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자신의 이름을 오르센이라고 밝혔다. 왕국과 마계의 경계에서 마차를 몰던 시절에는 이름보다 운송패 번호가 더 자주 불렸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패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닳은 가죽에는 작은 구멍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그 패를 당장 증거품으로 빼앗지 않았다. 사일라가 그의 동의를 확인하고 사진부터 남겼다. 수레꾼의 생계와 신분은 금속의 번호보다 중요했다.
“언제 그 원통을 실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날짜를 정확히 외우지는 못합니다. 큰 비가 온 뒤였어요. 제방 돌이 무너져 모두 우회하던 해였습니다.”
“삼 년 전 화재가 났던 해입니까?”
“그보다 앞인지 뒤인지는 장부를 봐야 합니다.”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든 기억을 흐릿한 이야기로 치부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가 말한 비를 특정 연도에 끼워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수레꾼에게 차를 건네고 그의 진술과 당시 운송계약을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가 기억하는 날에는 창고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원통을 들어 본 뒤 받지 않겠다고 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반송 확인표를 작성했다. 이유는 수령기관의 대표자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통의 수량이나 표면 상태를 확인한 사람은 있었지만, 그것이 공동 증언의 적법한 최종 수령인지 판단할 권한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얼굴은 기억나지만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특히 확인표를 쓰던 사람이 왼손으로 종이를 눌렀다는 건 기억합니다. 오른손 손등에 화상 자국이 있었거든요.”
나는 곧바로 사일라를 바라보았다. 부친의 화재 기록을 조사하는 에리카 앞에서 손의 화상 자국을 사람 이름처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오래된 운송인의 기억과 현재 누군가의 손등을 연결하려면 훨씬 단단한 근거가 필요했다. 사일라는 관찰 사실과 추정 가능성을 별도 문장으로 적었다.
오르센은 차를 마시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운송품이 무거웠는지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원통보다 감싼 천이 더 무거웠습니다. 비에 젖었거든요.” 그는 자신이 원통 안을 열어 본 적은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나는 그 말을 반복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한 사람에게 더 자세한 내부 설명을 요구하면, 나중에는 그가 보지 못한 그림까지 상상하게 될 수 있었다.
관리인이 내민 창고 일지에는 도착 예정 물품이 실제 도착 물품보다 많았던 달들이 있었다. 그게 모두 횡령은 아니었다. 산사태와 국경 검문 때문에 돌아간 수레도 있었고 장부를 잘못 쓴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모든 미도착 사례를 일괄 범죄 신고로 만들지 않았다. 오래된 공문에 적힌 예외 처리 규정을 먼저 확인했다. 창고 실무를 했던 사람들이 ‘예외’를 일상적으로 처리했을 가능성도 조사 대상이었다.
에리카는 자신이 어린 시절 부친에게 들었다는 말을 잠깐 꺼냈다. “아버지는 납품을 못 받은 날에도 빈칸을 지우지 않으셨어요. 다음 날 누군가 그 물건을 찾으러 오면, 못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 한다고 하셨죠.” 나는 그녀가 그 기억을 법정 증거로 제출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왜 우리가 오늘의 보관표를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지 설명하는 말로 남겨 두었다.
그때 바깥에서 국경 관문 근무자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노인이 오래된 운송패를 지닌 사실은 확인했지만, 아직 과거 운송을 공식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지적이 맞다고 인정했다. 패의 진위가 감정되고 당시 지급 장부와 대조되기 전까지는 진술을 뒷받침하는 실물이 하나 늘었을 뿐이었다. 오르센은 실망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가 자기가 말한 범위에서만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창고 안에 남은 보관표에는 ‘미반환’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르센의 진술에 따르면 원통은 실제로 창고 문턱까지 왔다가 다시 실려 갔다. 그렇다면 미반환은 창고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원래 보관자에게 돌아가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두 해석을 옛 계약의 정산 절차와 대조했다.
세르나가 마계에서 보내온 봉인 사본에는 반송의 도착지를 적는 칸이 둘이었다. ‘경계 임시 보관실’과 ‘최초 위탁자에게 알린 날’. 첫 번째 칸이 채워져 있어도 두 번째 칸이 비어 있으면 의무가 끝나지 않았다. 로흐가 보낸 드워프 공방의 설명도 비슷했다. 금속을 맡긴 장인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보관자는 임의로 새 소유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었다.
“세 가지 문서가 같은 법을 뜻한다는 건 아닙니다.” 나는 팀에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원통을 만졌다는 사실만으로 권리가 이전됐다는 주장은 약해집니다.”
오르센의 운송패에는 국경 관리소에서 펀치로 뚫은 작은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브란트는 그것이 마지막 검문을 뜻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용도를 확인하기 전까지 통과 사실로 쓰지 말라고 했다. 패를 찍은 공구의 규격은 조사할 수 있었다. 구멍 하나로 사람의 경로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배웠다.
점심 무렵 창고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국경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 우리를 보고 찾아온 것이다. 그는 최근 ‘국경 보관권 연장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마차 통행이 제한된다는 안내지를 받았다고 했다. 안내지의 발신자는 삼우 문서대행의 제휴 사무소였다. 법원이 이미 일부 강제징수를 중지했는데도 민간 전단은 그 결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돈을 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안 냈습니다. 대신 물건을 싣는 날을 이틀 미뤘습니다.”
나는 그 지연 때문에 손해가 있었을 수 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청구된 은화 세 닢을 받은 돈처럼 계산하지 않았다. 피해를 정확히 계산하지 않으면 법정에서는 오히려 힘을 잃었다. 상인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단을 제공했다. 우리는 신분 보호 요청을 접수하고 종이의 인쇄소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오후에 에리카는 낡은 창고장의 계산대 뒤에서 작은 홈을 발견했다. 서랍 안에는 가늘게 접힌 접수표 두 장이 있었다. 한 장은 원통 수량을 확인한 표, 다른 한 장은 운송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적힌 표였다. 둘 다 받는 사람의 확인란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필사본에는 두 장의 번호가 합쳐져 ‘수령 완료’로 표시돼 있었다. 번호의 일치가 동의의 일치를 뜻한다고 누군가 가르친 모양이었다.
“이게 제삼 결제소가 붙잡고 있던 논리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두 장을 하나로 세면 완료가 돼요.”
“하지만 첫 장은 물건을 봤다는 뜻이고, 둘째 장은 돌려보냈다는 뜻이죠.”
그녀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부친이 남긴 검은 장부의 제1권에는 실제 인계가, 제2권에는 예정 인계가 따로 적혀 있었다. 다른 문서에서 반복된 착시였다. 누가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어떤 착시가 돈이 되는지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오르센은 떠나기 전 자신의 마차 장부를 집에서 찾아오겠다고 했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이동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웃으면서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법원은 그의 집까지 보존관을 동행시키기로 했다.
그날 저녁, 오르센이 기억하는 원통의 마지막 행선지를 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창고가 아니라 강변의 세탁소로 갔습니다. 봉인을 젖지 않게 말려야 한다고 했어요.”
강변의 세탁소. 나는 곧바로 예전 장갑 세탁 기록을 떠올렸다. 세탁소가 같은 장소인지, 운송인이 같은 시대의 일을 기억하는지는 확인 전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로로 발견한 기록이 마침내 같은 강변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제1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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