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36화
PAYLUA ORIGINAL · 제36화

36화. 두 번의 불길과 세 개의 상자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786자

오프라인 책장
오스윈 전임 재무대신은 내가 보낸 소명 요청서를 반납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서류를 두 장 들고 재무청으로 찾아왔다. 하나는 삼 년 전 카르디온에게 제시한 채굴 변경서의 접수증, 다른 하나는 당시 자신이 비용을 부담했다는 용 사절 접대 영수증이었다. “용의 인장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나는 물었다. “나는 서명을 받으러 갔소. 그 문서를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오.” “그럼 누가 만들었습니까?” “군무청에서 건네받았지.” “담당자 이름은요?” 그는 대답하기 전에 찻잔을 돌렸다. “그때는 그런 종이 한 장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소.” 믿었다는 말은 사정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 주는 증거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접수증을 감정받고 보관소의 배달 명부와 대조하도록 했다. 오스윈이 회상하는 '군무청 담당자'가 실제로 누구인지는 여전히 빈칸이었다. 에리카는 그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친의 죽음을 조사한 사람이 오스윈과 거래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건 기록을 다른 감사관에게도 배정하겠다고 말했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외로 차분하게 부탁했다. “아버지가 죽은 날의 출입표도 함께 봐 주세요.” 오스윈은 그녀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당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것은 내 체면이 아니었소.” “그럼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오. 숫자로 죽인 사람들.” 나는 그 표현을 증언으로 적었다. 서정적인 말을 법정의 사실로 곧장 바꿀 수는 없었다. 오후에는 사벨이 남긴 화재 출동 수첩을 공인 기록과 비교했다. 첫 번째 발화 신고 시각과 두 번째 연기 신고 시각은 달랐다. 현장에 서로 다른 불길이 있었다는 진술은 두 기록과 어느 정도 맞았다. 그러나 그 불이 고의로 일어났다는 감정 결과는 없었다. 이셀은 삼 년 전 문서 상자를 옮길 때 마주친 사람의 옷을 기억했다. 금빛 테두리가 달린 짙은 남색 외투. 군무청의 제복일 수도 있었지만 왕실 운송 회사에서도 비슷한 옷을 입었다고 했다. “얼굴은 못 봤어요.” 이셀이 말했다. “그럼 그 사실도 중요합니다. 못 본 걸 본 것처럼 적지 않겠습니다.” 에리카는 자료 보존 봉투를 스스로 봉했다. 손은 조금 떨렸지만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가 어디에서 숨졌는지도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아요. 창고 남쪽이라고만요.” “원본 현장도면을 찾읍시다.” “화재가 두 번이었다면 아버지는 첫 번째 불이 난 뒤 서류를 옮겼을지도 모르죠.” “그 가능성을 열어 두되, 두 번째 불이 누가 질렀는지까지 단정하면 안 됩니다.” 당일 저녁 사벨은 남쪽 통로의 벽돌에 남아 있던 표식 이야기를 꺼냈다. 발화점 표시인 줄 알았던 네모난 자국은 소방대의 것이 아니라 화물 인수 표지였다는 것이다. 화물 운송 목록에 같은 표식이 있었다. 그 목록은 왕실 운송 업체의 보관소에 있었다. 법정의 한정 제출 명령으로 받아 본 운송 표에는 금속 상자 두 개와 종이 상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종이 상자는 '왕실 보관 기록'으로, 금속 상자에는 '대조기 부품'으로 기재됐다. “정산실 문 옆의 동판과 연결되는군요.” 브란트가 말했다. “규격이 맞는지부터 봅시다.” 동판의 지름과 포장 번호를 대조한 결과, 두 상자 중 하나는 옛 조폐소의 부품 주문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실 신고된 부품 하나가 당시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부품이 현재 정산실에서 발견된 동판과 동일하다고 증명하려면 금속 조성 감정이 남았다. 네일은 부품 표준 목록을 가져왔다. 그는 인쇄기에 달았던 마력 톱니의 작동 방식을 설명했다. “종이와 문서번호가 만나면 표시가 뜨도록 만들어진 부품입니다. 스스로 문서를 작성하지는 못해요.” “그럼 누군가 입력한 말이 있어야 한다는 거군요.” 루카스가 물었다. “적어도 명령을 만들어 넣은 시점은 있어야겠죠.” 네일이 답했다. 이 대화는 매우 중요했다.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해서 누가 무엇을 승인했는지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인쇄된 명령은 어떤 사람이 정한 규칙을 실행했을 뿐일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운송표를 찾기 전에 우리는 물건이 실제로 이동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운송 업체의 관리인은 거래번호가 찍혀 있다는 이유로 출고가 완료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출고장 앞 통과증에는 같은 번호가 없었다. “나간 물건인데 문을 통과하지 않았다니, 하늘로 날아갔나?” 브란트가 투덜거렸다. “장부상 출고와 물리적인 반출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당시 출입구가 두 개였는지 확인했다. 공사를 맡은 목수들의 도면에는 남쪽 측문이 하나 더 있었다. 화재 후 무너진 벽 때문에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바넨은 그 측문을 손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날 문에 새 자물쇠를 달았소. 그런데 그게 언제인지 내 임금표에는 안 나와.” 그의 노동 기록이 사망 처리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는 더 묻기 전에 그가 자발적으로 얘기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 얘기를 안 하면 내가 더 화가 날 것 같소.” 우리는 현장에서 자물쇠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오래된 문의 경첩 자국을 측량했다. 이셀이 기억하는 남색 외투의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다시 물었다. 이셀은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가 곧 정정했다. “불길이 심해서 방향을 정확히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문서 상자를 들었다는 겁니다.” 그 정정은 중요했다. 누군가가 불확실한 기억을 사실처럼 주장하기보다 스스로 고친 것이다. 나는 수정한 시각을 남기고 처음 진술도 지우지 않았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기록은 그 실수까지 보여 줘야 한다. 사벨은 당시 소방대의 출동 순서를 설명했다. 첫 번째 신고 때는 창고 바깥쪽 작은 불이었고, 두 번째 때는 안쪽에서 두꺼운 연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 사이 사람들이 문서 상자를 옮겼다는 진술은 시간상 가능했다. 하지만 두 개의 불이 서로 독립된 발화였는지는 여전히 감정 대상이었다. 나는 옛 군량미 재고표도 다시 확인했다. 사라진 곡물의 수량과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신고된 곡물 수량이 같은 날 장부에서 두 번 빠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손실을 부풀린 것일 수도, 정정 중 중복 기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에리카는 수치가 맞지 않는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멈춘 것 같아요.” “문서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끝까지 가능성이라고 말할 거죠?” “그렇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저도 끝까지 증거를 찾을게요.” 귀환 기억이 흐려지고 있는 나에게 그녀의 답은 뜻밖의 위안이었다. 이곳에서는 적어도 누군가와 같은 원칙을 지키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원칙이 내게 과거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오스윈의 말을 들은 뒤 갑자기 한국에서 쓰던 사무용 종이 냄새가 생각나지 않았다. 오래된 동료의 목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나는 잠깐 진실의 장부를 열어 그날 움직인 문서 상자의 경로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정밀 열람의 비용을 알고 있었다. 오늘 확인할 수 있는 증인과 출입기록이 남아 있는데 굳이 기억을 더 잃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손목의 저울 위에 손바닥을 덮고 수첩을 폈다. '오늘 정밀 열람 사용 없음. 확인한 것은 운송표와 측문 흔적. 확인하지 못한 것은 인수인과 두 번째 발화의 원인.' 나는 수첩을 닫기 전에 마지막 확인란을 하나 만들었다. '내가 단정하지 않은 것.' 그 칸에는 오스윈, 레온하르트, 남색 외투의 사람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서로 다른 의혹 속에 있었고, 오늘의 자료만으로 연결할 수 없었다. 그 문장 하나가 내게는 왕국을 위해 서명한 어떤 문서보다 중요했다. 그날 밤 왕실 보존고의 기록관이 쪽지를 보내 왔다. 삼 년 전 창고 화재 이후 정산실을 폐쇄했다는 문서의 끝에 서명하지 않은 확인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담당자 이름은 지워져 있었고, 아래에는 아주 얇은 먹선이 남았다. '보관실 폐쇄: 승인 대기. 사망 처리된 인수인에 관한 정정 전까지 미집행.' 나는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문서가 폐쇄됐다고 적힌 날에도 실제 폐쇄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사망 처리된 사람의 이름으로 지하실을 닫으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결재를 멈췄을 가능성이 있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하던 중 레온하르트 군무차관이 찾아왔다. 그는 이번에는 부하를 데려오지 않았다. 문을 닫자마자 내가 지닌 자료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고 물었다. “한정된 자료만 확보했습니다. 차관께서 제출하지 않은 부분은 법정의 절차를 거쳐 요구하겠습니다.” “자네는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당신의 이름이 기록에 반복해서 등장하니 조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게 유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삼 년 전에는 전쟁 소문 때문에 물자가 끊길까 봐 군무청이 급히 창고를 비웠다고 했다. 자신도 인장 복제기 반출에 관해 보고받았으나 군사 비밀 시설에 쓰는 장비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복제기를 최종 승인한 문서가 있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소.” “그렇다면 기억에 기대지 말고 찾으십시오. 저희가 범위를 특정해 신청하겠습니다.” 레온하르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는 오래된 작전표의 번호 하나를 적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나중에 확인해야 했지만, 최소한 특정한 자료를 찾을 실마리는 생겼다. “내가 협조했다고 해서 혐의를 덜어 줄 셈은 아니겠지?” “그건 재판에서 다룰 일입니다. 다만 자료를 보전하는 행동 자체는 기록하겠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웃더니 떠났다. 에리카가 그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정말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할 수도 있고요.” “두 가능성을 어떻게 가르죠?” “서류가 말해 줄 수 있는 부분부터 찾는 수밖에요.” 당일 오후, 바넨은 목공 작업장에서 쓰던 낡은 자를 가져왔다. 삼 년 전 화재 당시 문서 상자가 지나간 측문을 수리할 때 측정한 길이가 자 뒷면에 남아 있었다. 현장 측량값과 비교하니 출입문 폭이 비슷했다. 상자 크기도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동 가능성을 높여 주지만 실제 이동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자료였다. “나를 죽은 사람으로 적어 놓은 장부 때문에 내 말도 못 믿겠다고 할 줄 알았소.” 바넨이 말했다. “오히려 당신이 보여 주는 물건과 기록을 더 꼼꼼히 확인할 겁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직접 확인했으니까요.” 그는 나무 자를 내게 맡기기 전에 오래 쓰던 손때를 한참 문질렀다. 누군가에게는 사건의 결정적인 물건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매일 밥을 벌어 주던 도구였다. 나는 감정 후 돌려줄 날짜와 상태 확인 방법을 적어 주었다. 그는 그제야 자를 놓았다. 브란트는 조사팀에게 다음 화재가 난다면 어떻게 대피할지 먼저 훈련시키자고 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옛 창고 남쪽에 길게 늘어선 복도에서 모두 눈을 감고 비상 출입구까지 걸었다. 루카스는 벽을 더듬다가 우당탕 넘어졌지만, 바넨이 잡아 주었다. “화재 때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길을 잃소.” 바넨이 말했다. 나는 모두에게 대피로를 외우라고 하지 않았다. 불이 나도 확인할 수 있는 표식을 붙이고, 안내자가 없을 때도 나갈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삼 년 전 사람들이 안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수록 오늘의 사람들이 안전해져야 했다. 그때 하르마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자기 이름이 장부에 없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소?” “찾아야겠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근거부터.” “그게 없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내가 살았던 주소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하르마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벨란은 마지막까지 장부에 적힌 이름이 사람을 대신하지 않는다고 했소. 당신도 그걸 잊지 마시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3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3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