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문 민간 금고는 왕실 건물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낮은 돌담 안에 낡은 장부 상자와 배달 수레가 놓여 있었고, 입구에서 장부를 맡기려는 상인 둘이 서로 순서를 양보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세금을 걷는 기관이 아니라 민간의 물품 보관업소라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국왕의 문장이 없다고 불법인 것은 아니고, 오래된 문장을 걸었다고 공공기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금고지기는 법원 보존 협조장을 읽고서야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그가 들고 온 장부에는 과거 보관품 번호와 맡긴 사람의 직업이 적혀 있었다. 구형 수령표 사본은 직접 열람이 허가된 대상이 아니었기에 독립 기록인이 먼저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그는 얇은 바닥판에 끼워진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표제에는 확실히 ‘보관 담당자’라고 적혀 있었다. 제삼 결제소 전사본의 ‘권리 수령인’과 달랐다.
에리카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법원 감정관의 동의를 얻지 않은 복제나 외부 반출을 금지했다. “이 사본이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는지, 누가 맡겼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 말할 수 있습니다.” 금고지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납품받은 물건을 정직하게 보관한 것이지 삼백 년 협약의 판결관이 아니었다.
그때 시장에서 온 빵집 주인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어제 민간 조합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 낸 은화 한 닢을 돌려주려면 수령권 갱신 신청을 해야 한다.’ 이번에도 새 서식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는 서류에 도장을 찍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대신 내용을 설명하고 변호 조력을 신청할 권리를 안내했다. 그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게를 비우고 여기까지 오면 손해가 더 커집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돈을 돌려준다면서 또 무슨 권리를 넘기라고 합니다.”
법원 중재실 담당자가 문제의 조합과 연락했다. 조합은 은화 한 닢이 정상적인 민간 보관 계약의 수수료였다고 주장했다. 빵집 주인은 그런 계약을 설명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나는 누가 맞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실제 은화 한 닢이 민간 수납함에 들어간 사실은 이전 조사에서 확인됐지만, 그 돈이 어떤 의무를 수반하는지는 별도 심리 대상이었다. 다만 반환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무관한 권리 양도 서식을 내미는 행위는 즉시 조사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에리카가 내 옆에서 작은 수첩을 펼쳤다. “왕국에서는 사람들이 계약서를 읽지 않아서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군요.” 나는 수첩 위에 놓인 수령표를 봤다.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읽어도 거절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 있죠. 계약을 모르고 서명한 책임만 묻는 건 쉬운 일이에요. 무엇을 설명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오후에는 빵집 주인과 조합 수납 담당자가 별도의 중재석에 앉았다. 담당자는 수납 사실을 인정했지만 직접 환급 결정을 내릴 권한은 없다고 했다. 대신 돈이 있는 보관함의 번호를 제시했다. 법원 기록인은 그 번호가 이전 영수증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봉인 보전을 요청했다. 나는 현금을 우리가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국고 수납으로 잡으면 안 되고, 당사자 반환 절차가 따로 필요했다.
중재는 그날 끝나지 않았다. 계약의 적법성과 환급할 사람의 대표권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빵집 주인이 실망하자 나는 도표를 보여 주었다. 납부 사실, 돈의 보관 장소, 법적 반환 의무, 실제 지급까지 네 칸. 오늘은 두 번째 칸이 새로 확인됐다. 아직 돈을 돌려받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조합이 ‘돈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말할 여지는 줄었다.
북문 금고의 사본은 다음 날 정식 감정을 받게 됐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작은 수선 흔적이 있었다. 금고지기는 여러 세대 동안 장부를 보관하며 오래된 종이에 덧댄 천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수선이 사실이라면 옛 내용과 새 보강재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사본의 겉모습이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작 시기를 결론 내리지 않았다. 반대로 새 천이 있다고 옛 글을 전부 위조라고 취급하지도 않았다.
로흐는 금속함의 문양과 사본의 구멍 위치를 비교했다. 모양이 일치하는 곳이 하나 있었지만 가공 폭은 조금 달랐다. “같은 도구를 썼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같은 규격을 따랐을 가능성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신중함이 또 한 번 우리를 살렸다.
금고 안에는 세대를 넘어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나이 많은 장부 관리인은 물건을 찾으러 오는 손님에게 항상 두 가지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누가 맡겼습니까? 그리고 누구에게 돌려드려야 합니까?” 대부분의 상인은 그 질문을 귀찮아했지만 그는 한 번도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정겨웠다. 오래된 협약의 문장이 오늘 법적 효력을 갖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의 물건을 지키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는 매우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삼 년 전의 한 일을 기억했다. 밤늦게 급하게 찾아온 손님이 봉인 서류를 넘겨 달라고 요청했는데 수령인 이름이 명부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부 관리인은 거절했고, 손님은 봉투를 다시 가져갔다. 누구였는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날의 기록이 있는지 물었다.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증언뿐이었다. 벨란 감사관의 죽음이나 금속함의 설치와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금고 창문에서 시장 거리를 내려다보니 왕국의 작은 채소밭이 보였다. 농부는 들판에서 일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팔고 있었다. 한 아이가 물값을 놓고 달려가자 농부는 동전을 세어 보고 “한 닢이 더 많아”라고 불러 세웠다. 아이는 멋쩍게 웃고 동전을 받아 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빵집 주인의 은화 한 닢을 떠올렸다. 잘못 받은 돈을 돌려주는 일에는 거대한 협약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권리를 크게 말하는 사람들은 작은 동전 하나를 돌려주는 데 복잡한 도장을 요구했다.
에리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새 환급 안내문 초안을 적었다. 실제 납부 여부, 수납 주체, 계약상 반환 근거와 신청 방법을 쉽게 설명하는 글이었다. 나는 마지막에 중요한 문장을 넣었다. ‘반환을 요청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권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이 법원의 확정 판결은 아니라고 표시했지만, 시민들이 적어도 또 다른 빈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알아야 했다.
그날 오후 금고지기는 방문 기록 한 장을 더 보내왔다. 손님이 남긴 주문번호 옆에 운송 수레의 크기가 적혀 있었다. 같은 크기의 수레가 왕국에 얼마나 많은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나는 브란트에게 조용히 조사하라고 부탁했다. 무고한 마부들이 시장에서 쫓겨나는 소동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우리는 금고지기의 증언을 받았다. 그는 몇 달 전 낯선 손님이 구형 수령표의 사본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손님은 납품 주문번호를 보여 주었으나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금고지기는 팔지 않았고 영수증도 발급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방문 기록에 주문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만 적었다. 나는 그 숫자가 삼우 문서대행의 납품 번호와 이어지는지 확인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숫자가 나와도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또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돌아오는 수레에서 에리카가 물었다. “왜 오늘은 오래된 종이보다 빵집 주인 문제에 더 오래 매달리셨어요?”
“그 사람은 오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내가 답했다. “우리가 처음 수령자의 이름을 찾는 동안 지금의 수령자는 자기 돈을 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녀는 한참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말이 없었다.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수수께끼를 푸는 일보다 느렸다. 그러나 누군가의 하루를 더 기다리게 만들었다면 우리가 찾는 진실은 절반짜리였다. 밤이 되자 사일라의 전갈이 도착했다. 금고 사본의 ‘보관 담당자’란 옆에 보이던 지워진 획이 완전히 다른 직책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명부를 바꾼 사람보다 먼저, 명부가 원래 무엇을 가리키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제17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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