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에서 죽은 사람에게 월급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들이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상한 소망이었다. 돈의 출처부터 의심해야 하는 세무조사관이 사망자 명단을 보며 사람부터 생각하다니. 그러나 바넨을 만나고 나서는 종이의 숫자를 보기 전에 명단에 적힌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창고에서 나온 빈 지급 봉투 열두 개를 각각 봉인했다. 도장이 찍혀 있다는 이유로 돈이 들어갔었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봉투의 주름과 안쪽 은분 흔적을 조사해야 실제 금전 보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티르센은 그중 세 개의 봉투만 유난히 새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누군가 최근에 바꿔 끼운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존 환경 차이도 봐야 합니다.”
나는 보고서에 '신품으로 확인'이라는 표현을 지우고 '물성 차이 관찰'이라고 썼다. 루카스는 지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세상 모든 문장이 이렇게 길어져야 합니까?”
“잘못 짧게 쓰면 나중에 사람 인생이 더 길게 꼬이거든.”
그는 한숨을 내쉬고 문장을 받아 적었다.
공청회에서 생존 확인됐던 네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정식 생존 정정 심사를 마쳤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바넨의 등록에는 아직 유족 보상금 명목의 가압류 표시가 남아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과 가압류 해제는 서로 다른 절차였다. 법원은 등록을 바로잡으면서 그 표시도 별도 심리하기로 했다. 바넨은 해제까지 끝난 줄 알고 웃다가 설명을 듣고 잠시 풀이 죽었다.
“그래도 이제 내 이름으로 약을 살 수 있습니까?”
“신분 증명에 필요한 정정 확인서가 발급됐습니다. 약국에서 막으면 재무청이 대신 확인해 드릴 겁니다.”
그는 내 손을 두 번 흔들었다. 큰 돈이 생긴 것도 아닌데 전날보다 어깨가 펴져 있었다.
문제는 사망 보상금이었다. 승인 표시 은화 마흔 닢, 실제 출금 증빙 없음, 봉투 열두 개 발견. 이 세 사실은 하나의 문장으로 합칠 수 없었다. 나는 지급 명세서를 따라 군무청 창고 회계실에 갔다. 그곳에서 셀딘 모로를 만났다.
“사람들이 전부 사망한 줄 알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명단이 그렇게 올라왔습니다. 화재 뒤에는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어요.”
“아홉 사람만 출근했다는 하르마의 진술이 있습니다.”
모로는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출근 명부와 보상 대상 명부를 섞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는 내게 보관해 온 낡은 결근표 한 장을 건넸다. 표에는 창고에서 일하지 않았던 노동자 세 명의 사유가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은 다리 부상, 다른 사람은 출산 간호, 마지막 사람은 임금 체불에 대한 항의였다. 그 세 사람이 화재 현장에서 모두 사망했다는 신고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왜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했습니다.”
모로가 꺼낸 것은 접수번호가 찍힌 진정서 사본이었다. 접수한 기관은 재무청이 아니라 당시 검은 깃털 보증 관리소였다. 진정서 아래에는 '본인 대조 후 반려'라는 문구가 있었다. 세 사람이 이미 사망자로 분류됐기 때문에 본인 대조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나는 혀를 찼다.
“죽었다고 적어 놓고, 살아서 찾아오지 못하니 반려했다고요?”
“그때는 누구도 이의를 받아 주지 않았어요.”
이 나라의 괴물은 용만이 아니었다. 서류에서 사람이 지워지면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권리까지 사라지는 제도가 있었다.
우리는 그 진정서의 접수 도장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별도 원장을 보전 신청했다. 모로가 원본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짓이라면 조사도 여기서 끝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그의 진술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점심때 라니아가 급식소의 빵을 가져왔다. 메라가 하루 남은 곡물 수급표를 붙였다. 국경 보급료를 둘러싼 분쟁 때문에 곡물 운송이 늦어진다고 했다. 나는 다시 국고의 숫자로 돌아왔다. 이론상 보전된 이백육십 금화를 가져다 쓰면 급식소는 몇 달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유권이 확인되지 않은 돈을 국가가 쓰는 순간, 국가가 피해자들의 돈을 다시 빼앗는 셈일 수도 있었다.
“그 돈 쓰면 안 됩니까?” 메라가 물었다.
“아직 안 됩니다.”
“그러면 굶는 사람들에게 법전이나 끓여 줍니까?”
그 말이 따가웠다. 메라는 늘 현실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국왕에게 합법적인 단기 식량 구매안을 올렸다. 상인회 납품 대금의 확정 지급기한을 지키는 조건으로 기존 예산 안에서 운송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이미 계약된 시장 수입의 미집행분이 실제 남아 있는지 확인한 다음 별도 승인을 받자는 제안이었다. 돈이 생기지 않았는데 생겼다고 말하는 보고서는 내 책상에서 나갈 수 없었다.
로웬은 보고서를 읽고 물었다.
“그렇게 하면 왕국이 덜 멋있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굶주린 사람 앞에서 나라가 멋있어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
그는 잠시 웃다가 서명을 했다. 예산 조정은 승인됐지만 물자 납품은 다음 날 검수 후 확정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창고에서 나온 세 봉투의 정밀 감정이 끝났다. 안쪽 섬유 사이에는 은분이 아니라 마법 인쇄기의 가루가 끼어 있었다. 봉투가 최근 장치를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결과였다. 누군가 과거 보상금을 지급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봉투를 새로 인쇄했을 수 있었다.
“그럼 누가 돈을 훔쳐 간 겁니까?” 루카스가 성급하게 물었다.
“아니. 누군가 지급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종이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생긴 거야.”
“매번 여기서 멈추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봉투도 없었잖아.”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은 늘 한 번에 오지 않았다. 내가 서두르는 순간 누군가는 그 틈을 타 도망칠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재무청에서는 미지급 임금과 사망 보상금에 관한 작은 조정 회의가 열렸다. 바넨과 라니아, 군무청 급여 담당자가 마주 앉았다. 바넨은 자기 이름으로 작성된 지급 확인서 한 장을 들고 왔다. 그는 그 서명에 자신이 쓰지 않는 획이 있다고 말했다.
“제가 늙어서 글씨가 바뀌었다고 하겠죠. 그래서 예전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데려온 사람은 창고 목수반에서 일했던 동료였다. 동료는 바넨이 사고 전부터 왼손 약지를 다쳐 특정 글자를 다르게 썼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나는 그 증언만으로 지급 확인서를 위조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임금 수령 당시 다른 사람이 대리 서명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급여 담당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류상으로는 지급 완료입니다. 저희가 다시 주면 중복 지급이 됩니다.”
“지급 완료의 증거가 무엇인지부터 보죠.” 나는 말했다.
“확인서에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은행 출금이나 현금 수령 장부도 있습니까?”
“옛날 장부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넨이 책상을 두드렸다.
“그 종이 때문에 나는 삼 년 동안 죽은 사람이었소. 이제 그 종이 때문에 월급도 못 받는다는 겁니까?”
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빈말하지 않았다. 화가 날 만했다. 법원이 지급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체불 임금의 법적 청구 기간이 흘러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소멸시효 중단과 관련된 정식 권리 신고를 법률 담당자에게 연결했다. 돈을 당장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 중요한 조치였다.
회의는 처음에는 삐걱거렸다. 군무청 담당자는 오래된 서류를 찾는 일 자체가 자신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현재 담당자의 직무와 삼 년 전 자료를 작성한 사람의 행위를 분리하겠다고 설명했다. 그제야 그는 급여 원장을 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부서장에게 정식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라니아는 회의 끝에 바넨에게 새 신청서 사본을 건넸다. 바넨은 그것을 손에 쥐고 몇 번 읽었다.
“오늘 돈을 못 받아도 신고는 살아 있군요.”
“그렇습니다.”
“그 말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소.”
회의를 마치자 에리카가 나를 복도로 불렀다. 그녀는 삼 년 전 부친이 작성한 임금 체불 보고서를 읽으며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사망'과 '퇴직'을 같은 코드로 처리한 구형 인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 회계 프로그램처럼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입력 항목 하나가 잘못 설계되면 사람이 떠난 것과 죽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 누군가 고의로 죽였다고 꾸민 게 아니라 프로그램 오류였을 수 있나요?” 루카스가 물었다.
“처음 오류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거나 그걸 이용해 돈을 받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내 머릿속에 한국에서 배웠던 회계 내부통제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스템이 잘못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누가 고칠 권한을 가졌는지 기록하면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왕국의 장부는 고대 마법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었다. 오류를 인정하는 통로가 막혀 있다는 점이 더 위험했다.
우리는 그날 문서 정정 접수창구를 오후 한 시간 더 운영하기로 했다. 새로 찾아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잘못 표기된 나이를 고치러 왔고, 다른 사람은 아버지의 성이 잘못 기록돼 상속 서류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사건과 직접 관계없는 민원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이었다. 라니아는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 노인은 수십 년 전 행방불명된 형의 이름을 찾으려다 울음을 터뜨렸다. 내게는 그의 형이 원래 사망자 목록에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관련 기관에서 조회할 수 있도록 정식 사건번호를 발급했다. 사람을 찾는 길은 돈을 내야만 열리는 비밀 통로가 아니어야 했다.
밤에 루카스는 정정 신청표를 세며 물었다.
“이러다 이 나라 전체 이름을 다 고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일 한꺼번에 하지 않아도 돼.”
“그럼 어디까지 해야 끝이 납니까?”
“누구든 잘못된 이름을 고칠 수 있는 제도가 남으면, 우리가 여기서 밤새는 일도 줄어들겠지.”
그는 종이 뭉치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건 정말 좋은 결말이네요.”
나는 이 사건의 결말이 그만큼 조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만 누군가 지금도 검은 깃털 인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당분간은 조용한 밤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저녁에 세르나가 마계에서 온 서류를 펼쳤다. 사망 처리 명단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마계 쪽 치료소 장부에 남아 있었다. 화재 후 두 달 동안 부상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었다. 그는 지금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위치를 알리는 기록인 만큼 즉시 공개하지 않고 보호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한 명 더 살았다는 겁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의료 기록이 있다면 신원 대조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치료소로 공식 협조 요청을 보냈다. 세르나는 마계의 환자 비밀 규정상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왕국과 마계가 모두 서류를 사람보다 앞세우던 세상이라면, 적어도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사람이 먼저여야 했다.
루카스는 그날 추가로 접수된 정정 신청 숫자를 내게 보고했다. 나는 그 숫자를 진짜 생존자가 늘어난 것처럼 쓰지 말라고 했다. 서류를 낸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직 증거를 확인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사망 판정을 취소했다고 발표할 수는 없었다. 라니아는 신고를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확인을 위한 시간을 설명했다. 누군가 그 말 때문에 실망할 때마다 그녀는 신청서 사본을 꼭 쥐여 주었다.
그날 밤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주소는 없었고, 수신인은 '서류상 사망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라니아가 조심스럽게 뜯자 안에서 낡은 급여명세서 한 장이 나왔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날 작성된 것이었다.
열두 사람 이름 가운데 열 번째 칸에는 금액 대신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검은 깃털 네 개가 찍힌 작은 표식이 있었다. 누군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찾게 만드는 동시에, 그 사람을 다시 숨기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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