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라는 도망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을 확인해야 했다.
인장 보관실의 출입 원장에는 그녀의 가짜 서명이 추가돼 있었고, 다음 날 아침 정해진 근무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브란트는 실종 신고와 내부 조사 방해 가능성을 동시에 검토했다. 그러나 나는 첫 문서에 ‘도주’ 대신 ‘소재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그녀가 범인일 수도 있지만, 위협을 피해 숨었을 수도 있었다.
“징수관님, 늘 표현에 그렇게 목숨을 거셔야 합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다른 사람이 그 표현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네라가 사는 골목을 찾았다. 방문은 열려 있었고 화덕에는 불이 꺼진 지 오래된 냄비가 남아 있었다. 집주인은 그녀가 새벽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우편함에는 임금 독촉장이 아니라 치료비 영수증 두 장이 있었다. 네라는 아픈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브란트는 집주인에게서 열쇠를 받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필요한 법원 허가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했다. 사적인 편지까지 무작정 뒤지면 네라가 구조 요청을 했는지 알아내기도 전에 그녀의 신뢰를 잃는다. 경비대는 실종자의 안전과 최근 협박 가능성에 관련된 자료만 우선 보전했다.
“이 여자가 인장을 훔쳤다면 진작 떠났을 겁니다.” 집주인이 말했다.
“그것도 추정입니다.” 내가 답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보신 상황은 도움이 됩니다.”
침대 아래에서 작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에는 임시 인장 원판을 만질 때 쓰는 흰 장갑이 있었다. 손가락에는 붉은 왁스가 묻어 있었지만 왕실 원판의 왁스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네라가 장갑을 보관해 왔다는 사실은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상자 안에 편지 한 장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서명은 이미 만들어 두었다. 다음 순찰 전에 열쇠를 가져오라.’
발신인 이름은 없었다.
그 문장 때문에 네라는 범인처럼 보일 수도, 협박을 당한 피해자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나는 편지를 원상태로 보전하고 네라의 동생을 찾자고 했다. 동생은 왕국 외곽의 치료소에서 약을 받는다고 했다.
치료소 의사는 네라가 전날 저녁 들렀고, 동생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상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환자 보호를 위한 비공개 장소라서였다.
“그녀를 데려와야 수사가 되지 않습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살아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되면 법적 절차로 증언을 부탁하죠.”
의사는 우리에게 직접 주소를 주지 않았다. 대신 네라에게 연락할 수 있는 중립 기관의 담당자와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공권력이 목적을 이유로 모든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0호 사건을 만든 사람과 다를 게 없어진다.
네라의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 경비대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일부는 수배장을 내걸어 시민들에게 제보를 받자고 했다. 다른 이들은 수배장에 이름이 올라가면 네라를 겁주던 사람이 그녀의 위치를 더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는 피해자 보호 담당관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담당관은 네라가 아직 범죄 피의자로 특정되지 않았고 실종 사유도 모르는 상태라면 공개 수배보다 제한적 안전 확인이 적절하다고 했다. 브란트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 결정 때문에 조사 속도가 느려졌을지 몰라도, 나중에 네라가 자발적으로 연락할 길은 남았다.
우리는 치료소로 간 차량의 통행시간을 살폈다. 왕궁에서 북쪽 치료소까지는 여러 길이 있었다. 한 경비병이 회색 두건의 여성을 봤다고 했지만, 시각이 다른 목격자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 경비병은 자신의 기억이 헷갈릴 수 있다고 인정했다. 나는 그 말을 잘했다고 칭찬했다.
“저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그가 말했다.
“도움이 됐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목격을 한 사람의 행적으로 억지로 합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브란트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기 부하에게 물었다. “너, 네라의 동생을 봤냐?”
“아닙니다.”
“그럼 두 사람이 함께 떠났다는 소문도 사실로 쓰지 마라.”
그 모습이 내게는 꽤 낯설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검을 뽑는 쪽이 빨랐는데 이제는 수첩을 드는 쪽이 빨랐다. 정작 그가 내게 말했다.
“자네도 가끔은 너무 책상 앞에만 앉지 말게. 사람을 찾는 일이 늘 장부로 끝나진 않으니까.”
나는 인정했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안전 확인 담당자와 함께 골목을 걸으며 네라가 평소 물을 길어 주던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은 네라가 최근 며칠 동안 집에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고 기억했다. 말한 날짜는 불분명했지만, 그 진술은 협박 편지와 별도로 조사할 가치가 있었다.
오후에 루카스가 부지런히 다가왔다. 그는 인장실의 야간 물품 반출표를 확인하다가 같은 날 두 종류의 열쇠가 나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네라의 근무용 열쇠는 정해진 장소에 반납됐고, 왕실 물자실의 보조 열쇠는 ‘긴급 수리’라는 항목으로 반출돼 있었다. 수리공이 출입한 기록은 없었다.
“네라가 둘 다 가져갔다는 뜻인가요?”
“아니. 열쇠가 두 개 움직였다는 뜻이야.”
“이제 저도 알아요.”
그가 멋쩍게 웃었다. 나는 반출표를 왕실 감사원에 넘겼다. 제0호 봉투를 접수함으로 보낼 수 있었던 통로와 왕실 물자실의 보조 열쇠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세르나가 보낸 국경 통행 기록이 도착했다. 네라와 비슷한 이름의 여성이 이틀 전 마계로 향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통행 기록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 다만 회색 두건을 쓴 여성이 치료소 물품차에 동승했다는 목격담은 있었다. 그 사람이 네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왕에게 숨었을지도 모릅니다.” 궁내청 관리가 수군거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마왕의 영토에 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반역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마왕을 믿습니까?”
“우리가 믿는 건 필요한 기록과 절차입니다. 마왕도 세금을 낸 만큼 영수증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세르나가 그 말을 들었다면 웃었을 것이다. 우리끼리 웃으려다가도 지금은 누군가의 안전이 걸린 문제라 입술을 다물었다.
그날 인장실 직원들은 자신들도 조사받을 수 있다며 긴장했다. 나는 감사원과 별도로 직원 설명회를 열었다. 신고자와 참고인, 책임이 특정된 피의자의 지위는 다르며, 기록을 보전했다고 해서 무조건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설명이었다. 직원들이 안도한 것은 잠깐이었다.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윗사람이 명령한 대로 인장을 찍으면, 그게 불법이더라도 제가 책임집니까?”
“명령의 내용과 직원이 알 수 있었던 사정을 함께 봐야 합니다. 무조건 면책도, 무조건 유죄도 아닙니다.”
“그럼 거부하면 해고될 수도 있겠군요.”
“그 위험을 보고해야 합니다. 부당한 인사 조치를 막을 임시 보호도 요청할 수 있어요.”
말이 끝나자 한 젊은 직원이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며칠 전 자기 근무표에 없는 시간대의 출입 확인서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거절했고, 다음 날부터 수당이 늦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의 수당이 정말 보복 때문에 늦어진 건지 별도로 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급 기한을 넘겼다면 그 사유를 확인하고 원칙에 따라 지급해야 했다.
“이걸 내면 네라도 안전해집니까?” 직원이 물었다.
“네라의 안전은 이미 보호 기관이 살피고 있어요. 이 자료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당신 혼자 그 책임을 지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사람들이 ‘범인을 찾는다’보다 ‘다음 번에는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을 보았다. 수사는 과거를 확인하는 일이지만, 공공제도는 미래의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했다.
저녁에는 중립 기관을 통한 답장이 왔다. 네라는 살아 있고 동생과 함께 보호 장소에 있다고 했다. 그녀는 증언 의사가 있었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작성된 서명을 먼저 법원에서 독립 감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도 화상 없이 안전한 장소에서 봉인 진술을 진행하는 방식을 허가했다.
네라의 첫 진술은 짧았다. “저는 그날 보관실에 없었습니다. 출입 원장에 적힌 두 번째 서명은 제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 전날 보관실에서 누군가가 폐기된 인장 번호를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누구 목소리였습니까?” 재판부 서기가 물었다.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과 목소리가 비슷했지만, 문틈으로 들었고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신중하게 말할수록 나는 오히려 신뢰가 갔다.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지목하면 순간은 통쾌하겠지만 다시 틀렸을 때 누구의 인생을 돌려줄 수 있을까.
네라는 자신이 본 것을 하나 더 말했다. 누군가 새 인장을 찍는 대신 오래된 인장 그림을 유리판 위에 대고 얇은 필름에 옮겨 그렸다는 것이다. 유리판 모서리에 금이 가 있어 독특한 선이 남았다고 했다.
“그 유리판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본 건 제삼 결제소로 옮기기 전날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가져가는 사람의 손에 왕실 열쇠는 없었습니다.”
법원은 결제소 관련 보전 명령을 내렸다. 관리단이 내부 물품을 임의 처분하지 못하도록 대상과 범위를 특정했다. 그러나 결제소가 모두 반출했다는 말이 나온 것은 몇 시간 뒤였다. 감정할 수 있는 물건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루카스에게 물었다. “반출표가 있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해요.”
“뭐가?”
“받아 간 쪽은 왕실이 아니라 ‘비용 회수 대행’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들은 인장을 복제하는 도구까지 빚 대신 담보로 넘길 생각이었을까. 나는 보전 명령이 전달된 시각과 반출 시각부터 대조했다. 만약 중지 명령을 알고도 옮겼다면 책임은 달라진다. 모르는 직원이 단순 운송한 것이라면 보호해야 할 증언이 생긴다.
네라의 보호 담당자는 동생의 치료가 당분간 계속될 거라고 전했다. 나는 그 비용이 범죄 혐의의 인정이나 진술의 대가로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 의료 지원 절차를 안내하고 증언과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그럼 당신들은 네라가 끝까지 협조하지 않아도 약값을 내겠다는 건가요?” 담당자가 물었다.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면 그렇습니다. 증언을 사는 돈이 되면 안 되니까요.”
브란트는 간단한 안전 연락 체계를 만들었다. 보호 장소를 아는 사람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네라가 직접 위험을 신고할 수 있는 연락처를 두 개 마련했다. 하나는 경비대, 다른 하나는 중립 보호 기관이었다. 두 기관이 같은 사람의 명령만 듣지 않도록 분리한 것이다.
나는 네라에게 보내는 답장에 짧은 문장을 썼다. ‘조사에 필요한 자료는 법정 절차로 요청하겠습니다. 동생의 치료와 안전을 조건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며칠 전까지 그녀는 자기 이름으로 된 가짜 서명 때문에 도망자로 불렸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으로 진술 내용을 고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사건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더 이상 그 서명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만드는 시작이었다.
그날 밤 네라는 두 번째 봉인 진술을 보냈다. 그녀는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었다.
‘유리판을 들고 가던 사람은 제게 계산서부터 내밀었습니다. 마치 왕실 인장도 장부의 채무처럼 압류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잠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징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부터 가르쳐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위해서는 잃어버린 유리판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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