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이 사는 절벽에 가겠다고 하자 모두의 표정이 나빠졌다.
로웬은 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고, 루카스는 공책을 떨어뜨렸다. 에리카만은 차분했다. 그녀는 왕국 지도를 펼쳐 붉은 절벽에 손가락을 올렸다.
“여기는 왕국 영토 바깥이에요. 멋대로 세금을 걷으러 가면 오히려 침략 행위가 됩니다.”
“그렇죠. 그래서 먼저 주소부터 확인하려는 겁니다.”
나는 광산권 등록 문서를 책상 위에 놓았다. 문서는 예순 해 전에 작성되었다. 붉은 절벽 북쪽 제삼 광맥의 채굴 허가권자가 카르디온이었다. 승인자는 당시 국왕. 기록에는 묘한 조항이 붙어 있었다.
‘광맥 이용자는 왕국 도로와 교역소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채굴 수익의 정해진 비율을 국고에 납부한다.’
“영토 바깥인데 어떻게 왕국이 허가권을 갖고 있죠?” 루카스가 물었다.
“광맥 절반이 왕국 쪽으로 이어지니까요.” 에리카가 설명했다. “국경은 산등성이지만 광산 진입로는 왕국 안에 있어요. 옛 조약을 따라 공동 관리하는 거죠.”
“그럼 드래곤에게 물어볼 건 두 가지군요. 광산을 실제로 누가 운영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거래를 승인했는지.”
로웬이 고개를 저었다. “거래 승인을 확인하러 갔다가 불에 타면 무슨 소용입니까?”
“공식 사절로 갑니다. 무장을 줄이고, 조약에 정한 서면 청원을 전달하죠. 카르디온이 만나주지 않으면 돌아옵니다.”
“대답을 안 하면요?”
“대답할 의무가 없는 질문엔 다른 증거를 찾아야죠.”
나는 말하고 나서도 불안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용은 마을을 태우고 산을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나 장부에는 카르디온이 최근 쉰두 해 동안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고지서를 전달했다고 공격한다는 증거도 없었다.
국왕은 뜻밖에 허가를 내주었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왕실 깃발과 사절권을 표시하는 은패를 들 것. 열 명 이상으로 무장하지 말 것. 자의로 금고를 열거나 강제징수를 선언하지 말 것.
“세금을 걷으러 가는 사람에게 너무 제약이 많습니다.” 로웬이 말했다.
아델리온은 웃지 않았다. “그 제약을 지킬 사람이니 보내는 것이다.”
왕국 경비대장 브란트가 호위를 맡았고, 에리카와 루카스도 따라왔다. 나는 루카스를 두고 가려고 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가 옛 조약 글자를 읽을 수 있어요. 기록실에서 고대어 수업도 들었습니다.”
“드래곤이 덤비면?”
“제일 먼저 도망갈게요.”
“그 대답은 마음에 드네.”
붉은 절벽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양치기들이 언덕에서 양을 몰았고, 오래된 교역소에서는 광부들이 빵을 샀다. 그런데 길 한복판에 청동왕관 상단의 통행증을 확인하는 사설 경비들이 서 있었다.
“왕실 도로인데 왜 상단이 검문하죠?” 내가 물었다.
브란트 대장이 설명했다. “도로 보수 비용을 상단이 댔답니다. 몇 년 전부터 관리권을 넘겨받았죠.”
“정식 위탁 계약은요?”
“군무청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나는 관문을 건너며 통행증을 살폈다. 상단은 광부에게도, 소금을 싣고 가는 상인에게도 같은 돈을 받았다. 그 돈 중 국고로 돌아오는 금액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그걸 조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역소에서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달려왔다. 몸집이 왜소한 광부였다.
“왕실 사절이십니까? 제 동생이 광산에서 다쳤는데 산재 보상금을 못 받고 있습니다.”
“광산 운영자는 누구입니까?”
“청동왕관 상단이요. 그런데 계약서엔 용의 이름이 써 있어요. 상단은 용이 사용자라며 보상 책임이 없대요.”
에리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계약서에 용 이름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광부의 이름과 동생의 근무일을 기록했다.
교역소에는 낡은 돌판 하나가 서 있었다. 광부는 동생 이야기를 마치고 그 돌판을 가리켰다.
“옛날에는 저기에 채굴 노동자의 이름을 새겨 줬습니다. 광산에서 다치면 관리자가 치료비를 냈고, 죽으면 가족에게 식량을 보냈대요. 하지만 상단이 들어온 뒤로 이름 대신 번호를 써요.”
나는 돌판을 살펴봤다. 오래된 글씨 가운데에는 누군가가 긁어 지운 이름이 있었다. 옆에는 새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광부 번호, 작업 시간, 지급 예정 임금. 사람의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 숫자가 들어앉았다.
“계약서가 남아 있습니까?”
“동생 것만 있어요. 옛 계약서는 조합장에게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굳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조합 사무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먼지와 광석 가루가 쌓여 있었다. 조합장은 처음엔 왕실 사람을 들이고 싶지 않아 했다.
“왕실이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이오? 세금을 내라고 하면 화가 날 뿐이지.”
나는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오래된 광산 계약서를 보고 싶다고만 했다. 조합장은 한참 침묵하다 나무 궤짝에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첫 계약서는 광맥 사용료 외에 노동 재해 보조금을 명시했다. 광부가 다치면 채굴 수익에서 작은 몫을 따로 떼어 치료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청동왕관 상단이 새로 작성한 계약서에는 그 조항이 빠져 있었다.
“법이 바뀌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상단 감독관에게.”
“정식 개정 명령은 보셨습니까?”
조합장은 고개를 저었다. 에리카가 옛 조약집을 다시 펼쳤다. 노동 재해 보조금 조항은 여전히 유효했다. 폐지 기록도 없었다.
“그러면 동생분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동안 재해 보조금을 적립하지 않았거나 다른 곳에 썼다면, 그것 역시 조사 대상입니다.”
“그걸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보장할 순 없습니다. 다만 법에 살아 있는 의무는 확인했습니다.”
조합장은 한동안 내 얼굴을 보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떠날 때 그는 병든 광부들의 목록을 건넸다. 이름과 금액이 적힌 종이였다. 나는 원본을 그에게 돌려주고 사본에만 접수번호를 붙였다. 그가 웃지 않은 채 말했다.
“왕실 사람 중에 원본을 두고 가는 사람은 처음 보오.”
“원본이 있어야 여러분도 나중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절벽으로 걸어가는 동안 에리카가 말했다. “우리가 돈을 찾으면 저 사람들 것도 줄 수 있을까요?”
“법률상 누구에게 우선 돌아가야 하는지부터 검토해야겠죠. 국고 채무를 갚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왕국이 살아남아도 사람들이 계속 굶으면 의미가 없겠네요.”
“그게 제일 어려운 계산이죠.”
교역소를 벗어나자 붉은 절벽이 가까워졌다. 바위 사이에는 광석을 싣고 내려온 수레 바퀴 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곳곳에 파란 새가 새겨진 나무 말뚝이 박혀 있었다. 누군가 이 길을 자기 소유인 양 표시하고 있었다.
브란트 대장이 말뚝 하나를 살폈다. “이건 왕실 경계 표시가 아닙니다.”
“그러면 임의로 꽂은 겁니다. 제거는 하지 마세요. 위치를 기록해 두죠.”
그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에게 무언가를 철거하지 말라고 말하는 징수관이라니. 이제 그도 조금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오늘 우리가 찾을 것이 단순한 미납 세금이 아니라 누가 일한 사람의 책임을 떠넘겼는지라는 걸 알았다.
해가 질 무렵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 작은 물웅덩이에는 검붉은 빛이 맴돌았다. 브란트 대장은 말들에게 물을 먹이려다 곧 손을 거뒀다.
“용의 영역에서는 무엇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절권이 있다고 해서 상대의 땅에서 마음대로 행동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말들을 멀리 묶어 두고, 왕실 깃발도 산길 입구에 세웠다. 더 깊이 들어갈 사람은 나와 에리카, 루카스, 브란트뿐이었다.
“혹시 카르디온이 만나주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청원서를 남기고 돌아가죠.”
“그러면 만기 전엔 돈을 못 찾습니다.”
“그렇다고 공격해선 안 되잖아요.”
“알아요. 다만 준비는 해두고 싶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종이 세 장을 꺼냈다. 첫째는 정식 거래 확인 요청서, 둘째는 광산권 조약 사본, 셋째는 용의 답변을 기록할 진술 양식이었다. 마지막 종이 아래에는 서명란과 ‘서명 거부’란도 따로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어떤 답이 오든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네요.”
“당연하죠. 당신과 일하면 답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배우게 되니까요.”
루카스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도 글씨를 쓸 수 있을까요?”
“옛날 문서에 서명도 했잖아.” 브란트가 답했다.
“그 문서가 진짜인지는 아직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나와 에리카가 동시에 웃었다. 소년은 자기 말이 웃긴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신호도 정했다. 대화를 중단해야 할 때는 손을 들기, 무슨 일이 생겨도 먼저 무기를 뽑지 않기, 답변을 강요하지 않기. 인간끼리라면 상식적인 규칙이지만, 드래곤 앞에서 지키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브란트 대장이 무릎을 꿇어 갑옷의 무거운 장식물을 풀었다. “이렇게까지 약하게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
“약한 게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겁니다. 우리 목적은 싸움이 아니라 확인이니까요.”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왕실 사절 은패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 얇은 금속이 용의 불꽃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국가를 대표한다는 말은 상대의 권리부터 존중한다는 뜻이어야 했다. 절벽에는 사람이 열 명은 나란히 걸을 만한 거대한 틈이 있었다. 입구에는 불에 그을린 돌기둥이 섰고, 오래된 문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들어오는 자는 가져온 것을 밝히고, 나가는 자는 가져간 것을 밝힐 것.’
루카스가 번역했다. “여기선 거짓말을 제일 싫어하나 봐요.”
“마음에 드는 운영 규칙이네.”
나는 왕실 사절 은패와 청원서를 높이 들어 보였다.
“왕국 재무청 소속 강태준입니다. 고대 화염룡 카르디온에게 광산권 거래 기록의 확인을 요청합니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두 번째로 말하려는 순간, 동굴 안에서 바람이 불었다. 마른 돌가루가 쏟아졌다. 붉은빛이 천천히 켜졌다. 가까워지는 빛 아래에서 거대한 황금색 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그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뼈를 울렸다.
“마지막으로 여길 찾아온 왕실 사절은 검을 뽑았다.”
“저희는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서류?”
눈이 가늘어졌다. 뒤쪽에서 보석이 쌓인 거대한 동굴이 드러났다. 금화와 은괴가 산처럼 높았다. 여기 있는 금만으로도 왕국의 부채를 몇 번이고 갚을 수 있을 듯했다.
“무엇을 원하느냐.”
“예순 해 전 광산권 계약이 아직 유효한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용은 침묵했다. 잠시 뒤 입김 같은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인간의 광산을 운영하지 않는다.”
“명의는 카르디온 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의라는 것이 무엇이냐.”
에리카가 숨을 삼켰다. 나는 준비해 온 낡은 조약 사본을 펼쳤다.
“여기에 서명하신 분이 본인입니까?”
용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커다란 눈동자가 종이 위 문자를 훑었다. 그가 갑자기 낮게 웃었다.
“내 서명이 아니로군.”
“확실하십니까?”
“그 인간은 내 이름을 가져갔다. 내가 줬던 건 광맥의 통과 허락뿐이다.”
“그 인간이라면?”
“오스윈.”
나는 이름을 확인했다. 은퇴한 전임 재무대신. 우리가 찾던 모든 비밀 장부에서 빠지지 않았던 사람이다.
“예순 해 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요.” 에리카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용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언제 왔습니까?”
“삼 년 전이다. 늙은 인간이 내게 옛 문서를 내밀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맺었다는 계약이라더군. 잠든 나를 깨우지 않고, 서명도 대신했다지.”
계약 연도는 예순 해 전. 그러나 오스윈이 가져온 시점은 삼 년 전. 누군가 옛 허가 문서에 새로운 내용을 붙였다는 뜻이었다.
나는 조약 사본 옆에 새 계약서를 놓았다. 두 문서에 쓰인 글씨의 획이 달랐다. 에리카도 그 차이를 보았다.
“카르디온 님. 저희가 허가 없이 재산을 가져가려는 건 아닙니다. 우선 문서 진위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용이 목을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 보석의 빛이 반사됐다.
“좋다. 대신 네게도 물을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너희 인간의 장부에는 이 산속 보물이 모두 내 것이라 적혀 있겠지.”
나는 침묵했다. 권능이 보여준 것은 막대한 보유 재산이었다. 실소유 관계까지 열람하지는 않았다.
용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 장부는 처음부터 틀렸다. 이 금의 대부분은 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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