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까지 세 시간 남았을 때 왕실 광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제삼 결제소 운영관리단의 실무 책임자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신문은 그 사람을 '귀환을 파는 자'라고 불렀다. 나는 아직 실명도 확인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는 걸 거부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한 번쯤 그 사람을 붙잡고 왜 남의 기억을 물건처럼 취급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에리카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 아버지의 반대 기록을 읽고 밤새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조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제가 누구 대신 동의한 사람이 아니라, 제 이름으로 기록을 확인하는 사람으로 앉겠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중요한 증거의 감정에는 독립 담당자를 세우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루카스는 전날 밤부터 금액 표를 만들었다. 방벽 유지료 승인 칠백이십, 확인된 출금 사백팔십, 옛 조폐소 보전 이백육십, 실제 지급처 미확인 이백이십. 사망 보상금 승인 은화 마흔, 실제 출금 미확인. 귀환 수수료 청구 기존 세 건 은화 여섯, 신규 두 건 은화 넷, 그중 실제 납부와 환급이 확인된 은화 둘. 그는 표마다 색을 달리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돈을 찾은 줄 오해하지 않겠죠?”
“그럴 가능성이 줄겠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요?”
“세금보다 오해가 더 무서운 건 모든 세상에서 비슷한가 봐.”
그가 웃었다. 나는 그에게 표를 두 부 더 만들라고 했다. 재무청 한 부, 법원 한 부, 그리고 일반인 열람용 한 부. 우리가 모든 장부를 독점하면 이 나라에 또 다른 내가 생길 뿐이었다.
정오가 되기 열 분 전, 법원 보호실로 노인이 한 명 들어왔다. 한쪽 다리를 절었고 손에는 오래된 회계 가방이 들려 있었다. 브란트가 그를 알아봤다. 삼 년 전 창고 회계사 셀딘 모로였다.
“당신이 관리단 책임자입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삼 년 전에는 그 일을 맡았습니다. 이름이 없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권한은 없었지만, 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는 확인했습니다.”
그 말만으로 그가 범죄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진술인이자 관련 자료 제출자로 분리해 기록했다. 모로는 가방에서 낡은 장부 한 권을 꺼냈다. 표지는 불에 그을렸고 모서리에는 벨란 감사관의 손글씨와 닮은 표시가 있었다.
“이걸 왜 이제 꺼냅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당신 아버지가 죽기 전 제게 맡겼습니다. 원본을 바로 내놓으면 같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지난 삼 년 동안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모로는 오래 침묵했다.
“그렇게까지 된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확인한 건 승인되지 않은 계약 변경과 돈의 중간 이동뿐이었습니다.”
에리카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나는 그녀가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하지 않았다. 자료를 숨겼던 사람이 어떤 이유를 대든 그 때문에 피해가 커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모로가 내놓은 장부는 훼손돼 있었다. 페이지가 열두 장 빠져 있었고 세 곳은 불에 그을려 숫자가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표지의 발행번호와 59화에서 찾은 운영관리단 설립 인가서 번호가 연결됐다. 티르센이 원본 보존 상태를 감정했고 법원 서기가 접수 시각을 기록했다.
“그러면 누가 명령을 바꿨습니까?” 내가 물었다.
모로는 한 장을 펼쳤다. 그곳에는 삼 년 전 변경안의 심사 표가 있었다. 벨란 감사관은 반대, 마계 대표는 보류, 왕실 서기관은 미확인. 유일하게 찬성 표기가 있는 칸은 '운영 대행'이었다. 이름 없이 직인만 찍혀 있었다.
“당시 대행은 누구였습니까?”
“제가 아닌 사람입니다. 제게는 임시 장부 작성만 맡겼으니까요.”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까?”
“얼굴은 봤습니다. 이름은 계약서에서 지웠고요.”
모로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재촉하려 할 때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
“왼손에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 화재 뒤에 생긴 상처는 아닙니다. 제가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부터 있었어요.”
브란트는 그런 흔적을 가진 사람을 몇 명 안다며 나설 듯했지만 나는 막았다. 손의 흉터 하나로 사람을 체포할 수는 없었다. 모로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도 책임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쓴 장부에는 지시를 받았던 인계표 번호가 남아 있습니다.”
번호는 군무청 제이 인쇄실의 임시 근무표, 그리고 제삼 결제소 하청 비용 계정과 이어져 있었다. 같은 조직이 도장과 기계를 돌려 쓴 정황은 한층 분명해졌다. 다만 세 시기의 책임자가 동일한 인물인지 여부는 여전히 조사 대상이었다.
정오가 지나도 '내일 정오 직접 입회'를 약속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로 자신은 그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은 그의 진술과 장부 제출을 접수했을 뿐 실무 책임자의 출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다시 누군가 우리의 기대를 이용해 시간을 벌었을 수 있었다.
정오 약속이 비어 버린 동안 나는 모로의 장부를 천천히 조사했다. 빠진 열두 장의 절단면은 모두 같지 않았다. 몇 장은 제본이 헐거워져 떨어진 듯했고 다른 장은 칼로 잘라낸 흔적이 있었다. 티르센은 이를 확인하되 언제 누가 잘랐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신이 일부를 숨겼습니까?” 내가 물었다.
모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재 뒤 남은 걸 그대로 보관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꺼냈을 때부터 그 상태였다고 증명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관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 진술을 조서에 적었다. 장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할 수 없지만, 관련 문서를 숨기고 있었던 이유와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서는 별도 판단이 필요했다.
에리카는 장부 표지의 작은 구멍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개인 수첩에 남은 종이 고정 방식과 비슷했다. 두 물건에 같은 실이 쓰였는지 조사하면 연결 경로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수첩과 장부를 같은 봉투에 넣지 않았다. 서로 다른 출처의 물건이 감정 전에 오염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럼 열두 번째 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지금 있는 자료로는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했다. 장부의 서랍 어딘가에 내 이름이 또 적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조급하다고 정밀 열람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잊힌 기억이 하나씩 늘어나는 두려움보다, 누군가 내게 그 대가를 내라고 강요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모로는 내가 장부 앞에서 손을 멈추자 조용히 물었다.
“당신이 여기 온 이유를 알고 싶습니까?”
“예.”
“그럼 그 이유를 알려 주겠다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내줄 겁니까?”
“확인할 수 있는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제 기억과 다른 사람 이름은 안 됩니다.”
그는 오래 나를 바라봤다.
“그 대답이 삼 년 전에 누군가에게도 필요했습니다.”
나는 그가 벨란 감사관을 말하는지, 아니면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다른 사람을 말하는지 묻지 못했다. 누군가의 과거를 오늘 내 욕망에 맞춰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로웬이 회계실에서 달려왔다. 법원이 대체 승인 중지 명령을 재확인했고, 후보 명단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하지 말라는 보전 결정도 나왔다고 했다. 그 명령이 내려진 덕분에 광장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며 몰아세우는 행위를 막을 근거가 생겼다. 나는 브란트에게 군중이 있더라도 정해진 범위의 보호만 하라고 했다.
나라에 진실을 알릴 책임이 있다는 것과, 누구의 이름이 의심받고 있는지 무제한 공개할 권한이 있다는 것은 다르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어렵게 배운 구분이었다.
그때 광장에서 소란이 일었다. 귀환 증서를 팔던 상인이 경비대와 함께 끌려온 것이었다. 그는 자진 출석했다고 주장했고 브란트는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밤새 자신에게 물건을 공급하던 배달원의 위치를 찾았다며 거래 원장을 가져왔다. 원장에는 은화 몇 닢의 현금 거래가 적혀 있었다. 이 역시 큰 보전금과 구분해야 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누이가 돌아올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제 아이 이름까지 받아 적더군요. 그건 이상했어요.”
상인은 아이 이름을 적으라는 요구를 거절했고, 그 뒤 배달원에게서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고 자발적 자료 제출 경위를 기록했다. 그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후보 명단은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오후에 왕실 법원이 사망자 정정과 대체 승인 금지에 관한 결정을 공표했다. 생존이 확인돼 심사를 마친 두 사람의 등록 정정은 완료됐고, 다른 두 사람의 심사는 계속 진행됐다. 대체 승인 문구는 유효한 본인 동의를 대신할 수 없으며, 향후 검증자 호출은 별도의 서명과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잠정 명령도 유지됐다. 사람들은 화려한 승리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 결정만으로도 오늘의 하루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회계사 모로의 진술을 마친 법원은 그에게 원본 제출 사실이 기록된 접수증을 발급했다. 그는 접수증을 받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삼 년 전에 이 한 장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오래 침묵했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 이미 별도 심리가 시작됐다. 그 이유가 두려움이든 계산이든 기록을 숨긴 행위와 그 결과는 검토돼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원본을 잃지 않는 것이 먼저였다.
저녁에 바넨이 민원 창구를 찾아왔다. 그는 내게 작은 빵 두 개를 내밀었다. 내가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메라의 급식소에 기부했다. 정식 기부 수령증을 요구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다.
“당신 때문에 배웠소.” 바넨이 말했다. “돈은 주는 사람 마음대로라지만, 받는 사람이 왜 받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나는 웃었다. 왕국의 세무 행정은 조금씩 평범한 사람의 손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나는 내 수첩의 첫 페이지에 적힌 한국 주소를 확인했다. 오래전처럼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글자를 읽을 수는 있었다. 이번 열흘 동안 정밀 열람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함께 남겼다. 그 사실만으로 기억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 시키는 대로 기억을 내준 적은 없었다.
그날 밤 에리카는 아버지의 보고서 마지막 장을 읽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검증자 번호 일곱 자리는 사람을 부르는 번호가 아니다. 귀환 계정의 원래 소유자를 찾기 위한 조회 열쇠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지난 열하루 동안 누군가는 그 번호를 사람 이름에 붙였다. 그러나 원래는 이름이 아니라 계정의 소유자를 추적하기 위한 번호였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럼 제 이름이 거기 적힌 이유가 바뀌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적어도 처음부터 당신을 기다렸다고 주장할 근거는 더 약해지겠죠.”
에리카가 대답했다. 그 순간 진실의 장부가 조용히 빛났다.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새로운 문장 한 줄이 나타났다.
[귀환 계정 원소유자 대조 요청]
[대조 대상 이름: 미등록]
[참조 문서: 삼 년 전 벨란 감사관의 누락된 열두 번째 장]
나는 숨을 들이켰다. 오늘 모로가 내놓은 장부에서는 열두 장이 빠져 있었다. 그중 열두 번째 장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장부의 자동 문구가 그 장을 언급한 사실은 묘하게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누군가 기록을 통해 나를 속이는 것인지, 원래 장부가 참조 대상을 표시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더 나타났다.
[미등록 원소유자: 살아 있음]
나는 아무것도 승인하지 않았다. 다만 수첩을 펼치고 글자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곳의 사망자 명단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찾던 내가, 이제는 귀환 계정의 원래 주인이라는 이름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와 무슨 관계인지, 그리고 왜 누군가 사람을 죽은 것으로 기록하려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누락된 열두 번째 장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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