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 지하에 제삼 정산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문을 당장 부수자는 사람과, 문이 있다는 사실부터 숨기자는 사람이었다. 나는 두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입 권한을 확인하지 않은 채 문을 열면 안 되고, 주민과 채권자에게 영향을 주는 기록을 아무 설명 없이 숨겨서도 안 된다.
“그러면 뭘 하자는 겁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지도가 실제 구조와 맞는지 조사하고, 검증 대상과 법적 근거를 정해서 영장을 받읍시다.”
“누가 영장을 내줍니까? 왕궁인데.”
“왕궁이니까 더 필요합니다.”
왕실 보존고의 오렐은 지도 제작 연대에 관한 독립 목록표를 찾아왔다. 삼백 년 전 등기소의 설립, 백 년마다 갱신한 무역 협정, 그러나 갱신되지 않은 보증 관리인 대리 권한. 서로 다른 시간을 한 뭉치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에리카는 지도를 넓게 폈다.
“지하 정산실이 지금도 왕실 소유일까요?”
“그걸 확인하려면 건물대장과 이용기록을 봐야죠.”
루카스는 놀랄 만큼 빠르게 보존고의 평면도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하에는 공백이 있었다. 오래된 지도에는 방이 있고, 현재 지도에는 벽만 있었다.
“누가 지웠을까요?”
“증축 때문에 없어진 방일 수도 있어. 지금은 지워졌다고 확정할 수 없어.”
에리카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을 사실처럼 말하기 쉽다는 걸 그녀도 배웠다.
우리는 먼저 지하 배수관을 보수하는 공무원들을 불렀다. 낡은 구리 관의 방향을 확인할 기술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정비사 한 명이 도면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물관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중간에 고무 패킹이 없습니다. 소리를 보내는 관이겠죠. 옛 수도관이면 이렇게 비싸게 만들 이유가 없어요.”
동행한 감정인은 소리 전달관이라는 설명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확인했다. 세르나는 마계에 존재하는 진동 대조기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덧붙였으나 아직 동일 장치라고 증언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리엔 모브는 서신을 보내 왔다. 오래된 정산실이 제삼 결제소의 사적 보관 업무와 관련될 수 있으므로 일방적인 개봉을 중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법정에 서신을 제출하고, 그녀에게 공동 참관을 보장하자는 의견을 냈다.
“상대가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데 왜 불러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런 의심이 있으니까 봉인을 함께 확인해야지. 나중에 우리가 증거를 바꿨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리엔은 예상과 달리 순순히 수락했다. 그녀는 수락서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조건을 붙였다.
'참관은 보관권 주장 포기를 뜻하지 않음.'
“법정에서 이미 세금 징수권은 인정되지 않았죠.” 내가 말했다.
“그 사실과 여기 들어 있는 사적인 거래 원장은 다른 문제입니다.” 리엔이 답했다.
“동의합니다. 그래서 원장을 보는 범위도 제한하겠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이 사람도 자신의 권리가 얼마만큼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원본 위임장을 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무능하거나 거짓말쟁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었다.
구조 조사를 앞두고 왕실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비밀 통로를 열면 국왕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였다. 한 원로 의원은 내게 왕실 서약을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왕궁의 안쪽은 나라가 아니라 왕의 집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왕의 집이라서 거주 공간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공공 재산과 민사 보전금이 얽힌 부분은 법정의 한정 조사 명령 대상입니다.”
“이 나라에 온 지 얼마 됐다고 왕실에 법을 가르치는가?”
나는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에리카에게 현행 조례와 옛 서약의 효력 관계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지금 시행되는 헌장을 보여 주었다. 왕실 주거 공간에 관한 보호는 남아 있었지만, 회계 증거를 은폐할 면책권까지 주지는 않았다. 원로 의원은 그제야 종이를 받아 들었다.
“우리가 틀렸다는 뜻인가?”
“옛 조항에 없던 새 절차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왕실을 보호하려면 조사도 정식 절차로 해야 합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왕실 경비대가 조사에 동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찬성했다. 중립적 참관인이 한 명 더 늘어날수록 나중의 다툼도 줄어든다. 다만 경비대의 역할은 안전과 현장 통제에 한정하기로 했다.
현장 검증 전날 밤 에리카와 나는 지하 도면을 여러 장 겹쳐 놓았다. 삼백 년 전 도면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하나는 서류를 대조하는 곳, 다른 하나는 보증금을 계산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도면에는 창고만 표시돼 있었다. 방이 실제로 사라진 것인지, 이름이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재무청에 기록이 없다면 기록이 없는 이유도 조사해야겠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기록 보존기간이 끝났을 수도 있죠.”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기록이었을까요?”
“쉽게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누가 지웠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키려던 서류도 그 방식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위로할 말 대신 도면의 모서리를 잡아 주었다.
그다음 우리는 실험에 쓸 작은 구리 관을 별도로 준비했다. 마넬은 그 관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음색을 비교했다. 이상하게도 반대쪽에서 듣는 소리는 더 깊게 울렸다. 실험을 보고 루카스는 기뻐했다.
“그럼 종의 유령이 아니네요!”
“유령이 아니라고 증명한 건 아니야. 구리 관으로 소리를 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거지.”
“가끔 태준 님은 정말 재미가 없어요.”
“아까는 종도 진술서를 쓴다고 웃었잖아.”
그날 유일하게 편안했던 웃음이었다. 다음 날 문이 실제로 나타날지도 모르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라져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부품을 따로 봉인하며 생각했다. 큰 비밀을 찾는다는 이유로 작은 증명 단계를 건너뛰면,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마저 지켜 내지 못할 수 있다.
정비사는 현장 지지대 설치를 제안했다. 비용은 은화 여덟 닢이었다. 나는 이를 왕실 정식 안전 보수 예산에 청구하도록 했고, 조사팀의 개인 돈으로 먼저 지급하지 않았다. 돈을 찾으러 들어가는 곳에서 돈의 출처를 흐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해 질 무렵 법정은 현장 구조 확인과 외부 훼손 방지를 위한 한정 조사 명령을 내렸다. 세금 부과와 무관한 개인 장부는 개봉하지 않고, 유적 안전이 확인되면 원본 서식 소유권을 별도로 심리하기로 했다.
브란트는 계단을 봉쇄했고, 정비사는 구리 관을 따라 내려갔다. 지하 벽에 조그만 철문이 있었다. 그 위에는 검은 깃털 네 개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네 번째 깃털은 조각만 남고 끝이 깨져 있었다.
“누가 부쉈습니까?”
“풍화인지 인위적인 손상인지 감정해야 합니다.” 에리카가 즉시 답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내 말을 빼앗아 먼저 원칙을 말하고 있었다.
철문은 내부 걸쇠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힘으로 열지 않았다. 안전 진단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필요한 부분만 촬영했다. 정비사가 얇은 관을 조심스럽게 두드리자 머리 위 종루에서 아주 약한 울림이 돌아왔다.
“위아래로 이어져 있군요.”
“그러면 네 번째 소리가 아래에서 올 가능성이 있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맞아. 가능성 하나가 생겼어.”
세르나는 그 문에 적힌 고대어를 읽었다.
'동의 없는 납부는 빚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소유자 없는 보관은 수탁자를 만들지 못한다.'
그 문장은 우리의 지금 분쟁과 놀랄 만큼 비슷했다. 하지만 삼백 년 전의 문장을 오늘의 계약에 자동으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문구를 필사하고 번역인의 서명을 받았다.
문 바로 옆에 놓인 나무통에서 작고 둥근 동판 하나가 발견됐다. 동판은 오래되었지만 덮개에 쌓인 먼지는 얇았다. 네일이 가져온 조폐소 기록을 대조하자 같은 직경의 동판 세 개가 삼 년 전 수리 부품 목록에 있었다. 하나는 분실 처리됐다.
“이게 그 하나라고요?” 루카스가 물었다.
“규격이 같다는 것뿐이야.”
“그럼 누가 가져왔다는 건 확실하네요.”
“그것도 아직. 분실된 부품과 동일한지 감정해야 하니까.”
그때 철문 뒤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쥐가 움직이는 소리인 줄 알았다. 두 번째에는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금속판 위를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브란트가 검을 뽑았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그는 이름을 밝히고 왕실 경비대라고 소리쳤다. 응답은 없었다. 그러나 긁히는 소리가 멈춘 다음, 문 아래의 틈에서 접힌 종이 하나가 나왔다.
나는 장갑을 끼고 그 종이를 들어 올리려다 멈췄다. 안쪽에서 누군가 증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브란트가 현장 사진과 인수 시각을 남긴 뒤,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종이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네 번째 검증자는 서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서명을 거절한 사람이다.'
철문 안쪽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발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현장을 떠나기 직전, 브란트는 철문 앞에 서서 대화를 계속 시도했다. 자신이 왕실 경비대장이며 안의 사람이 누구든 안전하게 나올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는 협박도 거래도 없었다.
“내가 문을 열면 당신들이 서류를 가져갈 거잖소.” 안쪽의 목소리가 말했다.
“법정이 허락한 부분만 조사할 것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법정은 삼 년 전에도 있었소. 그런데 사람들은 죽었다고 기록됐지.”
나는 즉시 반박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왕국의 절차에 좋은 기억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그 말만으로 법정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당신의 기록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몸이 안전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다. 작은 등불의 빛이 문틈에서 흔들렸다. 브란트가 안을 향해 물 한 통을 밀어 넣으려 했다. 나는 액체가 오래된 마법 장치에 닿을 위험이 없는지 정비사에게 물었다. 그는 문 옆 건조한 바닥으로 굴리면 괜찮다고 했다.
물통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거친 기침과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루카스가 긴장한 얼굴로 내 옆에 섰다.
“저분이 범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목마른 사람을 그냥 두면 되겠니?”
그는 고개를 숙였다. 조사란 누군가를 도울지 말지부터 결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잠시 뒤 다시 목소리가 났다.
“내가 문을 열지 못하는 건 맞소. 하지만 내가 여기 들어온 이유도 당신들이 들어온 이유와 같을 거요.”
“어떤 이유입니까?”
“없는 사람으로 만든 이들의 이름을 찾으러 왔소.”
브란트는 병사들에게 구조용 장비를 가져오라고 했다. 철문을 훼손한 흔적까지 기록한 뒤 최소한으로 열어 보자는 뜻이었다. 나는 그가 먼저 안전을 말한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불을 끄지 마세요. 이번에는 사람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에리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문틈에 남은 물자국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라면 일단 문을 열었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구조 인력을 부른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요?”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 질문을 아는 척하는 것은 그녀에게 잔인한 일이었다. 에리카는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목격 기록을 다시 꺼냈다. 진실이 늦게 와도 거짓된 위로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삼 년 전 화재 때 벨란 감사관이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사람을 먼저 꺼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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