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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86화
PAYLUA ORIGINAL · 제86화

86화. 종소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806자

오프라인 책장
구조 경보가 울리지 않는 날에는 그 장치가 누구에게 필요한지 잊기 쉽다. 나는 북문에서 배달된 젖은 통지서를 말리며 생각했다. ‘대리 출석 확인기, 종소리 회선과 분리 금지.’ 이런 문장을 쓴 사람은 불이 났을 때 사람을 어떻게 대피시키는지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경보가 사람을 모으는 소리를 이용해 누군가의 손가락을 대신 인증하려 했을까. “원본의 발신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어요.” 티르센이 말했다. “발주번호는 실제 하청 문서 형식과 맞지만 지시한 사람의 이름은 사본에만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회선을 안전하게 분리하는 게 먼저죠.” “문제는 그 과정에 경보가 한 번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로흐는 초소와 연결된 배관도를 펼쳤다. 오래된 구리선은 북문 시장의 종소리 회선에 한때 병렬로 연결돼 있었다. 55화에 확인했던 임의 연결이 완전히 제거됐는지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수리공을 불러 배관을 새로 긋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수동 경보부터 시험하기로 했다. 작은 목제 탑 위에 새 종을 매달았다. 경비병 셋과 시장 사람 다섯이 손으로 줄을 당겼다. 첫 번째 소리는 약했다. 두 번째는 시장 반대편까지 들렸다. 세 번째 소리가 울릴 때 북쪽 제방에서 달려온 소년이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연기예요! 창고에서 연기가 나요!” 누군가는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즉시 외쳤다. “훈련 종료! 실제 화재 여부 확인, 대피 통로 우선!” 루카스는 경비대와 달려갔다. 오딜은 구호소 문을 열어 아이와 노인을 받았다. 로흐는 돌계단 난간을 점검했고, 시장 상인들은 자기가 가진 물통을 모았다. 우리는 앞서 훈련을 했기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좁은 골목으로 몰리는 일을 막았다. 연기가 난 곳은 저장 창고 옆 말린 약초 더미였다. 불꽃은 작았으나 바람이 강했다. 누군가 불을 붙였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주변 화로의 불씨가 날렸을 수도 있었다. 원인 조사는 불이 꺼진 뒤에 하기로 했다. 그 순간의 목적은 사람을 빼내는 것이었다. 노파 한 명이 창고 안에 남은 장부를 가지러 돌아가려 했다. 나는 앞을 막았다. “장부는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오, 이건 우리 가게 외상 기록이오. 남들이 갚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창고 반대편의 장부 보관 선반 위치를 물어 구조대에 전했다. 구조대는 창밖에서 물을 뿌렸고, 접근이 안전해진 뒤 그 선반의 일부를 꺼냈다. 잿물에 젖은 장부를 노파가 품에 안았다. “돈이 사람보다 귀한 줄 알았소?” 그녀가 물었다. “아뇨. 하지만 그 장부 때문에 당신이 밖에서 살 수 있다는 건 압니다.” 그녀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제야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작은 불은 한 시간 안에 잡혔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보관 약초 일부가 탔다. 방화라는 말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러나 확인된 것은 인근 화로에서 불씨가 튈 수 있었고 창고 벽이 마른 상태였다는 점뿐이다. 루카스는 현장을 봉인하고 소방 감정인을 불렀다. 사람들은 그가 범인을 찾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지금 범인을 만들어 내면 내일 진짜 원인을 놓칩니다.” 그는 말했다. 내가 하던 말을 그가 하는 날이 왔다. 사람들은 불이 꺼진 뒤에야 서로의 손을 살폈다. 물통을 든 상인의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고, 종을 당긴 경비병의 손목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나는 부상 여부를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하면 정상 지원 절차를 안내하도록 했다. 영웅이라는 칭찬으로 치료비를 대신할 수 없었다. 구조에 참여한 사람을 기록하는 명부에는 그들의 동의 아래 이름과 활동 시간을 적었다. 종소리가 울렸다는 기록은 그들이 실제로 했던 일을 확인하기 위한 시작일 뿐, 모든 사람의 노동이 자동으로 지급됐다는 표시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재무청에선 경보 인건비를 누가 내느냐는 회의가 열렸다. 첫 주 예상 비용 은화 서른두 닢은 편성 검토 단계였고, 실제 출근 명부와 지급 근거가 확인된 일부 항목만 처리할 수 있었다. 로웬은 임시 인력의 근무시간이 급격히 늘었으니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 “세금 더 걷으면 안 되오?” 국왕이 물었다. “이번 사고만을 이유로 새 세금을 만들 순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먼저 승인된 예산 안에서 합법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지 보고, 부족하면 의회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국왕은 중얼거렸다. “왕이 되면 모든 일을 빨리 결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정은 빠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남의 돈을 쓰는 근거가 따라와야 하는 거죠.” 그는 서류를 넘겼다. 수리공들의 미지급 임금과 구조대 식비가 별도 항목으로 나뉘었다. 오딜은 임금보다 식비를 우선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굶는 사람도 있지만, 일하고 받지 못하면 다음엔 아무도 불을 끄러 나오지 않아요.” 우리는 대피 인력의 당일 근무 사실을 확정하고 지급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실제 지급은 금고 확인 후 기록하기로 했다. 나는 누구도 ‘지원 완료’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완료는 마지막 수령 서명까지 확인된 뒤에만 쓸 수 있었다. 이튿날 오전 화재 현장을 정리하던 중 나는 소방 감정인과 함께 지붕 위쪽을 올려다봤다. 빗물이 내려오면서 검게 탄 판자에 선을 그었다. 그는 온도에 따라 그을음 모양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원인을 알려면 불이 가장 뜨거웠던 자리부터 봐야 하는군요.” 내가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람, 연료, 누군가 물을 뿌린 시점이 모두 영향을 줍니다.” 내가 증거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버릇을 이 세계의 전문가들이 하나씩 고쳐 주는 것 같았다. 소방 감정인은 인근 화로에서 불씨가 날릴 수 있었는지 확인했고, 목격자들이 화재를 처음 본 시간을 서로 다르게 기록했다. 범인을 찾는 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처럼 수동 종이 사람을 살리려면 몇 명이 필요하죠?” “종을 당기는 사람은 한 명이었죠.” “그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요?” 나는 대답을 멈췄다. 기계의 권한 남용을 막느라 수동 장치로 돌려놓았지만, 그것도 사람에게 의존하는 체계였다. 그래서 우리는 예비 근무자와 근무 교대 시간을 명확히 하고, 경보를 두 번 이상 확인할 수 있도록 시장 다른 쪽에 작은 나무 딸랑이를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로웬은 비용을 듣자 책상에 이마를 댔다. “종도 돈이 들고 딸랑이도 돈이 들고, 사람을 보호하는 데는 왜 이렇게 지출이 많소?” “보호하지 못했을 때 드는 비용은 더 큽니다.” “이제 자네가 왕이 되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는군.” “그건 부담이 커서 사양하겠습니다. 국왕 폐하도 처음에는 국고에 금화 열일곱 닢밖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국왕은 멀리서 콜록거렸다.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면 안 되느냐?” “제가 매달 보고서 첫 장에 적고 있어서요.”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회의는 웃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경보 인력의 임금과 구조대 안전장비 수리비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한쪽을 인정했다고 다른 쪽이 자동으로 지출되는 건 아니었다. 국왕은 예산 심사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당일 출동을 우선 검증하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내가 불을 끄러 뛰어나온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 불을 껐던 것은 시장의 물통과 경비병들의 손이었다. 나는 장부에 이름을 쓰는 사람이다. 그날은 적어도 그 이름들에 누구의 몫이 얼마인지 바르게 적고 싶었다. 피해 약초를 팔던 상인이 찾아왔다. 그의 작은 가게는 이번 주 수입을 거의 잃을 뻔했다. 내게 손해 보상을 요구할 법도 했는데, 그는 오히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이 나서 장사가 안 됐는데 거래세를 미리 더 내야 합니까?” “실제 거래가 없는데 새 매출이 생긴 것처럼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물품이 탔으니 그만큼 돌려받나요?” “재고 손실의 처리와 이미 발생한 거래에 대한 세금은 별도 규정을 봐야 합니다. 자동으로 환급된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그는 종이에 수입과 손실을 적어 왔다. 숫자가 엉망이었다. 열두 묶음의 약초 중 세 묶음이 타고 두 묶음이 젖었는데, 그가 적은 판매 가능 수량은 열 묶음이었다. 내가 계산을 고쳐 주자 그가 얼굴을 붉혔다. “아침부터 놀라서 숫자가 잘 안 보여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확인하는 거죠.” 그는 내게 약초 한 묶음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공무상 조사 대상자에게 물건을 받는 순간 내 장부도 의심받을 수 있었다. 대신 시장 공동 구호 상자에 정식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줬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저녁 무렵 로흐가 초소 구리판의 진동 특성을 확인하는 모형을 보여 줬다. 세르나도 함께였다. 그들은 종이 울린 시각을 기록하는 것과 종이 울렸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승인으로 바꾸는 것은 별개라는 점을 설명했다. “어떤 기계가 동의를 대신했다는 거죠?” 루카스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뿐이오.” 로흐가 대답했다. “제작자는 이 장치로 온도를 측정하려 했을 수도 있지. 누군가 나중에 연결을 바꿨을 수도 있고.” 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장비를 만든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다른 회선에 연결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었다. 초소의 안전을 위한 구리판이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장치로 쓰였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무서웠다. 수리공은 새 경보 줄 옆에 작은 목판을 달았다. ‘불이 나면 종을 세 번, 사람을 찾으면 두 번.’ 아이들도 알아볼 수 있게 그림을 함께 새겼다. 나는 그 구분이 영원히 정확한 규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민과 경비대가 실제 상황에서 충분히 시험한 뒤 정해야 했다. 다만 새 장치를 만들면서 부터 책임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경보 담당자는 종을 울리고, 구조대는 현장을 살피고, 법정은 사후 기록을 확인한다. 그 중 누구도 종이 울렸다는 사실을 타인의 계약 동의라고 처리할 수 없다. 이 구별만 지켜져도 누군가의 기계는 예전처럼 사람의 부재를 팔지 못할 것이다. 밤에 세르나는 경보 장치의 임시 분리 검사를 보고했다. 구조 종은 수동 줄로 정상 작동했고, 인증 호출 장치는 전원 공급을 차단한 상태였다. 그러나 초소 안쪽에 독립된 구리판 하나가 남아 있었다. 구조 종을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구조 종이 울렸다는 기록을 멀리 전송하는 장치에 가까워 보였다. “그럼 불이 날 때마다 누군가가 알림을 받는다는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소리를 전송했는지, 기록만 남겼는지 아직 모릅니다.” 세르나가 말했다. “수신판이 없으니까요.” 나는 초소 수리 대장을 펼쳤다. ‘현물 지급’ 옆의 인수자란은 지워져 있었다. 구리판은 대장에 적힌 두 상자 가운데 하나와 같은 제작 계열로 보였다. 그러나 제작 계열과 실제 납품 여부는 다른 문제였다. 그때 마이렌의 보호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오늘 화재 소식을 듣고 한 가지를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삼 년 전에도 첫 구조 종 뒤에 이상한 금속 소리가 있었고, 누군가 ‘이제 출석이 확인됐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직접 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 치료소에서 들었다고 합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의 두려움을 이용해 기록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증거는 아직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장부 한쪽에 아주 작은 문장을 적었다. ‘구조를 알리는 종과 동의를 대신하는 종은 같아서는 안 된다.’ 다음 날, 초소 구리판의 수신 방향을 찾는 일이 첫 임무가 되었다. 연기 냄새는 아직 옷에 남아 있었다. 제삼 결제소가 어디에 숨어 있든, 누군가의 출석을 돈처럼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왕국에는 아직 종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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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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