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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5화
PAYLUA ORIGINAL · 제55화

55화. 제삼의 종소리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796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 종루는 하루 네 번 울리지 않았다. 새벽과 정오, 저녁에 규정대로 종이 울렸다. 네 번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누군가 죽거나 마왕군이 쳐들어오는 줄 알았다. 나는 그 소리가 소환을 알리는 신호라고 믿고 싶었던 적이 있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럴듯해지니까. 그러나 네일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종을 울린 사람이 없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럼 관을 통해 소리가 전달된 거겠죠.”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의 안쪽에서 소리가 시작됐어요.” 그가 꺼낸 것은 금속 조각 세 개였다. 조각마다 진동 흔적이 다르게 남아 있었다. 왕궁 종루의 관은 아래에서 위로 흔들렸고, 조폐소 쪽 관은 바깥쪽으로 울렸다. 북쪽 폐쇄 초소의 관에서는 실제 타종 장치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측정도 나왔다. “그러면 셋 중 어디에서 시작됐습니까?” “우리가 그려 둔 세 갈래 중 어디도 아니에요.” 나는 51화에 발견한 네 번째 구리선을 떠올렸다. 아직 봉인된 지하 회계실로 이어지는 그 얇은 관로. 누군가 일부러 옛 지도를 믿게 만든 뒤 보이지 않는 통로를 남겨 뒀을 수 있었다. 왕실 법정은 지하 회계실 출입을 허가했다. 단, 독립 감정관과 소방 담당자, 결제소 대표가 함께 입회하고 벽을 훼손하지 말 것. 에리카는 문에 붙은 봉인이 자신의 아버지 것과 다르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오늘은 그 문을 열기로 했다. 문이 열리자 먼저 낡은 먼지 냄새가 났다. 안에는 금화도 수정구도 없었다. 아주 작은 책상 하나와 붕대로 감싼 종이 상자, 그리고 구리 관을 잇는 손잡이가 있었다. 손잡이 아래에는 '긴급 구조 호출'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구조?”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네일이 손잡이의 구동 원리를 설명했다. 옛 창고나 초소에서 화재가 나면 내부의 누군가 관로를 통해 왕궁 종루에 위험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만든 장치라는 것이다. 네 번째 울림은 원래 재산 거래의 인증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라는 신호였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런데 왜 검증자 요청이 같은 소리를 냅니까?” 내가 물었다. 비오르가 관을 들여다보다 대답했다. “기계가 신호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연결한 흔적이 있어요. 원래 안전 경보였던 소리를 나중에 서명 호출로 돌려 썼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턱이 굳었다. 사람을 구하라고 만든 종을, 사람의 기억을 계약에 올리라고 쓰고 있었던 것이다. 회계실의 첫 번째 서랍에는 화재 당시 구조 명단이 있었다. 열두 사람 가운데 여덟 명 이름 옆에는 표식이 없었고, 네 사람 옆에는 '호출 후 응답'이라는 짧은 기록이 있었다. 바넨의 이름은 그 네 사람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죽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당시 그가 이미 밖에 나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이 기록으로 생존자를 확정할 수 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뇨. 당시 누가 신호에 대답했는지 보여 줄 뿐입니다.” 문서 옆에는 종이틀이 있었다. 작은 글씨를 고대 문자로 바꾸는 낡은 틀이었다. 윤서아를 불러 보자 그녀가 표정이 굳어졌다. “제가 열하루 전에 그린 숫자 틀과 같아요.” “누가 가져다준 거죠?” “실물은 못 봤어요. 설계도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의 금속 흠집이 그림에도 있었어요.” 그녀는 평면 그림을 보여 주었다. 오른쪽 위에 부러진 삼각형 조각이 있었다. 실제 장치에도 같은 자리가 깨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설계도가 바로 이 장치의 상태를 반영했을 가능성을 기록했다. 원래 장치가 삼백 년 전부터 이 모습이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 왕궁 마당에 다시 사람이 몰렸다. 귀환 광고판을 내린 뒤에도 새 종이가 유통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왕실이 검증을 막고 있으니 가족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인은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올 가능성을 막지 말라고 내게 울며 말했다. 나는 그 앞에서 감정 없이 법전만 읽을 수 없었다. “아드님이 돌아올 방법을 찾는 것과, 누군가 돈을 받는 건 다른 일입니다. 지금 장치는 돌아올 사람을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왜 당신 이름이 거기 있소?” “저도 그걸 찾고 있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당신은 집이 있소?”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집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내 말을 조금 믿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함께 실종자 조회 창구로 갔다. 그는 팔 수 없는 이름과 팔아서는 안 되는 희망이 있다는 걸 차츰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이 루카스와 라니아는 정상적인 급식소 납품 절차를 마쳤다. 전날 승인된 예산 조정 범위 안에서 빵과 말린 콩이 도착했고, 검수표에는 실제 수량과 부족량이 따로 적혔다. 메라는 아이들에게 먼저 빵을 나눠 줬다. 이번에도 수리비 예치금이나 봉인된 이백육십 금화에는 손대지 않았다. 나라를 살리는 일이란 거대한 보물창고를 여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돈이 정해진 사람에게 가도록 만드는 일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오후 두 시간 동안 회계실에서 안전 경보 장치를 재현했다. 실제 구조 신호를 울리면 왕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었으므로 네일은 같은 규격의 모형 관을 마당에 설치했다. 그 끝에는 종 대신 작은 나무판을 달았다. 비오르가 옛 설계도에 적힌 손잡이 각도를 맞추자, 나무판이 짧게 네 번 흔들렸다. “이렇게 하면 화재가 난 곳을 찾을 수 있었다고요?” 루카스가 물었다. “소리 길이에 따라 장소가 달라요.” 네일이 말했다. “왕궁 창고와 북쪽 초소가 같은 종을 울려도, 사람들은 길이로 구분했을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소리를 계약 승인처럼 바꿨군요.” “맞습니다. 같은 신호에 다른 뜻을 얹은 거죠.” 나는 모형이 작동한 기록과 실험 조건을 적었다. 고대 장치와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 아니니 결과도 어디까지나 기술적 가능성일 뿐이었다. 비오르는 이 실험이 기억 인출 여부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경고문을 덧붙였다. 자동으로 뜨는 글자가 아무리 무서워도 그 자체로 누군가의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실험을 지켜보던 메라가 말했다. “그런데 저 종을 누르면 누가 도와주러 옵니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봤다. 네일은 기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었고 비오르는 마계 표준을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종이 울렸을 때 실제 구조대를 보낼 책임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 왕국은 화재 이후 그 기능을 폐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금융 계약의 부속 장치로 바꿔 놓았다. 나는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위험 신호와 신원 인증 장치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되, 오래된 안전 경보를 되살릴 수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비용을 쓰려면 예산이 필요했고 구조대를 배치하려면 부서 간 협의가 필요했다. 국왕은 읽고 나서 짧게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듭니까?” “아직 견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 필요한 답은 늘 마지막에 없군요.” “없는 돈을 있다고 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아델리온은 웃지 않았다. 대신 소방대와 재무청이 함께 시범 운영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왕이 화려한 무기로 마왕을 무찌르는 이야기는 이곳에서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대신 왕이 경보 장치 하나의 유지비를 묻는 장면이 있었다. 내겐 그게 더 믿을 만한 변화였다. 라니아는 이 소식을 듣고 급식소의 아이들에게 종소리의 의미를 알려 줬다. 네 번 울리면 귀환을 사라는 뜻이 아니라 위험한 사람을 도우라는 뜻일 수 있다고. 정확한 규정이 재확정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안내문에 공식 경보라고 쓰지 않았다. 단지 불이 났을 때 어디로 신고해야 하는지 기존 절차를 적었다. 나는 한동안 손잡이 모형을 바라봤다. 구조 신호가 장부 조작에 쓰인 것은 끔찍했지만, 누군가 사람을 구하려던 마음이 장치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이 왕국이 처음부터 썩은 곳만은 아니었다는 뜻 같았다. 고칠 수 있는 물건이 아직 있었다. 그때 북쪽 초소에서 온 통신원이 불길이 다시 번질 뻔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 화재가 난 곳에는 임시 방수포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조사를 위해 봉인된 일부 시설이 수리를 늦추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나는 법원에 증거 보존과 안전 조치를 병행할 수 있는 범위를 요청했다. 현장 사진과 시료를 확보한 뒤 위험한 지붕을 받칠 수 있도록 명령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브란트는 명령서가 나오자마자 수리공을 보냈다. 그날 밤 다친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것이 검증자 승인 한 번을 막은 일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사람을 위험 속에 두는 건 순서가 잘못된 일이었다. 문제를 고치는 사람들 가운데는 마계 출신 기술자도 있었다. 북쪽 주민 일부는 그들을 의심했다. 세르나는 자신의 서류를 보여 줬다. 그는 왕국의 협약에서 정한 안전검사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왕의 부하가 왕궁 종을 고친다는 사실을 낯설어했지만, 기술자의 손에 들린 도면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마왕에게도 세금 걷더니 이제 마왕 부하한테 수리까지 맡깁니까?” 브란트가 말했다. “계약에 맞게 일을 하면 대금을 지급해야죠.” “마왕이 청구서를 보내면요?” “증빙부터 보겠습니다.” 그가 웃었다. 세르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의 농담이 되풀이되는 사이에도 구조용 종을 되살리는 계획은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갔다. 저녁에는 왕실 법원에서 긴급 심리가 열렸다. 제삼 결제소가 검증자 호출과 실제 신원 승인을 구분하지 않은 채 대체 승인 문구를 배포한 것이 위법한지 다투는 자리였다. 리엔은 일부 부서가 오래된 장치를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제소 전체를 범죄조직처럼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어떤 부서가 사용했습니까?” 법관이 물었다. “대조 업무 하청을 맡은 외부 운영부서입니다.” “운영자의 이름은?” 그녀는 다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히 입을 닫지 않았다. 봉인된 명부를 재판장에게 제출하고 비공개 심리를 신청했다.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는 주장이었다. 협박의 실재와 책임은 법원이 따로 검증할 일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결제소가 드디어 특정한 업무 경로를 인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모든 책임을 '고대 장치가 알아서 했다'는 말로 덮을 수 없게 됐다. 회계실에서는 작은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다. 네일이 손잡이 아래의 낡은 나사를 조사하던 중 속이 빈 틈을 발견한 것이다. 안에는 얇은 필름 같은 마법 기록지가 접혀 있었다. 비오르가 감정 장치를 갖다 댔다. 사람의 기억이나 음성 자체를 담은 물건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 작동 시각을 남기는 기록지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록지 끝의 숫자를 읽었다. “삼 년 전 화재 당일 두 번, 열하루 전 한 번. 기록이 그렇게 남아 있네요.” 나는 첫날과 마지막 날 사이의 긴 공백을 보았다. 삼 년 동안 움직이지 않던 안전 신호가 최근 다시 작동했다면, 누군가 과거의 참사를 지금의 계약에 이어 붙이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갑자기 회계실 외벽의 구리 관이 울었다. 네일은 손을 떼었고, 비오르는 동력 차단기를 잡았다. 그러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종소리와 네 번째 종소리의 간격이 아주 짧아졌다. “누가 켰습니까?” 브란트가 소리쳤다.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기록지 위에 새 점 하나가 찍혔다. 그리고 문밖에서 누군가 종이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났다. '대체 신청인 하르마: 호출 취소.' 그 아래 새 이름이 적혔다. '대체 신청인: 셀딘 라르크.' 서기관 셀딘은 그 시각 법원 진술실에 있었다. 종소리를 내는 기계 가까이에 가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나는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브란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봤다. “뭐가 좋습니까?” “저 기계가 사람 허락 없이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를, 지금 입회한 사람 모두가 봤으니까요.” 우리는 종을 멈추지 못했지만, 종소리가 사람의 동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침내 증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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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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