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앞으로 맡겨진 가방을 여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가방을 맡긴 셀딘 라르크가 실종 상태였고, 수령인으로 적힌 에리카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맡긴 사람의 명시적 지시를 확인하지 않고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판단을 존중했다. 대신 실종 신고가 접수된 서기관의 안전 확인과 관련된 물품이라는 사유로 왕실 회계 법정에 보전 명령을 신청했다.
“형식이 너무 까다롭습니다.” 브란트가 말했다.
“소유권이 불명확한 물건을 우리가 마음대로 뜯고 나중에 증거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셀딘이 위험해지면요?”
“그래서 인명 수색은 별도로 요청했습니다. 가방 개봉과 사람 찾기는 다른 일이에요.”
법정 서기가 여관에서 가방을 인수한 시각과 봉인 상태를 적었다. 에리카는 자신의 이름이 사용된 이유를 모른다는 확인서를 썼다. 참관인 앞에서 지퍼를 열자 안에는 낡은 장부, 군무청 방문증,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에리카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당신 아버지가 죽던 밤, 나는 그분에게 보고서를 전하려다 돌아섰습니다. 회계실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도 두려워서 도망쳤습니다. 그날 이후 보증인 명령서를 대신 들고 다녔습니다. 내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 내 이름을 이용하는지는 알려야 합니다.’
서명은 셀딘 라르크. 편지 끝에는 약속 장소가 있었다. 왕성 남쪽 오래된 수문실, 오늘 밤 해가 지기 전.
에리카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가야죠. 하지만 제가 혼자 가면 그 사람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요?”
“당사자의 감정이 커질 수 있으니까 동행하겠습니다. 원하면 대리인을 세워도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주세요.”
그 사이 국고 금고에서는 북문 수납금의 반환 절차도 진행됐다. 제삼 금고에서 보전한 36금화가 원래 북문 세관으로 들어간 96금화 중 일부일 가능성은 높았지만, 아직 소유 관계와 이체 경위를 확인해야 했다. 로웬은 북문 세관 쪽에 별도의 현금 잔액 조회를 요청했다.
“이번에는 돈을 그냥 국고에 넣으면 안 됩니까?” 금고 직원이 물었다.
“누구에게 반환해야 할 돈이 섞였을 수 있어요. 임시 보전 계정에 두고 입금 출처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같은 설명을 했다. 군무청에서 옮겨왔다고 모든 돈이 군무청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문에서 정상적으로 걷은 돈, 잘못 걷은 돈, 다른 계약의 담보로 맡긴 돈이 뒤섞일 수 있었다.
옆에서 라니아가 물었다. “우리 임금을 줄 돈이 거기에 있습니까?”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임금채권은 별도로 살아 있고요.”
“매번 별도라고 하시네요.”
“서로 다른 권리를 함부로 한데 섞으면 누군가의 몫이 사라집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의 지친 얼굴을 보면서 서류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제삼 금고의 보전 금액, 현재 환급 대상 조사 건수, 이번 주 지급한 긴급 지원의 총액을 이름을 가린 형태로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어디까지 됐는지 알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약속보다 진행 상황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라니아는 잠시 생각하다 자기도 도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민원 접수 창구의 안내를 돕는 일은 가능하지만 다른 노동자의 개인 신고서를 마음대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웃었다.
“그럼 사람들이 줄을 잘 서게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날부터 라니아는 일용직으로 접수 창구에 나오기로 했다. 정식 고용 계약서를 먼저 작성했다. 그녀는 종이를 보자 실소했다.
“이번에는 서류부터 쓰네요?”
“지난번처럼 이름을 지우는 사람이 없게요.”
그녀는 내게 작은 주먹을 보였다. “제 이름 지우면 혼납니다.”
“네. 그럴 일 없게 해야죠.”
긴장감이 잠시 풀렸다. 그러나 곧 이어질 수문실 면담은 웃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라진 서기관이 실제로 살아 있는지, 누가 그에게 위협을 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브란트는 정식 보호 인력 명단을 작성했고, 에리카는 면담 내용을 자신의 판단만으로 정리하지 않도록 독립 서기를 동행시켰다.
출발 전 나는 세르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증인 인장의 진위와 권한이 끊긴 시점에 관한 마계 공식 감정 의견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하루 뒤 답을 주겠다고 했다. 마왕을 상대로 세금을 확인하는 일을 시작한 뒤, 우리는 어느새 마계의 회계사와도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루카스가 웃었다. “징수관님, 국경 건너 친구가 생기셨네요.”
“친구는 아니고 거래 상대지.”
“그 사람도 세금 안 내면 잡으실 거죠?”
“법이 정하면.”
소년은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 만들기 참 어렵겠어요.”
나는 말없이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정직한 계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대화까지 재미있게 하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브란트와 경비병 두 명을 동행시켰지만 무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문실 가까운 초소에서 대기하게 했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진술하러 오는 것인지 확인하기 전부터 포위할 이유는 없었다.
수문실은 물소리가 컸다. 오래된 돌계단 아래에는 장작만 한 나무 조각들이 떠내려갔다. 셀딘 라르크는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수척했고 코트 자락이 젖어 있었다. 그는 에리카를 보자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에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대신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는 조사관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당신 이름으로 작성된 문서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셀딘은 주머니에서 인장 보관실 출입 확인서를 꺼냈다. 삼 년 전 특정 날짜마다 자신이 서류를 운반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 문서에는 다른 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서명했다는 것이다.
“누굽니까?”
“제 서명을 흉내 낸 사람이요. 제가 본 건 군무차관 보좌관실에서 사용하는 사본뿐입니다. 제 이름을 인장실 기록에 붙여놨더군요.”
“군무차관이 직접 시켰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대부분 지시는 관리인 대리에게서 왔습니다.”
그가 내민 목록에는 각 날짜와 전달처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칸에는 ‘검은 깃털’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기관이 자기 손으로 작성한 사본이었다. 원본 대조가 필요했지만 여러 문서와 일치하는 시각이 있었다.
에리카가 낮게 물었다. “제 아버지께 보고서를 전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셀딘이 어깨를 떨었다. “그분이 기다린 건 알아요. 그런데 제 상관이 말했습니다. 보고서를 넘기면 왕국의 방벽이 멈출 거라고. 수천 명이 죽을 거라고.”
“그 말을 믿었습니까?”
“믿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했으니까.”
에리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기다렸다. 수문실의 물소리만 커졌다.
“제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셀딘은 울먹였다. “방에 불이 붙었다는 건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불을 놓았는지는 몰라요.”
그 대답은 에리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다른 화재에 대해 들어본 적은요?” 나는 물었다.
셀딘이 놀라 나를 보았다. “두 번째 불은 없었어야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숨을 멈췄다.
“설명해 주십시오.”
“회계실 화재가 나면 문서 보관동을 비우라고 지시받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보관동의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던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 기록이 남을까 봐 뒤쪽에도 불을 붙였습니다.”
“누가 지시했습니까?”
“관리인 대리라고 들었습니다. 이름은 못 봤습니다.”
나는 수첩을 펼쳤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술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체포할 근거가 되려면 그날의 지시서와 목격자를 찾아야 했다.
셀딘은 마지막으로 금속 원판 하나를 꺼냈다. 카르디온이 가져온 복제품 인장과 닮았지만 표면의 깃털 길이가 정확히 같았다.
“이건 제가 보관하던 진짜 인장입니다. 원래는 보증인 대리가 직접 들고 다녀야 했는데, 삼 년 전 계약 이후 제게 맡겼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의 증거도 이 안에 있습니다.”
“인장을 보존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들고 있었던 것만으로 모든 위조를 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셀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호와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서명했다. 우리는 그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경비병이 호송한 것은 피의자를 몰래 감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공개적으로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재무청으로 돌아오자 세르나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진짜 인장을 보자 얼굴빛이 달라졌다.
“이건 우리 쪽에서도 사라진 물건이다.”
“정식 보증인 인장입니까?”
“아니다. 이 인장은 퇴출된 관리인에게 잠시 부여했던 대리 권한의 표식이지. 권한은 백 년 전 끝났다. 그런데 내부 저장 주문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군.”
세르나는 인장 옆의 홈을 가리켰다. 아주 작은 문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동의한 범위에서만 문구를 해석해 보자, 일정한 금액이 모일 때마다 자동으로 다른 계정으로 정산하도록 작성된 오래된 주문이었다.
“그럼 누가 돈을 빼갔는지 알 수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인장이 승인한 거래 번호만 남는다. 수취인 이름은 별도 보관고에 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세상 어디나 장부를 둘로 나누어 놓으면 추적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때 에리카가 말했다. “장부를 둘로 나눈 이유가 뭘까요?”
“한쪽이 없어져도 다른 쪽을 살리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서로 확인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죠.”
나는 세르나에게 마계 보관고 원본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조건을 내걸었다. 왕국이 비공식 방벽세 징수를 즉시 중단하겠다는 공적 약속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동안 자료만 내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건 저희도 조사 중인 사안입니다. 해당 징수의 법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임시 중지하고, 이미 낸 사람에게는 수령 증빙을 접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나디아와 상인 대표가 증언서를 보내왔다. 국경 초소 부관이 다시 돈을 걷으러 나타나려 했지만, 감사를 알리는 게시문을 보고 돌아갔다고 했다. 아직 피해액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불법 징수 의혹을 공개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다치지 않는 날이 늘고 있었다.
왕실 회의록에는 방벽세를 누가 승인했는지 기록돼 있지 않았다. 국왕은 정식으로 제정된 세목이 아니라는 보고를 듣고 분노했다. 그러나 나는 일단 화부터 내는 명령은 만류했다. 국경 경비대가 받던 돈을 갑자기 끊으면 일부 병사들은 실제 식량도 구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럼 부당한 징수를 계속 두라는 말이냐?” 왕이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불법적으로 걷던 돈은 중지하되, 필요한 경비는 정식 예산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웬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다음 달 국경 경비 예산에 결손이 생깁니다.”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아직 모릅니다.”
“그럼 모르던 돈을 끊으면서 국고가 얼마나 부족해지는지 먼저 계산해야겠네요. 부당한 금액을 걷던 사람의 손에 병사 식량까지 맡기지는 말고요.”
브란트가 경비대 일일 배식 기록을 제출했다. 식량이 실제로 소요된 양과 비공식 방벽세 수납액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어디로 간 돈인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다시 드러났다.
왕은 문서를 오래 읽다가 말했다. “나는 왕인데도 내 나라의 통행료가 얼마인지 몰랐군.”
“이제는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백성에게도 공개해 주세요.”
그는 한참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에 필요한 건 더 무서운 징수관이 아니라, 징수관이 아니어도 볼 수 있는 장부였다.
왕은 그날 밤 비공식 방벽세 징수를 임시 중단시키는 명령을 재가했다. 조사 결과 적법한 세금이 존재한다면 정식 법률에 따라 고지하도록 했다. 나는 그 문구에 만족했다. 누구든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었으니까.
세르나는 약속을 확인하자 장부의 두 번째 페이지를 건넸다. 정산 계정 이름은 알아볼 수 없는 고대어였다. 루카스가 번역을 시도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사람 이름이 아니에요.”
“그럼?”
“왕국 남쪽의 땅 이름이에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
나는 지도를 펼쳤다. 그곳에는 삼 년 전에 폐쇄한 옛 조폐소가 표시돼 있었다.
왕국이 조폐권을 잃을 뻔한 장소와, 사라진 방벽 유지료가 향한 장소가 겹쳤다.
제1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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