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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4화.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281자

오프라인 책장
“벨란이 왜 죽었는지부터 물어라.” 나는 아침까지 그 문장을 바라봤다. 잠을 못 잔 건 아니었다. 좁은 침상에서 세 시간을 잤다. 다만 꿈속에서도 장부의 숫자가 떠다녔다. 다음 날 재무청 기록실에 들어온 에리카는 내 손에 든 쪽지를 보더니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종이를 건넸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릅니다.” 그녀는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를 내려놓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아버지는 군무청 회계감사관이셨습니다. 삼 년 전 곡물창고에 화재가 났고, 조사 도중 연기에 질식해 돌아가셨어요.” “화재 원인 보고서는 남았습니까?” “실화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사 기록은 군무청 보안 문서로 묶였어요.” “어떤 조사를 하고 계셨는지는요?” “전쟁 물자 구매 계약이요. 그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쪽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이름을 들먹이며 아픈 기억을 캐묻는 건 쉽다. 하지만 그녀를 조사 대상처럼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에리카 담당관.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 접어도 됩니다. 다른 기록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왜요?” “본인이 관련된 사건이잖아요. 우리가 필요한 건 사실이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를 상처 입힐 권리는 없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에리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면 제 이름은 공식 보고서에 빼주세요. 조사 결과를 바꾸는 데 관여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대신 자료 정리는 돕겠습니다.” 나는 그 조건을 수첩에 적었다. 역할과 이해충돌을 기록했다. 공정하다는 말은 다짐보다 절차에 남아야 한다. 그날 우리는 창고 계약의 반쪽을 복원하러 나섰다. 루카스는 약품을 조금 묻히면 옛 잉크가 되살아나는 종이가 있다며 마법사 거리로 안내했다. 약품 가게 주인은 계약서 구석에 찍힌 파란 새 인장을 확인하고 표정을 굳혔다. “청동왕관 상단 물건이군요.” “파는 곳마다 그 이름이 나오네요.” “안 나오는 곳을 찾는 게 빠를 겁니다.” 그가 건넨 약품을 종이에 발랐다. 지워졌던 문장 일부가 드러났다. ‘군무청 보관 밀 420포대를 매입한다. 대금은 금화 1,260닢. 단, 품질 확인 이전에 대금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에리카가 말했다. “지난해 공고에서는 그 밀을 폐기물이라고 처리했어요. 폐기물이라면 매각 계약을 맺는 것부터 이상하죠.” “계약이 진짜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인장 견본을 구하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움직였다. 나는 보급 마차 주인을 다시 찾아갔다. 그가 말한 서쪽 성벽 보수대의 실제 배급량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사장까지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 성벽 아래에서는 일꾼들이 돌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솥에서는 묽은 죽이 끓었다. 현장 책임자는 처음엔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누구를 처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배급표를 확인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본 뒤 식판 하나를 건넸다. “직접 먹어보시오.” 숟가락을 넣자 물에 떠 있는 밀 알갱이가 세어질 정도였다. “이걸 하루 두 끼 준답니까?” “한 끼요.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구합니다.” “임금은요?” “네 달 밀렸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재무청의 17금화가 무게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숫자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나는 책임자의 동의를 받고 최근 배급 명세서 사본을 받았다. 종이에는 군무청에서 지급한 120포대 중 45포대만 실제 도착했다는 서명이 있었다.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별도 문서로 남겼다. 재무청으로 돌아와 에리카의 인장 견본과 대조했다. 계약서의 파란 새 인장은 진짜였다. 하지만 매각 승인자의 서명은 공고에 올라온 담당자와 달랐다. 서명란에는 전임 재무대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에리카가 대답했다. “일 년 전 은퇴했습니다. 북부 별장에서 지내요. 세관장도 그가 임명했고요.” “모든 길이 그 사람을 지나네요.” 그날 오후에는 옛 군무청 감사기록을 찾아본 시간도 있었다. 에리카의 아버지가 담당했던 사건은 공식 대장에서 세 줄로 끝났다. ‘재고 불일치. 현장 화재. 조사를 중단함.’ “재고 불일치는 얼마였습니까?” 로웬이 오래된 장부를 펼쳤다. “금화로 환산하면 4,200닢이었답니다. 그 뒤에 전시 비용으로 정산됐어요.” “화재가 나면 없던 돈이 생깁니까?” “아니요. 하지만 증빙이 사라지면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나는 기록 옆에 당시 감사관의 임명장을 놓았다. 작은 글씨로 ‘왕실 감사 독립권 보장’이 적혀 있었다. 이 왕국에도 한때는 누가 누구를 조사하든 장부의 정확성이 우선인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에리카가 창가에 서 있었다. 낡은 종이 냄새가 가득한 방에서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컵을 하나 건넸다. 물이 든 컵이었다. “아버지 얘기를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에요.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숫자를 기억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집에 돌아오면 하루 동안 산 물건의 값을 맞춰 보곤 했죠.” “회계감사관답네요.” “어릴 땐 지겨웠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 아버지가 제게 묻더군요. ‘내가 천만 번 계산해도 이상한 숫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계산을 잘못한 거 아니냐고 했죠.”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어요. 계산이 맞으면 원인이 틀린 거라고. 숫자에 맞춰 세상을 고치려 하지 말고, 세상을 확인해 숫자를 고쳐야 한다고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우리 세계에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하는 선배가 있었다. 공무원은 숫자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에 사람을 끼워 맞추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 선배의 이름은 기억났다. 그러나 얼굴의 세부가 어쩐지 흐려져 있었다. 기억이 지워질 수 있다는 장부의 경고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대가를 언제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그 말씀을 기억해 두겠습니다.” “제 아버지 말씀을요?” “예. 제가 아는 회계 원칙 중 가장 어려운 것 같거든요.” 에리카는 내게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보였다. 며칠 동안 함께 돌아다니는 사이에도 쉽게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그러나 웃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루카스가 다른 봉투를 하나 들고 뛰어왔다. “이것 좀 보세요. 삼 년 전 같은 날짜에 곡물창고 보험금 청구가 접수됐어요.” “보험금?” “화재로 밀 400포대가 없어졌다면서요. 그런데 일주일 전에 그 밀을 다른 상단에 판매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나는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동일 재고를 팔고 화재 손실로 신고했다면 이중으로 이익을 얻은 셈이었다. 다만 물건 번호가 정확히 같은지 확인해야 했다. 잠시 후 에리카가 보관 번호 일부를 비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자리 중 다섯 자리가 같았다. 마지막 한 자리만 찢겨 있었다. “확정하진 못해도 비교 대상을 찾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녀는 조용히 서류를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에는 ‘화재 전 처분 여부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가장자리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확신 대신 질문을 남겼다. 정밀 열람을 하기 전에는 잠시 망설였다. 첫날 보았던 장부가 보여준 숫자는 정확했지만, 나는 내가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에리카 담당관. 만약 제가 갑자기 사람 이름을 잊거나,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녀가 손을 멈췄다. “열병이 다시 온 거라면 의사를 부르겠죠.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만약이라는 겁니다.” “그럼 기록을 보여줄 거예요. 당신이 직접 읽었다는 서류, 당신이 서명한 보고서. 그리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면 무리해서 조사하지 말라고 할 거고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놓이는 대답이었다. 무언가를 잊어도 기록이 남는다면, 내 판단 전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저에게도 일지를 하나 따로 만들겠습니다. 중요한 선택을 했을 때 이유까지 적어 두죠.”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세요. 제가 나중에 검토할 수는 있어요.” 나는 그날부터 수첩 마지막 장에 ‘개인 확인 기록’이라는 제목을 쓰기로 했다. 이름, 현재 날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한국의 주소, 왕국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오늘 조사한 문서의 보관 장소. 주소를 쓰다가 손이 멈췄다. 아파트 동호수가 가물가물했다. 이 세계에서 깨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내 기억을 조금씩 지우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언젠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는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는 채 영원히 징수관으로 살아가게 될까. 수첩을 닫으려 할 때 루카스가 책상 반대편에서 소리쳤다. “징수관님, 이 종이 날짜가 이상해요!” 소년이 가리킨 지급명세서는 분명히 올해 발급된 것이었다. 그러나 옆에 붙은 승인서는 삼 년 전 날짜였다. 오래된 승인 권한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개인적인 공포와 공적인 의무는 지금 당장 분리해야 한다. 기억이 불안하다면 더더욱 증거를 남겨야 한다. 그 결심을 한 뒤에야 다시 장부를 펼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정밀 열람을 실행했다. 대상은 ‘창고에 보관된 공금의 이동’이었다.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실선이 떠올랐고, 그중 하나가 북문에서 군무청 창고를 거쳐 청동왕관 상단의 비밀 계좌로 이어졌다. [확인된 이동: 북문 수납금 96금화 중 60금화는 전시 보급금으로 전환 처리] [나머지 36금화는 군무청 제삼 금고에 보관] [금고 개봉 이력: 전일 오후] [주의: 표시된 거래 이름은 당사자가 작성한 명칭이며, 적법성 판단은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60금화는 이미 빠져나갔다. 그래도 36금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그 순간 멀리 있던 기억 하나가 뚝 끊겼다. 한국의 동료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 얼굴은 선명한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름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밀 열람 대가가 발생했습니다.] 소름이 끼쳤다. 세계를 구할 능력이라면서 대가가 이렇게 개인적이라니. 나는 눈앞의 글자를 지워버리듯 손을 흔들었다. “징수관님, 괜찮으세요?” 루카스가 물었다. “조금 어지럽네.” “열병 후유증이면 쉬셔야 해요.” “맞아. 그래서 오늘은 초능력 대신 서류로 하자.” 루카스가 ‘초능력’이라는 단어를 되뇌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우리는 정식 이의신청을 작성했다. 군무청 창고에는 실물 자금이 보관되어 있으며, 세관 납세자가 그 돈의 보존을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군무청이 또 거부할 가능성은 높았다. 그래서 나는 서류를 세 부 작성했다. 군무청, 재무청, 왕실 감사원. “왕실 감사원은 문을 닫은 지 두 해입니다.” 로웬이 말했다. “조직이 없어졌습니까?” “아니요. 감사관이 임명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럼 접수할 곳은 남아 있겠네요.” 로웬은 마치 잊고 있었던 문을 발견한 사람처럼 나를 바라봤다. 그날 저녁, 왕실 감사원에서는 아무도 받지 않을 서류를 접수했다. 정확히는 먼지 쌓인 경비실에서 늙은 문지기가 날짜 도장을 찍어주었다. 도장은 삼 년째 사용하지 않아 인주가 굳어 있었다. “나중에 누가 이걸 본다고요?” 문지기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보면 오늘 이의신청이 있었다는 사실은 남겠죠.” 기록실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장교였다. 가슴에는 군무청의 백색 검 문양이 있었다. “강태준 징수관님.” “누구십니까?” “군무차관 레온하르트 경의 명령을 전하러 왔습니다. 내일부터 재무청의 군무 관련 조사를 금지합니다.” 그가 내민 것은 금지 명령서였다. 그런데 날짜가 이상했다. 발효일이 내일인데 이미 어제 왕의 인장을 받은 것으로 적혀 있었다. 서명 아래에 붙은 잉크 색깔도 달랐다. 나는 그 종이를 받지 않고 물었다. “이 명령서, 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장교가 인상을 찌푸렸다. “왕실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겁니까?” “아뇨. 진짜 왕실 명령인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그의 손이 검 손잡이로 움직였다. 이때 장부가 새로운 문장을 띄웠다. [문서에 사용된 왕실 인장은 진품입니다.] [그러나 서명자는 현재 왕궁 안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서가 적법하다는 뜻도 아니었다. 인장은 진품이고, 서명은 위조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검을 잡은 장교 앞에서 그 차이를 입증할 방법은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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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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