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85화
PAYLUA ORIGINAL · 제85화

85화. 장갑이라는 이름의 직책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652자

오프라인 책장
청동 표가 발견된 상자를 가져온 사람은 오딜이었다. 그녀는 증거물 봉투에 서명하기 전에 손을 씻었다.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신발까지 깨끗이 닦았을 것이다. “오래됐다고 더럽게 두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그 먼지도 기록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엔 먼지부터 세어야겠네요.” 그녀가 웃자 루카스도 따라 웃었다. 나는 신발과 청동 표의 발견 위치를 오딜의 진술로 남겼다. 보관 기간이 길고 중간에 여러 사람이 만졌기 때문에 그 표가 화재 당시 제12석 담당자의 것이었다고 확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금속에 찍힌 번호는 조사할 만했다. 번호를 확인하던 로흐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이건 사람의 신분표가 아니오. 물건을 잠깐 넘겨받은 자의 보관 책임을 표시하는 표식에 가까워요.” “제12석 임시 관리라고 쓰여 있는데요.” “석이라는 말이 꼭 의자일 필요는 없소. 보관소의 열두 번째 작업대도 석이라고 불렀지. 번역은 한 가지 뜻에 묶이면 안 돼요.”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스스로 의자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실었는지 돌아봤다. 마이렌이 실제로 열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하지만 청동 표의 열두 번째 석이 그 의자라는 사실은 아직 없었다. 세르나는 마계 기술 조합의 옛 명부를 찾아왔다. 비슷한 청동 표가 쓰인 곳은 우편 인계소, 공동 보관 금고, 그리고 응급 구조대 세 군데였다. 모두 타인의 물건을 임시로 맡는 역할이었다. 그중 우편 인계소의 작업복 명칭에는 이상한 단어가 있었다. ‘장갑.’ 루카스가 소리쳤다. “그 장갑!” “동일한 뜻인지부터 확인합시다.” 내가 말했다. 세르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말로는 ‘손을 대신해 받는 자’라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별명이 아니라 직책 이름이죠. 다만 누군가 그 직책을 별명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모로가 기억한 장갑 낀 사람이 한 명의 사기꾼일 수도 있고, 조직 내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맡는 역할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특정인을 잡겠다는 욕심보다 먼저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마든 로스를 다시 불렀다. 그는 제삼 결제소의 현장 운송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지난번엔 자신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을 ‘장갑’이라고만 불렀다. 이번에는 그 단어를 들려주자 얼굴빛이 바뀌었다. “제가 그 사람 얼굴을 모른다고 했죠. 사실은 만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종이 끝에 찍힌 장갑 그림을 보고 그렇게 불렀어요.” “직접 목격한 걸 이제야 정정합니까?” 루카스가 짜증을 냈다. “저는 누구라고 말한 적 없어요. 다들 제가 아는 줄 알았지.”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우리가 편한 쪽으로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그의 진술조서를 펼치자 실제로 ‘장갑 표시를 한 지시서’라고 적혀 있었다. 요약 보고서에서 누군가 ‘장갑이 지시’로 줄여 쓴 게 문제였다. “앞으로는 원문과 요약을 함께 붙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든은 낡은 운송표를 내밀었다. 열하루 전 북쪽 초소로 간 수레의 발주란에 같은 그림이 있었다. 화물은 ‘청동 가름판 두 상자’라고 적혔고 무게는 기록돼 있었다. 운송인은 두 번째 수레가 빈 채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제삼 결제소의 창고 수불장에는 한 상자만 반출된 것으로 보였다. 출고가 둘인지 하나인지부터 검증해야 했다. “이거면 책임자를 찾았습니까?” 그는 물었다. “물건의 경로를 하나 더 찾았습니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징수관님은 언제나 사람보다 장부를 먼저 잡네요.” “사람을 잘못 잡으면, 진짜 장부도 숨게 되니까요.” 마든이 내놓은 운송표에는 이상하게도 발주인의 이름 대신 손 모양이 여러 가지로 찍혀 있었다. 장갑을 낀 손, 빈손, 두 손가락만 펼친 손. 나는 종이를 세르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마계 공동 우편의 오래된 분류법을 떠올렸다. “물건을 받은 사람이 직접 권한을 가진 게 아니라, 다른 기관의 책임 아래 임시로 맡았을 때 쓰던 표기입니다.” “표기마다 권한이 다릅니까?” “옛날에는요. 지금도 같은 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마든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계약이 끊기면 다음 운송을 받을 수 없어서 내용물을 묻지 않았다고 했다. 운송한 상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면, 사람들은 마치 그가 공범인 것처럼 본다며 불안해했다. “내용을 알 필요가 없는 일도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무게와 인계 상대는 확인하도록 계약돼 있었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제 책임이에요. 제가 수령인 서명을 받지 않고 돌아왔어요.” “왜 그랬습니까?” “도착했을 때 사람이 없었어요. 문 앞에 놓고 가라는 쪽지가 있었거든요.” 그의 대답을 듣고 루카스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도 화가 났다. 그러나 그가 지키지 않은 절차가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해야 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빈 창고에 상자를 두었다는 사실은 운송 계약 위반의 문제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인장 위조나 사망자 명단 조작까지 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 쪽지는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다. 비에 젖어서 버렸어요.” “그럼 당시 계약서와 급여 명세는요?” “집에 있습니다.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변호인 또는 조합 대표와 함께 제출해도 된다고 안내했다. 단순한 운송자가 사건의 실체를 모르고 스스로 불리한 추측에 답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편 북문 상인회에서는 뜻밖의 청원이 들어왔다. 왕국의 보관증서와 수익증서가 무엇이 다른지 시민들이 알기 어려우니 정식 설명회를 열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번 왕실 신용 투자증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회의장 뒤편에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노인은 보전된 조폐소 금화 260닢을 당장 나눠 달라고 소리쳤다. “그 돈이 우리 돈 아니오!” “일부 권리가 연결될 가능성은 심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은 봉인금을 재무청이 먼저 나눠 줄 순 없습니다.” “우린 굶는데 금화는 창고에서 자고 있겠군.” 그 말에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법을 지킨다는 말로 굶는 사람의 오늘을 지워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민 구호 지원과 투자증서 반환 청구를 별도 절차로 안내했다. 반환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생계 지원을 받을 방법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지원은 봉인금이 아니라 별도 복지 예산의 자격 심사 대상이었다. 에리카가 설명회가 끝난 뒤 말했다. “당신은 항상 돈을 섞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분리되지 않아요.” “알아요.” “알면 조금 더 빨리 도와줘요.”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회계의 분리는 사람을 돕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누가 돈을 받는지 명확히 해 그 사람에게 실제로 닿게 하라는 뜻이어야 했다. 그날 저녁 왕실 경비대가 상자 두 개의 포장 기록을 가져왔다. 하나에는 구리판의 모서리를 보호하기 위한 짚이 들어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안쪽을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싼 흔적이 있었다. 단순한 금속판과는 용도가 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상자 안에 실제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로흐는 짚의 길이와 결을 보더니 드워프 운송 조합이 사용하던 방식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같은 조합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같은 방법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모방할 수 있었다. “그럼 이걸로 뭘 합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죠. 그리고 포장 비용이 어떤 계정으로 지급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마든이 자신의 임금 영수증을 가져왔다. 영수증에는 운송비 총액보다 작은 액수만 수령한 것으로 돼 있었다. 나머지는 ‘완료 증명 후’ 지급이었다. 보통의 운송 계약이라면 목적지에서 물품을 받은 자의 서명이 있어야 완료가 된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사람의 출석 확인이 완료 조건으로 붙어 있었다. “물건의 수령이 아니라 사람의 출석을 확인해야 돈을 준다고요?” 내가 물었다. 마든은 얼굴을 붉혔다. “저도 이제야 이상해 보입니다.” 나는 운송 대장을 덮었다. 아직 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했지만, 사람의 이름이 돈을 지급하거나 멈추게 하는 열쇠처럼 쓰이고 있었다. 장갑 그림이 붙은 계약은 하나의 방식으로 여러 사람을 움직이고 있었다. 세르나는 마계의 오래된 우편 규칙을 설명하며 작은 쇠구슬 하나를 책상에 놓았다. 그 쇠구슬에는 손바닥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수신자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물건을 임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표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쇠구슬을 굴렸다. 내 손에서 루카스 손으로 넘어갈 때마다 주인이 바뀌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세르나의 물건이었다. 루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지금 세금을 내야 하나요?” 나는 대답했다. “물건을 잠깐 쥐었다고 매매가 이뤄진 것은 아니죠.”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웃음 사이에서 ‘장갑’ 표식의 의미가 조금 선명해졌다. 이튿날 우리가 현장 조사를 계획하던 중 국왕에게서 호출이 왔다. 왕은 비밀 회담이 아니라 공개 회계 설명회를 열자고 했다. 재무청이 오래된 방벽 유지료를 추적한다는 소문 때문에 수리공들이 임금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왕 돈을 찾는다면 국경 안전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왕이 말했다. “맞습니다. 다만 봉인된 조폐소 260금화에 손대면 안 됩니다. 누가 소유자인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요.” “그 돈이 눈앞에 있는데도?” “왕국이 법을 지키면 시민도 자기 재산을 맡깁니다. 왕이 급하다고 남의 금고를 열면 그다음엔 누구도 세금을 믿고 내지 않을 겁니다.” 왕은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 정상 경보 운영을 위한 기존 승인 예산에서 적법하게 조정 가능한 항목을 재무대신에게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이 지시를 새 국고 수입으로 적지 않았다. 예산을 옮기는 건 돈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드래곤 카르디온의 사절이 왔다. 나는 거대한 용이 세금을 냈다는 사실 덕분에 다른 사람도 쉬이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절은 오히려 내게 물었다. “드래곤에게 납세를 설명한 징수관이 왜 인간의 임금을 아직 지급하지 못했습니까?” 그 질문은 정확했다. 우리는 마이렌의 근무 일수를 인정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었지만 실제 지급은 아직 없었다. 사망 보상금 은화 마흔 닢도 승인 표시만 확인됐지 금고 출금은 입증되지 않았다. 사절은 목소리를 낮췄다. “돈을 내는 자보다 돈을 받아야 할 자가 오래 기다리면, 결국 어느 쪽도 계약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수첩에 질문 하나를 더 적었다. ‘완료 증명 뒤 지급’이라는 계약이 언제부터 운송 계약에 들어왔을까. 정상적인 납품 확인이라면 물건의 도착 상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종이에는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칸보다 사람의 출석에 관한 칸이 넓었다. 그 차이가 우연인지 누군가의 의도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법무 담당자에게 임금 산정 심리의 다음 기일을 확인했다. 지연을 변명하는 보고서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문서실에서 온 한 장의 속보가 우리를 붙잡았다. 청동 가름판 두 상자의 운송비 명세가 남아 있었다. 지급 계정은 방벽 유지료 원래 출금분과 다른 소액 하청계정이었다. 금액은 아직 수령증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발주번호 끝에 한 문장이 있었다. ‘대리 출석 확인기, 종소리 회선과 분리 금지.’ 나는 종이 위에 손을 올렸다. 누군가 사람을 확인하는 기계를 구조 경보에서 떼어 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우리가 분리하려 애써 온 바로 그 두 회선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