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벨의 기록은 오래된 소방서 뒤편 창고에 있었다. 그는 삼 년 전 두 번의 화재 현장에 있었고, 첫 번째 불을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말은 오래되면 다른 사람이 붙인 설명으로 덮인다. 나는 그에게 자신의 메모와 남이 정리한 조사보고서를 구분해서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사벨은 낡은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하루에 불이 두 번 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첫 불이 꺼진 줄 알았는데 안에서 다시 붙은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는 군무청 곡물창고의 벽을 그렸다. 왼쪽에서 올라온 연기, 북쪽 문을 열었을 때 보인 불씨, 급식실로 연결된 복도를 표시했다. 첫 화재의 원인은 여전히 미확정이었다. 두 번째 발화 시점에는 다른 위치에서 불빛을 보았다는 목격이 있었지만, 독립된 방화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사벨은 바람의 방향까지 기록해 두었다.
에리카는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조용했다. 부친이 조사하다 숨진 장소를 지도의 선으로만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괴로울 것이다. 나는 그녀가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선택은 그녀가 해야 했다.
“계속 보겠습니다.” 에리카가 먼저 말했다. “아버지가 무엇을 확인하려 했는지 모른 채 결론을 듣는 건 더 싫어요.”
이셀은 그날 구조대가 인계받은 상자에 대해 기억하는 범위를 다시 진술했다. 벨란 감사관이 상자를 건넸다고 했지만, 그 안의 문서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상자의 바깥에 적힌 번호가 검은 장부 제1권 목록의 번호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감정에서 나왔다. 제2권과 혼동하면 안 됐다. 예정 인계가 실제 인계로 바뀐 서류 한 장이 세 해 동안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사벨은 화재 직전 검증소에 설치됐던 가열판의 수리 기록도 가져왔다. 검증소의 가열판을 군무청 창고와 같은 곳에 납품한 업체의 이름이 있었다. 단순한 거래 경로의 중복인지, 두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별개 문제였다. 수리일과 사고일 사이에는 몇 주의 간격이 있었다. 나는 기술 감정인에게 실제 발화 가능성과 장치 이동 경로를 따로 검토하도록 했다.
나는 부친의 메모를 보는 에리카에게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부터 설명했다. 소방대원 이셀은 대피할 때 생긴 연기 자국을 보여 줬지만, 그가 기억하는 사람의 수와 사망 처리 명단의 수는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 혼란한 현장에서는 구조된 사람이 다른 경로로 옮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있다고 실제 사망이 확인된 것은 아니고, 구조 기록에 이름이 없다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마이렌의 비공개 신원 정정과 다른 노동자의 생존 여부를 다시 뒤섞지 않았다.
사벨은 첫 번째 발화 뒤 소방대가 곡물창고의 동쪽 문을 열려 했으나 열쇠가 없어 시간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의 수첩에는 문이 잠겨 있었다는 표기만 있고, 누가 잠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에리카는 침을 삼켰다. 나는 그 문에 관한 유지보수 서류와 경비 근무표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단지 문이 잠겼다는 사실이 곧 계획적인 살인이나 방화의 증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피 시간을 지연시킨 설비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을 따질 수 있었다.
오후에 사벨은 두 번째 발화 위치를 확인하던 소방대원이 다쳤다고 했다. 그는 이름을 공개해도 되는지 먼저 그 동료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왕국의 관료들은 때로 모든 조사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피해자의 치료 기록과 개인정보를 지키면서도 책임을 조사할 수 있어야 했다. 사일라는 연락 경로와 보호된 진술 방식을 별도로 마련했다.
에리카는 부친이 남긴 메모의 마지막 글귀를 가리켰다. ‘보관자 이름을 바꾸지 말 것.’ 그 문장은 다른 잉크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구간 바로 앞에 있었다. 우리는 먼저 원래 글귀와 후대에 추가됐을 문구를 나눠 감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부친이 실제로 쓴 문장이라면 그는 오래된 보관자와 현재 권리자를 혼동하는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그의 사망 동기였다는 결론까지는 아직 너무 멀었다.
브란트가 법원 청사의 화재 대피 문을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그곳에서도 증거 창고를 열쇠 하나로 막아 두고 있었다. 사벨은 잠깐 웃었다. “예전 일을 조사하다 오늘 같은 사고가 나면 안 되지요.” 우리는 기록을 감정하는 동안 실물 보관실의 안전을 개선하도록 공식 요청했다. 수사와 예방을 같은 서류에 적되, 예방 조치를 누군가의 범죄 자백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점심에는 모로가 면담에 응했다. 그는 자신이 당시 군량미 중복 계상 문제를 보고했다는 기존 진술을 유지했다. 그가 가져온 사본에는 ‘증빙 대조 전 신규 정산 금지’라는 문장이 있었다. 문제는 그 아래 붙은 글씨였다. 다른 필체처럼 보이는 문장에 ‘정산 완결’이라고 쓰여 있었다. 모로는 자신이 붙인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 부인을 인정 사실로 쓰지 않고 진술로 기록했다. 필체·잉크·보관 경로가 확인돼야 했다.
“그날 누가 불을 질렀는지 알고 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모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버님께 자료를 건넨 건 사실입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제가 본 게 아닙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모른다고 말한 것을 유죄의 증거로 만들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가 제출한 자료의 원본이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확인했다.
오후에 사일라가 새 보존목록을 보여 주었다. 벨란 감사관이 구조 직전에 맡긴 상자의 포장끈이 검은 장부 제1권의 오래된 책끈과 재질이 비슷하다는 예비 감정이었다. 두 끈이 같은 한 가닥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원본이 불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 문서에 적힌 모든 금액이 지급된 것도 아니었다. 왕실 방벽 유지료 720금화 승인, 그중 480금화 출금, 260금화 보전, 나머지 140과 80의 경로는 여전히 따로 조사해야 했다. 미출금 240은 도난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었다.
“숫자가 너무 많군요.” 사벨이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상한 일을 숨기기 편합니다.” 내가 답했다. “비슷해 보이는 금액을 한데 더하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안 받은 돈과 보관 중인 돈은 둘 다 회수할 대상이 아닙니다.”
해질 무렵 에리카가 부친의 메모를 다시 펼쳤다. ‘첫 번째 불이 길을 막았고, 두 번째 불은 봉투를 옮기던 사람들을 흩어 놓았다.’ 문장은 부분적으로 판독됐지만 정확한 작성 시기와 필자가 미확정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사건의 그림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봉투를 옮기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남겼다. 어떤 봉투를, 어디로 옮겼는가.
사일라가 마지막 자료를 찾아왔다. 삼 년 전 창고 밖에서 수거한 젖은 운송표에 검증소를 거쳐 강변에서 반송한다는 표시가 있었다. 그 끝에는 아주 짧은 단어가 남아 있었다. ‘대체 보관.’ 나는 다시 한번 그 말의 위험을 느꼈다. 대체 보관은 누군가 대신 보관할 장소를 마련한다는 뜻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 문서에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대신 갖는다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문장이 변한 길을 좇다 보면 불이 난 날의 누군가와 지금의 인쇄소가 만나는 지점이 있을지도 몰랐다.
밤늦게 에리카는 내 방 문앞에 섰다. 마치 부친의 죽음에 관한 모든 설명을 오늘 안에 듣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한 말은 달랐다. “원인을 아직 모른다고 써 주세요. 대신 그날 누군가가 사람을 구하려 했다는 기록은 빠뜨리지 말아 주세요.” 나는 수첩에 그 말을 적었다. 불의 책임은 반드시 밝혀야 했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마지막 행동을 서둘러 범인의 증거로 바꿀 수는 없었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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