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렐이 가져온 개봉 기록에는 도장보다 먼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외부 검증자 후보 명부'라는 제목은 최근에 덧씌운 종이띠에 적혀 있었다. 원래 서랍의 목패에는 '반송물품 대조 원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품을 돌려보내는 기관이 사람을 돌려보내는 기관으로 언제 바뀌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인장실 감정관 티르센을 다시 불렀다. 그는 아침부터 피곤한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확인합니까?”
“삼 년 전 서랍에 열하루 전에 붙은 이름표가 있는지요.”
“그걸 알아내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적어도 삼 년 전부터 제가 여기로 올 예정이었다는 소문은 조금 줄어들겠죠.”
티르센은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종이띠의 가장자리를 확대해 보았다. 왕궁에서는 발행한 지 넉 달도 되지 않은 얇은 접착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접착제의 제조법은 인장실에서 보관했지만 민간 업자에게도 공급됐다. 종이띠가 최근에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지, 왕실이 직접 붙였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감정은 더 세부적으로 진행됐다. 종이띠 아래 오래된 목패에는 나뭇결을 긁은 흔적이 있었고, 새 제목을 쓴 안료는 강태준 이름이 적힌 문서 뒷면의 안료와 비슷했다. 하지만 같은 성분의 잉크가 시장 전체에 팔렸다면 그것만으로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에리카는 원료 구매 대장을 찾겠다고 했다.
우리가 단서를 모으는 사이 재무청에는 놀라운 신고가 들어왔다. 초소에서 발견된 '영점'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었다. 한 장에 은화 한 닢. 사면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광고였다.
“사람들이 정말 그걸 삽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사라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값을 매기기 쉬운 먹잇감이지.”
라니아가 한 노인을 데려왔다. 그의 손에는 귀환 증서라는 종이가 있었다. 아들이 국경 전쟁에서 실종됐다고 했다. 노인은 광고를 믿었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물었다.
“이 종이가 가짜면 내 아들은 영영 안 돌아오는 겁니까?”
나는 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종이의 효력과 아들의 생존 여부는 별개였다.
“이 증서가 실제 귀환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드님의 생사에 대한 결론이 되지도 않습니다. 실종 신고 기록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노인은 종이를 접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세상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장면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들의 이름을 대충 읽고 넘기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는 신종 귀환 증서의 판매 경로를 신고받고, 소비자 피해 방지 공고를 냈다. 불법이라는 판단을 법원에 맡기되, 확인되지 않은 귀환 효력을 광고하는 문구를 중단시키는 긴급 명령을 요청했다. 사기 판매자들이 이세계의 마법을 핑계로 책임을 피해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날 오후 세르나가 중요한 비교 결과를 가져왔다. 마계 쪽 고대 원본에는 '검증 후보의 거절은 심사 자료로 남긴다'는 문장이 있었다. 왕국 쪽 사본에서는 그 문장 옆에 작은 결손이 있었다. 누군가 규칙을 없앴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종이가 오래되며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인증을 거절해도 됩니까?”
“이미 거절하고 있잖아요.”
“거절하면 귀환할 가능성이 사라질까요?”
그녀가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걸 알지 못해요. 하지만 누군가 당신의 선택권을 담보로 삼는다면 그 계약부터 의심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나는 내 한국 수첩에 한 줄을 더했다. '귀환은 내가 바라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동의 없는 기억 거래로 얻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절대로 잊히지 않을 문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적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바로 그날 밤 감정관에게서 긴급 서신이 도착했다. 강태준 이름이 남은 문서의 뒷면에는 글씨를 쓰기 전에 종이를 고정한 얇은 금속판의 압흔이 있었다. 그 판은 최근 재제작된 검인지 인쇄기의 부품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삼 년 전 쓰던 판과는 홈 위치가 달랐다.
“그렇다면 이름도 최근에 쓴 겁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가능성은 높지만 아직 결정적인 건 아닙니다.”
“왜요?”
“옛날에 남은 이름 위에 최근 판을 다시 대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티르센은 판이 사용된 시기를 확인하는 물리적 대조 실험을 제안했다. 네일도 초청됐다. 우리가 연기한 것처럼 글자를 적으면 같은 압흔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인쇄기를 시험하던 밤에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습관 하나를 제대로 떠올렸다. 자료를 읽다가 문장이 이상하면 곧장 결론을 내리지 않고, 원문을 두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었다. 국세청에서 배운 것인지 원래 내 성격이 그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도 그 방법은 쓸 만했다.
서아가 옮긴 기호와 판독기 원문의 기호를 나란히 놓았다. 처음에는 문자 사이의 간격이 같아 보였다. 그런데 확대하자 마지막 기호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왕국의 출판공은 활자의 높이를 달리해 수정 횟수를 표시하기도 했다. 네일은 그 차이를 보고 작업 표식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일곱 자리입니까?”
“여섯 자리는 기계 일련번호, 일곱 번째는 대조 검증값일 수 있어요.”
“검증값이라면 잘못 입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겠네요.”
그는 낡은 설명서를 찾아 계산법을 보여 주었다. 앞의 여섯 자리를 특정 순서대로 더해 마지막 자리를 만든다는 구조였다. 우리는 문서에서 눈에 보이는 숫자를 실제 기계에 입력하지 않고 종이로 계산했다. 누군가 준비한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계산 결과 마지막 값이 맞지 않았다. 원문 복사 과정에서 한 자리가 틀렸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명령을 넣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틀린 값은 위조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필사 오류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건 대조할 수 있잖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렇죠. 우리가 이 기계의 주인을 모른다고 해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숫자를 계산했고 같은 결과가 나왔다. 검증은 한 사람의 천재적인 직감보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우리는 계산 과정을 법정 제출 서류에 붙였다. 기계를 실제로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적었다.
문제를 조금씩 풀수록 내 귀환과 관련된 비밀은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을 빨리 얻기 위해 장치를 무리하게 작동시키는 순간, 지금까지 해 온 조사는 무의미해질 수 있었다. 나는 그날도 손목의 빛을 열지 않았다.
감정 실험이 열리던 날 인장실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국왕이 직접 허가한 공개 기술 대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기계를 만질 수는 없었다. 법원 서기, 독립 감정관, 기록 보존 담당자가 차례대로 동의 확인을 마친 뒤에야 장치를 작동시켰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오래된 종이 위에 새로운 판을 대고 같은 글자를 썼다. 압흔은 생겼지만 원본과 일치하지 않았다. 두 번째에서는 종이를 거꾸로 고정했다. 이때는 모서리의 깊이는 비슷했으나 세로 방향 홈이 달랐다. 세 번째에서는 지난달 제작한 인쇄기를 사용했다. 드디어 한쪽 홈이 비슷해졌다.
“그럼 찾았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직 아냐. 비슷한 것은 증거의 출발이지 결론이 아니야.”
티르센은 기계를 멈췄다. 그는 장갑을 바꿔 끼고 감정기록에 눈금을 적었다. 에리카는 삼 년 전 기록 원본과 비교해 표면에 같은 압흔이 없는지를 살폈다. 원본을 훼손할 수 없어서 직접 눌러 보는 실험은 복제지에 한정했다. 완벽하게 동일한 조건을 만들 수 없다는 한계도 보고서에 명시했다.
실험을 지켜보던 한 의원이 물었다.
“왕실의 장치를 쓰면 모든 글씨가 비슷해지는 것 아닙니까?”
티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같은 제조사 장치라면 일부 흔적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파손 위치와 압력 차이를 봅니다.”
“그럼 범인은 못 잡겠네요.”
“기계가 범인을 가리키지는 못해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흔적이 생겼는지 범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감정 결과는 정확한 범인을 한 번에 알려 주는 마법이 아니라, 틀린 결론을 몇 개씩 지워 주는 조사일 수도 있었다.
네 번째 실험이 시작되자 바깥에서 소란이 났다. 귀환 증서를 산 노인이 찾아와 자기 아들의 이름이 이 장치에서 나왔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나는 법정 감정의 범위를 임의로 확대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증서를 접수하고 상담소 담당자를 불렀다. 지금 법정에서 정해진 절차를 깨뜨린다고 아들의 소재가 확인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 당신 이름만 특별히 조사합니까?” 노인이 물었다.
나는 답을 찾다가 말했다.
“제 이름이 공문서에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드님 이름도 잘못 사용됐다면 같은 기준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순서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접수한 순서와 위험의 정도를 함께 고려하겠습니다.”
노인은 조금 진정했다. 라니아가 그를 데리고 나가며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오늘의 기술 조사가 삶에서 멀어진 별난 놀이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다섯 번째 시험은 감정관이 제안했다. 종이 아래 원본과 같은 위치에 얇은 판을 놓고, 글씨를 직접 쓰는 대신 판독기에서 출력되는 문자판을 사용했다. 그때 압흔의 끝부분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겹쳤다. 티르센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심각한 얼굴이 됐다.
“이 방식이면 원본 위에 손글씨를 쓰지 않고도 인물 이름을 만들 수 있겠군요.”
“예. 누군가 외부 명부에서 글자를 가져와 전사한 겁니다.”
그때도 아직 명부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른다는 말이 뒤따랐다. 내 이름이 최근 인쇄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내가 이 세계에 어떻게 온지를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누군가 내 이름을 알아낸 시점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가까워진 진실은 더 위험했다.
대조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섯 번의 압인 시험을 종합한 끝에, 문서의 글자 아래에만 최근 판의 홈이 눌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기존 앞면 글씨는 압흔과 무관했다. 기술감정인은 잠정 의견서를 작성했다. '뒷면 후보 이름은 최근 압인 과정에 의해 생성되거나 전사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함.'
삼 년 전부터 내가 이 세계에 올 것을 안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는 약해졌다. 그러나 내 이름을 최근에 누군가 정확하게 넣었다는 의혹은 오히려 강해졌다.
실험 결과를 전해 들은 로웬은 내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삼 년 전의 수수께끼 하나가 풀린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나는 축하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문서의 뒷면이 최근에 수정됐다는 가능성이 커졌을 뿐, 그 수정자가 누구인지도 왜 하필 내 이름을 선택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아직도 귀환의 원인은 모르오?”
“예. 그런 질문은 기술감정 보고서에 답이 없습니다.”
로웬은 어깨를 떨어뜨렸다. 나는 내심 그의 실망이 반가웠다. 모두가 나를 기적의 해결사로 믿는다면, 내가 틀렸을 때 그 대가는 왕국 사람들이 치르게 된다. 할 수 없는 일을 말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도 지켜진다.
그때 네일이 실험에 사용한 판독기를 가리켰다.
“이건 제가 고친 기계가 아닙니다. 내부에 아예 다른 숫자 체계가 있어요.”
“뭐가 다릅니까?”
“일련번호가 일곱 자리인데, 왕국 표준은 여섯 자리입니다. 그리고 숫자 사이에 처음 보는 기호가 있어요.”
나는 그 기호를 보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것은 한국의 괄호 표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것과 한국에서 왔다는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나는 판독기에 손대지 않고, 원형 그대로 사진과 탁본을 남겨 달라고 요청했다.
기억에서 사라진 내 고향의 일부가 누군가의 기계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증거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조사할 합당한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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