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검은 깃털이 찍힌 반환 증표를 무효라고 즉시 선언하지 않았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었다는 마이렌의 진술은 중요했다. 하지만 증표가 발급된 경위와 관리단의 실제 권한을 따져야 했다. 그 사이 봉투가 팔리거나 파기되는 일을 막기 위해 관련 문서와 금고 번호를 보전하고, 반환 증표의 추가 사용을 잠정 중지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한 번 잘못 찾은 물건을 다시 돌려주려면 그보다 더 큰 노력이 듭니다.”
“그렇다고 범인한테 시간을 주는 건 아닙니까?”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물건이 움직일 길을 좁히는 겁니다.”
나는 반환 증표를 받은 보관업체 직원에게 질문했다. 수령자는 얼굴을 가린 채 왔고 손에는 두꺼운 장갑이 있었다. 왼손을 쓰는지 오른손을 쓰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증표 발급시간은 기록돼 있었지만 발급기 식별번호는 최근 수리된 인쇄기의 것이었다.
그 번호는 군무청 제이 인쇄실에서 발견한 발주서 번호와 마지막 두 자리가 일치했다. 우연일 수 있으니 발급 원장의 원본과 실제 기계 위치를 확보해야 했다.
“또 서류군요.” 루카스가 말했다.
“이 사건은 칼로 베면 끝나는 마왕군이 아니니까.”
“마왕군도 칼로 베면 안 되는 상황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 네가 많이 자랐다.”
그는 괜히 뿌듯한 얼굴이 됐다.
그날 정오, 제삼 결제소의 리엔 모브가 직접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더 이상 모든 권한을 관리단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인장 발급 기록의 사본을 가져왔다. 관리단 직인은 삼 년 전부터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었지만, 최근에는 서로 다른 직원이 동일한 조합을 재발급받은 흔적이 있었다.
“누구 허가를 받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여기에는 허가자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공란입니다.”
“공란이면 누군가 마음대로 발급해도 됩니까?”
“아니요. 그래서 저도 조사받을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그녀는 제삼 결제소가 외부 업체의 반환 업무를 직접 감독하지 못했던 사실을 인정했다. 이사회의 책임과 개인 실무자의 책임은 나눠 판단해야겠지만, 적어도 사적인 보관업무를 공적 승인 권한처럼 설명한 문제는 더 숨길 수 없다고 했다.
오후에는 놀라운 소식이 왔다. 원본 봉투가 어떤 금고에 들어갔는지 추적하던 오렐이 왕실 보존고의 미수령 물품 이동대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 대장은 삼 년 전 보관 물품을 소유자에게 돌려주지 못했을 때 사용하던 공용 양식이었다. 거래번호는 마이렌의 여관 보관증과 연결됐다.
“그럼 장을 찾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직은요. 이동대장에는 ‘제12보관함 인계 예정’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성벽 아래 납세자 금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 입고 여부는 대조해야 합니다.”
서류함을 열기 전에 재판부는 특별 심문을 열었다. 네 개의 검은 깃털 인장을 관리하던 쪽이 잠정 중지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서류를 열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인지, 실제로 보관권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구별해야 했다.
상대 변호인은 오래된 협약을 펼치며 말했다.
“원소유자가 없으면 관리단이 대신 수령할 수 있습니다.”
나는 법관의 허가를 받고 반대쪽 원본 문장을 읽었다.
“본인 부재 시 보류.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관자가 주인이 되는 조항은 없습니다.”
“당신은 외부에서 온 사람이오. 고대 문장의 의미를 어떻게 압니까?”
“그래서 제가 혼자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비오르가 마계 보관 원본의 대조표를 제시했고, 왕국 언어학자가 별도로 감정한 번역도 제출했다. 두 해석은 미세한 표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 검증자 지정만으로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상대방은 재감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증거물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법관은 금고를 제한적으로 개봉하되, 원본에 손대는 행위는 지정된 보관 담당자만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마이렌은 자신의 물건이 실제로 안에 있다면 그 물건을 먼저 확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역시 기록됐고 법관은 신원 노출을 막을 절차를 정했다.
복도로 나오자 브란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지금 당신 표정은 한 바퀴 싸우고 나온 기사 같소.”
“싸우긴 했습니다. 종이로.”
“이기셨소?”
“아직 판결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전히 싸우는 중이군.”
그가 웃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잠시 걸었다. 복도 창밖에서는 경보 훈련을 마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누락된 장을 찾는 일과 별개로 안전한 신고 체계가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적어도 오늘 불이 나면 어느 문으로 나가야 할지 아는 아이들이 늘었다.
라니아는 재무청에서 생존 정정 신청자의 임금 심사를 진행 중이었다. 마이렌에게 돌아갈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하려면 삼 년 전의 계약과 실제 근무 시간을 대조해야 했다. 사망 보상금 은화 40은 여전히 승인 기록만 남아 있었고 출금·수령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돈을 ‘회수 완료’라고 적지 않았다. 또 개인 식비 청구의 실수납 주장과 귀환 수수료 은화 2 환급도 서로 다른 사건으로 구분했다.
루카스는 숫자 칸 옆에 색을 표시한 뒤 물었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남긴 채 금고를 열어도 되는 겁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돼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다만 해결됐다고 거짓말하면 안 되지.”
“그 말은 좀 마음에 들어요.”
“언제는 안 들었어?”
“처음에는 모든 말이 어려웠거든요.”
그의 웃음이 기록실을 잠깐 환하게 만들었다.
에리카는 오후 늦게 부친의 수첩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 줬다. 거기에는 화재 당일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보관을 맡았다는 이유로 주인이 되지 말 것.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문을 열되, 그 사람의 인생까지 가져가지는 말 것.’
그녀는 수첩의 원본을 다시 봉인했다. 그 문장은 아직 법적인 결론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 주는 말이었다.
법원은 이해관계인 통지 기한이 지난 뒤 임시 검증자 선임을 허가했다. 마이렌은 자신의 물건에 대한 반환 신청인으로 참여했고, 오딜은 시민 보관인 대표 자격을 얻었다. 세르나는 마계 협약 감독관으로 입회했다. 나는 인가 없는 독립 검증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현장 기록 작성자 자리에서 물러나 한 걸음 뒤에 섰다.
“이번엔 진짜로 문이 열리는군요.” 로웬이 속삭였다.
“문이 열린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한 번만이라도 좋은 말로 끝내 주시오.”
“문은 열립니다.”
“그 말만 하시오.”
금고 개봉이 승인되자 마이렌은 진술서에 한 문장을 추가했다. 자신의 물건을 찾아 돌려받고 싶지만, 누락된 장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연결돼 있다면 당장 자기 이름으로 독점하고 싶지는 않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은 그 의사를 반환 신청의 조건으로 접수했다.
에리카는 그 문장을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누군가 서류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가 언제나 돈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끝까지 지키려 한 약속의 흔적이 필요했다.
나는 두 사람의 목적이 다르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같은 서류라도 소유권과 열람권, 기록의 공개 범위는 다르게 판단해야 했다.
금고의 세 개 봉인이 차례로 확인됐다. 금속 손잡이는 오래된 먼지를 일으키며 움직였다. 안에는 금화가 없었다. 수정구도, 마왕의 뿔도, 사람의 기억을 담은 병도 없었다. 작은 서류함과 빈 가죽 주머니 하나가 있었다.
서류함의 제일 위 칸에는 훼손된 장부와 크기가 같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모로의 장부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맞는지는 종이 섬유와 제본 흔적을 따져야 했다. 그러나 제목은 분명했다.
‘제12장. 반환 불가 사유와 보관 책임.’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빽빽했다. 나는 소리 내 읽었다.
‘원소유자 확인 불가 시 반환 보류. 원소유자 생존 추정은 지급 명령이 아니며, 본인 권리처분의 대체 승인 사유가 될 수 없다.’
에리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뒤에는 부친의 이름과 같은 서명이 있었다. 티르센은 아직 진본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법원 기록으로 남기기엔 충분한 원본 후보였다.
“아버지가 이걸 지키려고 했군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오늘만은 가능성이라는 말을 아껴도 돼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오래 기다린 말을 들을 권리가 있었다.
문서의 맨 아래에는 기묘한 표가 있었다. ‘보관 책임자’ 칸에는 개인 이름 대신 관리단 직인이 찍혀 있었고, ‘원소유자’ 칸은 공란이었다. 그 옆에 ‘생존 대조’라고 적힌 칸은 체크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주석을 읽자 모두의 표정이 달라졌다.
‘생존 대조란, 당사자의 생사를 확정하는 표시가 아니라 권리 소멸을 추정하지 말라는 보류 분류 코드임.’
나는 어젯밤 진실의 장부를 떠올렸다.
[미등록 원소유자: 살아 있음]
장부가 자동으로 만든 그 문장이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의 존재를 알려 준 것이 아니라, ‘권리가 아직 소멸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옛 분류를 현대 문구로 잘못 번역했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 원소유자는 누구예요?” 루카스가 물었다.
“이 문서에는 적혀 있지 않아. 우리가 찾은 건 그걸 함부로 정하지 말라는 원칙이야.”
그는 실망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하나를 찾아낸 것만큼 중요한 일도 있었다. 누군가 이름 없는 주인이라는 핑계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문서의 뒷면에는 원본과 최근 인쇄본의 서식 차이가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차이는 단 한 줄이었다.
‘보류 대상은 동의가 있을 때까지 계속 보관한다.’
최근 인쇄본에서는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보류 대상은 대체 검증자가 지정되면 귀속을 변경한다.’
마지막 줄 옆에는 배포 지시 기관 코드가 적혀 있었다. 군무청 제이 인쇄실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결재 단위였다. 왕실 인장 보관실의 임시 재발급 번호. 오스윈과 레온하르트의 이름이 여러 사건에 나타났던 바로 그 통로였다. 하지만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아직 조사해야 했다.
우리는 원본 후보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바로 광장에 알리지 않았다. 티르센의 감정과 법원의 보존 절차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잠깐 아쉬워했지만 스스로 원본의 공개 범위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서류 전체를 가족의 소유로 주장하지 않았다.
마이렌도 자신의 반환 신청서를 다시 읽었다. 그는 종이가 누구에게도 강제로 서명을 요구하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한 사람의 소망이 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를 가진 사람의 뜻을 묻지 않는 법은 늘 위험했다.
그때 바깥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브란트의 병사가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왕실에 발송된 긴급 회계 정정 요청’이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귀환 계정의 원소유권을 주장하는 자가 등장했음. 반환 대상은 제12장에 적힌 서류가 아니라, 별도 인계된 원본 물품임.’
서명은 없었다. 대신 실물 보관 목록 한 줄이 첨부돼 있었다.
‘제0호 반송품: 장부 밖에서 온 사람의 입국 기록.’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누군가 내 입국을 기록했다면, 적어도 내가 이 세계에 온 날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기록을 가진 자가 내 귀환을 지배할 권리는 없다.
나는 봉투를 봉인하게 했다. 그리고 장부의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했다.
[원소유권 판단: 보류]
[대체 승인 권한: 없음]
[제0호 반송품 조회 요청]
선택할 수 있는 칸이 한 개 나타났지만, 나는 누르지 않았다.
대신 에리카와 루카스를 불렀다.
“다음에는 서류보다 먼저 사람을 찾읍시다.”
“누구를요?” 루카스가 물었다.
“제0호 물품을 만들고 입고한 사람. 그 사람이 누구에게 무엇을 받아 적었는지부터.”
창밖의 종루에서는 정해진 세 번의 종이 울렸다. 네 번째 종은 울리지 않았다.
문 하나를 열었지만, 왕국에 필요 없는 동의까지 열어젖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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