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으로 서겠다는 말과 모든 질문에 대답하겠다는 말은 다릅니다.”
마이렌의 대리인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법정 별실의 맞은편 벽에는 작은 창이 있었고, 우리와 마이렌 사이에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졌다. 목소리만 오갔다. 그에게는 중단 요청용 종 하나가 주어졌다. 한 번 울리면 질문을 멈추기로 했다.
브란트 법관은 출석 요구서가 발신인 불명이라는 사실을 먼저 확인했다. “이번 진술은 그 서류에 응해서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이렌 본인의 별도 신청과 보호 절차에 따라 진행합니다.”
“그 차이를 꼭 기록해 주세요.” 마이렌이 말했다.
나는 펜을 들었다. 사람은 종종 비슷한 장소에 왔다는 이유로 같은 일에 동의했다고 오해받는다. 바로 그 오해를 이용해 누군가 에리카를 대체 승인 신청인으로 적었었다.
마이렌은 삼 년 전 비가 많이 오던 저녁을 기억했다. 군무청 급식실에는 열한 개의 놋그릇과 하나의 깨진 사기그릇이 있었다. 견습은 마지막 자리에 앉아 숟가락 숫자를 세었다. 화재가 나자 그는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사람 하나를 보았다. 회색 외투를 입은 사람. 손에는 금속 원통이 들려 있었다.
“그 사람이 벨란 감사관이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얼굴을 못 봤습니다.”
“목소리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원통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음 말을 꺼냈다. “불이 위층에서 번질 때 그 사람은 저더러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제 이름을 대신 적게 두지 말라고 했어요.”
“말하지 않았다면서요?” 루카스가 어리둥절해했다.
“그건 나중에 들은 말입니다. 구조된 후 치료소에서요.”
나는 구술 기록에 시간을 나눠 적었다. 현장 당시 직접 본 것과 치료소에서 전해 들은 말을 같은 문단에 넣으면 훗날 누군가 한 사람의 기억으로 합쳐 버릴 수 있었다. 마이렌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인정하고 안도했다.
“세 번째 받침 아래를 안다고 했죠?” 내가 물었다.
“예. 저는 그 상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급식실에서 원통을 옮기던 사람들이 받침 아래에 고무를 깔았어요.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요.”
“어느 받침입니까?”
“제가 셋째라고 부르는 것은 오른쪽 끝입니다. 그날 방에 놓인 상자는 모서리가 깨져 있었고 왼쪽엔 붉은 끈이 걸렸어요.”
티르센이 별실 밖에서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연 상자의 오른쪽 받침에는 고무가 없었다. 반면 왼쪽 모서리에는 오래된 파손과 새 보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묘사가 일부만 맞았다. 그가 본 상자가 같은 것인지, 같은 규격의 다른 상자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고무는 어디로 갔나요?” 루카스가 물었다.
“누군가 떼어 냈는지 몰라요. 제가 본 건 화재 전입니다.”
마이렌은 말끝을 분명히 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정할 물건이 새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의 증언만으로 인장을 만든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오전 진술이 끝나고 휴식이 주어졌을 때 나는 복도에 서서 마이렌이 제출한 약봉투 사진을 봤다. 마계 치료소에서 쓰던 봉투였다. 환자의 이름 대신 날짜와 치료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 날짜가 화재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와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치료소에서 실제로 마이렌을 돌보았다는 사실은 보호기관의 신원 대조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세르나가 사진을 들여다봤다. “이런 포장은 북부 마계에서 흔합니다. 봉투만으로 환자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날짜를 확인할 수 있으면 이송 경로의 한 부분은 검증할 수 있겠죠.”
“그 사람에게 치료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게 해도 됩니까?”
나는 망설였다. 의학 기록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비난보다도 사람을 쉽게 고립시킬 수 있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의 생존 정정이지 온 동네가 자신의 몸을 살피는 일이 아니었다.
“본인에게 먼저 범위를 확인합시다.”
마이렌은 치료실 번호는 비공개로 두되 진료 날짜 범위와 이송 사실의 존재만 법정이 확인하도록 동의했다. 법관은 이를 별도 비공개 확인 자료로 받았다. 기록에 거짓을 줄이면서도 한 사람의 삶을 전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점심시간에는 오딜이 마이렌의 급식실 업무를 설명했다. 열두 번째 자리의 견습은 하루 마지막 배급을 남기고 급식실 바닥에 떨어진 쌀알을 주웠다고 했다. 나는 왜 그것까지 기억하는지 물었다.
“언젠가 그 아이가 물었어요. 쌀알 열 개를 버리면 열한 번째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그 아이가 회계사 될 재목이었군요.”
“아뇨. 배가 고팠던 거지요.”
나는 웃음을 멈췄다. 모든 숫자가 장부 속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었다. 배를 곯은 아이에게 열한 번째 쌀알은 계산 단위가 아니라 저녁이었다.
오딜은 그때 급식실에서 하루 분량이 한 번 크게 모자란 적이 있다고 했다. 정식 보급 장부에는 열두 명의 배식이 기록돼 있었으나 실제 그릇은 열한 개만 나왔다. 견습들은 서로 숟가락을 바꿔 가며 먹었다. 그런데 그날도 대리 수령인이 ‘확인’을 했다는 도장이 남았다고 한다.
“누군가 실제로 빵을 훔쳤다는 건가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건 몰라요.” 오딜이 말했다. “무게를 재지도 않았고 다른 방으로 옮겼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 몫의 한 끼가 기록상 두 번 나갔다는 건 봤어요.”
나는 그 진술을 급식 원장과 비교 대상으로 넣었다. 오래된 기억은 불완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기억을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을 확인 가능한 문서와 맞춰 보는 것이었다.
법정으로 돌아가기 전 브란트가 나를 불렀다. “징수관,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를 정확히 적으십시오. 미지급 임금 문제입니까, 출석 요구서 문제입니까, 영번 보관물 문제입니까?”
“셋 다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연결될 수 있다는 표현은 괜찮습니다. 다만 모든 수사의 목적을 한 문장에 뭉치면, 증인에게 필요하지 않은 질문까지 던지게 됩니다.”
나는 서류를 세 묶음으로 나누었다. 마이렌의 생존과 임금에 관한 자료는 그의 대리인과 법원이 관리하고, 무서명 출석 요구서의 경로는 수사팀이, 기록봉의 물성 감정은 중립 감정인들이 맡았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두고 조사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서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이래서 일이 느려지겠군요.” 내가 말했다.
브란트는 미소를 지었다. “느리다고 모두 잘못은 아닙니다. 빨라야 하는 구호는 별도의 법으로 보장해야 하고요.”
그날 처음으로 나는 조사의 속도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긴급한 보호는 빠르게, 불확실한 책임 판단은 신중하게. 두 가지를 섞으면 어느 쪽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기록실 서기는 마이렌의 진술을 정리하면서 그가 ‘보았다’와 ‘들었다’를 달리 사용한 줄마다 표시를 남겼다. 마이렌은 어느 문장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 문장 앞에서는 오래 멈췄다. 한 문장은 결국 삭제했다. ‘벨란 감사관이 직접 원통을 옮겼다’라는 표현이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서기가 추측을 문장에 넣었던 것이다. 에리카는 삭제된 문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맙다고 했다. 나중에 진실이 무엇으로 드러나든, 오늘 이 사람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멋진 영웅으로 만들어 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다음 질문을 하기 전, 에리카가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부친인 벨란 감사관과 관련된 부분에 관해 자신이 직접 질문하면 증언자를 압박할 수 있다며 관찰석으로 물러났다. 법관이 허가했다. 에리카의 손가락이 의자 끝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당신 아버지가 그 사람을 구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는 휴식시간에 말했다.
에리카는 창밖을 봤다. “그럼 제가 원하는 답을 마이렌에게서 찾지 않도록 도와줘요.”
그 짧은 부탁이 무거웠다.
오후에는 급식실의 회계장이 도착했다. 오딜이 오래된 메뉴와 배급량을 확인했다. 마이렌의 이름이 적힌 줄에서 식비가 두 번 공제돼 있었다. 하나는 실제 급식 비용, 다른 하나는 ‘화재 후 대리 수령’이라는 항목이었다. 그 당시 마이렌은 이미 치료소로 이송된 상태였다고 한다. 누가 그의 이름으로 그릇을 받았다는 뜻일까.
“은화 한 닢도 안 되는 돈인데요.” 루카스가 말했다.
“돈이 작다고 이름이 가벼워지지는 않죠.” 오딜이 대답했다.
나는 복사한 급식장에서 서로 다른 필체를 찾아냈다. 대리 수령 항목은 메뉴를 기록하던 서기와 잉크가 달랐다. 이것만으로 위조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출처를 가릴 필요는 있었다. 특히 같은 날 사망자 명단의 열두 번째 줄이 지워졌으니까.
“그날 급식실에서 열두 번째 자리가 빈 적 있었습니까?” 나는 물었다.
마이렌이 다시 커튼 너머에서 답했다. “한 번 있었습니다. 화재가 나기 이틀 전, 제가 아파서 결근했을 때요.”
“누가 대신 앉았나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른 견습이 왔다고 들었는데 그 이름은 못 들었어요.”
“그때 누가 그릇을 받았는지도 확인해야겠군요.”
마이렌은 한참 후에 말했다. “제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적힌 건, 제가 결근한 날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 말을 사실로 적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제시한 가능성으로 기록했다. 삼 년 전 그 하루가 지금의 누군가에게 편리한 빈칸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에리카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마이렌은 그날 자기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조차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야 하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어 있었던 자리 하나 때문에 미지급 임금이 생기고, 사망자 명단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빈칸이 사람의 존재를 지울 권한까지 주지는 않았다. 다음 문서에서는 ‘결근’과 ‘대리 출석’을 다른 줄에 적도록 요청할 생각이었다.
법정 문을 나서자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청 회계과 계약직 직원이었다. 그는 자신을 아델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이미 취재자를 가장한 사람과 가짜 서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신분 확인을 부탁했다. 그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제가 마이렌의 옛 수당 신청서를 보관했습니다. 법원 기록 요청에 따라 원본 목록을 가져왔습니다.”
원본 목록에는 신청된 임금과 실제 지급이 구분돼 있었다. 급식실 견습 마이렌에게 인정 가능한 근무 일수는 아직 심리 중이고, 지급 지시는 삼 년 전에 중단된 상태였다. 법원 명령으로 신원 일부가 정정돼도 임금이 자동으로 창고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아델은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결근한 날의 급식비는 정상적으로 차감됐는데, 그날 누군가 ‘대리 출석 확인’이라는 별도 수당을 승인 요청했습니다. 승인만 있고 실제 지급 영수증은 없어요.”
나는 급식실 원장과 초소에서 찾은 출석 서식을 나란히 놓았다. ‘대리 출석’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타났다. 삼 년 전 수당표, 최근 초소 서식, 에리카 명의 자동 호출 문서. 세 사례가 같은 범죄라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동일한 개념을 이용해 누군가의 부재를 다른 사람의 권한으로 바꾸려 한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저녁 무렵 마이렌이 중단 종을 울렸다. 아직 묻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 그의 진술은 여기까지였다. 진실을 얻기 위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내가 전에 하던 세무조사도 마찬가지였다. 밤늦도록 질문해 얻은 자백은 다음 날 법정에서 흔들리곤 했다.
별실에서 나오며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했다. “제가 다음에 와도 되겠습니까?”
“원할 때요. 출석 요구서 때문이 아니라 당신 의지로.”
“그럼 제가 한 사람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날 제 대신 밥을 받았다는 사람.”
그의 말에 루카스가 놀랐다. “그 사람을 아십니까?”
“이름은 모르지만 신발을 기억합니다. 짝이 다른 신발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노트 가장 아래에 적었다. 이름 없는 사람의 발걸음. 세무조사관이라면 보통 영수증부터 찾겠지만, 이번에는 신발 한 켤레가 영수증보다 먼저였다.
제8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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