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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169화
PAYLUA ORIGINAL · 제169화

169화. 불탄 기록의 빈자리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4,037자

오프라인 책장
벨란 감사관의 사망 기록은 삼 년 전 화재의 날짜를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망이 확인된 시각, 화재가 시작된 시각, 문서청에서 서류를 넘겨받은 시각은 서로 달랐다. 내가 그 세 시간을 한 종이에 적자 에리카가 표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동안 그녀가 붙잡고 있던 것은 ‘그날 밤’이라는 하나의 시간이었다. 이제 그날 밤 속에 서로 다른 수많은 선택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봐야 했다. “이 기록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겠죠?” 그녀가 말했다.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어요.” “그럼 왜 계속 조사하나요?” “죽음의 경위를 확인할 권리가 있고, 남겨진 문서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데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테이블에 손을 얹었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잠시 서류를 덮었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속도와 수사에 필요한 속도가 늘 같지는 않았다. 새로 발견된 것은 불에 그을린 목재 조각이었다. 소방 기록에서는 두 번째 보존실 발화 뒤 무너진 문틀의 일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나무의 표면이 젖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방화의 증거로 볼 수도 있고 진화 과정에서 물이 닿은 흔적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최근 보존실 가열판의 연기 사고를 이 자료에 끼워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사고의 기술 감정은 따로 진행 중이었다. 사일라가 검은 장부 제1권의 보존 원본을 확대했다.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그을음이 깊게 들어가 있었는데, 책갈피로 발견된 작은 문서에는 그을음 위로 잉크가 번져 있었다. 누군가 화재 뒤 문서를 넣었다는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보존 과정에서 원본과 책갈피가 함께 물에 젖었다면 같은 흔적이 생길 수도 있었다. 감정관은 종이의 섬유 방향과 잉크 성분을 더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범인을 찾을 수 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지금은 사건의 순서부터 찾고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대답을 말하면서도 속이 쓰렸다. 수사관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다음 조사 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목재 출처 대조, 소방 기록 원본 확인, 장부 보존 경로, 그리고 과거 야간 출입자의 비공개 진술. 확정되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설명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날 오후, 과거 초소에서 근무하던 다렌이 보관창고를 찾아왔다. 그는 최근 기록에서 제12석 관련 수레 반출 번호가 예전 재난 구호품 반출 표식과 겹친다고 말했다. 그런데 번호를 대조해 보니 앞 두 자리는 같은 규격이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세모난 바퀴를 가진 수레 역시 특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가 가져온 자료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증명도 수사를 앞으로 움직인다. 적어도 오래된 화재 현장의 수레가 지금의 신청서 운송 수레였다는 성급한 추정 하나를 지울 수 있었다. 늦은 오후에는 마이렌의 보호기관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 급식실 견습이었다는 사실과, 벨란 감사관이 누군가를 구조하려 했다는 이전 진술을 유지했다. 그러나 새로 발견된 회의실 의자와 관련해 공개 증언을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더 자세한 진술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거절은 누군가의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증거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선택이었다. 메라는 보호기관을 통해 아주 짧은 질문만 보냈다. ‘제12단위가 아직 제 이름으로 되어 있나요?’ 나는 그녀에게 공개 기록상 어떤 표기가 있는지 확인해 줄 수는 있지만, 그 기록만으로 그녀의 권리가 넘어갔다고 인정된 것은 아니라고 회신했다. 서류의 오류가 당사자의 불안을 만드는 데 얼마나 빠른지 새삼 알았다. 그녀는 비공개 열람만 요청했고, 우리는 그 범위 안에서 자료를 준비했다. 한편 리엔은 최근 보존실 가열판의 이동 경로를 다시 제출했다. 수리점에서 보존실까지 세 번 인계돼야 하는 장치가 중간 장부에 두 번만 기록돼 있었다. 누락된 한 번이 실제 미인계인지 기록의 결락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장치가 삼 년 전의 불에 관여했을 리는 없지만, 최근 누가 보존자료를 손상시킬 위험을 만들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 나는 오래된 비극을 현재의 범죄를 설명하기 위한 편리한 장식으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 질 무렵 에리카가 부친의 일기에서 읽었던 문장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서명을 얻지 못하면 다음 사람의 이름을 적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냥 제가 어렸을 때 외운 말이에요.” 나는 그녀가 기억해 준 문장을 고맙게 받았지만 바로 장부의 원문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자발적으로 기억을 진술했다는 사실과 정확한 출처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표시했다. 추억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추억의 자리도 지켜야 했다. 사일라는 원본 보존함에서 마침내 작은 봉투 하나를 찾아냈다. 내부 목록에는 ‘첫 번째 발화 때 구조된 공동 증언자의 부재 기록’이라고 되어 있었다. 봉투를 열기 전에 법원은 메라와 마이렌의 비공개 부호가 들어 있을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우리는 봉인 번호와 외형만 확인했다. 서두른 개봉으로 보호 대상의 이름이 시장까지 흘러나가는 일은 없게 해야 했다. 에리카는 그 봉투 앞에 섰다. “아버지가 여기에 뭔가를 남긴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열어 보면 알겠죠?” “열어도 모를 수 있어요. 그래도 열어야 하는 이유가 정당하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절차를 밟겠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는 실망하지 않았다. 옛 기록이 전부 진실을 알려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자리를 남겨 둔 흔적일지 모른다는 것을 이해한 듯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봉인 목록에 서명했다. 우리가 서명한 것은 봉투를 확인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누가 어디에 앉았다는 사실도, 누가 누구를 대신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법원 보존실의 낡은 가죽 장갑에는 젖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로흐는 방염사가 물을 머금었을 때 생기는 수축 흔적을 설명했지만, 물이 화재 현장에서 묻은 것인지 이후 보존과정에서 묻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흔적 하나에 운명을 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흔적은 스스로 사건의 순서를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장갑의 현상 확인표에 감정 가능한 부분과 훼손 우려가 있는 부분을 각각 그려 넣었다. 에리카는 부친의 사무실에 작은 은화 저금통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화재 피해자 가족에게 개인적으로 도울 돈을 모으던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기억에 기대어 방벽 유지료의 미확인 지급액을 기부금으로 돌려서도, 부친이 전부 착복한 것으로 몰아서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추억이 조사에 어떤 힘도 보태지 못하는 듯해 속상하다고 했다. 나는 추억이 법정에서 돈의 행방을 증명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지 알려 주는 힘이 있다고 답했다. 마이렌의 보호기관 담당자는 서류 공개 범위를 정할 때 한 가지를 특별히 요청했다. 과거에 생존 정정을 받은 사실 자체가 다시 공개 소환의 이유로 쓰이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법원에 신원 정정 자료와 화재 진술 자료의 접근권한을 분리해 달라고 신청했다. 한 사건을 해결하려고 모은 정보가 다른 사건에서 사람을 압박하는 도구로 변하는 일은 이미 충분히 봤다. 그날 밤 나는 한국 시절의 기억을 적은 수첩을 다시 확인했다. 어떤 기억은 예전보다 희미했고, 문장 사이에 빈칸이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정밀 열람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금속함 속의 정보였지만, 알고 싶다는 욕망을 누군가의 허가 없는 수령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저들과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방식은 그 선택을 지키는 것일지도 몰랐다. 밤에 궁정으로 돌아오자 루카스가 법원 보존 명부의 추가 사본을 들고 있었다. 같은 봉투 번호가 두 번 기재돼 있었다. 첫 기록은 ‘부재 보전’, 두 번째 기록은 ‘미출석자 대리 인계 예정’. 글씨가 서로 다른 시대의 것이었는지는 아직 감정 중이었다. 나는 탁자 위에 두 사본을 놓았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부재를 지키던 칸이, 나중에는 누군가의 권리를 가져가는 통로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음 날 제12석의 의미를 두고 법원의 본격 심리가 열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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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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