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영 보관실’은 왕국 지도에 없었다. 문서청의 지명 대조관은 그 표현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드워프 공방에서 온 낡은 수로 도면에는 강 밑으로 이어지는 작은 공간이 표시돼 있었다. 물을 막는 수문과 연결된 시설이었고, 사람이 드나드는 정규 창고로 등록된 장소는 아니었다. 나는 지도의 이름만 믿고 내려가려는 브란트를 막았다. “우선 안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 닫힌 수로에 서류 찾으러 들어갔다가 구조 대상이 될 수는 없어요.”
도면을 그린 시기와 지금의 수로가 같은지도 의문이었다. 나사라는 젊은 수문 관리인이 현장 점검에 동행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만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수문 아래에는 물이 고인 틈이 많고, 최근 공사로 바닥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안전한 바깥 통로에서만 입회 조사하기로 했다. 법원의 명령도 침수 위험이 있는 내부 무단 개봉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로 벽의 표시판에는 ‘영번’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강태준이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가 아니었다. 도면 주석을 읽은 로흐는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보관물’에 붙인 분류번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번 기록봉, 영점 보관함, 제0호 반송품이라는 여러 이름이 왜 뒤섞였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분류번호를 사람의 입국 번호로 바꾸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루카스는 벽 안쪽의 긴 철판에 새겨진 숫자를 읽었다. 열한 개의 작은 칸 옆에 마지막 하나가 비어 있었다. 제12단위를 곧장 떠올릴 만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숫자를 사람 수나 정식 수령 완료 건수로 적지 않았다. 부품 수나 수레 바퀴 점검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 용도에 관한 기술자의 의견부터 받기로 했다.
수로관리소 직원은 교환함을 오래 비워 둔 날에도 점검표가 자동으로 인쇄됐다고 했다. 나는 그 원인을 장치 결함이나 고의 조작 중 하나로 바로 정하지 않았다. 점검표를 인쇄한 날짜와 실제로 누가 열쇠를 썼는지를 대조하도록 했다. 오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문서에 남는 기계는 우리가 이미 충분히 보아 왔다.
현장을 살피던 중 세르나가 왕도에서 보낸 회신이 도착했다. 마계의 오래된 사본에는 반송 물품을 ‘영번 보관’으로 돌려보낼 때, 당사자가 거절한 통지를 원래 형태로 보전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거절의 이유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 당사자의 침묵을 권리 포기나 동의로 바꾸지 말라는 뜻에 가까웠다. 메라가 공개를 허용한 한 문장과도 부합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나사는 수로 아래의 공기 흐름을 확인하면서 기술관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오랫동안 닫힌 수로에서는 가스가 고일 수 있었고, 무너진 흙이 불시에 움직일 수 있었다. 누군가 증거를 찾겠다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책임은 조사팀에도 있었다. 나는 작업 허가서에 ‘이동 가능한 안전 구역까지만’이라고 직접 적었다. 브란트가 그 문구를 읽고 경비병들에게 다시 설명했다.
현장 바깥에는 아이 둘이 서 있었다. 그들은 국경 창고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예전에 ‘영번 문서’를 지켰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실제 어떤 문서를 맡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질문을 이어 가지 않았다. 어른의 분쟁에 미성년자의 추측을 증언으로 끌어들이지 말아야 했다. 보호기관을 통해 보호자 동의와 정식 진술 절차가 필요한지 나중에 검토하기로 했다.
루카스는 벽의 열한 칸을 종이에 옮기다가 마지막 칸이 비어 있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일부러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여기 물을 잠그는 데 몇 개의 손잡이가 필요할까?” 나사는 그 장치의 기능을 설명했고, 열두 칸이 사람 수 대신 설비 조작 순서를 가리킬 가능성도 생겼다. 루카스는 쓴 것을 지우지 않고 ‘해석 미확정’을 덧붙였다. 이렇게 작은 실패가 남아야 뒤에 온 사람이 같은 길을 되밟지 않을 것이다.
에리카는 교환함 바깥에서 철판에 새겨진 글씨 하나를 보여 주었다. ‘받지 않음은 사라짐이 아니다.’ 새긴 연대가 불명확한 짧은 문구였지만, 이번 조사에서 우리가 반복해 지킨 원칙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잠시 목이 메었다. 한국에서 가족의 이름을 적던 수첩은 가끔 낯설었다. 그래도 기억이 흐리다는 이유로 그 가족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거절도 같았다.
왕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나사는 다음 날 수문 점검표를 갖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일상 업무가 조사 때문에 방해받지 않도록 공식 요청서를 썼다. 보존관에게는 오늘 건져 낸 것은 물건이 아니라 위치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환함의 봉투는 현재 실존했지만 그 안의 내용을 열기 전까지 우리의 상상에 이름과 숫자를 적지 않기로 했다.
그날 오후 로웬 재무대신이 긴급 회계를 요청했다. 방벽 유지료 사건의 수치들을 다시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왕실 승인 720금화, 실제 출금 확인 480금화, 그 가운데 옛 조폐소 보전 260금화, 아직 상대방 실수령이 확인되지 않은 140과 80금화의 두 경로, 승인했지만 출금이 확인되지 않은 240금화. 나는 각각을 별도 행에 적었다. 전부 잃어버린 돈으로 합치면 숫자는 클지 몰라도 진실은 멀어진다.
“140과 80의 행선지는 여전히 모르겠군.” 로웬이 말했다.
“지시서와 금고 출금은 확인됐어도 최종 수령인이 누구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영 보관실이라고 불린 시설의 문구를 발견했다고 해서 돈이 그곳으로 들어갔다고 적지 않겠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국왕께서는 돈이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신다.”
“돌아와야 할 돈이 무엇인지부터 확정해야 합니다.”
수로 바깥에 작은 교환함 하나가 있었다. 수문 관리인들은 위험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점검표를 주고받을 때 쓰는 상자라고 했다. 나사는 오래된 관리 일지와 비교한 후 자신이 아는 현재 용도를 설명했다. 뚜껑을 열 수 있는 권한은 지방 수로관리소에 있었다. 그들이 입회하자 녹슨 경첩이 비명을 냈다. 안에는 현대 점검표 몇 장과 구형 봉투 하나가 있었다. 봉투를 발견한 즉시 사일라는 현장 보전 표식을 붙였다.
표지에는 ‘반송 원본 도착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령 확인란은 여전히 빈칸이었다. 그 안을 지금 열어도 된다는 허가는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실망하리라는 걸 알았다. 원본을 찾으러 왔는데 또 봉투를 발견해 봉인하고 돌아간다니. 그러나 허가 범위를 어긴 순간 어떤 문서도 믿기 어려워진다.
작업이 끝나고 루카스가 수첩을 가리켰다. “이렇게 하면 끝나는 게 있긴 한가요?”
“오늘 확인한 건 이 상자가 실제로 이곳에 있고, 그 안에 아직 개봉하지 않은 봉투가 있다는 사실이야. 내일 알 수 있는 건 내일의 절차로 확인해야지.”
그가 웃었다. “저는 언젠가 빈칸이 전부 채워질 줄 알았어요.”
“어떤 빈칸은 당사자가 채우지 않기로 선택한 거야. 그건 우리가 채울 수 없어.”
돌아서는 순간 수로 벽에서 작은 금속 소리가 울렸다. 정비공이 수문을 잠그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왕궁 종루의 네 번째 울림을 떠올렸지만, 이번에는 기계의 소리를 기계의 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운명을 예고한다고 믿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실물이었다. 내일 그 봉투를 개봉하면 적어도 오래된 반송 원본이 어디로 갔는지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제18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