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23화
PAYLUA ORIGINAL · 제23화

23화. 폐쇄된 조폐소의 불빛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6,132자

오프라인 책장
옛 조폐소로 가자는 말을 꺼내자 브란트가 한숨부터 쉬었다. “세금 걷는 일과 유령 잡는 일을 겸하실 생각입니까?” “유령에게도 소득이 있다면 일단 법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 농담을 경비병 앞에서는 하지 마십시오. 진짜로 유령 세금 보고서를 쓰라고 할 겁니다.” 왕국 남쪽의 조폐소는 삼 년 전 문을 닫았다. 왕실 재정이 무너진 뒤 새 금화를 찍는 비용조차 아끼려다 동전 제작을 청동왕관 상단에 맡기기로 했던 곳이다. 실제 조폐권은 최종 이전되지 않았지만 기계 일부는 반출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우리는 소유권과 출입 허가를 확인했다. 조폐소 부지는 왕실 소유였고, 건물 관리권은 남부 관할청이 가지고 있었다. 임시 감사권만으로는 봉인된 개인 금고까지 열 수 없으므로 보전 명령과 현장 검증 허가를 따로 받았다. 세르나는 마계 계약 대조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남부 관할청에 도착했을 때 행정관은 이미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실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협조해야 하는 줄 알았지만, 그는 법정 허가서에 적힌 주소가 옛 문서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조폐소 본관은 ‘남부 제삼 창고’로 분류돼 있었다. “그냥 문 열어 달라고 해도 되잖아요.”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그랬다간 나중에 다른 사람 창고를 잘못 열었다는 말이 나와.” 우리는 허가서의 토지 번호를 확인하고 법정에 보충 확인을 요청했다. 행정관은 원본 토지 지도를 펼쳐 북쪽 담장과 뒷마당의 경계를 표시해 주었다. 적법한 검증 구역은 본관과 계수실까지였고, 임차인이 사용하는 별채는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그 선을 진한 잉크로 그었다. 브란트는 별채로 달아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느냐고 물었다. 나는 현행 위험 상황이라면 경비대의 권한을 따로 적용할 수 있지만, 단순히 서류를 찾겠다고 허가 범위를 넓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런 일이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재무청이 허가 없이 남의 창고를 열면 내일 군무청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정확히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아는 건 공무원만을 위한 규칙이 아니었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는 조폐소가 폐쇄된 뒤 생겨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소년들이 폐동전 모양의 돌을 팔고 있었다. 한 아이가 ‘왕실 금화’라며 노란 돌을 내밀자 루카스가 진지하게 순도를 물었다. 아이는 값을 깎아 주는 대신 ‘용이 물어온 금’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허위 표시 아닙니까?” 루카스가 내게 물었다. “당장 아이를 세무조사할 생각은 접어.” 에리카는 웃었다. 그 웃음 뒤로 녹슨 굴뚝이 보였다. 조폐소의 기계가 멈추면서 생계를 잃은 사람들이 근처에서 물건을 팔며 버티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곳이 사건 현장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끊어진 월급의 흔적이었다. 건물은 버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길가의 흙에는 최근 마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루카스는 땅을 보자마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큰 바퀴 두 대, 작은 바퀴 하나. 어젯밤 비가 왔으니까 그 뒤에 지나간 자국 같아요.” “네 추정으로 적자. 정확한 시간은 확인 안 됐어.” “이제는 징수관님보다 제가 먼저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네가 쓰는 잉크값도 근거를 남겨야 해.” 루카스가 입을 삐죽 내밀자 에리카가 웃었다. 조폐소 문에는 세 개의 잠금장치가 있었다. 조폐소 건물의 뒤편에는 작은 온실이 있었다. 관리인 네일이 손수 키운 풀들이 갈라진 유리 사이로 햇빛을 받고 있었다. 시설이 폐쇄된 뒤에도 그는 이곳에 출근해야 했고, 매일 할 일이 없어 풀을 심었다고 한다. “은행처럼 돈을 맡는 곳이라면 지금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겠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원래 이곳은 동전을 만들던 공장이야. 금고와 장부가 남아 있어 다른 일에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합법적인지는 따로 봐야지.” 우리는 건물 전체를 스케치했다. 본관에는 동전 주조기, 남쪽에는 옛 계수실, 서쪽에는 지하 금고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공식 지도에는 없는 작은 통로도 하나 있었는데, 배수로 보수 때 만든 것으로 보였다. 브란트는 통로부터 봉쇄하자고 했다. “증거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안에 사람이 있다면 출입구를 막기 전에 피난 여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잠시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경비병들에게 안전 수색 범위를 명확히 지시했다. 통로는 외부에서 잠겨 있었고 최근 출입 흔적은 없었다. 기계실에 켜진 등불과는 다른 경로였다. 옛 주조기 앞에서는 에리카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금화에 국장을 찍던 쇠 틀에 그녀 손이 거의 들어갈 정도였다. “과거에는 여기서 왕의 얼굴을 새겼겠죠.” “지금은 왕실 신용 증서 문양을 찍고 있군요.” “얼굴만 바뀌었네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동전을 만들던 기계가 약속을 파는 기계가 되었다. 사람들은 왕의 얼굴을 믿고 금화를 받았고, 이제는 왕의 인장을 믿고 미래 수입을 샀다. 금속이 종이가 됐을 뿐, 믿음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는 비슷했다. 왕실 열쇠, 관할청 열쇠, 그리고 외부 결제소의 보증 표식. 세 번째 표식은 백 년 전 자격이 끝난 검은 깃털 위임 인장과 같은 형태였다. 그것을 본 세르나가 즉시 장갑을 꼈다. “마법으로 강제로 열지 마십시오.” 내가 말했다. “열 생각 없다. 이 표식의 기운이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거다.” 그는 내게 냉랭하게 덧붙였다. “모든 마계인이 문을 불로 녹이는 것은 아니다.” “제 동료 중에는 곡물창고 문을 발로 차는 사람이 있어서요.” 브란트가 뒤에서 헛기침했다. 세 번째 자물쇠는 공식 감정인이 봉인을 촬영한 후 해제했다. 안쪽에 들어가자 비어 있어야 할 기계실에 작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사람의 손으로 최근 심지를 갈았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책상에는 거래 번호가 적힌 카드가 꽂혀 있었다. “보관소는 폐쇄됐는데 정산은 계속됐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카드에는 세 종류의 숫자가 있었다. 왕국에서 출금한 금액, 보증 계정에 예치된 금액, 수취 확인이 끝난 금액. 마지막 칸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루카스는 숫자를 옮겨 적으며 몇 번이나 손을 멈췄다. “마계로 보낸 돈이라고 썼는데 마계 수령 확인이 없어요.” “그러면 일단 미대조 자금으로 보는 거야. 어디서 멈췄는지를 보자.” 우리는 최근 열두 달의 승인액 720금화 중 실제 출금 증빙이 있는 480금화의 거래 번호를 대조했다. 조폐소 카드에서 확인된 것은 그 480금화에 대응하는 중간 정산 접수 기록이었다. 하지만 금고에 현금 480금화가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중 일부는 ‘보관’, 일부는 ‘보증 비용’, 일부는 ‘대기 중인 지급’으로 표기돼 있었다. 금액별 원본은 다른 방에 있었다. 그때 기계실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브란트가 검을 빼려 하자 나는 손을 들었다. 좁은 건물에 무장한 사람이 많았다. 몸을 숨긴 사람이 있다면 먼저 나올 기회를 줘야 했다. “왕실 감사원입니다. 신분을 밝히고 안전하게 나오세요. 즉시 체포할 사유가 없다면 조사 절차를 설명하겠습니다.” 잠시 뒤 어린 남자가 벽 사이에서 나왔다. 한쪽 팔에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기계 관리인 네일이라고 소개했다. 조폐소가 폐쇄됐다는 공문을 받은 뒤에도 제삼 결제소에서 정기 수리 계약을 이어 왔다고 했다. “어른들은 은퇴했는데 저만 남았어요. 매달 장부가 돌아가니까 불을 꺼 둘 수가 없었습니다.” “매달 누가 지시합니까?” “봉인된 전달함으로 편지가 와요. 작업 대금도 따로 받았고요.” “그 계정은 어디서 관리합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공포보다 피로가 짙었다. 나는 그가 증언에 동의한 범위에서만 내용을 받았다. 담당자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네일은 작은 서랍에서 수리비 영수증을 꺼냈다. 임금은 한 달에 은화 여섯 닢. 그런데 영수증의 수취인란에는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제삼 결제소 보전 담당자’라는 글씨 아래 네일의 손도장만 있었다. “읽을 줄 모릅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숫자는 읽는데 이런 고대어는 몰라요. 제가 직접 받은 돈은 맞습니다.” 누군가 노동자에게 실제 임금을 주면서 그 임금을 부풀려 계정에서 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직 그랬다는 증거는 없었다. 실제 은화 지급과 결제소 장부의 비용을 대조하면 됐다. 기계실 안쪽에는 작은 인쇄기가 있었다. 원래 동전에 국장을 새기던 기계인데 지금은 얇은 종이에 열에 따라 무늬가 드러나는 검인지를 만들고 있었다. 검인지 위에는 ‘왕실 신용 수익권’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빵집 노인이 산 증서와 같은 문양이었다. “증서를 여기서 찍었습니까?” 네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찍는지는 몰랐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숫자만 바꿔 달라는 주문이 왔습니다.” 그가 만든 검인지를 증거로 보전할 필요가 있었다. 브란트는 기계를 압수하자고 했지만, 그 기계로 정기 지급 원장까지 출력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 우리는 가동을 일시 정지하되 작업 데이터와 재료를 목록화해 봉인하고, 필요하면 법정 허가 아래 다시 열람하도록 했다.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긴 회색 마차가 정문 앞에 멈췄다. 검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내려와 허가증을 내밀었다. “제삼 보증 결제소 대리인입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허가증에 적힌 이름은 리엔 모브. 그녀는 왕실이나 마계의 소속이 아닌, 채무 계약자에게서 위탁받은 민간 보관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이 관리하는 자금의 수익권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물었다. “계약상 비밀입니다.” “그 계약이 왕실 자금을 취급할 권한을 주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리엔은 검은 장갑을 벗었다. 나는 리엔의 허가증을 받아 관할청 발급 대장과 대조했다. 발급 번호는 유효한 것처럼 보였지만 신청인 이름이 법인 명의가 아닌 ‘결제소 보관 대표’였다. 왕국의 행정 규칙에는 민간 결제소에 국가 세금 수납 권한을 부여하는 항목이 없었다. 대신 사적 보관 업무에 관한 등록 규정이 있었다. “당신 허가증은 보관 업무를 위한 것이군요.” “그 보관 계약의 내용이 국왕의 빚과 연결됩니다.” “보관 자격이 세금 징수 자격이 되는 건 아닙니다.” 리엔은 짧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제소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서 중립적인 창고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계약을 파기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예치한 돈을 누구에게 줘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럼 개인 투자자들의 지급 요구가 실제로 있었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전부 공개할 수는 없어요.” “법정에 비공개 열람을 요청하세요.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도 채권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잠깐의 균열을 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에게 ‘봉인 상태의 자금이 상당액 있다’고 알렸지만, 실제 현금을 보았다는 감정 확인서는 내놓지 않았다. 세르나가 말했다. “네가 말하는 계약은 마계의 돈을 보관한다면서 마계의 수령 서명을 한 장도 보여 주지 않는다.” “당신들이 100년 전에 대리권 갱신 통지를 누락했기 때문이죠.” 세르나는 반박하기 전에 숨을 골랐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누락이 곧 무제한 위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잘못을 인정할 여지가 있음을 기록했다. 리엔의 주장을 확인할 근거가 충분하다면 사적 보관권 일부는 인정될지도 몰랐다. 그렇더라도 왕실의 통행료를 마음대로 정할 권리는 따로 검토해야 한다. 리엔은 자리를 뜨기 전 내게 물었다. “강태준. 당신은 진짜로 누가 옳은지 알고 싶나요? 아니면 재무청의 돈을 지키고 싶은 건가요?” “공적 돈을 지키는 건 제 일입니다. 그것이 진실을 고르는 권한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처음보다 느렸다. 왼손에는 반지가 세 개 있었다. 수리공이 삼 년 전 보았다고 진술한 손과 닮았지만 그것만으로 동일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웃었다. “확인하십시오. 대신 계약이 해지되는 순간 국경 방벽 유지료를 지급할 사람도 사라질 겁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협박일 수도 있고 실제 지급 구조의 위험을 알려 주는 말일 수도 있었다. 여자의 뒤쪽 벽에 붙어 있던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폐쇄된 조폐소의 달력은 삼 년 전 날짜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빨간 잉크로 새로 적은 글씨가 있었다. ‘왕관 대리권 실행 심사 — 내일 정오.’ 왕국이 모르는 사이 계약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