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딘 모로가 제출한 장부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손을 씻었다.
깨끗하게 다루겠다는 비유가 아니다. 감정관 티르센이 실제로 세면대 앞에 세워 놓고 손을 씻게 했다. 장부의 바스러진 모서리에는 삼 년 전의 재와 어제의 먼지가 함께 붙어 있었다. 거기에 내 지문까지 더해 놓으면 나중에 누구 손을 거쳤는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왕국의 징수관을 죄인 취급하는군요.” 루카스가 투덜거렸다.
“손 씻는다고 억울해하면 장부는 만지지 말아야지.”
“제가 손 씻기 싫다는 건 아닌데요.”
“방금 그렇게 들렸어.”
그가 비누를 들고 사라졌다. 이런 아침이라도 웃을 구석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모로의 장부에는 열두 장이 빠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열두 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확인 대상이었다. 제본 실의 간격으로 보아 종이가 빠진 자리가 열두 군데였지만, 한 장을 접어 넣은 자리와 두 장을 겹쳐 끼운 자리는 외견상 같을 수 있었다. 더구나 진실의 장부는 어젯밤부터 ‘누락된 열두 번째 장’을 찾으라고 내게 말했다.
문제는 그 문장을 나만 봤다는 것이다.
나는 검은 표지와 푸른 봉인선 사이에 얇은 종이를 넣었다.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 종이의 눌린 자국을 조사하기 위한 감정판이었다. 티르센이 손가락을 들어 세웠다.
“추측부터 말해 보시죠.”
“열두 번째 자리에 소유자 이름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추측입니다. 사실은요?”
“한 장이 빠진 흔적과 특정 계정번호를 참조한 인쇄물이 있습니다.”
그는 만족한 얼굴로 감정판을 밀었다. 나는 그 차이가 언제나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 눈앞에 미래를 알려 주는 장부를 갖다 놓아도, 재판정에서는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해야 한다.
에리카가 아버지의 오래된 개인 수첩을 꺼내 왔다. 그녀는 직접 장부에 대지 않고 수첩의 사진 사본을 놓았다. 수첩에는 사망하기 이틀 전 적힌 문장이 있었다.
‘열둘째는 장부의 끝이 아니라 보관 책임의 시작.’
“아버지가 생전에 수수께끼를 즐기던 분입니까?” 내가 물었다.
“전혀요. 계란 여섯 개를 사 오라는 부탁에도 품질 검사표를 붙이는 분이었어요.”
“존경스럽군요.”
“엄마는 싫어했어요.”
우리는 잠시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웃지 못했다. 돌아가신 사람이 남긴 문장을 해독한다는 건 종종 그 사람과 다시 말할 기회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장부의 맨 뒤에는 같은 크기의 칸이 반복됐다. 보관 물품, 접수인, 이송인, 반환일, 미반환 사유. 한 칸에 이상한 표식이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작은 집을 그린 모양이었다. 왕국 법전의 ‘공동 재산’ 표지와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귀환 계정이라면서 왜 물건을 적는 칸뿐일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이 나중에 붙었을 수도 있지.”
“그러면 ‘살아 있음’이라는 문구는요?”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계정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어.”
루카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그 문구에 매달렸던 것이다. 내게는 더 그랬다. 한국에 돌아갈 가능성을 누군가 한 줄로 보여 주면, 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도 손을 뻗고 싶어진다.
점심 무렵 법원에서 모로의 추가 진술이 허가됐다. 그는 장부가 삼 년 전 화재 이후 어디에 있었는지 설명해야 했다. 모로는 처음 보관한 장소로 작은 시계 수리점을 지목했다. 두 달 뒤 외부 금고로 옮겼고, 그 뒤에는 자신의 집 지붕 밑에 숨겼다고 했다.
“왜 열두 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뒀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저도 처음에는 누가 빼 갔는지 몰랐소. 그러다 한 장을 돌려받을 기회가 있었지.”
우리는 동시에 그를 봤다.
“언제요?”
“화재에서 반년이 지났을 때요. 누군가 열두 번째 장의 값을 제시했소.”
그가 내민 것은 동전 한 닢이었다. 은화처럼 보였지만 가장자리에는 금색 실선이 있었다. 네일이 확대경으로 살펴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돈이 아니라 세관의 폐기 운송표입니다. 옛날에는 수수료 납부 확인을 금속 표로 만들었어요.”
표면에는 ‘열둘째 장, 소유자 대조, 반송 보류’라는 글자가 있었다. 다른 면에는 단 한 개의 숫자, 12.
“그 사람은 값을 얼마라고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금화 백 닢. 장부 한 장에.”
루카스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국고에 열일곱 금화가 남았다고 들었던 첫날의 내가 곁에 있었다면 바닥에 주저앉았을 금액이었다.
“받았습니까?”
“아니. 내가 가진 장부에도 없는 종이를 팔 수는 없었으니까.”
“그 말은 그때 이미 종이가 없었다는 겁니까?”
“그랬소. 그자가 내가 숨겼다고 믿었을 뿐이지.”
모로는 거래를 거절했으나 신고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대가를 제안한 사람이 왼손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도. 장갑 밑에 화상이 있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나는 ‘화상 있는 운영대행’과 ‘장갑 낀 구매자’를 같은 사람으로 적으려다 멈췄다. 그건 아직 두 사람이다.
법원은 금속 표의 감정을 허가했다. 모로가 진작 내놓지 않았던 이유도 조사하기로 했다. 그의 늦은 진술이 죄를 줄이는 수단이 될지, 진실을 찾는 수단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장부의 제본을 살피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건 종이보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었다.
모로는 법원 출입증을 단 채 기록실 한쪽에 앉아 있었다. 자진 제출한 자료가 있다고 해도 그에게 장부를 마음대로 만질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허락 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지만, 에리카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벨란 양.”
그가 세 번째 부르자 에리카가 멈춰 섰다.
“그 장부를 내가 더 일찍 냈어야 했소.”
“알고 있어요.”
“내가 겁쟁이였지.”
“그 말도 들었고요.”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 모로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에리카는 조금 뒤 다시 돌아와 물었다.
“아버지는 종이가 없어졌다고 말했나요, 아니면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했나요?”
모로의 눈꺼풀이 떨렸다.
“사람들이 먼저였소. 그는 사망 처리된 사람의 급식 기록과 임금을 확인하겠다고 했지. 종이가 없어졌다는 건 그다음이었소.”
“그러면 다음에는 그 순서대로 진술해 주세요.”
그녀가 자리를 떠나자 모로는 머리를 숙였다. 나는 조서에 그 대화 전체를 적지 않았다. 정식 진술로 채택할지 확인하지 않은 감정적인 대화까지 증거인 척 만들 수는 없었다. 대신 별도 면담을 신청할 수 있는 안내를 모로에게 건넸다.
티르센은 밤이 되도록 감정실을 떠나지 않았다. 종이 섬유에 끼어 있던 가는 재를 현미경으로 보던 그가 작은 그림을 내게 보여 줬다. 같은 장부 안에서도 앞쪽 종이와 뒤쪽 종이의 가장자리가 달랐다. 어떤 면은 불에 그을리기 전에 잘렸고, 다른 면은 그을린 뒤에 뜯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화재 전에도 이미 누군가 장을 빼냈다는 말입니까?”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가 다른 장소에서 불에 닿았을 수도 있지요.”
나는 그에게 자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내 마음을 발견했다. 이미 범인을 고른 뒤 증거를 맞추는 수사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스는 사라진 장마다 별도 봉투 번호를 매겼다. 1에서 12까지. 어떤 장은 행방 단서가 있었고, 어떤 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열두 번째 칸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펜을 멈췄다.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중요할 수 있어. 그런데 숫자가 크다고 범인도 크진 않지.”
“그래도 제가 이 칸을 찾으면 큰 공을 세울까요?”
“당연하지. 다만 네 공은 그 종이를 내게 가져오는 게 아니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찾아내는 거야.”
그는 동그라미를 지우지 않았다. 대신 옆에 '반환 권리 확인'이라고 적었다.
해 질 무렵 라니아에게서 보고서가 왔다. 구호소에서는 새 급식 명부를 만들고 있었는데, 사망자로 적힌 가족 이름을 복구하자는 요청과 개인정보를 보호해 달라는 요청이 동시에 들어왔다고 했다. 모두 공개하면 실종자 찾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연락을 원하지 않는 생존자에게 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라니아에게 실종 확인용 접수 창구와 공개 게시판을 분리하라고 답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확인된다 해도 그의 주소를 동의 없이 공고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라니아는 곧장 사람들에게 설명했고, 돌아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 왕국에서 세금이 필요한 이유를 이제 조금 알겠어요.”
“그렇죠?”
“서류를 보관할 안전한 방도 공짜로 생기진 않으니까요.”
그 말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적어도 누군가 세금과 약탈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재무청 입구에는 ‘귀환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해 준다’는 행상이 나타났다. 값을 묻자 은화 세 닢이라고 했다.
“저는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도 빼고 싶지 않으시오?”
“남이 만든 잘못된 명단에서 빠지는 데 돈을 내라니요. 이상한 사업이군요.”
“요즘 잘됩니다.”
“그게 더 문제입니다.”
나는 행상을 체포하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판매 서식과 실제 대가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피해 신고 안내를 붙였다. 자신이 속는 줄 몰랐던 사람도 나중에는 환급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앞서 오렐에게서 오래된 반출 기록이 도착했다. 모로가 장부를 숨긴 해에 ‘반송 보류’라는 표식의 금속 표가 왕실 인장 보관실에서 세 개 발급됐다는 내용이었다. 둘은 폐기됐다고 적혀 있었지만 세 번째 표는 수령자 서명 자체가 비어 있었다. 우리는 폐기 영수증을 확인할 때까지 셋 중 어떤 것이 모로가 가져온 표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에리카는 그 기록을 보고 잠시 책상을 짚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서 누군가 같은 표를 여러 장 만들어 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오늘은 그만 쉬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대신 기록실 교대표를 내밀었다. 그가 혼자서 모든 자료를 지킬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해 질 무렵 티르센은 금속 표의 측면을 비췄다. 빛을 받자 아주 얕은 흠집이 떠올랐다. 숫자는 열두 개였다. 처음 아홉 개는 일정한 간격, 열 번째와 열한 번째는 가까웠고 마지막은 동떨어져 있었다.
“보관함 위치를 뜻하는 표식일 수 있어요.” 티르센이 말했다.
네일은 고개를 저었다.
“위치라면 마지막 점이 반대쪽에 있어야 합니다. 이건 종을 울리는 장치의 신호 간격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두 가능성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누구도 실물 경보 장치에 표를 끼워 넣지 않기로 했다. 출처 모를 열쇠를 증거물에 꽂는 건 세무조사가 아니라 사고 실험이었다.
기록실 창가에서는 도성의 등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책상 위의 종이는 모두 같은 색으로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사연은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받지 못한 임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내게는 돌아갈 곳을 가리키는지도 모르는 기호였다.
나는 세 종류의 요구를 한 줄로 묶지 않기로 했다. 급한 건 급한 대로 돕되, 내 귀환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범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적고 나니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밤에 내 장부가 다시 빛났다.
[열두 번째 장: 반송 보류]
[원소유자 대조: 1차 실패]
[대체 검증자 지정 가능]
마지막 줄이 불길하게 깜박였다. 나는 또다시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면 가장 아래에 나타난 숫자를 보았다.
[요청 발생 위치: 북문 구호소]
그곳은 불탄 창고 노동자 가족들이 무료 급식을 받는 곳이었다.
누군가 열두 번째 장의 값을 금화 백 닢으로 정했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름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원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브란트에게 구호소의 안전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을 부수거나 사람을 체포하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 첫 빵이 굽히기 전에, 직접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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