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렌의 신원 정정 심리가 열리던 날, 법원 복도는 조용했다. 사람들은 생존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축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이렌은 외투 깃을 올린 채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제 이름이 거리의 소문이 되는 게 싫습니다.” 그가 말했다.
“비공개 심리 범위는 유지됩니다.” 담당 법관이 답했다.
나는 신청인석 뒤편에 앉아 회계 자료를 정리했다. 사망 처리됐던 사람의 신분을 되돌리는 일과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일은 서로 다른 절차였다. 가족이 받은 적 없는 사망 보상금이 어딘가로 흘렀는지 확인하는 일은 또 별개였다. 은화 마흔 닢의 지급 승인 표시가 있지만, 실제 금고 출금은 여전히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면 제게 갚으라는 돈은 없는 겁니까?” 마이렌이 물었다.
“과거 누가 받았다는 보상금을 당신에게 자동으로 청구할 근거는 없습니다.”
법관은 그 취지를 심리 기록에 남겼다. 마이렌이 제출한 치료소 기록과 과거 급식표, 화재 당시의 동료 진술을 대조했다. 법원은 그가 과거 명부의 당사자임을 인정하고 비공개 신원 정정 명령을 내렸다. 공개 주소와 치료 기록의 공개는 허용하지 않았다. 잔여 행정 등록은 별도 담당 부서에서 처리해야 했지만, 더는 그에게 ‘죽은 사람으로 등록돼 있으니 신청을 못 받겠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마이렌은 판결문을 받아 들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제 일할 수 있습니까?”
“네. 적어도 이 명부 때문에 신청이 반려되지는 않아요.”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어깨가 아래로 내려갔다.
마이렌의 신원 정정 명령문에는 작은 단서가 붙어 있었다. ‘행정 등록 수정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기존 권리와 충돌하면 별도 심리한다.’ 그는 그 말을 읽고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는 계속 증명해야 하는 겁니까?”
“기본 신원은 인정됐습니다. 다만 과거 급식 명부와 보상금 수령 기록을 바로 고치려면 누가 다른 이름으로 서명했는지도 확인해야 해요.”
“그동안은 월급을 못 받나요?”
“근무 사실이 확인되는 부분부터 산정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지급 기한과 지급 재원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그는 서운해했지만 내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나는 이해만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오늘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약값과 이동비였다. 라니아는 기존 생계 지원 기준에 따라 임시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체불 임금을 지원금으로 대체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날 급식소 옛 근무표에서 일곱 날짜가 독립적으로 확인됐다. 다른 날짜는 화재로 원장이 사라져 동료 진술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나는 확인된 일곱 날짜의 임금 산정과 임시 생계 지원 절차를 따로 진행하게 했다. 어느 쪽도 이미 지급한 것처럼 쓰지 않았다.
오딜은 구호소의 장부를 펼쳤다. 삼 년 전 급식소에서 빵을 나르던 견습들이 서로 이름을 불러 주던 습관을 적어 놓은 페이지였다. 거기에는 마이렌의 별명이 있었다. 정식 신원을 대체하는 문서는 아니었지만 출근일을 좁히는 보조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이런 낙서가 도움이 됩니까?” 오딜이 물었다.
“단독으로 임금을 확정하긴 어렵지만, 다른 기록과 맞아떨어지면 도움이 됩니다.”
그녀는 장부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기록은 왕실 금고에 쌓인 것만이 아니었다. 힘없는 사람이 일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남겨 둔 작은 낙서도 기록이었다.
법정 밖에서는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실의 급식소는 과거 노동자들의 근무일을 누락한 사실을 인정했고, 미지급 임금을 산정하기 위한 특별 대조 창구를 열기로 했다. 나는 일단 증거가 충분한 일수부터 확인하자고 했다. 피해자에게 전체 금액을 확정할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하는 것은 또 다른 지연이었다.
라니아는 급식소의 남은 재료와 인력 배치를 조사했다. 과거 임금 미지급을 이유로 지금의 급식소를 닫으면 아이들이 먼저 굶는다. 그래서 현재 운영비와 과거 채무를 분리해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누군가는 돈을 숨기는 꼼수라고 화를 냈다.
“나눠 적는다고 빚이 없어지지 않아요.” 라니아가 설명했다. “오히려 어디에 갚아야 하는지 보이게 합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서류를 모르는 사람의 피해를 막으려던 사람이 이제 장부를 통해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점심 무렵 뜻밖의 서신이 도착했다. 제삼 결제소에서 봉인한 옛 영수증 꾸러미를 반환하겠다는 안내였다. 금화가 아니라 영수증들이었다. 그 안에는 지난달 제0호 보관비 청구서와 같은 양식의 송장이 있었다. 공급업체명은 ‘도착자 환급 보증’이라고 적혀 있었다. 같은 이름이 마이렌에게 발송된 귀환 수수료 안내문에도 등장했다.
“이 회사는 실제로 존재합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상업 등록부에는 없습니다. 임시 거래명일 수도 있습니다.”
제삼 결제소의 리엔 모브는 자신들도 공급업체의 실소유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관리단이 업체명 대신 거래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부실 심사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록을 만든 개인이 누구인지는 내부 조사 중이라고 했다. 나는 결제소를 곧장 사기 조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원장과 실제 송금 승인 경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영수증을 들여다보던 리엔은 자기 조직의 잘못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물었다. 관리단의 실무자 중에는 원본 확인 없이 결제 요청을 처리했던 사람이 있었고, 일부는 상급자의 결재가 끝났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감사원의 질문 목록을 보여 줬다. 실제 결재 권한, 돈이 나간 계정, 물품을 받은 사람, 그리고 당사자가 알고 있었던 정보. 그 네 가지를 분리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적으면 우리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리엔이 말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숨기면 피해자가 다시 돈을 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제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습니까?”
“거짓말하지 않은 진술은 그대로 기록하겠다는 것뿐입니다. 면책을 약속할 권한은 없어요.”
리엔은 오래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처음 등장했을 때 모든 거래를 합법이라고 설명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자기가 알아보지 못한 돈의 주인을 찾기 위해 자기 이름을 걸고 진술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단번에 신뢰를 회복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시 시작할 자리는 만들어 줬다.
우리가 영수증을 분류하는 동안 루카스는 새 서류철을 하나 만들었다. 표지에는 ‘원본이 아닌 주장’이라고 썼다.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 웃었다.
“누가 이런 제목을 쓰니?”
“제가요. 사실로 확정된 서류와 아직 주장이 남은 서류를 섞지 않으려고요.”
그는 내 개인 수첩의 습관을 닮아 가고 있었다. 나는 새 서류철에 사본만 넣고 원본은 법정 봉인실로 보냈다. 수사를 잘하는 방법에는 뛰어난 직감도 있지만, 오늘의 자신이 내일의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정리하는 기술도 있었다.
그날 오후 법정은 묶여 있는 영수증들을 원본과 사본으로 나눠 봉인했다. 그중 한 장에는 내 이름의 첫 음절을 왕국식으로 옮긴 글자가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내가 낸 돈이라는 뜻인가요?”
“청구 대상 명칭의 일부로 들어간 겁니다.” 티르센이 말했다. “본인 서명이나 실제 납부 영수증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이름을 적었는지도 미확정이군요.”
“맞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범죄 문서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일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까 봐서만은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나 스스로 그 문서를 증거로 믿어 버릴 수 있었다. ‘내 이름이 있으니 내 이야기다.’ 그 생각이 가장 쉬운 함정이었다.
오딜은 정정 명령이 나온 날 작은 빵을 구웠다. 마이렌이 원한다면 함께 나누자고 했지만 그는 큰 모임을 원하지 않았다. 오딜은 축하 잔치를 취소하고 빵 하나만 봉투에 넣어 보냈다. 사람의 행복을 축하하는 방식도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어야 했다.
마이렌은 봉투에 있던 짧은 편지를 읽고 눈을 붉혔다. ‘그날 먹지 못한 열두 번째 빵을 이제라도 전합니다.’ 그는 대답을 쓰는 데 오래 걸렸다.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세금 징수관이 할 수 있는 건 임금 계산과 서류 정리였고, 어떤 상처는 그것으로 닫히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가 자신의 자료를 언제 누구에게 보여 줄지 정하는 확인서를 건넸다. 그는 공적 심리에 필요한 부분만 제공하고 그 밖의 기록은 비공개로 두겠다고 표시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당신이 허락한 범위에서요. 재판에 꼭 필요한 내용은 법률에 따라 심리될 수 있지만, 주소와 치료 경력을 함부로 퍼뜨릴 이유는 없어요.”
그는 오래 생각하다가 서명했다. 삼 년 동안 그의 이름은 아무 말 없이 지워져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어디에 이름을 남길지 선택하고 있었다.
저녁에 세르나가 마이렌에게 별도 편지를 보냈다. 마계 치료소는 왕국의 신원 정정 명령을 인정하지만, 치료소에 남은 기록을 당사자 허락 없이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이렌은 잠시 웃었다. 두 세계의 문서를 오가며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그에게는 그런 짧은 약속이 큰 의미가 있었다.
나는 마이렌의 반환 신청서에 첨부할 목록을 정리했다. 과거 보관함에서 사라진 봉투의 원소유권, 무단 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진술, 제삼 결제소의 반송표, 그와 직접 관련 없는 제0호 문서는 제외했다. 사건이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의 정보를 한꺼번에 묶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마이렌이 낡은 작은 증표를 꺼냈다. 급식실에서 일하던 시절 벨란 감사관이 건넸다는 나무 조각이었다. 표면에는 열두 번째 자리와 함께 작은 홈 두 개가 파여 있었다. 로흐가 설명한 드워프 공동 증언 보관물의 홈과 비슷했다.
“이걸 왜 이제 보여 주십니까?” 내가 물었다.
“저는 그냥 밥표인 줄 알았습니다. 죽었다고 처리된 사람의 밥표가 돈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돈이 되는지는 아직 모르죠.”
“그럼 이게 증거입니까?”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본을 확인하고, 네가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마이렌은 나무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감정을 위해 하루 동안 맡기겠다고 서명했다. 보관자는 임시로 법원 감정실, 소유권은 마이렌에게 유보, 반환 기한은 다음 날 정오로 적었다. 우리는 물건을 맡기는 데 서명을 받았고, 돌려주는 데도 서명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말했다. “삼백 년 계약을 다루는 우리보다 마이렌의 나무 조각 계약이 더 완벽해 보이네요.”
나는 웃었다. “돈이 커질수록 당연한 절차를 건너뛰기 쉬워져.”
밤에 로흐가 감정 결과를 보냈다. 홈 두 개는 공동 증언 보관물 표식과 닮아 있었지만 동일 규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무 조각의 뒷면에서 아주 작은 글씨를 찾았다.
‘영번 보관인에게 인계할 것. 물건보다 증인을 먼저.’
그 글씨를 읽던 에리카가 입술을 꽉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모로에게 남겼다는 말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숨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그럼 원래 물건은 아직 누구에게도 가지 않은 거죠?” 에리카가 물었다.
“그것도 확인해야 합니다. 영수증은 돌려줄 수 있어도, 이미 강제로 빼앗긴 동의는 영수증 하나로 돌릴 수 없으니까요.”
마이렌은 창가에 앉아 나무 조각을 기다렸다. 그에게는 그 물건이 삼 년 전 자신의 밥 한 끼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권리 양도의 열쇠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 물건이 누구를 소유할 수 있는 표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들어 달라는 요청에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7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