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폐소에서 돌아온 뒤 나는 두 장의 서류를 따로 보관했다.
하나는 제삼 결제소 대리인 리엔 모브의 신분증 사본, 다른 하나는 내일 정오 예정된 왕관 대리권 실행 심사 공고였다. 두 문서를 묶어 ‘왕위를 빼앗으러 온 여자’라고 적기에는 아직 빠진 증거가 많았다. 하지만 정오까지 마냥 기다리기에는 위험이 컸다.
“실행 심사라는 게 뭡니까?” 로웬이 물었다.
“담보권이 발동하는지 살피는 단계라고 주장하겠죠. 실제 권한이 있는지는 다릅니다.”
“그게 통과되면 세금을 결제소에서 걷나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 긴급한 법적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왕실 회계 법정에 임시 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를 낼 때 가장 먼저 막힌 것은 관할 문제였다. 왕실 회계 법정이 돈의 보전은 다룰 수 있어도 공적 통행권 자체는 행정 법정의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기는 두 신청을 나눠 내라고 했다.
“해가 뜨면 계약 집행이 시작되는데요.” 브란트가 말했다.
“그래서 긴급 심문을 요청할 겁니다. 관할을 건너뛰면 저쪽이 가장 먼저 그 문제를 공격할 테니까요.”
우리는 금전 보전에 관해 회계 법정에, 관문 통제의 집행정지에 관해 행정 담당 판사에게 각각 신청했다. 재판관들이 협의해 동일한 시간에 연계 심문을 열기로 했다. 왕국의 법원도 처음 겪는 사건이었다.
서기는 마지막으로 내 서명을 확인했다. 나는 밤샘으로 눈이 충혈된 손으로 서명했고, 로웬은 국왕의 지시가 적힌 공문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도장을 찍었다고 신청이 승인된 것은 아니었다. 법정이 열릴 때까지는 기존 집행 금지 조치를 요청하는 임시 통지서만 내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통지를 국경 경비대와 남부 관할청, 제삼 결제소에 동시에 보냈다. 송달 시각이 명확해야 했다. 상대가 문서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전달 목록을 보고 물었다.
“조약을 구하려면 편지가 세 장이나 필요해요?”
“세 장만으로 끝나면 운이 좋은 거야.”
브란트가 웃었다. 그는 전령들에게 따뜻한 수프를 먹이고 출발시켰다. 새벽의 왕궁에서는 칼보다 서류 전달 시각이 더 중요했다. 이런 싸움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금전채무와 공적 징세권을 구분하고, 계약서 원본과 당사자 자격이 확인되기 전에는 어떤 민간 기관도 국가 세금을 징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재판관은 날이 밝자마자 심문을 열었다.
리엔은 변호인과 함께 출석했다. 외투도 젖지 않았고 표정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새벽부터 어떻게 마차를 준비했냐는 내 농담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 결제소는 왕국의 왕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럼 무엇을 요구합니까?”
“원리금 회수가 불가능한 동안, 교역 수입을 보관하고 계약상 우선 지급 순서를 적용할 권리입니다.”
“누구의 교역 수입이지요?”
“협정상 왕실이 받을 몫입니다.”
나는 그 표현을 기록했다. ‘왕실이 받을 몫’이라는 말은 개인 왕의 재산과 국가의 조세수입을 혼동하기 쉽게 만들었다.
재판관이 원본 계약을 제출하라고 하자 리엔은 회색 종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삼 년 전 ‘왕실 신용 보전 약정’ 대조본이 있었다. 제일 아래에는 국왕의 정식 서명이 없었다. 대신 관리인 대리의 검은 깃털 표식과 청동왕관 상단의 승인 인장이 찍혀 있었다.
“국왕 서명은 어디 있습니까?” 재판관이 물었다.
“왕실 위임장으로 대신했습니다.”
“위임장 원본은?”
“왕실 보존고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에리카의 펜이 멈췄다. 왕실 보존고의 목록에서 사라진 서류를 상대는 왕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를 가리키는 두 개의 빈손이었다.
나는 리엔에게 질문 기회를 얻었다.
“마계의 동의는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마계 보증 관리인의 인장으로요.”
“그 관리인의 대리 권한 갱신일은 언제입니까?”
“협정은 백 년마다 자동 갱신됩니다.”
“협정과 대리권은 별도라고 마계 감사관이 증언했습니다. 갱신된 위임장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리엔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르나가 법정 뒤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조약의 관련 조항 원문을 제출했다. 마계의 오래된 확인 기록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최근 백 년간 공식 위임 갱신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리엔은 법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 계약 상대방이 대리인의 권한을 믿을 만한 외관이 있었다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 주장을 비웃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가 대가를 지급하고 권한을 신뢰했다면 다툴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선의의 계약자라도 국가의 과세권 자체를 취득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재판관은 임시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을 내리기 전 법정에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청동왕관 상단의 변호인이 신청한 추가 진술 때문이었다.
“계약이 정지되면 담보권자들의 권리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됩니다.”
“어떤 권리가 어느 정도 훼손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재판관이 물었다.
“왕실 신용 수입을 기대하고 이미 발행된 증서가 있습니다.”
나는 증서가 실제로 유통됐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빵집 노인과 다른 신고자들이 납입 영수증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피해를 막기 위한 방법이 곧 국가 세금의 사적 징수 허용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예치금 보전과 청구권 보호를 요구하시면 저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통행료를 징수할 새로운 권한을 주면 아직 계약에 참여하지 않은 상인들까지 돈을 내게 됩니다.”
재판관은 리엔을 보았다.
“귀 결제소는 계좌가 동결되면 정당한 투자자의 반환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임시 보전 감독을 받는 방법은 검토할 수 있습니까?”
리엔은 즉답하지 않았다. 법정의 양편에서 소리가 잦아들었다.
“보관 대상 금액과 명세가 외부에 드러나면 위험합니다.”
“법정 비공개 심리와 공표 범위를 구분하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일정 범위의 열람 조건을 서면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여기서 악당의 얼굴에 먹물을 뿌리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사라지기 전에 막아 놓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숫자를 내놓게 하는 일이었다.
심문이 쉬는 동안 루카스가 물었다.
“저 여자가 진짜로 돈을 맡아 둔 사람이면 어쩌죠?”
“그럼 보관권은 확인해 줘야지. 대신 맡긴 사람 외에는 못 가져가게 해야 하고.”
“그런데 나쁜 사람이면요?”
“나쁜 사람이어도 남의 돈을 마음대로 빼앗아선 안 돼.”
루카스는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가 언젠가 이런 말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계약의 효력은 본안에서 다투되, 국가 세금 징수와 관문 통제에 관한 제삼자의 집행은 일시 정지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왕실은 원본 계약 보존과 제삼 결제소의 정당한 채권이 있다면 그 청구를 심리하는 데 협조해야 했다.
“이겼습니까?” 루카스가 속삭였다.
“정오를 넘길 시간을 얻었어.”
“그럼 이긴 거잖아요.”
“법정에서 시간을 얻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
하지만 리엔은 물러서지 않았다.
“왕국이 우리를 막으면 마계 방벽도 유지되지 않습니다.”
세르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마계가 받지 못한 돈으로 방벽을 유지했다고 말하지 마라. 누가 실제 비용을 냈는지부터 밝히면 된다.”
그 말에 재판관은 두 기관의 원장 대조를 별도로 명령했다. 계약을 다투는 동안 방벽 수리까지 중단할 이유는 없었다.
법정을 나오자 국경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북부 돌기둥의 금이 더 벌어졌고, 야간 교역소 사람들은 소금 자루로 바람을 막고 있었다. 세르나가 제시했던 긴급 수리비 12금화는 여전히 미지급이었다.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대형 사고 위험이 있다는 현장 기술자의 의견서가 함께 왔다.
로웬이 머리를 감쌌다.
“돈이 없어. 막아 놓은 제삼 금고 돈은 쓸 수 없고, 국고 예산에도 여유가 없네.”
“보전된 돈을 건드리자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나는 국경 교역소의 정식 사용료와 인근 상인회 공동 분담, 긴급 예산 전용 가능액을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세금과 달리 자발적 분담은 강요할 수 없었고,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부분을 민간에 떠넘겨서도 안 됐다. 로웬은 현금 현황을 오늘 밤까지 다시 계산해 보겠다고 했다.
나디아는 통신 마석으로 우리에게 연결됐다.
“사람들이 불법 방벽세를 안 내도 된다고 좋아하는데, 진짜 방벽이 무너지면 어쩌죠?”
“필요한 비용을 공개하고 정식 절차로 조달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위험 구간부터 통제하세요. 장사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사람들이 화낼 거예요.”
“그럼 제가 가서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통제 명령에 사고 신고 창구와 무료 우회로 안내를 함께 붙이게 했다. 아무 설명 없이 길을 막는 것 역시 약한 사람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일이었다.
해질 무렵 왕이 우리를 불렀다. 그는 상계 판결문을 펼쳐 놓고 있었다.
“마르켈에게 진 빚 8,000금화는 없어졌지?”
“상계 효력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의신청이 남아 있지만 당장 현금 8,000금화를 낼 의무로 되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내 왕관이 잡혀 있다고 말하느냐.”
나는 법정의 임시 결정을 보여 줬다.
“왕관을 넘긴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그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증서를 팔고 실제 돈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소문을 없애려면 그 돈의 행방을 밝혀야 합니다.”
왕은 한참 침묵하다 자기 왕실 도장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정식 인장이 있었다.
“삼 년 전 그 회의에 이 인장을 가지고 간 사람은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보관 기록을 찾아보죠.”
“그때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로는 부족하겠군.”
“예. 다만 지금 무엇을 하느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왕은 내게 당장 조세수입 현황을 국민에게 공고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궁정에서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하는 정보와 민원인 개인 정보를 나눠 공개안을 만들었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왕국의 빚이 왜 사라졌는데도 임금이 밀려 있는지 처음으로 숫자로 볼 수 있게 됐다.
공고문 앞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빵집 노인은 한참 숫자를 읽다가 내게 물었다.
“빚이 없어졌는데 나라가 왜 아직 가난합니까?”
“빚 8,000금화를 현금 8,000금화로 갚지 않게 된 겁니다. 하지만 밀린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이 새로 생긴 건 아니에요.”
“그럼 왕이 빌린 돈이 사라져서 좋은 일은 뭐요?”
“앞으로 들어오는 세금의 일부를 옛 빚 갚는 데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만큼 새 예산을 짤 여지가 생긴 거죠.”
나는 ‘여지’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마치 이미 얻은 돈처럼 말하면 다시 같은 실수를 한다. 상단의 광산 사용료 360금화 잔여 부분도 법정 심리 중이고 실제 징수된 현금이 아니었다.
군무청 창고 노동자 하나는 자기 이름을 가린 임금 목록에서 빠진 사실을 발견했다. 라니아가 신청서를 가져와 따로 접수했다. 그 사람은 삼 년 전 임시 고용인이라 정식 명부에 없었다. 그러나 계약서와 감독관 서명이 있다면 청구할 권리를 다툴 수 있었다.
“이걸 왜 공고해서 우리를 귀찮게 합니까?” 재무청 직원이 낮게 투덜거렸다.
“틀린 곳을 사람들이 찾아 주잖아요.” 내가 답했다. “장부를 공개한다고 오류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고칠 기회는 늘어납니다.”
그날 새로 접수된 누락 인원은 여섯 명이었다. 그중 두 명은 중복 신고였고, 네 명은 추가 확인이 필요했다. 누가 진짜인지 판정할 책임을 민원인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증빙 확인 업무와 신청 안내 업무도 따로 나눴다.
에리카가 늦게까지 남아 장부를 다시 계산했다. 그녀는 손에 묻은 잉크를 보며 웃었다.
“이런 숫자라면 밤새 봐도 괜찮겠어요. 누군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숫자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이런 작업이 계속됐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과거는 고쳐 쓸 수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권한은 오늘의 문서를 제대로 적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정오 집행정지가 내려진 지 열한 시간 뒤, 조폐소에서 긴급 전갈이 왔다.
봉인된 인쇄기가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공식 가동 중지 중인데도 검인지 한 장이 출력됐다. 그 종이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낯선 문장이 찍혀 있었다.
‘왕관 대리권 집행 대상 변경.’
대상은 국왕이 아니었다.
‘국경의 모든 등록 상인.’
나는 공고지를 접었다. 누군가 한 번 막힌 문 옆에 다른 문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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