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청 제이 인쇄실은 분명 폐쇄돼 있었다. 문에는 녹슨 쇠사슬이 걸려 있었고, 창문은 먼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바닥에는 최근에 밟힌 진흙 자국이 있었다. 오래된 인쇄실을 드나든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누가 들어왔습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일단 발자국을 기록하죠.”
우리는 법원 허가서에 적힌 조사 범위를 확인했다. 인쇄실과 부속 보관실, 관련 출입대장. 그 밖의 군무청 사무실까지 임의로 뒤지는 건 금지였다. 레온하르트 군무차관이 현장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우리가 검은 깃털 의혹을 조사할 때부터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이었다.
“왕실 징수관이 군무청 건물에 왜 들어옵니까?”
“법원 명령에 따른 증거 보전입니다. 차관님이 승인할 사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도 입회하겠습니다.”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으니 독립 참관인 자격 여부는 법원이 정해야 합니다.”
그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물러섰다. 나는 그것을 유죄를 인정한 행동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권한을 다투는 관료가 늘 범죄자는 아니었다.
문을 열자 먼지 위로 작은 수레 바퀴 자국이 이어졌다. 인쇄대는 비어 있었고, 벽에는 두 번째 창고 화재 때 사용했던 구식 경보 도면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도면을 보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안전 경보를 받는 회로와 증표 인쇄 회로가 원래부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누군가 적은 부품만 바꾸면 신호를 서로 넘길 수 있는 구조였다.
네일이 구리선 끝을 집어 들었다.
“최근 절단 흔적이에요. 금속 산화 정도가 주변과 다릅니다. 하지만 날짜를 딱 특정할 수는 없어요.”
티르센은 사진을 찍고 단면 표본을 봉인했다. 인쇄대 아래에서는 붉은 가루가 발견됐다. 57화에서 감정한 봉투 가루와 재질이 비슷했지만 같은 기계에서 나왔다고 결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부속 보관실에서 야간 근무표가 발견됐다. 폐쇄 이후 아무도 근무하지 않았다는 공식 보고와 달리, 열하루 전 밤에 '장치 안전 점검'이라고 적힌 임시 근무가 있었다. 근무자 이름은 없고 서명 칸에는 작은 검은 깃털 네 개만 찍혀 있었다.
“이 도장이 있으면 문이 열립니까?” 내가 물었다.
“폐쇄 전에는 이 인장이 외부 검사자에게 출입을 허가하는 신호였습니다.” 오렐이 대답했다. “하지만 삼 년 전부터 갱신된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그럼 문이 열려도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군요.”
“예.”
오렐은 스스로 그렇게 답한 뒤 한참 도장을 바라봤다. 문지기의 가장 큰 무기는 열쇠가 아니라, 열쇠를 내어주기 전에 물을 수 있는 권리였다.
점심 무렵 현장 근처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군무청 담장 밖에 작은 시장이 열려 있었다. 상인 한 명이 '귀환 검증서'를 팔고 있었다. 우리는 곧장 물건을 압수하지 않았다. 판매 행위가 위법한지와 판매자가 원본의 효력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확인했다. 상인은 실제로 검증서가 가족을 데려온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도 실종된 누이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어디서 받아오셨습니까?”
“제삼 결제소에서 받은 사람이 도매로 넘겼습니다.”
“받은 사람 이름을 아십니까?”
그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인도 장소와 날짜, 지급한 돈은 기억했다. 우리는 그 기록을 요청하고 추가 판매를 중지하는 자발적 약정을 받았다. 상인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럼 제 누이는 어디 있습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실종자 조회 창구를 안내했다. 사람의 절박함이 사기를 파는 데 사용되는 나라에서, 세금 징수관의 가장 어려운 일은 숫자가 아니라 희망을 속이지 않는 일이었다.
오후 네 시, 네일이 인쇄실 바닥의 이음새를 발견했다. 오래된 인쇄대 뒤로 작은 숨은 서랍이 있었다. 안에는 봉인되지 않은 필사 발주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윤서아에게 맡긴 일곱 자리 기호, 후보 명단 수정본, 광고판의 강태준 초상화가 같은 일괄 발주서에 묶여 있었다.
“그림까지요?” 내가 물었다.
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주 번호는 연속됐고 문서마다 작성일이 같았다. 누군가 나를 등록 후보로 만들고, 에리카를 대체 신청인으로 부르고, 밖에서는 내가 그 서비스를 이용한 것처럼 광고하는 일을 하나의 업무로 설계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누가 작성했는지는 공란이었다. 지급 예정 금액도 일부만 적혀 있었다. 나는 이 공란을 그대로 보고서에 남겼다. 공란이라고 해서 결제소 대표나 군무차관 이름을 멋대로 써 넣을 수는 없었다.
귀환 검증 시스템의 실제 사용자가 제삼 결제소뿐만은 아니라는 정황이 나왔다. 왕궁 기록실, 북쪽 초소, 군무청 인쇄실의 도면이 연결됐다. 그러나 각 기관이 어디까지 알고 관여했는지는 여전히 다툼이었다. 법원은 인쇄실과 하청 계좌의 자료를 함께 보전하라고 명령했다.
제이 인쇄실의 현장 조사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쇠사슬이 녹슬었다고 해서 내부가 삼 년 동안 비어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브란트는 경비대 순찰기록을 가져왔다. 지난달까지는 밤마다 돌아보던 길이었는데 열하루 전부터 순찰 구간이 바뀌어 있었다. 이유는 '건물 안전'이었다.
“안전 때문에 사람이 못 들어오게 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가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나는 순찰 구간 변경 지시서의 원본을 보전해 달라고 했다. 경비대의 실수인지, 누군가 일부러 빈 공간을 만들었는지 확인하려면 지시를 받은 사람과 내린 사람을 분리해야 했다. 브란트는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자기 부하를 먼저 불렀다.
“우리 기록부터 가져오겠습니다. 남의 문만 뒤지다가 우리 문이 열려 있으면 안 되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기관 전체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기록을 검증받지 않으면 시민에게만 원칙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때 제이 인쇄실 수리공의 아내가 찾아왔다. 남편은 지난달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그가 여기서 일했다는 증거로 작은 식권을 내밀었다. 날짜는 열흘 전이었다. 우리는 실종 신고 접수 여부부터 확인하고 그녀의 동의 아래 식권을 촬영했다.
“남편이 범인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그럴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인쇄실에 들어온 사람과 장치가 사용된 경위입니다.”
그녀는 어깨를 떨었다. 남편이 여기 있었다는 사실이 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신고 접수기관에 보호 요청을 연결했다. 왕실 조사팀이 먼저 사람을 찾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새로 등장한 실종자가 또 귀환 증서 판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었다.
오후에는 기술감정인이 인쇄대의 미세한 잉크 배출구를 검사했다. 바닥에 흩어진 붉은 입자는 일종의 금속 산화물이었다. 다른 인쇄실에서도 쓸 수 있는 재료였다. 하지만 배출구 끝의 작은 균열은 이번 사건의 봉투 가루에 남은 긁힘과 비슷했다. 나는 같은 기계일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잠정 평가를 보고서에 적되 감정 최종 판단란은 비워 두었다.
“참고로 제 급여가 세 배로 적혔던 옛 장부도 이 기계에서 나온 겁니다.” 네일이 말했다.
“그때 누가 입력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제가 받은 건 하루 임금이었고 장부에는 세 배가 찍혔어요. 제 이름도 그 기계에서 다른 숫자와 엮였죠.”
나는 그가 왜 기계의 흠집을 이렇게 집요하게 확인하는지 이해했다. 그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잘못 인쇄된 숫자 때문에 자신의 노동이 왜곡된 경험자였다.
우리는 그의 수리 기록과 현재 감정을 서로 다른 파일에 넣었다. 이해관계가 있다고 기술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 감정은 필요했다. 네일은 그 구분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럼 제 말이 틀리면 고쳐 주시겠죠?”
“그게 감정의 목적입니다.”
해 질 무렵 법원 서기는 현장 봉인 명령의 이행 여부를 확인했다. 기계는 이동시키지 않고 감시인을 두기로 했다. 반출하면 부품이 바뀔 위험이 있고, 그대로 두면 다시 작동할 위험이 있었다. 비오르는 동력을 차단하되 기록 장치의 마지막 상태를 보존하는 기술안을 제출했다. 법원이 승인한 뒤에서야 작업이 이루어졌다.
문밖에서는 레온하르트 군무차관이 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야간 출입이 있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에게 서면으로 해당 기간의 부서 출입 절차와 감독 체계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 말보다 인쇄기의 먼지를 믿겠다는 겁니까?”
“어느 하나만 믿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출입 기록에 남지 않은 이유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돌아섰다. 브란트가 뒤에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무자가 상사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대립하면 중요한 진술이 아예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로웬은 군무청의 정식 답변 기한을 법원 명령에 맞춰 설정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는 누가 어떤 범위에서 거부했는지 남기기로 했다. 나는 장부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대답하지 않음 역시 확인해야 할 사실이지만 유죄의 증거는 아님.'
그리고 네일에게 금속 표본의 원본이 어디에 보관되는지 물었다. 그는 법원 감정실 번호를 정확히 답했다. 적어도 우리 손으로 만든 증거만큼은 내일 누가 다시 조사해도 같은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때야 나는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이세계의 위협은 대개 검을 들고 달려오는 줄 알았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도 서명을 만드는 인쇄기 하나가 더 무서웠다.
그날 저녁 루카스는 기계 수리 비용 장부를 뒤지고 있었다. 네일의 임금이 실제 받은 금액의 세 배로 적혀 있던 과거 장부와 새 부품 반출 대장을 비교한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멈췄다.
“똑같은 오기가 있습니다.”
“어디?”
“부품 수량을 적는 곳에 숫자 삼 대신 숫자 팔처럼 보이는 인장이 찍혀 있어요. 옛 조폐소 장부와 여기 반출 대장이 같아요.”
티르센이 확대경으로 살폈다. 흔한 도장 결함인지 동일한 도장인지 감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연결 경로는 뚜렷해졌다. 원래 왕국의 돈을 관리하던 인쇄 장치가 최근에 사람의 이름을 출력하는 데 쓰였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자 경비대는 출입구에 보전 표지판을 세웠다. 이곳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는 사실을 시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실종자의 가족이 문의할 연락처도 적었다. 수사가 시작됐다고 사람이 사라지는 곳까지 비밀이 되어서는 안 됐다.
밖에서는 비가 그쳤다. 에리카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주워 입회인에게 넘겼다. 종이에는 찢긴 문장이 남아 있었다.
‘대체 승인이 실패할 때에는 사망 기록의 마지막 담당자에게 책임을 이전한다.’
그 마지막 담당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면 삼 년 전 사망자 등록 원본을 봐야 했다. 에리카는 잠시 눈을 감았다. 등록 원본의 마지막 확인인은 그녀의 아버지 이름으로 돼 있었다.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뜻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그럴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밤에는 제삼 결제소에서 경고장이 도착했다. 보전 명령을 위반하지 말라는 법원 통지를 핑계로, 외부 하청 담당자를 조사하면 투자증서 지급을 전면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문서를 법원에 그대로 제출했다. 사람들의 돈이 걸린 업무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서류를 넘기려는 순간 리엔이 복도 끝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낡은 열쇠 하나를 내밀었다.
“당신이 찾아온 하청부서 계약의 원본이 있는 곳을 압니다.”
“어딥니까?”
“아버지의 감사실이 아니라, 제삼 결제소가 만든 비밀 장부실이에요.”
그녀는 에리카를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거기에는 당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반대한 문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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