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갑을 낀 전달자는 법원 복도에 서서 내 이름이 적힌 봉투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나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든 것이 폭발물이라서도, 고대 마법의 주문이라서도 아니었다. 신청인이 내 이름인데 내가 신청한 적이 없다는, 그 지극히 평범한 사실 때문이었다.
“누가 접수했습니까?”
“제삼 경계 감사 대리실에서 보내 왔습니다.”
“그런 기관이 법원 등록부에 있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손등을 보여 주었다. 세 겹으로 겹친 원이 새겨진 천 조각이었다. 앞서 131호 통지에 찍혀 있던 문양과 닮았다. 그러나 천 조각은 기관의 자격증이 아니고, 전달자의 명함은 접수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나는 사일라에게 보존관과 문서청 직원을 불러 달라고 했다.
전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는 일당을 받고 봉투를 옮길 뿐입니다. 내용을 읽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군요. 전달 경로만 사실대로 적어 주세요.”
그가 남긴 것은 고대의 수수께끼가 아니라 현행 운송 영수증이었다. 주문자에는 기관명이 아니라 ‘경계 권리 복구 조합 사무실’의 우편함 번호가 적혀 있었다. 발송료는 선불. 수령인 서명이 없으면 반송한다는 항목에도 선불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와 에리카는 서로를 보았다. 수령 여부를 대조해야 하는 기관이 정작 수령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일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그날 법정의 심리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제영 보관실에서 온 구형 반송 대조표의 접힌 면을 개봉할 범위, 그리고 새 봉투를 누구의 신청으로 볼 것인가. 재판관은 신청인이 기재돼 있다는 이유로 나를 심문대에 세우지 않았다. 먼저 문서청 수신대장을 부르고, 내가 실제로 출입한 장소와 시각을 확인했다. 나는 낡은 수첩을 제출하며 말했다.
“이 시각 저는 제영 보관실의 원본 보존 입회에 있었습니다. 이 신청서를 작성하거나 대리인을 선임한 적이 없습니다.”
재판관은 내 진술을 접수했다. 그 즉시 문서가 위조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적었을 가능성, 사전에 작성한 신청서가 늦게 접수됐을 가능성도 남아 있었다. 다만 내 이름으로 기억을 제공하거나 제12석의 거절을 열람하겠다는 주장은 내 동의 없이는 진행될 수 없었다.
“누가 열람을 거절했는지 알려 달라는 신청도 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사일라가 봉투의 표지만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전체와 당시의 비공개 증언을 요청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법원이 허가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나는 순간 메라와 마이렌을 떠올렸다. 그들이 열두 번째 자리를 둘러싼 소란에서 겨우 지켜 낸 것은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스스로 말할 범위를 결정할 권리였다. 남의 이름을 빌려 그 선을 다시 넘는다면, 우리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사건의 피해를 재현하는 셈이었다.
법원은 먼저 전달자에게 보호된 진술 장소를 제공했다. 그는 조합 사무실 뒤편에서 새벽에 봉투를 받았고, 실제 전달 지시를 한 사람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우편함을 열 때마다 쓰는 작은 쇠열쇠에 ‘0’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장갑 0’이라는 직책과 연관될 수 있으나 열쇠 하나가 직책의 보유자를 증명하지는 않았다. 나는 열쇠를 강제로 빼앗자는 경비대의 제안을 막았다. 전달자가 소지한 물건의 소유권과 조사 목적도 구별해야 했다.
점심에는 마왕 아자르켄의 감사관 세르나가 도착했다. 그녀는 마계의 기록 보관소에서 가져온 옛 규약의 사본을 내놓았다. 문구는 간단했다. ‘거절을 맡은 자는 거절한 자를 대신할 수 없다.’ 드워프 장인 로흐가 함께 가져온 돌판에는 더 짧게 같은 뜻이 새겨져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제작 시기를 가진 두 사본의 문장이 같은 개념을 가리킨다는 점은 중요했지만, 아직 제영 보관실 대조표 자체의 연대를 증명하지는 않았다.
“고대 규약을 누가 오늘 집행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세르나가 말했다.
“그렇죠. 낡았다는 이유로 무효라는 것도, 낡았다는 이유로 절대적이라는 것도 틀렸습니다.”
늦은 오후, 제한 개봉 허가가 내려왔다. 보호 대상의 이름이 적힌 면은 비공개로 유지하고, 인계 행위에 관한 문장만 독립 보존관 두 명이 확인하도록 했다. 에리카는 판독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부친의 검은 장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표지는 불에 그을렸으나 안쪽 제1권에는 ‘실제 인계’가, 제2권에는 ‘인계 예정’이 분명히 구별돼 있었다. 그 구분이 삼 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비용을 치르게 했다는 사실이 새삼 무거웠다.
개봉 결과를 기다리던 사이 왕도 문서청의 오래된 민원함을 확인했다. 열쇠가 맞지 않는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관리인은 몇 해 전부터 수신하지 않은 청원서를 임시로 모으는 곳이라 했다. ‘미수령’이라고 적힌 봉투 사이에는 억울하게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의 사연도 있었다. 제12석의 비밀과 무관한 평범한 민원이었지만, 나는 그 봉투를 보며 잊고 있던 감각을 떠올렸다. 행정이 사람을 괴롭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절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했다는 말을 접수하지 않는 것이었다.
에리카가 갈색 봉투 하나를 들어 보였다. 수신자가 사망해 반송하려던 문서였다. 그녀는 수신인의 이름을 읽으려다 멈췄다. “이름을 안다고 해서 내가 이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는 건 아니죠.” 그녀는 봉투를 원래 위치에 놓고 보존관에게 분류를 요청했다. 예전의 에리카라면 장부의 끝수를 맞추려고 당장 내용을 열어 봤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의 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조사에 필요한 사실을 남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문서청에 두 가지 조치를 제안했다. 수신을 거절하거나 신청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 무료로 이의를 제기할 창구를 만들 것, 수령인 자동 채움 기능이 사용된 문서는 원본 동의 확인 없이는 사람의 권리나 의무를 바꾸는 근거로 쓰지 말 것. 담당자는 인력과 예산이 없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사정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대신 첫 달에는 기존 민원창구 한 곳을 지정하고, 미확인 서식만 별도 보관하자고 했다. 완전한 개혁보다 오늘 한 사람의 이름이 빼앗기지 않는 일이 더 급했다.
“이 정도 조치로 사건이 막힐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교활한 사람은 다른 서식을 만들 텐데요.”
“그럴 거야. 하지만 그때도 접수된 거절이 남아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져. 나중에 재판관이 볼 수 있는 작은 기록이 생기는 거니까.”
그는 자기 수첩에 ‘거절 접수 확인증’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것이 언젠가 왕도에서 가장 흔한 종이가 되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어떤 제도를 얻고서야 이전에 그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아주 오래된 권리를 지키는 방법이 새로운 서식 한 장일 수도 있었다.
해질 무렵 보존관이 첫 판독문을 들고 나왔다. 접힌 면에는 사람 이름보다 앞에 작은 항목이 있었다. ‘최초 접수 목적: 거절 통지 보관.’ 그 아래에는 ‘최종 권리 수령: 성립하지 않음.’ 두 문장은 같은 잉크로 보였지만 감정인은 곧장 같은 시기에 썼다고 말하지 않았다. 옆에는 누군가 나중에 덧붙인 듯한 얇은 붉은 선도 있었다.
“붉은 선은 뭡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직 모른다.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야.”
우리는 복도 끝에서 다시 흰 장갑의 전달자를 만났다. 그가 떠나기 전에 작은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선불 영수증의 복사본이었다. 발송 항목 옆에 ‘신청인 서명 면제’라는 체크가 있었고, 그 체크를 허용한 책임 부서 이름은 공란이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적고 내 서명을 생략해도 되는 경로를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칸을 가리키며 에리카에게 말했다. “최종 장부의 첫 번째 질문은 누가 서명했느냐가 아닐 것 같습니다. 누가 서명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었느냐겠죠.”
그날 내 이름은 여전히 종이 위에 있었다. 그러나 법원 기록에는 내 말도 함께 남았다. ‘신청하지 않았음.’ 거창하지 않은 다섯 글자였다. 그 다섯 글자를 확보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누군가에게는 그 하루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제19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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