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바닥에도 세금이 붙습니까?”
그 질문을 한 아이는 열 살쯤 돼 보였다. 북문 구호소 앞에서 내 손을 유심히 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무릎을 굽혔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했지?”
“엄마가 손도장을 찍으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옆집은 손도장을 찍고 돈을 빼앗겼대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손도장은 문서의 진위를 보조할 수 있지만, 누구의 손인지 확인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기에 이용될 수 있다. 어른에게도 어려운 구별을 아이는 손바닥 하나로 묻고 있었다.
오딜이 아이를 돌려보낸 뒤 나를 데려갔다. 구호소에는 사망 처리 노동자 가족 가운데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공개적인 생존자 명단은 여전히 만들지 않았다. 당사자의 안전을 지켜야 했고, 미확인 여덟 명을 함부로 죽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 장의 안내문을 가져왔다. ‘화재 보상금 재교부. 제12석 확인인의 손도장 필요.’
“누가 이걸 나눠 줬습니까?” 내가 물었다.
“시장 서쪽의 임시 창구요. 새벽에는 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안내문에는 은화 마흔 닢을 즉시 지급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 돈은 삼 년 전 보상금 지급 승인 표시로 확인됐을 뿐, 실제 출금됐다는 증빙도 수령인도 없었다. 무엇보다 보상 대상이 누구인지, 지급 근거가 최종 확정됐는지도 별도 절차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 그 모호함을 이용해 사람들의 손도장을 모으는 듯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손도장을 찍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대신 그 창구는 공식 지급처가 아니고 재무청이 실제 지급을 확인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의심되는 문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원본은 돌려받을 수 있게 사본을 남기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한 여성이 물었다.
“약속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손도장을 먼저 요구하는 건 정상 절차가 아닙니다.”
그녀는 안내문을 접었다. “삼 년 동안은 죽었다고 해서 돈을 안 주더니, 이제 살아 있는지 확인한다고 손부터 가져가려 하네요.”
그 문장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임시 창구의 안내문을 받은 가족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한 집은 삼 년 전 남편을 잃었다고 믿었고, 다른 집은 살아 돌아온 아들의 신원을 다시 증명해야 했다. 나는 그들을 같은 ‘피해자 집단’이라고 간단히 묶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것도, 받을 자격이 있을지 확인해야 할 것도 달랐으니까.
한 여인이 내게 오래된 손도장 그림을 내밀었다. 남편이 일하던 광산의 지급명세였다. 비슷한 손 모양 옆에 ‘대리 수령’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여인은 그것이 남편의 동의라고 생각해 왔다.
“이거면 돈을 받는 거 아니었어요?”
“당사자 서명과 대리인 권한이 적법하게 확인돼야 합니다. 그림만으로 완결된 증빙은 아니에요.”
“그런데 삼 년 전에 군무청에서 이걸 보여 주면서 끝났다고 했어요.”
나는 목이 말랐다. 그녀가 말한 담당자가 실제로 어떤 문서를 보여 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안내를 듣고 몇 년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기록해야 했다.
“그날 설명한 사람을 기억합니까?”
“얼굴은 기억 안 나요. 문을 반쯤 닫고 말했거든요. 일이 많다면서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문서 위 작은 빈칸을 눌렀다. ‘실수령 확인’ 칸이었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저는 이 칸이 빈 것도 몰랐어요.”
나는 그녀가 이해할 수 있게 문서의 세 단계를 설명했다. 돈을 주기로 결정한 승인, 금고에서 실제로 돈을 꺼내는 출금, 받기로 한 사람이 실제로 받았다는 수령. 이 셋은 서로 달랐다. 특히 사망 보상금 은화 마흔 닢은 첫 단계의 표시만 확인돼 있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조사 대상이었다.
여인은 내 말을 듣고 종이를 더 세게 쥐었다. “그럼 우린 아예 돈을 못 받은 거군요?”
“당신 가정이 받지 않았다는 진술은 기록합니다. 다른 수령인이 있었는지와 실제 출금 여부는 아직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확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지급을 지급 완료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이날 오후 왕실 회계 법정에서 마이렌의 미지급 임금에 관한 예비 심리가 열렸다. 그는 비공개 참석을 요청했고 허가받았다. 근무 일수 가운데 서명이 남은 부분과 급식 재고 대조로 확인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군무청은 몇몇 일수의 출근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 자체는 심리할 수 있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그 이의를 근거로 이미 인정 가능한 부분까지 무기한 묶어 두려 한다는 점이었다.
“분쟁 없는 임금 부분과 분쟁 중인 부분을 나눌 수 없습니까?” 내가 물었다.
법관은 군무청에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다. 확정 판결도 실제 지급도 오늘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묶인 서류를 나누어 판단하라는 명령 하나가 만들어졌다. 마이렌은 별실에서 조용히 말했다. “돈보다 이름이 먼저 돌아왔으면 했는데, 이제는 밥값도 필요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돌아왔다고 굶는 일이 끝나는 건 아니죠.”
세르나가 가져온 마계 사본에는 고대 공동협약의 재미있는 조항이 있었다. ‘보관 확인을 위한 표식은 당사자의 신체를 보관한 것으로 간주하지 아니한다.’
“삼백 년 전에 이런 당연한 말을 적었다고요?” 내가 물었다.
“당연한 말은 대개 누군가가 당연하지 않은 일을 해서 법이 됩니다.”
나는 아델리온의 법전과 대조할 수 있도록 번역 의뢰를 넣었다. 마왕 아자르켄이 지난달 약초방 거래에 대한 세금 열두 금화를 낸 날, 그가 그런 고대 협약까지 보내 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없었다. 왕궁에서 마왕을 가장 성실한 자료 제출자로 부르기 시작하면 왕실의 체면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저녁 무렵 루카스가 임시 창구의 위치를 확인했다. 간판을 달았던 사람은 시장 허가를 받지 않았고, 수레에 간판과 책상을 싣고 사라졌다고 했다. 수레 바퀴에는 세모난 쇠살 하나가 있었다. 북쪽 초소 목격자가 본 그 바퀴와 특징이 비슷했다.
“같은 수레일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비교할 물건이 확보되기 전엔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레를 찾을 이유는 하나 늘었네요.”
우리는 시장 관리소의 통행 확인표를 확보했다. 그 수레는 세 번 드나들었고 마지막엔 사람보다 상자를 더 많이 싣고 갔다. 경비병은 손도장을 찍은 사람들의 이름표가 상자에 붙어 있었다고 기억했다. 다만 멀리서 본 것이어서 실제 내용물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누군가가 가족들의 고통을 이용해 서명과 손도장을 수집하고 있다. 그걸 제삼 결제소의 기계에 넣으면 에리카 명의 승인처럼 또 다른 가짜 권한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은 다르다.
접수대에 남아 있던 가족들은 서로 수첩을 비교해 보았다. 문구가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즉시 지급’, 다른 사람에게는 ‘심사 우선’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모두 같은 약속을 받았다고 간단히 정리하지 않았다. 각 문구가 실제로 어떤 기대를 만들었는지 따로 받아 적었다. 피해를 회복하려면 잃은 돈뿐 아니라 거짓말로 빼앗긴 시간도 확인해야 했다.
그날 밤 티르센이 안내문의 잉크를 대조했다. 왕실 유리판 인장을 흉내 낸 자국은 있었지만 실제 왕실 인장과 동일하지 않았다. 종이의 아래쪽에는 작은 문장이 있었다.
‘이 표식은 대리 출석에 사용할 수 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이렌이 말한 짝이 다른 신발을 떠올렸다. 삼 년 전 누군가 비어 있는 자리를 대신했다. 지금 누군가는 비어 있는 사람의 손까지 대신하려고 한다.
그날 시장 관리소에서는 비공식 창구를 열었던 사람이 허가료조차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허가료를 안 냈다는 이유만으로 사기죄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창구가 왕실 공식 업무였다는 주장은 상당히 약해졌다. 안내문에 적힌 담당 부서 번호는 실제 부서 번호와 자리 하나가 달랐다.
“이런 게 보통 사기의 표식 아닙니까?” 루카스가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번호가 틀렸다는 이유로 그 창구를 찾은 시민들까지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 상인회는 자발적으로 가짜 안내문을 수거해 공식 창구에 전달하기로 했다. 나는 대신 실제 복구해야 할 정보 목록을 그들에게 줬다. 공식 지급기관의 주소, 보관금 환급 신청 방식, 피해 신고 시 본인의 손도장을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는 안내였다.
“손도장 없이 신청해도 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오딜이 말했다.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에요. 그리고 신고 사실 자체를 봉쇄하면 안 됩니다.”
그녀는 낡은 나무 칠판에 큰 글씨로 적었다. ‘돈을 먼저 요구하거나 손도장을 빼앗는 창구는 재무청의 공식 지급처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고 웃었다. 다행이었다. 이 왕국의 아이들은 아직 공문을 보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가짜 창구를 열었던 자가 시장에서 노파 한 명에게 자신의 손도장을 넘기지 않으면 오래전 장례 보조금까지 환수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진술이 접수됐다. 나는 그녀를 만나 증언하고 싶지 않으면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래 침묵하다가 물었다.
“나한테 진짜 잘못 낸 돈이 있으면 어떡합니까?”
“그것도 적법한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협박하는 사람에게 바로 돈을 줄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내가 글을 잘 모르니 자꾸 속는구나.”
“글을 잘 아는 사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인장 하나만 보고 진짜라고 믿는 공무원도 있어요.”
그녀는 그제야 웃었다. 나는 정식 신고를 원하면 보호기관과 함께 접수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날 노파는 실제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남았다. 사람의 두려움을 다시 미끼로 쓰는 창구를 확인하는 일이다.
마계 협약 번역문은 밤에 도착했다. 권리 양도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손도장을 제시해 동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나는 그 원칙을 왕국의 현행 법과 대조하는 의견서로 정리했다. 마왕이 전해 준 문장을 곧바로 왕국의 법이라고 선언하는 건 또 다른 권한 남용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는 오딜의 칠판을 다시 보고 돌아왔다. 시장 바람에 글씨가 조금 지워져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내일 다시 쓰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떤 법은 법정에서 만들어지지만, 사람들이 서로 읽고 지켜 주면서 비로소 살아난다.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재산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구호소의 좁은 식탁에 앉아 나는 가족들의 서로 다른 청구를 분류했다. 상실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 생존한 사람의 체불임금을 받고 싶은 사람, 돈이 실제로 나갔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셋 모두에게 똑같은 서류 한 장을 내밀면 편하겠지만, 그건 국가가 편한 방식이지 그들이 필요한 방식은 아니었다. 오딜은 종이 세 장을 나누어 줬다. 질문을 받아 적을 곳이 다르다고 설명하자 한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내 이야기가 잘못된 칸에 들어가지는 않겠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그렇게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시장의 종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내일은 손도장 대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진짜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진짜 권한이 어디서 왔는지도. 세금을 걷는 일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확인하지 않은 납부를 완납이라고 부르지 말 것. 사람의 권리도 마찬가지다. 확인하지 않은 동의를 동의라고 부르지 말아야 했다.
제8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