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41화
PAYLUA ORIGINAL · 제41화

41화. 열하루 전의 이름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821자

오프라인 책장
삼 년 전 날짜 아래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들고 두 번째로 읽었다. 세 번째로 읽기 전에 에리카가 내 손에서 서류 받침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종이 가장자리에 닿을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놀라셔도 됩니다. 대신 만지지는 마세요.” “놀란 게 아니라…….” “거짓말은 보고서에 적지 않겠습니다.” 에리카가 감정용 투명판을 얹었다. 벨란 감사관이 남겼다는 문서의 뒷면. 그곳에는 '강태준'이라는 세 글자와 외부 검증자 후보라는 문구, 삼 년 전의 날짜가 있었다. 이 세계의 문자는 내가 보기에 한국어로 옮겨지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 이름은 번역된 것인지, 실제로 한글로 적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누군가가 한글을 사용했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됐다. “같은 종이에 적힌 글이라고 같은 날 쓴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말이 그거였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부터 믿고 싶은 답만 골라요.” 우리는 서류를 원래 있던 봉투에 되돌리지 않았다. 발견 지점과 개봉 때 참석자, 종이를 돌려 보게 된 이유를 먼저 기록했다. 하르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봉투 겉면에 새 번호를 붙이고, 종이는 별도의 보호지 사이에 고정했다. 사망한 벨란 감사관의 필적, 뒷면의 날짜, 낯선 이름을 각각 독립 항목으로 보냈다. 어느 하나가 위조되어도 다른 부분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손글씨의 주인은 제가 알아볼 수 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아버지 글씨는 감정하고, 이름 쪽은 다른 감정인에게 의뢰합시다.” “왜 다른 사람에게요?” “한 사람이 두 결론을 같이 내리면 서로에게 끌려갈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서류 보관 표에 먼저 서명한 것은 에리카였다. 오전에 왕궁 인장실에서 감정관 티르센이 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종이가 아니라 내 얼굴을 살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그 본인을 참관시키는 겁니까?” “본인이 옆에 있으면 판정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정식 질문을 마친 뒤 기록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루카스가 앉아 있었다. 아이는 밤새 적었을 것이 분명한 도표를 보여 주었다. 세로로 세 줄이 그어져 있었다. 종이의 나이. 잉크의 나이. 글씨를 적은 사람. “셋이 다 같아야 진짜인 거죠?” “아니. 서로 다른 걸 수도 있고 그래도 진짜 기록일 수 있어. 삼 년 전 종이에 오늘 메모하면 오늘 쓴 진짜 메모잖아.” “그러면 태준 님이 삼 년 전에 여기 있었다는 건…….”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야.” 루카스는 표의 제목을 지웠다. '삼 년 전의 강태준'을 '강태준 이름의 작성 경위'로 바꿨다. 내가 그날 본 가장 훌륭한 수정이었다. 감정관이 잠시 쉬는 사이 나는 에리카와 함께 왕궁 정원에 나갔다. 겨울이 가까워져 나무의 잎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주 앉았다는 벤치를 가리켰다. “아버지는 세금이 숫자가 아니라 약속이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죠.” “지금도 그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약속은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하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지금 누군가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약속을 바꾸고 있어요.” 나는 그녀가 얼마나 오래 그 문제와 싸워 왔는지 생각했다. 벨란 감사관이 죽은 뒤 기록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존중한다며 봉인된 상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존중이 진실을 지키는 일과 같았던 건 아니었다. 누구는 그 상자를 오래 보관했고 누구는 그 안에 새 종이를 끼워 넣을 기회를 얻었다. 서로 반대되는 행동을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이번에 아버지 서명이 가짜로 확인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물었다. “당연히 바로잡아야죠.” “그 반대라면요? 정말 아버지가 쓴 글인데 의미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요?” 에리카가 한참 침묵했다. “그것도 알아야겠죠. 아버지가 옳았다는 이야기만 듣고 싶은 게 아니니까.” 그녀는 벤치 끝의 낙엽을 치웠다. 오래된 나뭇가지 아래에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벨란 감사관이 생전에 사용하던 업무 표식이었다. 에리카는 그 숫자를 보고 잠깐 웃었다. “제가 어릴 때 여기서 숨바꼭질하면 아버지는 늘 숫자 세는 걸 속였어요. 열까지 센다고 해 놓고 일곱에서 바로 열로 넘어갔죠.” “감사관이 숫자를 속였다고요?” “일을 안 할 때만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에리카에게 아버지는 조사 기록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웃길 줄 알던 사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두 얼굴 중 하나를 지워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점심 무렵 라니아가 보고서를 들고 왔다. 재무청 앞에서 투자증서 구매자들이 모임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새 검증자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한국이라는 이름은 내가 신뢰하는 동료 몇 명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단어였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걸 듣고 저한테 전한 사람은 확실해요. 최초 발언자는 모르겠어요.” “그럼 둘을 구분해서 기록해 주세요.” 라니아는 벌써 그렇게 적어 왔다. 우리가 함께 일한 시간이 길어졌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져온 두 번째 소식은 웃을 일이 아니었다. 빵집 노인을 포함한 세 가정이 제삼 결제소에서 새 고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귀환 검증 수수료'. 금액은 가구당 은화 두 닢. 사용하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요금이었다. “내 이름과 연결된 계약이 왜 저 사람들한테 청구됩니까?” “그걸 알아보셔야죠.” 라니아가 말했다. “노인분들은 왕국이 다시 보증한다고 믿으세요.” 나는 문서 세 장을 받지 않고 각 가정에 정식 접수 동의를 요청했다. 임의로 가져온 편지는 증거로 활용하기 어렵다. 개인의 주소와 구매 내역도 보존 범위를 제한했다. 오후에 시민 상담소에 나가 각 청구의 원래 계약번호와 청구권자를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감정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왕실 기록실 옆 작은 창고에 들렀다. 지난 석 달 동안 이곳에 반입된 보존판이 몇 개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보존판을 교체했다면 낡은 판을 버렸거나 새 판을 사들였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기록이 남아야 했다. 관리인은 내가 삼 년 전 종이를 들먹이자 겁부터 냈다. “우리 창고에 있는 건 낡은 나무판뿐입니다. 이상한 마법은 없어요.” “저는 마법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구매 대장을 보러 왔습니다.” “그럼 그냥 구매 대장이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도 어느새 '귀환'이나 '검증자' 같은 단어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오래된 보존판 하나를 찾는 일은 평범한 물품 조사와 다르지 않았다. 창고에는 값싼 옻칠 판 세 장과 새로 입고된 압착 유리판 다섯 장이 있었다. 유리판 상자에 붙은 운송표는 내 눈을 끌었다. 비용은 은화 한 닢, 구매자는 왕실 기록실, 배송 대행인은 '서명 대행'. 사용 목적은 '해진 문서 보호'였다. “서명 대행이 누군지 아십니까?” “결제소에서 오는 배달원들이 그렇게 써요. 사람이 올 때마다 달라요.” “그럼 지난번에 온 사람은요?” “마차에 짐을 싣고 있었죠. 얼굴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왼쪽 바퀴 축에서 소리가 났다는 겁니다.” 나는 마차 바퀴 소리를 사람의 신원처럼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송 경로를 확인하는 단서로는 충분했다. 창고 관리인이 보여 준 입고 장부의 옆에는 다른 서명이 하나 있었다. 에리카의 아버지와 같은 성, 벨란. 보고서에는 세 글자가 아니라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나는 서둘러 에리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강한 사람이라도 아버지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새로운 상처를 견뎌야 하는 건 아니었다. 오후에 루카스가 창고 문에서 나를 기다렸다. “누가 일을 맡고도 이름을 안 적으면 벌을 받습니까?” “형사 처벌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 하지만 업무 책임을 추적할 기록이 빠졌다면 고쳐야 해.” “그럼 앞으로는 저한테 시키는 잡일도 다 적을까요?” “네가 한 일은 네 이름으로 남기자. 대신 남의 잘못까지 네 이름으로 쓰진 말고.”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최근 한 달간 왕실 기록실의 보존판 교체 요청서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 돌아왔는데, 가장 최근 요청만 유난히 검은 테두리로 묶여 있었다. 요청 이유는 '임시 전사 작업'. 원본이 희미할 때 읽을 수 있도록 다른 판에 글자를 옮기는 작업이었다. “전사라면 글씨가 바뀌는 게 아니라 자리만 바뀌는 거잖아요?” “원칙은 그렇지. 문제는 누가 무엇을 원본으로 삼았느냐는 거야.” 전사 요청서에는 대상 문서의 명칭이 없었다. 그냥 '임시 외부 검증자 후보 명부'라고만 적혀 있었다. 내가 처음 발견한 문서에 바로 그 표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같은 문구가 여러 서식에 쓰일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해당 요청서를 별도 보전 목록에 올렸다. 기록실 복도에서 오스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퇴한 전임 재무대신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어느 시대의 재무청에서도 내 이름이 나오면 당신이 나타나는군.” “공식 소명 요청에 답하시면 덜 찾아뵐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죄를 묻는 거요?” “아직 죄를 묻는 게 아닙니다. 왕궁 보존판의 갱신 서명 권한을 누가 관리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없이 대장을 한 번 훑었다. “외부 검증자 명부라면 옛날부터 있던 서랍이오. 다만 거기 적히는 이름은 늘 바뀌었지.” “삼 년 전에도요?” “그때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소. 내 이름도 한 번 올라갔으니까.” 그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따로 진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오스윈은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를 당부했다. “후보로 적혔다고 선택받은 건 아니오. 그 차이를 잊지 마시오.” 그 말이 경고인지, 경험에서 나온 조언인지 나중에 판단하기로 했다. 노인이 떠난 뒤 나는 의도적으로 기록에 단어를 적었다. '후보.' 아무리 큰 글씨로 써도 여전히 후보일 뿐이었다. 감정 결과는 저녁에 나왔다. 뒷면에 남은 압흔은 앞면의 글씨보다 훨씬 약했다. 종이 표면에는 벨란 감사관 시대의 수제 잉크와 다른 성분의 안료가 얇게 남아 있었다. 티르센은 안료가 최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물리적 사실을 찾아냈다. “종이의 뒷면에는 덧댄 자국이 있습니다. 원래 보존판에 붙어 있을 때는 이름을 쓸 수 없었던 부분이죠.” “그 보존판은 언제 교체됐습니까?” “기록실 교체 대장이 필요합니다.” 서류가 삼 년 전부터 똑같은 상태로 있었다는 주장은 그 순간 약해졌다. 하지만 누가 언제 적었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나는 감정관에게 날짜 추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귀환 관련 기억을 적어 둔 내 개인 수첩을 펼쳤다. 대한민국, 국세청, 조사관, 서울. 다행히 문장은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직장 근처에서 자주 먹던 음식점의 간판 색깔이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이 대가로 사라진 것인지, 낯선 세계에서 몇 주를 버티며 자연스럽게 흐려진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을 장부의 명령에 대한 증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에리카였다. “보존판 교체 대장을 찾았어요.” “언제였습니까?” “열하루 전입니다. 조사팀이 지하 정산실에 들어가기 전에요.” 그녀는 날짜 아래 찍힌 작업자 인장을 가리켰다. 왕실 직원의 것이 아니었다. '귀환 계정 관리 대행.' 작업 비용은 은화 한 닢. 승인자는 비어 있었다. 나는 기록의 끝에서 손을 멈췄다. 삼 년 전 문서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보다 위험한 것은 누군가 열하루 전에 그 종이에 손댈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도 왕궁 출입 기록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1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