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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30화
PAYLUA ORIGINAL · 제30화

30화. 왕관 아래 빈 서명란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879자

오프라인 책장
왕관 아래 빈 서명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사흘 동안 그 빈칸을 남겨 둔 사람의 이름을 찾았다. 처음에는 조폐소의 관리자 네일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계를 돌린 사람이니 거래도 알았을 거라는 이유였다. 나는 그 주장에 반대했다. 기계를 수리하는 사람과 결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다르다. 네일의 작업 기록은 오히려 외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는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리엔 모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삼 결제소를 관리한다고 인정했지만, 자신에게 보관권을 위임한 원본 계약은 없다고 했다. 대리인으로서 받은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할 뿐이다. 조사할 이유가 충분했지만 누군가를 체포하는 일은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행정 담당 법정과 왕실 회계 법정은 연계 심리 끝에 각자의 관할에 대한 첫 본안 결정을 선고했다. 먼저 행정 재판관이 헌장과 의회 기록을 확인한 뒤 말했다. “국가 조세 및 관문 통제 권한은 계약서에서 사적으로 양도할 수 있는 재산권이 아니다.” 그는 해당 권리를 제삼 결제소가 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리엔은 판결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변호인과 짧게 대화한 뒤 보관 자금 분배 계획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돈을 임의로 빼돌리지 않겠다는 서약은 법정에 제출했다. “상단의 채권이 소멸한 것과 개인 투자자들의 권리는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증서를 산 사람들의 지급 청구와 각 보관금의 소유권을 구분해서 심리해야 합니다.” 재판관이 답했다. 마르켈은 출석하지 않았다. 그의 변호인은 이의신청을 유지하겠다는 한 장짜리 문서만 냈다. 남아 있는 광산 사용료 360금화가 실제로 언제 납부될지는 미정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확정 채권과 수납된 돈을 따로 적었다. 법정을 나서며 에리카는 내게 말했다. “한 달 전에는 왕국에 빚이 많다는 사실만 알았어요. 지금은 누구에게 빚이 있는지도 모르던 게 문제였다는 걸 알겠어요.” “정확해요. 누가 돈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고 돈을 끌어모으면 언젠가 다른 사람이 두 번 내게 됩니다.” 그녀는 문득 웃었다. “그럼 왕관은 재무청 재고 목록에서 빼야겠네요.” “원래도 재고로 잡히면 안 됐을 텐데요.” “예전 재무대신은 대체 뭘 적어 놓았을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잠시 웃었다. 그러나 왕궁 안에 들어서자 그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왕실 신용 수익권 증서를 산 사람들이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법이 그들의 권리를 지켜 줄 수 있는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또 기존 왕실 대출채무 8,000금화는 잠정 사용료 인정액과의 적법한 상계로 소멸했고, 이 법정의 현재 판단만으로 그 소멸 효력이 뒤집히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다만 청동왕관 상단의 이의신청과 360금화 잔여 사용료 청구는 별도 심리가 남아 있었다. 법정에는 박수가 일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다음 문장을 기다렸다. “정당한 사적 보관금이나 투자자의 반환청구권까지 이 결정으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왕관을 지켰다는 이유로 투자 피해자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잘못 설계된 계약을 바로잡는 일과 실제 권리를 가진 사람의 돈을 돌려주는 일은 함께 가야 했다. 법정 밖에서 루카스가 마침내 웃었다. “왕관은 안 팔렸네요.” “법적으로 팔 수 없는 걸 누가 팔 수 있다고 광고한 거지.” “그러면 광고비도 환불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네가 다음 재판에서 말해 봐.” 에리카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용했던 법정 바깥에 처음으로 사람 목소리가 돌아왔다. 바로 그날 국경에서 응급 방벽 보수 완료 보고가 도착했다. 보고를 보내온 나디아는 손편지에 작은 그림을 붙였다. 다시 열린 교역소 앞에서 아이들이 팔을 흔드는 그림이었다. 밤꽃 약재 상점은 영업을 재개했고, 경비병들은 불법 방벽세 대신 정해진 관문 사용료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일부 상인이 이전에 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을 기사에 써 달라고 하면 좋겠어요.” 루카스가 말했다. “어느 부분?” “방벽이 고쳐졌다는 거요.” “그것도 쓰고 아직 환급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써야지.” 나는 공고문에 둘을 나란히 적었다. 한 가지 일이 잘됐다고 다른 문제가 해결된 척해서는 안 된다. 국경이 안전해졌다는 말과 사람들이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말은 동시에 참일 수 있었다. 마계 기술자는 왕국 기술자와의 공동 검수에서 미세한 균열 두 곳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그것은 긴급 보수 범위에 포함된 구조적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향후 정기 유지 계획에 반영하되, 이번 12금화 계약에 임의로 비용을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새 공사라면 새 근거와 예산이 필요했다. 세르나는 수리대장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가 마계 감사관인데도 인건비 단가를 확인한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다. “다음에 인간이 우리 쪽 기술자를 불러도 이번처럼 계산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럼 이번 계약은 나쁜 선례가 아니겠네요.” “너희가 돈을 제때 준다면 말이지.” “완료 검수 지급증을 확인했습니다. 혹시 마계 측 수납 확인도 연결해 줄 수 있습니까?” 세르나는 바로 서명했다. 그 작은 추가 절차가 지난 열두 달 동안 없던 부분이었다. 돈을 보내는 기록과 받는 기록을 같은 장부에서 연결하는 것. 내가 이 세계에서 한 일 중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왕실 공동 검수자와 마계 기술자가 균열을 확인했고, 안전 구역의 통행이 단계적으로 재개됐다. 계약상 총 보수비 12금화 중 착수 확인분과 최종 검수분의 지급 증빙도 제출됐다. 긴급 예비비 7금화와 상인회 지정 기부 5금화가 승인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별도 장부에 기록했다. “마왕이 수리비도 내줬나요?” 누군가 물었다. “아뇨. 이번에는 왕국이 책임지는 비용을 정식으로 냈습니다.” 세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면 충분하다.” 왕실 민원 창구에는 국경 방벽세 피해 신고가 계속 들어왔다. 라니아는 민원인들에게 환급 확정 여부를 공개하며 접수 기록을 정리했다. 모든 사람에게 당장 돈을 돌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물을 수 있는 공식 장소가 생겼다. 한편 옛 조폐소에 봉인된 260금화는 여전히 보전 상태였다. 리엔은 결제소의 보관권과 비용 청구권에 대한 본안 심리를 요구했고, 왕실은 그 돈 중 실제 마계 방벽 유지비로 지급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자료를 제출했다. 재판관은 성급한 분배를 금지했다. 잘못된 계산을 한 번 바로잡았다고 해서 모든 돈이 우리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날 저녁 에리카와 함께 새 재정 공개표를 벽에 붙였다. 그날 창구에는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 손가락이 구부러진 목수 바넨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실종이나 사망자 기록에 잘못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신분을 확인한 뒤 공식 기록 정정 신청을 받았다. 곧바로 사망 처리 기록을 없애지는 않았다. 원본 증거를 보전하고 고용 이력과 대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걸 증명해야 한다니 기분이 묘합니다.” 바넨이 말했다. “신고서에 살아 있다는 증거로 본인 출석 사실도 남기겠습니다.” 그는 불만스러운 듯 웃었다. “내가 말을 하는데 그게 증거가 안 되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나는 신분을 도용한 사례와 기록 오류가 모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손등에 남은 옛 상처를 보여 주었다. 삼 년 전 임시 계약서를 쓸 때도 똑같은 상처가 있었다고 했다. 에리카는 그 내용을 고용 장부의 식별 기록과 대조해 주었다. 바넨은 정정 신청을 마친 뒤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기록해 줘서 고맙소.” 나는 이 이상한 감사 인사를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소한 한국의 장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나는 수첩에 그의 말을 적었다. 사람의 존재를 숫자 하나가 지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라니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체불임금 명부 중 일부를 정정하자 실제 지급 대상이 몇 명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현금 지급액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누구를 빼놓고 있었는지는 알게 됐다. “돈은 없지만 명단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명단도 없었죠.” “그럼 다음에는 돈이 올 차례네요.” 나는 쉽게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다가오는 예산 심의 날짜를 알려 주었다. 라니아는 그날 공개 방청하겠다고 했다. 의회가 납세자와 노동자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본다면 나라가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종이 한 장이면 될 줄 알았다. 어느새 벽 하나를 채웠다. 국고에 들어온 실제 수납과 확정되지 않은 채권, 법정이 보전한 자금, 긴급 지출을 서로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이름을 가려야 할 민원인 정보는 따로 보관했다. “처음 오셨을 때 국고가 열일곱 금화뿐이었죠.” 에리카가 말했다. “그 숫자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이후에는 나라가 조금 나아졌나요?” 나는 쉽게 답하지 않았다. 빚 8,000금화를 상계했어도 그 돈이 급식소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방벽은 고쳤지만 체불 임금 전체를 지급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불법으로 돈을 걷던 창구가 닫혔고, 사람들은 통행료 기준을 볼 수 있게 됐다. “돈이 늘었다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누가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조금 더 분명해졌죠.” 에리카가 말했다. “아버지도 그 대답을 좋아했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려다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사망 처리된 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힌 상자가 어디로 갔는지, 누가 인수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날 밤 오렐이 왕실 보존고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그는 사라진 왕실 신용 보전 약정의 목록표를 다시 살피다가 종이 안쪽에 접힌 부록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 부록은 고대 계약의 ‘검증자 등록’ 서식이었다. 세 개의 검은 깃털이 그려진 보증인 칸 옆에 네 번째 깃털 그림이 있었다. “등록되어 있는 사람 이름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게 이상합니다. 이름이 두 종류로 적혀 있어요.” 첫 번째는 삼백 년 전의 고대어였다. 세르나가 읽자 ‘계약의 숫자를 들여다보는 자’라는 뜻이었다. 두 번째는 최근에 덧쓴 왕국어였다. 글씨가 거의 사라졌지만 분명 사람 이름처럼 보였다. “위조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직 모르지. 언제 누가 적었는지 확인해야 해.” 나는 서식을 책상 위에 놓고 복제기의 잉크 흔적부터 살폈다. 그러다 손목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검증자 칸의 네 번째 깃털이, 내게만 보이는 저울 문양과 똑같은 순서로 빛났다. 진실의 장부가 내 앞에 떠올랐다. [등록 보증 검증자 확인 요청] [대상: 강태준] [인증 시 미기록 거래 일부 열람 가능] [대가: 귀환에 관한 핵심 기억 하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 무엇을 했는지, 돌아갈 집이 어디인지조차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조약의 서명란은 삼백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지금 내 이름이 나타났다고 해서 내가 과거에 서명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왜 그러세요?” 에리카가 물었다. 나는 손목을 가렸다. “이 서류를 보전해 주세요. 내일 공식 감정을 요청합시다.” “지금 더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루카스가 말했다. “볼 수 있는 것과 봐야 하는 건 달라.” 나는 확인 요청을 누르지 않았다. 그 순간 창밖에서 네 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왕실 종루는 원래 세 번만 울린다. 오렐은 창백해진 얼굴로 문 쪽을 돌아봤다. “저 소리…… 마지막으로 들은 게 삼 년 전입니다.” 세르나가 낮게 말했다. “누군가 중재 등기소의 검증자를 다시 불렀다.” 나는 종이 위 빈 서명란을 바라봤다. 왕국의 왕관을 지키는 일은 끝났다. 하지만 그 왕관을 담보로 삼을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직 어딘가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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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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