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7화
PAYLUA ORIGINAL · 제67화

67화. 열두 번 울린 거짓말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833자

오프라인 책장
관로의 소리를 따라가던 네일이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누가 이걸 보고 종소리라고 했습니까?” 그는 성벽 아래 배수로 외벽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열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소리 사이 간격이 똑같았다. 사람이 손으로 두드리면 마지막 몇 번은 조금 빨라지거나 느려지기 마련인데, 이건 기계가 만든 리듬처럼 일정했다. “마법으로 하는 거면 규칙적일 수 있지 않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마법이라도 동력을 쓰지요. 그런데 이쪽은 동력 흔적이 거의 없어요.” “그럼 유령입니까?” “유령에게도 연료비를 물릴 겁니까?” 내가 끼어들었다. 루카스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쩌면 농담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비오르는 아주 작은 금속 조각을 배수로 물에 띄웠다. 물살이 지나가면 조각이 바위에 닿으며 소리가 났다. 열두 번의 신호는 일정한 깊이에 설치한 돌기에서 생성됐다. 누군가 수로가 열릴 때마다 그 소리를 내도록 장치를 만든 것이다. “누가?” 브란트가 물었다. “만든 사람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누가 소리를 듣고 움직일지 예측했겠죠.” 비오르가 대답했다. 그때 내 장부 한쪽에 작은 문장이 나타났다. [원소유자 응답 대기] 나는 그대로 필사했다. 장부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장치에서 신호를 받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타이밍은 이상했다. 우리는 소리의 실제 발신 위치와 장부에 문구가 나타난 시각을 따로 기록했다. 외부 감정인이 두 기록을 대조하도록 했다. 성급하게 연결하면 장부가 나를 이끌기 위해 스스로 만든 증거를 내가 다시 증명으로 받아들이는 우스운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오전 열 시, 제방에서 우리를 막았던 검은 두건의 대표가 변호인을 데리고 출석했다. 이름은 마든 로스. 제삼 결제소의 외부 현장 대행인이었다. 그는 당시 인계받은 임시 권한표를 제출했다. 서류에는 법적 효력이 끝난 조항이 들어 있었지만,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저는 물건이 없어진다고 해서 막으러 갔을 뿐입니다.” “누가 없어졌다고 했습니까?” “계약 담당이요.” “이름이 있습니까?” “별명만 압니다. 사람들은 그를 장갑이라고 부릅니다.” 에리카가 펜을 멈췄다. 모로가 기억하는 왼손의 화상, 장부를 사려 했던 장갑 낀 손님. 그러나 별명 하나가 그 둘을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가 직접 서명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시서에 관리단 인장이 있었습니다.” “그 인장은 법적으로 누구에게 맡겨졌습니까?” 마든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문서를 보전한 뒤, 그가 사실을 알게 된 시각과 계약료를 지급받은 경위를 따로 조사했다. 마든에게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제방에서 그가 막아선 행동은 기록에 남겼지만 아직 그의 모든 일을 불법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카르디온의 사절 로흐가 나를 따라왔다. 그는 드워프 장인 조합의 오래된 노래를 들려줬다. 첫 구절은 ‘금고를 지키는 자가 주인이 되지 않는다’였고, 두 번째는 ‘이름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였다. “혹시 세 번째 구절은 세금을 내라는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오. 빚을 갚지 않고 도망가는 장인을 잡으라는 뜻이오.” “의외로 실용적이군요.” 로흐는 작은 송곳 하나를 꺼냈다. 성벽 아래 금고를 만든 장인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이 송곳은 열쇠가 아니라, 금고의 외벽이 손상됐는지 확인하는 도구였다. 우리는 건축물 안전검사를 허가받아 금고 뒤쪽 벽을 살폈다. 배수로에서 생긴 금속성 소리는 벽의 한 지점을 지나면 더 크게 울렸다. “이 벽을 누군가 최근에 고쳤습니다.” 로흐가 말했다. “언제입니까?” “기껏해야 보름쯤 전이겠소. 접착제 냄새가 아직 남아 있군.” 열하루 전 기계 출력과 시기가 가깝다는 것만으로 같은 사람이 손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수리 명부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브란트는 야간 통행 허가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후 한 시 무렵 장부보다 먼저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든이 법원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그를 범인이라며 붙잡으려 한 것이다. 브란트는 길을 비우고 보호 인력을 배치했다. 나는 마든의 가족이 사는 주소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억울한데 저 사람만 보호합니까?” 한 여자가 소리쳤다. “여러분의 피해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책임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의 집까지 공격하면, 진짜 지시자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당신은 피해를 받아 본 적 없으니 그렇게 말하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목구멍에서 반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내 사정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고통을 저 여자의 불안과 겨루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당신이 겪은 일을 제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접수하신 자료와 말씀을 그대로 남기겠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는 정해진 날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돌아섰다. 완전히 이해한 눈빛은 아니었다. 그래도 경비대가 막아선 길에서 돌을 집어 드는 사람은 없어졌다. 재무청 안으로 들어온 마든은 지친 얼굴이었다. 그는 지시서를 보냈다는 ‘장갑’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렸는지에 관해 추가로 말했다. 실제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은 두 번, 나머지는 구리 관을 이용한 음성 연락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통신 끝에서 구식 군무청 시간 신호가 울렸다고 했다. “그게 군무청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모릅니다. 누구든 그 소리를 녹음해서 틀 수 있지요.” 마든이 대답했다. 나는 그가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된 점이 고마웠다. 일찍부터 확신에 찬 증인이 가장 큰 실수를 만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네일은 음향 모형 실험을 설계했다. 구리 관에 서로 다른 음성 표식을 주입하고, 먼 거리에서도 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는지 비교했다. 마든의 기억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느 관로가 그 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시험에 사용한 부품은 현장 증거와 섞이지 않도록 붉은 줄로 묶었다. 실험이 끝나자 네일이 나를 불렀다. 군무청 제이 인쇄실로 가는 관과 북쪽 제방의 관은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실 인장 보관실 아래에서 두 통로가 한 번 만났다. 오래된 지도를 뒤져보니 그 교차점은 삼 년 전부터 폐쇄 상태라고 되어 있었다. “폐쇄라고 쓰여 있다고 물리적으로 끊어진 건 아닙니다.” 네일이 말했다. “그럼 실제 연결 상태를 확인합시다. 다만 인장실 직원들이 일할 때 쓰는 정상 관로는 멈추면 안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루카스가 손을 들었다. “징수관님, 이상한 생각이 있는데요.” “말해 봐.” “누가 돌기 열두 개를 설치했으면, 그 사람은 물이 빠질 시각을 알아야 했겠죠?” 나는 그를 봤다. 경비대가 수로를 매시간 확인하지 않는 한, 돌기가 언제 신호를 만들지 아는 사람은 수문 운영표를 알아야 한다. “좋은 생각이야. 수문 운영표를 열람한 사람부터 찾자.” 그는 활짝 웃었다.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눈이 아니라 이제 독립 조사관의 눈으로 문제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저녁 수문 관리청의 열람대장에는 낯익은 단체명이 있었다. 공동 반송 기록 관리단. 그런데 기록을 열람한 일시는 삼 년 전이 아니라 열흘 전이었다. 당사자 서명은 없고 관리단의 임시 열람 카드 번호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카드가 도난당한 것인지, 정상 발급된 것인지 확인할 다음 영장을 준비했다. 밤이 깊었지만 루카스는 먼저 집에 가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약을 먹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수사를 위해 제일 먼저 망가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가 지키려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오후에는 노동자 가족들이 재무청을 찾았다. 사망자로 처리된 사람들에게 식비를 청구한 업체가 또 다른 안내문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열두 번째 장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임금 청구권이 없다’는 문구였다. “그거 정말이에요?” 라니아가 물었다. “아닙니다. 일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장부 누락과 별개로 임금 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어요.” “등록하지 않은 사람도요?” “그렇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입증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기록에서 지웠다고 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나는 법원의 임시 정정 공고를 받아 정식 문구로 다시 붙였다. 사적 업체의 허위 안내와 별도로 임금 확인 절차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노동자 한 명이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글을 못 읽었어요. 그래서 기록에서 쉽게 지워진 거군요.” 나는 그에게 글을 못 읽은 탓이 아니라고 했다. 기록을 맡은 사람이 제대로 작성할 책임이 있다고.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실제 공문으로 남아야 했다. 네일이 설치한 모형 수로에서는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첫 실험은 실패했다. 돌기 열두 개 중 세 번째와 일곱 번째가 물살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루카스는 점심부터 기다려 온 탓에 풀이 죽었다. “기계도 거짓말합니까?” “기계는 작동한 대로 보여 줍니다.” 네일이 말했다. “우리가 원한 결과를 보여 주는 건 아니지요.” 우리는 물의 높이와 돌기 사이 간격을 한 칸씩 고쳤다. 실제 현장의 부품을 복제해 사용했지만, 현장 부품 자체를 뜯지 않았다. 세 번째 실험에서야 열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정확하게 재현됐다. 네일은 기뻐하기보다 성공한 조건과 실패한 조건을 모두 기록했다. “왜 실패한 것도 적습니까?” 내가 물었다. “다음 사람이 같은 실수를 안 하게 해야 하니까요.” 나는 그를 바라봤다. 왕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상한 기계가 고장 나면 마법사나 드래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 수리공 한 명이 왕국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든의 변호인은 우리에게 의뢰인의 출입 기록 사본을 요청했다. 나는 법원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공개될 수 있도록 절차를 안내했다. 누군가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감추면, 나중에는 증거 자체가 믿음을 잃는다. 브란트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당신은 정말 상대편에게도 친절하군.” “친절해서가 아닙니다. 절차를 지켜야 재판이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역시 따뜻한 말은 아니군.” 그가 한숨을 쉬자 루카스가 웃었다. 해가 질 무렵 소리의 원인이 완전히 드러났다. 배수로에 달린 열두 개의 돌기가 움직이는 물살에 차례로 맞도록 설치돼 있었다. 그것은 종루의 실제 경보를 울리지 않았지만, 금고 뒤쪽 감응판을 자극해 대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인증 시스템을 기계적으로 깨워 놓은 것이다. 네일이 마지막 돌기를 떼어 낸 순간 장부에서 문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뜻밖에도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대기 신호 중단] [미반환 물품: 1건] 사람들은 실물 증거가 나오면 사건이 단번에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본 문구는 오히려 질문을 늘렸다. 미반환 물품이 하나라면 제방에서 발견한 인장은 그 물품일까, 아니면 물품을 찾기 위한 도구일까. 누가 맡겼고, 왜 되찾지 않았을까. 에리카는 답 대신 장부의 표제를 가리켰다. 오래된 표제는 '반송물품 대조'였다. 우리는 그 말을 지나치게 여러 의미로 해석해 왔다. 이번에는 다시 가장 단순한 뜻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맡긴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소유자를 모르면 알아낼 때까지 보관한다. 그 원칙은 특별한 마법이 없어도 지킬 수 있는 일이었다. 물품 하나.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물품 하나가 남아 있다는 뜻일까. 나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오래전에 맡긴 것을 돌려받지 못한 채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지금 찾는 것은 그 사람의 귀환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할 물건인지도 몰랐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6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6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