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법원은 제영 보관실 교환함에서 발견된 봉투의 제한 개봉을 허가했다. 조건은 분명했다. 내용물을 공개하기 전에 보존 상태와 출처를 따로 기록할 것, 당사자 신원과 증언 부분은 보호할 것, 개봉 자체를 적법한 수령 완료로 기록하지 말 것. 나는 세 조건을 수첩 첫 장에 적었다. 이번에는 빈칸을 허술하게 채우는 사람에게 우리가 직접 도움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일라는 봉투의 앞뒤를 촬영했다. 봉랍은 두 층이었다. 아래층은 오래되어 갈라져 있었고, 위쪽은 비교적 색이 선명했다. 재봉인 가능성은 있었지만 실제로 누가 언제 손댔는지는 감정이 필요했다. 에리카는 사일라가 적어 놓은 봉인선 번호를 읽었다. “이 숫자가 검은 장부 제1권의 보관표에 있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는 뜻은 아직 아니에요.” 나는 답했다. “번호가 중복 발행됐을 수도 있고, 나중에 옮겨 적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에리카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부친이 세 해 전에 붙잡으려 했던 단서가 우리 앞에서 똑같은 번호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사일라는 그녀에게 입회 여부를 다시 물었다. 에리카는 본인 의사로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유로 권리를 빼앗지 않는 일은 때로 아주 작고 정중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개봉 절차가 시작되기 전 아델리온 국왕의 짧은 답신이 도착했다. 그는 국경 보관실에서 무엇이 나오더라도 왕국의 과세권을 사적 보관기관에 넘겨주었다는 결론을 서둘러 발표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실제 피해자가 확인된 민간 청구 사건은 별도로 구제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 답신이 국왕의 성실한 입장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자체가 법원의 본안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적어 두었다.
루카스는 보존실 밖에서 세 권의 장부를 준비했다. 첫째는 국가가 적법하게 받을 세입, 둘째는 반환해야 할 민간 피해금, 셋째는 보관권·증언권에 관한 미확정 주장. 나는 그의 분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그는 숫자가 같은 금화 단위라고 해서 같은 장부에 넣지 않았다. 마왕에게 받은 거래세 12금화와 회수 여부가 미확정인 방벽 유지료, 그리고 시민이 돌려받은 은화 한 닢이 서로 다른 삶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에리카는 입회 직전 부친의 검은 장부 제2권 표지를 손끝으로 만졌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끝나는 건 일부 사건의 기록일 겁니다. 사람의 삶은 그 뒤에도 계속되죠.” 그녀는 잠시 웃었다. 나는 그가 앞으로도 재무청에서 숫자를 대조하고, 어떤 때에는 부친 생각에 잠길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 미래를 위해서라도 오늘의 증거를 똑바로 남겨야 했다.
봉투 안에는 작은 나무 원통이 아니라 접힌 원본 대조표 세 장이 있었다. 첫 번째는 물품의 상태를 확인한 기록이었다. 두 번째는 반송 요청을 접수했다는 기록이었다. 마지막 한 장에는 큰 글씨로 ‘수령 불성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구형 보관 용어가 이어졌고, 사람 이름으로 보이는 부분은 보호용 덮개로 가려져 있었다. 사일라는 덮개를 떼지 않은 채 내용을 읽어 나갔다.
‘당사자가 거절을 철회하거나 적법한 수령 기관이 별도 확인하기 전까지, 보관 접수인은 그 거절을 보존할 의무만 진다.’
세르나가 잠정 번역으로 제시한 규칙과 비슷했지만, 나는 그 일치를 즉시 고대 협약의 최종 원문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이번 봉투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문장이 어느 범위에 적용되는지, 다른 사본과 모순이 없는지 검토가 필요했다. 다만 최근 판형이 ‘거절을 받았으니 권리도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대조표 오른쪽에는 작은 네모가 열두 개 있었다. 열한 개에는 접수 상태를 뜻하는 표식이 있었고 마지막 하나는 빈칸이었다. 마이렌과 메라의 비공개 증언이 이 칸과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모른다. 나는 사일라에게 그 네모를 확대하지 않고 보호된 감정판에만 남겨 달라고 했다. 실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름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됐다.
문제는 세 번째 장의 뒷면이었다. 최근에 누군가가 ‘보관 접수인’을 ‘최종 수령 권리자’로 바꾸려 했던 흔적이 보였다. 잉크는 다른 두 장보다 진했고 글씨 간격도 달랐다. 사일라는 편집된 부분을 곧장 범죄 증거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원래 예정된 정정이나 법적 사본일 가능성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최소한 같은 표를 다른 시기에 다시 썼다는 감정 과제는 생겼다.
그때 재판관이 물었다. “이 자료가 지금까지의 강제징수 제한을 바꿀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제한을 유지할 이유가 추가됐습니다. 원본 후보의 적법성과 오래된 수령 기관의 권한은 계속 심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확인 완료 도장만으로 시민의 재산과 이름을 넘기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오후에 제삼 결제소 대리인은 자료를 검토하겠다며 시간을 요청했다. 나는 그 요청이 절차상 필요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민간 조합이 이미 보낸 허위 확정 안내를 정정하도록 요구했다. 빵집 주인의 은화 한 닢은 며칠 전 실제 반환됐지만, 다른 사람들의 돈과 권리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의 환급이 모든 책임을 지우지는 않았다.
에리카는 검은 장부 제1권과 제2권을 나란히 놓았다. 제1권에는 봉투의 보존 경로와 실제 접수 흔적이, 제2권에는 앞으로 받을 예정인 것으로 표시된 권리의 목록이 있었다. 부친이 이 두 권을 구별하려 한 이유가 조금씩 드러났다. 어느 누군가 두 권을 같은 것으로 합치면 다른 사람의 거절이 곧 제삼자의 재산이 되었다. 벨란 감사관이 그 위험을 알고 기록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왜 죽었는지, 누가 불을 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나는 개인 수첩을 펼쳤다. 한국에서 쓰던 말 한 줄이 희미해져 있었다. 그 순간 진실의 장부를 열면 더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세 차례 정밀 열람이 가능하다는 규칙도 떠올랐다. 그러나 그 능력이 내게 보여 주는 정보는 법정 증거가 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기억의 대가를 다시 치르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인증하지 않았다. 대신 보존관의 이름과 날짜, 실제 서명만 기록했다.
해 질 무렵 사일라가 원본 대조표의 마지막 접힌 부분을 내 앞에 놓았다. 아직 열지 않은 종이 가장자리에 두 가지 인장이 찍혀 있었다. 하나는 삼백 년 옛 협약의 공동 보관 표식과 닮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최근 131호 감사 서한에서 보았던 세 겹 원이었다. 둘이 같은 기관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세부 획은 달랐다.
“여기까지 개봉 허가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마지막 접힌 면은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개인 이름과 관련된 내용일 수 있어서요.”
나는 종이를 접힌 채 내려놓았다. 한 번의 손동작이면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이 누군가의 거절을 다시 지우는 일일 수도 있었다. 사일라가 추가 허가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에리카가 말했다. “이제 마지막 장이 남았네요. 아버지의 장부에서도, 우리 기록에서도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장이 모든 질문의 답을 준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됐고, 무엇을 끝내 모르는지 명확히 쓸 수 있었다. 그때 법원 문 앞에 흰 장갑을 낀 전달자가 섰다. 그는 자신을 어느 나라의 사절이라고도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표지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제12석의 거절 통지에 관한 최종 열람 신청.’ 그리고 신청인란에는 여전히 내 이름, 강태준이 적혀 있었다.
제1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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