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과 마왕의 인장이 나란히 찍힌 봉투는 사람을 쉽게 흥분시켰다.
루카스는 아침부터 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카르디온이 직접 나타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붉은 절벽에서 산만 한 용이 날아와 재무청 앞마당에 내려앉으면 건물 절반이 무너질 터였다.
“사절만 온다고 했어.” 나는 말했다.
“그래도 용비늘은 보겠죠?”
“구경하러 온 게 아니야. 봉인 확인부터.”
온 사람은 카르디온의 드워프 관리인과 세르나의 마계 기록관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지도 않았다. 오랜 적대 때문인지, 공동 운반 절차에서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억측하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이 든 함은 왕국 법원 보관실에 먼저 들어갔다. 봉인에는 중간에 뜯긴 흔적이 없었다. 감정인이 확인한 다음 에리카가 번호를 받아 적었다. 나는 사본 두 부를 만들되 원본을 건드리는 시간을 기록하라고 했다.
“이것 때문에 저희가 싸우는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사람들은 문서 때문에도 싸워. 문서를 잘못 이해해서 더 크게 싸우고.”
마계 원본의 첫 페이지에는 삼백 년 전 교역 협정의 체결 장소가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갱신할 때마다 유효한 보증 관리인의 권한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최근 백 년 사이 갱신 사본은 있었지만 보증 관리인 대리권에 관한 두 당사자의 일치된 갱신 서명은 찾지 못했다.
“그러면 리엔의 결제소는 전부 무효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아니. 세금 징수권을 넘겨받지 못했다는 판결은 이미 나왔어. 사적으로 맡긴 돈과 실제 투자자 권리는 따로 검토해야 해.”
세르나가 내 말을 왕국어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계도 같은 입장이다. 어떤 문서가 권한 없는 대리인에게 쓰였다고 해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의 돈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름 없는 시민들의 손해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조금씩 같은 언어를 쓰게 됐다.
공동 사절이 가져온 문서를 읽으면서 가장 이상했던 것은 두 종족의 서명 위치였다. 인간 왕실이 맨 위에 있고, 그 아래에 마계, 다시 그 아래에 드래곤이 있는 형식이 아니었다. 세 주체의 이름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누가 가장 강한지 정하는 계약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권리가 겹칠 때 확인할 순서를 정한 약속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왜 이런 규칙이 필요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드워프 관리인은 잠시 망설였다.
“인간이 금광을 만들었을 때, 마계로 들어가는 길이 그 아래를 지나갔기 때문이오. 통행료를 누구에게 줄지 다퉜지. 카르디온은 금을 갖고 있었지만 광산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소.”
“그때도 신탁 재산이 있었습니까?”
“신탁에 맡긴 금과 용 개인 소유 금을 구분하는 규칙은 오래됐소. 지금 있는 금이 모두 삼백 년 전의 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원칙은 같소.”
나는 그 말을 듣고 오스윈이 삼 년 전 새로운 채굴 변경서를 들고 갔던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용의 소유권이나 신탁 재산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면, 누군가 광산 수익을 자기 것처럼 계산하기 쉬웠을 것이다.
세르나는 다른 관점에서 조약을 설명했다. 마계 상인들은 왕국과 거래할 때 여러 곳에서 같은 물건에 통행료를 내야 했다. 전쟁 때에는 생존을 위해 내야 할 돈을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금, 방벽 유지료, 민간 운송 수수료를 반드시 분리하도록 약속했다는 것이다.
“마왕도 세금을 내는 세상에서, 중간 관리인이 자기 몫을 마음대로 늘리는 건 용납하기 어렵겠군요.” 내가 말했다.
“마왕이 직접 내는 세금은 지난달 약초방 거래세 12금화로 확인됐지. 그 이상의 거래를 네가 마음대로 묶어 과세하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한다.”
“그 돈도 왕국의 등록 점포 매출에 대한 세금이니까요. 마계 전체 매출을 잡아넣으면 저희도 분쟁만 만들었겠죠.”
드워프 관리인이 콧소리를 냈다.
“어떤 인간은 용에게 30만 금화를 달라고 했다던데.”
“그건 정밀 열람에 나타난 미확인 추정일 수 있습니다. 실제 납세 의무가 아니에요.”
“카르디온께서는 그런 숫자를 보고 수십 년 만에 웃으셨소.”
루카스가 어깨를 떨었다. 감히 용에게 잘못된 세금 고지서를 들이민 징수관이 생각났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우리는 옛 조약의 서명 방식도 확인했다. 네 번째 검증자는 마지막에 서명하는 자가 아니었다. 먼저 세 칸의 진술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을 기록하고, 서명 가능한 항목과 보류해야 할 항목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남겼다.
“서명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렇지. 서명을 거절하는 이유를 남기는 것도 책임이야.”
그녀는 그동안 아버지의 죽음이 단지 거대한 비리를 폭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결재를 멈추려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조약이 모든 의문을 풀어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절이라는 행동이 단순한 겁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다.
나중에 용의 사절은 작은 붉은 조각을 꺼냈다. 금이 아니라 이미 죽은 용비늘의 얇은 조각이었다. 이것은 원본 인장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찍힌 무늬가 진짜인지 비교하는 표본이라고 했다.
“이걸 주시려는 겁니까?”
“아니. 빌려줄 수는 있소. 빌려준 물건을 받은 사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겠지?”
나는 웃으며 차용서를 썼다. 드래곤의 물건도 국가 예산도 기록된 권한만큼만 다룰 수 있었다. 사절은 차용서를 읽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떠나기 전 마지막 경고를 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용의 재산을 훔치려는 사람이 아니오. 용의 이름으로 인간의 가난을 사려는 사람이오.”
나는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증거가 아닌 충고였다. 다만 오래 기억해 둘 만한 충고였다.
카르디온의 사절은 봉투 옆에 작은 돌판을 꺼냈다. 용이 기억하는 교역 때의 대조 절차를 기록한 물건이었다. 그 돌판에는 네 개의 깃털이 아니라 네 개의 줄이 그려져 있었다.
첫 줄은 지급 의무자, 둘째는 실제 돈을 가진 자, 셋째는 그 돈을 받을 자, 넷째는 어느 쪽의 주장도 그대로 믿지 않고 확인한 자.
“네 번째는 권력이 아니라 역할이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서명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절이 답했다. “옛 조약에는 반대하지 않는 증인이란 뜻도 있으나, 현대 왕국의 소유권 재판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루카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태준 님이 네 번째 사람이 되면 모든 돈을 구할 수 있습니까?”
“아니.” 내가 말했다.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분명했다. 진실의 장부는 내가 질문한 거래를 일부 보여 줬지만, 내가 적법한 증거를 내거나 판결을 뒤집어 쓸 권한까지 주지는 않았다. 게다가 '인증 시 귀환 기억 하나'라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다. 사적인 고통을 감수하면 법적 권한이 생긴다는 유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용의 사절이 다른 문서를 펼쳤다. 삼백 년 전 공동 창고 운영 지침이었다. '보관자가 수취를 증명할 수 없을 때 네 번째 검증자는 기록의 확정을 거절하고 다툼을 보류할 수 있다.'
“계약을 막을 권한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기록 확정을 보류할 절차일 뿐이오. 이미 성립한 채권을 없애거나 사람을 체포할 권리는 없소.”
“그거면 충분할 수도 있겠네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녀는 벨란 감사관의 사망 전 인수표를 떠올렸다. 그가 서명하지 않은 것은 분쟁을 영원히 멈추려는 행동이 아니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죽음과 돈을 확정하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는지 몰랐다.
세르나는 왕국과 마계의 장부를 포개 보았다. 같은 번호가 적힌 원장이었다. 그러나 왕국 측 사본에는 '보증 대리 확인'이라고, 마계 원본에는 '신원 대조 미완'이라고 쓰여 있었다.
“누가 고쳤습니까?” 로웬이 물었다.
“어느 쪽이 먼저 작성됐는지 감정 전에는 모릅니다.” 에리카가 답했다.
마계 문서가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왕국 문서가 위조됐다고 확정할 수 없었다. 감정인은 잉크와 봉인, 용어 변경 기록을 비교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대조표를 완성했다. 승인된 지급액과 실제 출금액, 보전된 돈, 상대방 수령액, 사람들의 실제 지급 영수증을 서로 다른 칸에 놓았다. 어제의 급여 지급 은화 쉰일곱 닢도 별도 공공 지출로만 기록했다. 봉인된 260금화는 국고 수입에 끼워 넣지 않았다.
점심 뒤 카르디온이 사절을 통해 사적인 편지 하나를 보냈다.
'나의 동굴에 있는 드워프 신탁 재산을 세금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읽혀라. 맡은 자가 소유자가 되는 일은 없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웃었다. 용은 금화 한 닢도 허투루 세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보관해 온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편지 아래에는 훨씬 작은 글씨가 있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보낸 사본 중 하나는 내가 승인하지 않았다. 삼 년 전 왕궁으로 온 사본의 인장 번호가 이상하다.'
에리카는 즉시 광산 허가문서의 사본 번호를 확인했다. 오스윈이 삼 년 전 카르디온에게 제시했던 채굴 변경서에 붙은 인장과 일련번호가 겹쳤다. 용이 직접 보고 있었다면 발견했을지도 모를 차이였다.
“그럼 오스윈이 위조한 건가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가 제시한 문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까지입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조사해야 해.”
우리는 오스윈에게 정식 소명 요청서를 보냈다. 동시에 카르디온의 사절에게 인장 원본 대조에 필요한 참관을 부탁했다.
카르디온의 사절을 돌려보낸 뒤에도 루카스는 용비늘 표본을 떠올리며 온종일 떠들었다. 용이 직접 불을 뿜으면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느냐고 묻더니, 곧장 그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계산하는지도 궁금해했다.
“드래곤이 다리 하나를 불로 녹여 붙여 주면 돈을 줘야 할까요?”
“계약이 있고 합당한 노동이면 대가를 줘야겠지. 다만 파괴한 다리를 다시 고치는 거라면 책임 문제부터 봐야 하고.”
“그럼 용도 일당을 받습니까?”
“용의 일당은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웃는 사이 세르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드래곤의 불은 공짜가 아니지. 산 전체의 열을 뒤흔드는 힘이니 사고가 나면 그 비용이 크다. 같은 목적을 더 안전하게 이룰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 말은 방벽 수리에도 적용됐다. 마계 기술자들이 사용한 별빛 같은 마력선은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안전 절차와 인건비가 필요했다. 우리는 얼마 전 지급을 마친 긴급 수리비 12금화의 검수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중 왕실 예비비 7금화와 상인회 자발적 기부 5금화는 이미 집행돼, 남아 있는 현금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드래곤은 인간의 세금 포스터가 되기를 거절했다. 마왕은 왕국 약초방의 실제 거래에 대해서만 납부했다. 나는 그 둘이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보다, 각자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더 오래 생각했다.
그날 밤 세르나는 내게 오래된 두 번째 지침을 읽어 주었다.
“원본 장부의 검증자는 거래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거절한 이유는 지워질 수 없다.”
내 손목의 저울에 작은 문구가 떠올랐다.
[검증자 후보 확인됨]
[현대어 식별: 강태준]
[승인 여부: 미결]
나는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밀 열람은 하지 않았다.
문구 아래의 마지막 줄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대조 상대: 생존 확인 필요]
누군가 살아 있어야 끝나는 계약이었다. 문제는 왕국 장부에서 이미 여러 사람이 죽은 것으로 처리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3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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