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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45화
PAYLUA ORIGINAL · 제45화

45화. 영점 보관함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896자

오프라인 책장
왕실 징수관이 낯선 초소에서 찾은 가장 귀한 물건은 빈 열쇠 꾸러미였다. “열쇠가 없는데 뭐가 귀합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열쇠가 몇 개 있었는지 알 수 있잖아.” 가죽 끈에는 작은 고리 여섯 개가 달려 있었다. 다섯 개는 먼지가 묻었고 마지막 하나만 매끈했다. 누군가 최근에 열쇠를 떼어 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에 사라진 열쇠와 구별하려면 보관 목록이 필요했다. 브란트가 초소 당직 서류를 열었다. 기록상 열쇠는 네 개뿐이었다. “그러면 두 개가 새로 생긴 겁니까?” “아닐 수도 있어. 끈 자체가 다른 물건일 수 있지.” 나는 장부에 고리의 숫자를 그대로 적었다. 사건이 원하는 결론을 위해 숫자를 바꾸지 않는 일은 의외로 용기가 필요했다. 초소 지하에는 돌로 만든 작은 방이 있었다. 문에는 '영점 보관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봉인에는 왕실 인장이 없었다. 이 방이 왕실 소유 건물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왕국 물건을 모두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르나는 마계 보관 공동협약의 부속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왕국 법원의 한정 확인 허가와 마계 측 참관 요청이 충족될 때까지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 사이 범인이 서류를 태워 버리면 어쩝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그러지 못하도록 봉인을 지켜야죠. 허가 없이 열었다가 모든 증거를 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브란트는 초소에 군사 경비가 아닌 보존 경비 명령을 내렸다. 허가 범위 밖에 있는 마을 조합 창고에는 손대지 않았다. 나디아가 창문마다 등을 걸어 경비병과 주민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했다. 방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힘만이 아니었다. 초소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디아가 근처 주민 셋을 불러 왔다. 모두 과거 이곳에 물건을 맡겼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겨울철 소금을, 다른 사람은 파손된 기어를, 마지막 사람은 돌아오지 않은 전령의 가방을 맡겼다고 했다. 그들이 이해한 '귀환 계정'은 대부분 화물 반환 절차였다. “가방을 맡기면서 누구 이름을 썼습니까?” “전령 이름을 썼죠. 돌려줄 사람이 그 사람이었으니까.” “전령이 죽었다면요?” “유족에게 넘기는 규칙이 따로 있었어요. 서명하지 않으면 창고에 두었고요.”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조금 안심했다. 적어도 주민들의 기억에 있는 이 시설은 사람의 정신을 담보로 잡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일 뿐이었다. 원본 서식과 실제 운용을 비교해야 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목수는 작은 나무함을 가져왔다. 열쇠가 두 개 달린 함이었다. 그는 예전에는 상인이 자기가 보낸 물건을 돌려받을 때 수취인과 보관인이 함께 열쇠를 꽂았다고 설명했다. 한쪽이 부재하면 기다렸지, 다른 사람이 대신 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주인이 영영 안 오면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때는 법원에 넘겼소. 기다리는 것도 규칙이 있어야지.” 그 말은 내가 가진 장부의 원칙과 닮았다. 독립 검증자는 결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고, 서로가 주장하는 사실을 비교하는 사람이었다. 그 권한을 핑계로 타인의 기억을 가져간다는 것은 원래의 용도와 정반대였다. 세르나는 초소 창고에 남은 고대 서식의 양식을 그려 보여 주었다. 큰 칸은 출발지와 도착지, 작은 칸은 운송료와 보관료, 맨 아래에는 수취인의 서명란이 있었다. 내가 본 인증 요청은 마지막 서명란만 터무니없이 크게 키운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돌아오는 데 수취인의 서명이 필요하다면, 누가 수취인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런 비유는 위험해요. 사람은 화물이 아니니까.” “저도 압니다. 하지만 누군가 화물 서식을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어요.” 세르나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법적으로 가장 약한 부분을 이용하고 있을 수 있어요. 화물은 보관인이 움직일 수 있지만, 사람의 기억과 신원은 본인만 승인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수취인이 없는 서식의 빈칸을 사진에 담았다. 빈칸을 내 이름으로 채워서는 안 됐다. 누군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조사팀까지 그 일을 반복하면 진실을 훼손할 뿐이었다. 밤이 깊자 경비병은 작은 차를 나눠 주었다. 나는 컵을 들었다가 잠시 멈췄다. 한국에서 마시던 커피의 맛이 아주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 기억을 확실히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하지만 이곳의 따뜻한 차가 지금 나를 살리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고향 생각이요.” “거긴 전쟁이 없습니까?” “있을 수도 있고, 싸우는 사람도 있죠. 그래도 돌아갈 곳입니다.” “그럼 돌아갈 때 저희 왕국 세금 고지서를 남겨 놓으십시오. 다음 사람이 귀찮을 테니.” “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는 하고 가겠습니다.” 브란트가 웃었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때에도 남겨진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일을 정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귀환 준비였다. 나디아는 창고 옆에서 오래된 표석 하나를 찾아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물건을 해치지 말라'는 문장이 마모된 상태로 새겨져 있었다. 세르나는 그 문장을 마계 언어로 다시 읽었다. 왕국 번역본보다 강한 의미가 있었다. '본인의 대답이 없는 동안 타인이 가져갈 수 없다.' 나는 그 문장을 기록했다. 이 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왕국의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은 한 사람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세르나가 나를 옆으로 불렀다. “당신이 본 인증 문구를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대가가 귀환 관련 핵심 기억 하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런 거래는 양측 동의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손목에 글자가 떴다고 동의한 건 아니죠.” “저는 누르지 않았습니다.” “잘했습니다.” 세르나가 처음으로 부드러운 어조를 썼다. 마계 감사관에게 칭찬받으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웃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녀가 이어서 물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기억을 맡긴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치자라는 말도 아직 믿으면 안 됩니다. 대행인이 자기 마음대로 누군가를 예치자로 올릴 수는 있어도 실제 예치가 된 건 아닐 수 있어요.” 그 말은 생각보다 큰 위로였다. 나는 잃어버린 기억이 모두 누군가의 금고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있었다. 누가 내 고향을 훔쳐 갔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두려움에 설명이 붙었다. 하지만 설명이 붙었다고 진실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영점 보관함 개봉을 기다리며, 마계 감정인은 낡은 신분 대조 장치를 작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이름은 비오르였다. 인간들이 마계를 위험한 곳으로만 생각한다며 불평했지만, 실험 도구를 다룰 때는 누구보다 꼼꼼했다. “당신네 왕국에서는 왜 물건을 확인할 때마다 세금부터 따집니까?” 그가 물었다. “저는 세금 징수관이니까요.” “그럼 고대 보관함도 세금을 내나요?” “보관함 자체에는 소득이 없으면 과세할 근거가 없겠죠.” 비오르는 웃다가 마계의 통관 대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물건을 잘못 반송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과,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구분돼 있었다. “사람의 기억을 보관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기억을 담는 수정은 있지만, 그것이 실제 기억을 빼낸 것인지 기록의 복사인지부터 다릅니다. 누군가 당신을 두려움에 빠뜨리려고 둘을 섞어 말했을 수도 있어요.” 그는 작은 수정을 켜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보였다. 방금 한 말이 다시 들렸다. 기억이 움직인 게 아니라 소리가 복제된 것이었다. 나는 그것만으로 귀환 계정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비교 실험은 유용했다. “이 수정에서 제 목소리가 나오면 제가 어딘가에 예치됐다는 뜻입니까?” “아니죠. 제 손에 있던 녹음이 옮겨진 것뿐이니까.” “바로 그런 오해가 문제예요.” 그는 대조표 아래에 '실물 기억 인출 없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대로 옮기지 말고 '검사한 장치에서는 인출 기능을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바꿔 달라고 했다. 지금 한 실험이 세상의 모든 장치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그날 오후에도 초소 지붕에서 빛이 났다. 비오르는 빛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수정의 저장 전력이 아니라 관로 끝의 작은 자극판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 안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처럼 보이게 연출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연출한 주체는 여전히 특정되지 않았다. 나는 내 수첩에 또 한 줄을 적었다. '무서운 것과 확인된 것은 다르다.' 그것은 주문처럼 들렸지만, 내게는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한 가장 평범한 작업 지침이었다. 저녁 무렵 법원의 허가가 도착했다. 마계 공동협약에 대한 세르나의 서면 확인도 함께 왔다. 문을 열 때는 에리카와 브란트, 나디아, 마계 기술감정인까지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가 입회했다. 누구도 혼자 보관함 앞에 서지 않았다. 안에는 금화가 없었다. 작은 종이 갑 세 개와 판독용 수정석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갑마다 이름 대신 문서번호가 붙어 있었다. 수정석을 보려 하자 나의 손목에서 저울 무늬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즉시 손을 내렸다. “정밀 열람을 요청한 겁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아니요. 이건 자동 반응 같습니다. 더 가까이 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감정인이 수정석을 확인하게 했다. 내게만 반응하는 물건을 내가 먼저 만지면 조사도, 내 기억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비오르는 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봉인이 뜯기지 않았다고 해서 안에 적힌 내용이 참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없다고 답했다. 봉인은 누군가 열어 보았는지에 관한 단서일 뿐, 처음 봉인할 때부터 거짓이 들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개봉 영상의 시각을 확인했다. “기록된 이름은 누구 것도 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실제 동의는 아무나 대신할 수 없어요.” 나는 그 말을 조사 기록에 옮겼다. 바로 뒤에 내 의견을 하나 더 적었다. ‘검증자의 자격과 본인 동의는 독립 확인한다.’ 첫 번째 종이 갑에는 왕국 상인들의 반송 화물 목록이 있었다. 두 번째에는 마계 측 통관 대조표가 있었다. 세 번째에는 '미복귀 예치물'이라는 제목의 서식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실물 물건의 수량, 가액, 수령 서명 칸이 비어 있었다. 대신 검증 대상의 식별 부호와 '본인 기억 조회 대기'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여기서 사람의 기억을 꺼낸 적이 있다는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조회 대기라고 적힌 건 조회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뜻이야.” “하지만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거네요.” “그건 맞아.” 그날 새벽부터 경비를 섰다는 젊은 병사가 조용히 말했다. 자신도 이 방 앞에서 누군가를 보았다고 했다. 검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열쇠 꾸러미를 흔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리엔 모브를 떠올렸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외투가 검다는 증언은 수백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얼굴을 봤습니까?” “아뇨.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등불 뒤쪽이었어요.” 그의 솔직한 대답을 기록했다. 병사는 오히려 안도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정정했다가 벌을 받는 줄 알았던 것이다. 마지막 갑의 안쪽에는 수취 증명서가 있었다. '예치 내역 없음'이라는 도장이 또렷했다. 나머지 서류와 날짜가 달랐다. 강태준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뒤에 작은 종이를 한 장 덧붙여 놓았다. '예치 대상 후보 01. 정산 시 본인 승인 필요.'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본인 승인. 아직 하지 않은 일. 그날 밤, 돌문 바깥으로 나올 때 세르나가 말했다. “이 보관함은 당신을 가뒀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누군가 가두려고 준비했다는 의혹의 증거에 가깝죠.” 그 뒤에서 판독기가 혼자 짧은 소리를 냈다. 보관함 안이 아니라 초소 지붕 쪽에서 들린 소리였다. 왕궁의 네 번째 종소리와 같은 음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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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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