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금속함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세 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상자 안에 실제 보관 기록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다는 점, 일부 사본은 다른 시기에 작성된 흔적이 있다는 점, 그리고 제12석과 연결된 자동 입회 기록이 당사자의 동의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밖의 문제는 아직 심리 중이었다. 세 문장뿐인 중간 보고서였지만, 나는 그것이 종전의 수많은 거짓 확신보다 나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제삼 결제소의 대리인이 추가 문서를 들고 왔다. ‘최초 수령자 실명 확인’이라는 제목 아래 수많은 이름이 열거돼 있었다. 나는 그 명단의 작성 경위부터 물었다. 대리인은 옛 공동 보관함 목록과 현대 주민대장의 유사한 이름을 기계로 대조했다고 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동명이인, 후손, 오역, 직책명과 사람 이름의 혼동을 확인한 흔적은 없었다.
“그 명단을 시민에게 보냈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직 내부 검토 자료입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법원 보존 범위 안에 두십시오. 실존 인물들의 주소나 신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출석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재판관은 요청을 받아들였다. 서류는 봉인됐고, 당사자 공개 동의 없는 주민 기록을 민간 권리 주장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임시 명령이 내려졌다. 누구의 정보가 이미 유출됐는지, 손해가 있는지는 별도 조사하기로 했다.
그사이 로흐와 세르나는 금속함의 두 판을 대조했다. 첫 번째 판에는 함을 맡은 사람의 직무만 남아 있었고, 두 번째 판에는 ‘후속 보관 지정’이라는 최근에 사용된 표현과 비슷한 압인이 있었다. 두 판이 한때 같은 상자에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처음부터 함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는 여전히 확정 판독을 할 수 없었다.
“원본이 남아도 사람의 이름이 남지 않을 수 있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이름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가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르나가 답했다. “하지만 그 의도조차 고대 자료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책상에 놓인 검은 장부 제1권과 제2권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두 권이 같은 결론을 향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1권은 실제로 맡겨진 물건의 이동을 기록하려 했고, 제2권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을 일정표처럼 적어 놓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 차이가 사실이라면 제2권으로 권리 양도를 주장하는 순간 미래의 예정이 과거의 거래로 변한다. 그것은 장부가 아니라 함정이었다.
오후에 리엔은 새로운 실험을 제안했다. 제삼 결제소가 쓰던 판형에 ‘보관 담당’이라는 고대 직책을 입력하면 현대 출력물의 ‘수령 권리자’로 바뀌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법원은 원본을 건드리지 않는 복제 장치에 한해 시험을 허락했다. 하엘이 인쇄판을 복제하고, 엘다르가 자동 전송 규칙을 하나씩 끊었다. 그 결과 특정 약어를 입력하면 출력칸의 명칭이 바뀌는 현상이 재현됐다.
모두가 숨을 삼켰다. 재판관은 즉시 물었다. “그렇다면 실제 위조범이 확인됐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런 출력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누가 해당 약어를 넣었는지는 작업 기록으로 따로 밝혀야 합니다.”
리엔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이 고친 장치가 악용됐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후회는 자백을 대신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제출한 작업 일지와 공용 계정 접속기록을 독립 감정에 넘겼다.
시장에서는 일부 소비자가 공동 보관 기관의 확인서 없이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임시 안내가 배포됐다. 왕국의 정상적인 영업 허가와 민간 인증은 서로 다른 절차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안내문에 환급이 모두 끝났다는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확인했다. 은화 한 닢을 낸 빵집 주인은 아직 돈을 받지 못했고, 다른 상인들의 납부 여부도 각각 달랐다. 제삼 결제소의 잘못된 인쇄가 밝혀져도 민간 금고 안의 동전은 저절로 주머니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 삼우 문서대행의 공용 계정 기록을 맡은 담당자가 나타났다. 그는 여러 직원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계를 한 사람만 사용했다고 단언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 출력된 작업시간과 실제 직원의 출퇴근 기록을 겹쳐 보여 주었다. 두 자료가 어긋나는 구간이 있었다. 어떤 작업은 퇴근 후에 예약 실행됐고, 어떤 출력은 전날 입력된 정보로 다음 날 나왔다. 나는 작업 시각이 곧 입력자 위치나 신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정리했다.
재판관은 접속기록에서 가장 자주 나타난 번호를 가리켰다. ‘장갑 0’이라는 표식이었다. 대리인은 이것이 공동 관리인의 전통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엘다르는 장치에서 사용하는 작업 묶음 이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쪽이든 그 번호만으로 고대 기관의 대표권도 현대 직원의 형사책임도 확정할 수 없었다. 나는 원본 계정 권한과 작업자별 인증 방식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리엔은 자신의 기술 작업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졌다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자발적이었다. 그러나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 한마디를 듣고 모든 거짓말의 범인을 찾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질문을 멈췄다. 리엔이 문구를 바꿨다는 사실, 그 문구가 이용된 사실, 이용을 명령하고 돈을 거둔 사람이 누군지는 각각 다른 사건이었다. 반성과 법적 책임 사이에는 증거의 다리가 필요했다.
나중에 그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제가 그때 그냥 일을 거절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나는 확답하지 않았다. “당신이 알고 있던 것과 몰랐던 것을 따져야겠죠. 그리고 지금은 실제 자료를 보전하는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 일지 중 빠진 날짜를 표시했다. 그날 대리인이 누구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새 진술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진술이 사실인지 나중에 검증해야 한다고 적었다.
저녁 회의에서 에리카는 시장 피해 기록을 가져왔다. 돈을 낸 사람, 청구만 받은 사람, 신분 확인 비용 때문에 영업을 멈춘 사람을 세 범주로 나눴다. 나는 각각의 수납증빙과 손해 증빙 수준을 표시했다. 피해자들의 입을 하나의 총액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지금 갖고 있는 고통이 숫자로 늦게 인정받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법정에서 금전을 돌려받으려면 무엇이 실제 지급됐는지를 구분해야 했다.
저녁 무렵 에리카는 부친의 서재에서 가져온 메모의 필적 감정 중간 결과를 읽었다. 일부 획은 기존에 확인된 필체와 닮았지만, 마지막 문장의 잉크가 다른 시기에 더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오래된 편지를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놓았다. “아버지가 한 말과 다른 사람이 나중에 한 말을 한 장으로 읽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그래서 그분이 무엇을 알았는지는 계속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날 밤 사일라가 보관함의 내부 바닥을 새로 촬영한 사진을 가져왔다. 금속판이 놓였던 밑바닥에는 가늘게 새긴 단어가 있었다. ‘최초’라는 말 뒤에 글씨를 지운 홈이 남아 있었다. 감정관은 그 위에 덧씌운 작은 금속판을 아직 떼지 않았다. 함을 만든 사람이 처음 새겼을 수도, 누군가 최근에 손댔을 수도 있었다. 나는 불빛 아래에서 홈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찾던 이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덮였을지도 몰랐다. 혹은 정반대로, 보호를 구실로 숨겨 놓았을지도 몰랐다.
사일라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이 홈의 아래에는 짧은 글자가 더 있습니다. 따로 열람 허가를 받으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허가서를 작성하면서 사건의 제목을 다시 읽었다. ‘최초 수령자의 이름.’ 이제 그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끝까지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제1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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