.” 루카스가 먼저 알아봤다. “고대 산맥 연합의 문자가 있어요.” “그들은 백 년 전 마지막 전쟁에서 죽었다. 떠나기 전 내게 금을 맡겼다. 후손들이 돌아오면 돌려주라고.” “후손은 돌아왔습니까?” “아직.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용이 인간의 재산법보다 정확한 윤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 금을 세금으로 걷을 수는 없겠군요.” 브란트 대장이 나를 쳐다보았다. 방금 내 발치에 국가 부채를 갚을 만큼의 금화가 놓여 있는데, 나는 그 돈을 가져갈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왜?” 용이 물었다. “당신 소유가 아니니까요. 보관 중인 자산을 전부 세금 대상으로 삼는다면 은행 금고도 통째로 가져갈 수 있겠죠. 그건 징수가 아니라 몰수입니다.” 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마치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인간 중에서도 계산이 되는 자가 있군.” “제 직업이 그거라서요.” 그때 손목의 장부가 진동했다. 새로운 정보가 떠올랐다. [보관자: 카르디온] [수익권자: 산맥 연합 후손 신탁] [보관자 개인 재산으로 과세할 수 없음] 나는 놀라지 않으려고 애썼다. 장부도 제대로 물으면 그 차이를 알려준다. 처음부터 ‘드래곤의 금’이라며 금액만 보고 달려들었다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나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검은 석판에는 금을 맡긴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이름 옆에는 마을과 가족을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가장 아래 줄을 따라갔다. “한 사람이 맡긴 금이 얼마나 되는지 전부 적혀 있군요.” “잊지 않으려고 새겼다.” 카르디온이 말했다. “백 년 동안 이걸 직접 관리하신 겁니까?” “내게 백 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백 년은 전부였겠지.” 루카스가 한 석판 앞에 멈췄다. 그는 고대어를 천천히 읽었다. “‘손녀가 돌아오면 금반지 세 개를 돌려주라.’ 여기 적힌 이름은 가족 이름 같아요.” 용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가 전쟁 전에 태어났다. 돌아왔다면 이제 늙었을 것이다.” 나는 자그마한 금반지 세 개가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보았다. 수많은 금화보다 그 상자가 더 무거워 보였다. 수백 년을 살 수 있는 존재가 짧게 사는 사람과 맺은 약속을 아직 지키고 있었다. “혹시 후손을 찾으려 노력하셨습니까?” “인간의 땅에는 오래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내가 나타나면 모두 무기를 들었으니까.” “그럼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공개적으로 후손을 찾는 공고를 낼 수는 없더라도, 산맥 연합의 기록을 대조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일을 왜 네가 하지?” “저도 남의 돈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습니다.” 용은 긴 꼬리를 움직여 석판 뒤편의 작은 공간을 가렸다. 그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거대한 동굴의 공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카르디온이 말했다. “내가 너희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를 아느냐?” “누군가 보물을 훔치려 했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인간들이 자기가 지키지도 않은 약속을 내 이름으로 적기 때문이다. 나를 악한 존재로 만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빼앗아도 괜찮아지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 사람을 잘못된 이름으로 규정하면 그의 재산을 가져가는 일이 어느 순간 정당한 처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제 장부에도 처음엔 이 금을 전부 드래곤 재산으로 표시했습니다.” 용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나 지금은 보관과 소유를 분리해서 보겠습니다.” “왜 마음을 바꾸었느냐?” “원본을 확인했으니까요.” 용이 낮게 웃었다. “너희는 가끔 단순한 걸 어렵게 배우는구나.” 그 말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원본을 보기 전에는 내 결론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 동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을 맡긴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에리카가 내게 속삭였다. “장부에 그 이름들을 기록해 두실 건가요?” “동의를 받아 필요한 범위만요. 후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 내가 서류에 적힌 이름 하나를 왜 그토록 조심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카르디온 님 자신의 재산은 어느 정도입니까?” 용은 기분 나쁘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네가 왜 알아야 하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없으면 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세금이라. 너희 인간의 왕이 내게 보호를 제공한 적 있느냐?” “그 질문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광산권뿐 아니라 도로 사용 계약도 보려는 겁니다.” 에리카가 조약 사본을 펼쳤다. 예순 해 전의 원본에는 두 가지 의무가 쓰여 있었다. 왕국은 광산 진입로와 국경 교역소의 통행을 보호한다. 광맥 이용자는 채굴 수익에서 정해진 사용료를 왕국에 납부한다. “문제는 카르디온 님이 직접 채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채굴한 자에게 청구해야죠.” 나는 용에게 질문했다. “최근 삼 년간 산 아래에서 광석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보았다. 밤마다 불빛이 지나갔다.” “막지 않으셨습니까?” “허락받은 인간들이라고 믿었다. 오스윈이 문서를 보여줬으니까.” “혹시 대가를 받으셨습니까?” “없다. 내게 바치겠다던 은화가 도착한 적도 없다.” 나는 에리카와 눈을 마주쳤다. 오스윈이 용의 이름을 빌려서 광산을 채굴하게 하고, 청동왕관 상단이 수익을 가져간 정황이었다. 드래곤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상단의 탈세를 밝혀야 했다. 용은 다시 석판을 밀었다. 뒷면에는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거기서 은색 고리가 떨어졌다. “오스윈이 왔을 때 이것을 남겼다. 내게 정당한 채굴권을 설명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인간들은 이 고리를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이라고 하더군.” 에리카가 고리를 받아 들었다. 안쪽에는 왕실 재무청의 새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가장자리가 이상했다. 일반 공무원의 인장 반지와 달리 숫자 세 개가 새겨져 있었다. “세 번째 인장실의 열쇠 표식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왕실 비밀 금고를 열 때 쓰던 방식입니다.” 나는 물었다. “왕실 비밀 금고가 아직 있습니까?” “존재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어요.” 그 순간 루카스가 석판에 쓰인 작은 문자를 읽었다. “여기에 날짜가 적혀 있어요. 오스윈이 방문한 날. 그리고 그 옆에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뭐라고?” “‘한 장의 계약이 완성되면, 네 산은 다시 왕의 것이 된다.’” 나는 카르디온을 올려다봤다. 용은 잇새로 낮게 불꽃을 흘렸다. “나는 산을 판 적이 없다.” “누군가 매매 계약서를 위조한 겁니까?” “그 인간은 그걸 원했다.”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청동왕관 상단이 왕실 채무를 담보로 조폐권을 요구하는 동시에, 광산권을 토대로 드래곤의 산까지 차지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와 실현은 별개다. 우선 계약서를 찾아야 했다. 정밀 열람을 누르기 전에 나는 용에게 한 가지 약속을 요구했다. “카르디온 님. 제가 본 기록을 왕국 재판에서 사용하려면 실제 거래 문서와 대조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하신 내용 중 공개해도 되는 범위를 정하고 싶습니다.” “너희 인간의 재판에는 내 말이 필요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으시는 정보까지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드워프들의 금과 가족 이름은 별도 문제니까요.” 용은 오래 생각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그가 앞발로 돌판 하나를 밀어 내 쪽으로 보냈다. “광산의 옛 조약과 내 허가 여부는 공개해도 된다. 맡아둔 금의 소유자 목록은 공개하지 마라. 약속을 어긴 자가 다시 금을 노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리카가 제한 범위를 적고, 루카스가 고대어로 읽었다. 카르디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용의 명예를 빌려 재판을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거래를 확인할 수 있는 증인을 확보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광산 사용료는 매출 전체가 아니라 계약상 정산 수익에서 계산합니다. 비용이 정당한지 확인하려면 광부에게 지급한 임금과 장비비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 돈은 인간이 받았으니 내게 묻지 마라.” “맞습니다. 상단에 요구할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광석이 오갔는지 목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용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흰 달이 열두 번 찰 때마다 광석을 실은 수레가 지나갔다. 세 번째 해에는 수레가 두 배가 됐다. 그 뒤에도 산은 예전보다 가벼워졌지.” 루카스가 빠르게 적었다. ‘세 번째 해 운송량 증가’. 장부의 광석 매출 내역과 비교할 수 있는 정황이었다. 동굴 안에서 용의 말만으로 돈을 확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우리가 확인할 자료는 늘어났다. 그때 카르디온이 낮게 말했다. “너희 인간은 계산하는 동안 누가 다쳤는지도 적느냐?” 나는 교역소에서 만난 광부를 떠올렸다. “적습니다. 기록이 없는 사람도 찾아서 적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계속하라. 내 이름으로 다른 이의 고통을 숨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오늘 내가 들은 어떤 약속보다 무거웠다. 나는 그날 첫 정밀 열람을 실행했다. 대상은 ‘붉은 절벽 광산의 최근 삼 년간 실제 채굴 수익’. 눈앞에 수백 개의 거래가 펼쳐졌다. [광석 매각 총매출: 48,200금화] [정당한 채굴 비용 확인분: 16,400금화] [비용 및 계약상 공제액의 적정성: 추가 확인 필요] [왕국 광산 사용료 신고: 0금화] [미신고 사용료 추정액: 최대 9,540금화] 나는 숨을 삼켰다. 9,540금화. 내일 만기가 돌아오는 왕국 채무 8,000금화를 넘는다. 하지만 ‘최대’라는 말이 걸렸다. 비용과 실제 귀속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가슴 안쪽이 텅 비었다. 한국에서 가장 자주 통화하던 사람의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은 알고 있다. 어떤 관계인지도 안다. 그런데 열한 자리 숫자만 뿌옇게 사라졌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초능력을 쓸 때마다 나 자신이 조금씩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에리카가 다가왔다. “안색이 안 좋아요.” “괜찮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여기엔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잖아요.” 나는 웃지 못했다. 그녀에게 장부의 대가를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었다. 카르디온이 우리를 내려다봤다. “네가 원하는 걸 이제 알겠다. 내 금이 아니라, 내 이름을 팔아 번 인간의 돈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겠다.” 브란트 대장이 창을 떨어뜨렸다. “뭐라고요?” “내 이름을 도둑맞았으니, 직접 돌려받겠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었다. “왕궁에 드래곤이 나타나면 공포가 생깁니다. 먼저 증거를 제출할 방법을 마련하죠.” 용은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날개를 접었다. 동굴 안쪽에서 금빛 비늘 하나가 떨어졌다. “이걸 가져가라. 내 진술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다. 거짓말을 시키면 불타고, 내 뜻과 다르게 쓰면 갈라질 것이다.” 나는 두 손으로 비늘을 받았다. 따뜻했다. “내일이 만기입니다.” 에리카가 속삭였다. “이걸로 돈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이 어디 있는지는 거의 알았습니다. 이제 법적으로 누구 것인지 증명해야죠.” 돌아서는 순간, 용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강태준.” “예?” “너희 왕국의 빚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고 있느냐?” “삼 년 전 전쟁 준비 비용이라고 들었습니다.” 용이 낮게 웃었다. “그 전쟁은 인간이 시작하려던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계약을 제안한 자가 있었다.” “누굽니까?”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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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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