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49화
PAYLUA ORIGINAL · 제49화

49화. 열한 번 고친 이름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786자

오프라인 책장
처음 보는 숫자 체계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왕국에는 갑자기 전문가가 많아졌다. 하룻밤 사이에 점성술사 셋과 유물 감정상 넷이 재무청을 찾아왔다. 모두 그 기호가 세계의 끝을 예고한다고 했다. 한 사람은 내게 특별 수수료를 내면 귀환 날짜를 알려 주겠다고까지 했다. “수수료 영수증은 발행합니까?” 내가 물었다. “영적인 거래에 영수증이 필요하오?” “예. 영적인 거래일수록 나중에 서로 다르게 기억하기 쉽거든요.” 그는 귀환 날짜를 알려 주지 않고 돌아갔다. 루카스가 문을 닫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라도 웃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날 오후 기록실에 새로운 증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왕실 소속 번역사가 아니라 북문 시장에서 오래 일한 필사공이었다. 이름은 윤서아라고 했다. 이 세계의 이름처럼 들리면서도 한국에서 들은 이름과 닮아 있었다. “혹시 한국말을 아십니까?” 나는 불쑥 물었다. 그녀는 못 알아들었다. 적어도 표정은 그랬다. 나는 내 질문을 정식 조사와 분리해 사과했다. “이름이 낯익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원래 이름이 아니에요. 이 지역에서 부르기 쉽게 바꾼 거죠.” 그녀의 출신지를 캐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증언 내용과 무관했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삼 년 전부터 왕궁에 납품했던 판독기 설명서의 일부였다. 설명서에는 일곱 자리 숫자 표기가 있었다. 내가 막 한국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던 그 기호였다. “이 문서를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제가 옮긴 거예요. 원문은 제삼 결제소 쪽에서 준 도면이었고요. 저는 기호 이름도 몰라서 모양대로 베꼈죠.” “그게 언제였습니까?” “불이 난 해보다 앞이에요. 날짜는 옛 계약 대장을 보면 나올 거예요.” 나는 속으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식 표기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고향에서 나온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아가 보여 준 설명서만으로도 다른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반증이 있다는 건 스스로 확인할 길이 있다는 뜻이었다. 서아는 이어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을 말했다. 열하루 전, 누군가 그녀에게 설명서의 일곱 자리 기호를 다시 써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원문보다 '강태준'이라는 이름의 발음을 물었다고 했다. 그녀는 외국인 이름이겠거니 하고 비슷한 소리를 적어 주었다. “누가요?” “얼굴은 못 봤어요. 결제소의 문서 배달원을 통해 받았으니까요.” “그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았습니까?” “아니요. 그냥 문자를 옮겼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장에서 징수관님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녀에게 정확한 기억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적은 발음이 현재의 세 글자와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별도로 대조했다. 서아의 원고에는 소리값이 비슷하지만 한 글자가 다른 표기가 있었다. 누군가 최종 표기를 수정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말씀하셨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남의 이름을 적었다고 체포될까 봐요. 저한테 일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요.” “이름을 적은 일만으로 누군가의 범죄를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강압이나 거짓말을 당했다면 그 사정도 듣겠습니다.” 그녀는 그제야 긴장한 어깨를 내렸다. 우리는 서아의 원고를 별도 봉인했고, 나중에 고쳐 쓴 흔적이 있는지 감정했다. 오후에는 리엔 모브가 법원에 자료를 제출했다. 제삼 결제소가 '귀환 검증' 명목으로 청구서를 발송한 것은 사실이지만, 리엔은 그 명칭이 회사의 정식 서비스 목록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문서 대행 부서가 최근 외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계약 상대방은 '무기명 대조인'. 실명과 대리권 원본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당신도 속았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속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제 이름으로 승인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 차이를 기록하겠습니다.” “왜 나를 믿지 않죠?”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류와 실제 결정 경로를 비교해야죠.” 그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때 리엔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려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도 유죄도 되지 않는다. 서아의 증언이 끝난 뒤 루카스는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그녀의 이름 옆에 발음을 적은 표였다. 그는 한국에서 온 이름이라면 나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걸 조사 기록에 넣을까요?” “아니.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연결하면 안 돼.” “하지만 태준 님도 처음엔 물으셨잖아요.” “맞아. 나도 실수했지.” 나는 그 일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성급한 추론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려면, 나 자신이 잘못 물었던 사실부터 인정해야 했다. 루카스는 내가 직접 실수라고 말한 것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제가 적은 표는 버릴까요?” “네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남겨 둬도 돼. 다만 객관적인 증거처럼 사건 서류에 넣지 말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업무 일지 한쪽에 짧게 적었다. '조사관의 개인 연상은 증인의 출신이나 진술 신빙성에 대한 자료가 아니다.' 법원에서는 리엔 모브의 문서 제출 방식도 문제가 됐다. 그녀는 단독 대리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외부 대조인이 단독으로 청구서를 발송한 기록을 제출했다. 그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결제소의 공식 승인 없이도 청구서가 나갈 수 있습니까?” 리엔이 대답했다. “기계로는 가능합니다. 계약 운영부서에서 예약 출력을 걸 수 있으니까요.” “법적으로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계약에 따라 다릅니다.” “그렇다면 계약 원본을 제출해 주세요. 운용되는 기능이 있다고 권한까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돌아가지 못하는 것보다 누군가 당신 대신 돌아갈지 결정하는 일이죠.”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으로 적힌 모든 승인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리엔은 그제야 서류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외부 대조인에게 넘긴 권한의 범위가 적힌 사본이었다. 그 문서에는 어디에도 타인의 기억을 대가로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문서가 진본이라면 누군가는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려 했던 것이다. 서아가 증언을 마친 뒤 나는 그녀의 필사 일을 확인하러 북문 시장에 갔다.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지 감시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적어 준 계약번호와 물품 납품 원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본인이 제출한 서류의 출처를 검증하는 일은 그 사람을 믿는 것과 모순되지 않았다. 필사 공방에는 작은 탁자가 여섯 개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교역 허가증을 베끼거나 멀리 있는 친척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문자를 읽지 못해도 물건을 사고팔 수 있도록 누군가의 손이 대신 움직이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들여다보며 이런 시장이 장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방 주인은 오래된 납품 대장을 꺼냈다. 서아가 일한 날짜와 주문 내용은 있었다. 다만 열하루 전의 주문은 계약 상대방 칸이 비어 있었다. 돈은 현금으로 선불 지급됐고 수령 확인 서명도 없었다. “공방에서 원래 그렇게 받습니까?” “작은 필사 일은 종종 그래요. 이름을 밝히기 싫은 사람이 사랑 편지를 맡기기도 하니까.” “그럼 계약서를 누가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겠군요.” “배달원은 봤어요. 다만 얼굴까지는 못 봤습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배달원의 옷차림과 마차 종류, 시간대를 각각 물었다. 공방 주인은 회색 외투와 왼쪽 바퀴에서 나는 소리를 기억한다고 했다. 며칠 전 창고 관리인이 말했던 소리와 닮았다. 그러나 도시에 바퀴가 고장 난 마차는 수없이 많았다. 나는 두 진술을 같은 마차라는 결론으로 묶지 않았다. 서아는 옆에서 작은 판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제가 잘못된 일을 한 겁니까?” “모르고 이름을 베낀 일과 누군가 그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한 일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요.” “실제로 누가 왔습니까?” “모르겠어요. 문을 열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그녀에게 안전하게 신고할 방법을 알려 주고, 필요하면 임시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해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방을 나서는 길에 루카스가 속삭였다. “저 사람은 한국에서 온 거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이름이 태준 님 나라 이름 같아요.” “닮았다는 건 증거가 아니야. 다른 사람의 출신을 멋대로 정하지 말자.” 루카스는 조금 실망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아이가 잘못된 추리를 스스로 고칠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는 수첩에 '이름 유사성만으로 출신 단정 불가'라고 적었다. 공방에서 서아가 건넨 짧은 쪽지를 다시 펼쳤다. '당신 이름을 적으라고 한 사람은 이름보다 발음을 중요하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이 기술적으로 왜 중요한지 아직 몰랐다. 왕국 판독기는 이름의 뜻보다 소리값을 식별번호에 연결한다고 네일이 설명했다. 누군가 문서 위에 강태준이라는 세 글자를 적으려 한 게 아니라, 장치가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음성 값을 맞추려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태준 님이 여기 온 뒤에 등록했을까요?” 에리카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 확인 과정 없이 그런 등록이 가능한지부터 알아봐야죠.” 우리는 판독기 제조 원본을 다시 요청했다. 귀환 계정의 실체를 모른 채 이름의 뜻을 풀려고 달려들면, 정작 누가 장치를 작동시켰는지 놓칠 것 같았다. 저녁에 서아가 떠나기 전 문턱에서 나를 불렀다. “그 기호요. 처음엔 외국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원본에 있던 기호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뜻입니까?” “예전 설명서에는 세 자리가 하나씩 묶였거든요. 이번에 다시 그려 달라는 건 사람 이름 옆에 일곱 자리를 전부 쓰라는 주문이었어요. 본인 확인번호 같았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그렸던 표의 순서를 다시 써 보였다. 숫자 모양보다 중요한 것은 끝의 두 자리였다. 일련번호가 아니라 수정본 번호를 나타내는 구분자였다. '11차 수정.' 열하루 전이라는 날짜와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열한 번이나 같은 이름표를 고쳤다는 가능성이 생겼다. 나는 조사 일지를 덮었다. 과거에 내 이름이 있었다는 환상보다 지금 내 이름을 조작하는 사람을 찾는 일이 급했다. 바로 그때 수정본의 배송 영수증에서 수령자 서명 하나가 발견됐다. 잉크는 마르기도 전에 문질러진 듯했다. 그래도 마지막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벨란.' 에리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에리카는 숨을 고른 뒤 먼저 배송 영수증의 번호를 확인했다. 서명만 보고 아버지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들과 달랐다. 번호는 북쪽 초소가 아니라 결제소 내 사무실로 돌아간 서류였다. 전달과 수령이 같은 장소에서 처리된 셈이었다. “이게 정말 제 가족의 이름이라면 전 누가 어떻게 적었는지 알아야 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족을 연루시킬 근거는 없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는 우리 둘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도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의심받을 때 사람은 쉽게 편을 고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편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나는 수령 위치의 출입명부와 그날 운송 서식을 즉시 보전 요청했다. 서명 감정과 위치 기록이 독립적으로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혐의를 통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서명이 아버지의 것인지, 딸의 것인지, 같은 성을 가진 다른 사람의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9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