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함의 뚜껑은 다음 날 오전에야 완전히 열렸다. 사일라는 마치 접힌 날개를 펼치듯 덮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내부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먼저 살폈다. 에리카는 입술을 깨물었고 루카스는 연필을 쥔 손을 멈췄다. 모두가 이름 하나를 기대했다. 하지만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이름이 아니라 세 겹으로 접힌 천이었다. 그 안에는 얇은 금속판, 작은 봉랍 조각, 그리고 두 부분이 잘린 수령표가 있었다.
사일라는 물건을 꺼내는 순서와 위치를 번호로 붙였다. 손끝으로 건드리는 순간 떨어질 수 있는 가루까지 별도 봉투에 담았다. 로흐는 금속판 가장자리의 삼중 원형 문양을 가리켰다. 131호 서한에 쓰였던 세 원과 닮았지만 안쪽의 작은 선 하나가 달랐다. “옛 문양의 변형일 수 있고, 나중에 오래된 양식을 본뜬 것일 수도 있어.” 그가 말했다. 나는 서한과 판을 같은 계열 자료로 대조할 수는 있으나 같은 기관이 보냈다고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했다.
수령표의 앞면에는 보관물에 관한 두 줄이 적혀 있었다. ‘불참자의 진술 대조 보류’와 ‘거절 통지 원본 봉인’. 뒷면에는 접수 장소와 담당 직무가 있었다. 번역을 맡은 세르나는 오래된 마계 문장에서는 ‘받음’과 ‘맡음’이 다른 동사라는 점부터 설명했다. 왕국 사본은 두 동사를 모두 ‘수령’으로 옮겨 놓았고, 그 차이가 사라지면서 접수자가 어떤 재산을 받은 사람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이게 최초 수령자란 뜻인가요?” 루카스가 물었다.
“첫 번째 보관 담당자라는 뜻에 더 가깝지.” 세르나가 말했다. “하지만 단어 하나로 결론을 내리면 안 돼. 원문이 진짜인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수령표 끝에 사람의 이름처럼 보이는 글자가 있었다. 오래된 문자의 획 가운데 두 개는 마모됐고, 가운데 부분은 최근 덧칠한 것처럼 짙었다. 법원 기록인은 그 글자를 공개 발언에 넣지 않았다. 나는 모두에게 잠시 조용히 있으라고 말했다. 명부를 보고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누군가의 후손이나 동명이인이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를 받게 될 수 있었다. 아직 그 이름은 개인인지 직책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버지도 오래된 명부의 이름을 들고 다녔으리라. 그리고 잘못된 이름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증언을 강요당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말하지 않는 부분을 기록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침묵이지 내게 주어진 단서가 아니었다.
더 놀라운 물건은 수령표 아래의 납작한 금속판이었다. 그것은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 칸에는 ‘보관 인수’, 오른쪽 칸에는 ‘당사자 권리의 원상 유지’가 각인돼 있었다. 그 아래에는 서로 다른 표식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었다. 인수칸에는 마모된 압인 흔적이 있었으나 오른쪽 칸에는 압인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작성된 제삼 결제소 자료에서는 두 칸이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보관함을 인수한 순간 권리도 함께 넘겨받았다고 읽을 수 있는 서식이었다.
나는 즉시 새 도표를 그렸다. 함을 인수한 사실, 그 안에 담긴 거절 통지가 유효하게 보전됐는지, 그 통지가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그리고 당사자의 권리가 어떻게 유지됐는지는 서로 다른 네 질문이었다. 한 칸을 도장으로 찍었다고 나머지 세 칸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이 당연한 원칙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백칠십 번 넘게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루카스가 검은 장부 제1권의 목록을 가져왔다. ‘고리함’이라는 낡은 항목 옆에 접수 기록 한 줄이 있었다. 실물 판의 문장과 몇 단어가 일치했으나 필체와 목록 번호의 작성 시기가 일치하는지는 아직 감정 전이었다. 제2권은 같은 번호를 ‘예정 인계 완료’라고 적고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칠판에 크게 썼다. 실제 맡음, 앞으로 맡을 예정, 맡았다고 주장함. 세 문장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조작 의혹이 보이는 듯했다.
오후 법원 부속 기록실에서는 세 가지 번역안이 나란히 붙었다. 왕국의 말로 옮기면 ‘수령’, 마계에서 쓰는 말로 옮기면 ‘맡음’, 드워프 공방의 납품 관습으로 옮기면 ‘관리 아래 둠’에 가까웠다. 그중 어느 하나가 모든 시대의 문서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세르나는 문장 앞뒤의 목적어를 함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록의 목적어가 사람인지, 봉투인지, 거절을 적은 서류인지에 따라 문장의 뜻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는 칠판에 세 줄을 적었다. ‘봉투가 도착했다.’ ‘봉투 안의 거절이 적법하게 전달됐다.’ ‘봉투 속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첫 줄이 사실이라고 다음 두 줄이 자동으로 사실이 되지 않는다. 루카스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록상 수령자란 말을 봤을 때 다음 문장은 ‘무엇을 받았습니까?’여야 하겠네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에게 처음 세무 장부를 가르쳤을 때 그는 합계가 맞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합계에 들어간 숫자가 누구의 것인지부터 물었다.
에리카는 조용히 수령표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인수란의 압인과 권리유지란의 빈칸이 정확히 어떻게 달랐는지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그림을 증거로 넣기 전에 ‘참고 도식’이라고 표시하자고 했다. 잘 그린 복사화가 원본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켜야 했다. 에리카는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어떤 결론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 약속이 그녀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시장에서는 인증서를 파는 상인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권리를 샀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샀다는 사실과 정당한 권리를 취득했다는 사실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화를 냈으나, 자기 물건이 무엇인지 증명할 기회는 주겠다고 하자 거래 영수증을 내밀었다. 우리는 이를 바로 압수하지 않고 법원의 제출 절차를 안내했다. 절차를 지키는 데는 시간이 들지만, 그래야 나중에 누구든 같은 자료를 믿을 수 있다.
법원 심리실로 이동했을 때 제삼 결제소의 대리인이 먼저 이의를 제기했다. “문서가 진짜라면 오래된 보관기관의 계승권이 확인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 “무엇을 계승했다는 말입니까? 금속함을 돌볼 권리입니까, 다른 사람의 거절을 무시할 권리입니까, 세금을 거둘 권리입니까?” 대리인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재판관은 각 주장의 법적 근거를 따로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밖에서는 소문이 더 빨랐다. 시장 한 귀퉁이에는 벌써 ‘최초 수령자 찾기’라는 팻말이 걸렸다. 신청료를 내면 자신의 이름이 옛 명부에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는 상인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브란트에게 팻말을 뜯어 오라고 시키지 않았다. 대신 판매 대장의 보전과 허위 공적 인증 광고 여부를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를 확인해야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할 수는 없었다.
마이렌과 메라의 보호기관에는 금속함 자료와 관련된 비공개 의견 요청이 전달됐다. 두 사람 중 누구도 과거 통지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라고 요구받지 않았다. 마이렌은 공개 심리 참석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메라는 아직 결정을 보류했다. 나는 그 답을 그대로 기록했다. 보류는 거절이 아니고,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당사자의 선택을 결과에 맞추어 다시 이름 붙이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밤이 되자 세르나가 별도로 대조한 고대 문장 해석을 가져왔다. ‘받는 사람’에 해당하는 단어는 세 나라 공동협약의 다른 장에서도 보관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쓰였다. 반면 권리의 귀속을 뜻하는 문장은 명확한 서약과 당사자 표식을 요구했다. 오래된 법을 오늘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심리해야 했다. 그러나 적어도 처음부터 사람을 인계받는 제도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약해졌다.
나는 금속함 목록의 제목에 붉은 선을 그었다. ‘최초 수령자의 이름’이라고 쓰인 현대 표제를 ‘최초 보관 담당자 추정 기록’으로 고쳤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는지 아직 모르지만 그 한 글자 차이가 사람의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잘린 수령표의 반쪽 끝에서 숫자 하나가 발견됐다. 제삼 결제소의 현행 결제 번호가 아니라 삼 년 전 벨란 감사관의 조사일지에 있던 분류 번호와 같았다. 이제 그 반쪽이 언제 잘렸는지를 알아야 했다.
제1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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