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의 부친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검은 장부는 두 권이었다. 한 권에는 실제로 넘긴 물건과 확인된 인계인이 기록돼 있었고, 다른 한 권에는 인계했다고 주장하는 날짜와 예정 수령자가 적혀 있었다. 검은 표지가 같고 필체도 닮아 있지만, 둘을 같은 종류의 장부라고 취급하면 사람의 재산이 장부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넓은 탁자 양쪽에 놓고 가운데에 빈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여기에는 무엇을 적을 건가요?” 에리카가 물었다.
“두 권에서 동시에 확인되는 사실만.”
“그렇게 적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남지 않으면 그게 지금의 사실입니다.”
사일라는 법원 입회자의 서명을 확인하고 보존 복사본을 넘겼다. 원본은 봉인 상태를 유지했다. 첫 권의 다섯 번째 묶음에는 ‘장갑, 서명 없는 수령 보류, 임시보관’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제2권의 같은 번호에는 ‘공동 증언 수령 예정, 제12석’이 적혀 있었다. 두 기록을 나란히 보면 시간 순서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잉크의 침착 상태와 필사 순서는 아직 감정 중이었다. 제2권에 나중에 누군가 번호를 맞췄을 수도 있었다.
나는 기존 조사표를 가져와 칸을 여섯 개로 나눴다. 보관 요청, 실물 인도, 보관실 도착, 접수 기록, 권리자 승인, 최종 인계. 첫 권은 앞의 네 칸에 단서를 제공했고, 두 번째 권은 마지막 두 칸에 대한 주장만 담고 있었다. 검은 글자들이 모두 사실이었다 해도 마지막 승인이 빠져 있다면 권리가 옮겨갔다고 할 수 없다.
에리카는 부친의 것으로 알려진 붉은 밑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려다 멈췄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이런 줄을 긋는 걸 봤어요. 실수를 덮지 않으려고 일부러 표시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이게 부친의 글씨라고 확신하나요?”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 “닮았습니다. 하지만 닮은 것 이상은 아닙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죽은 사람의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추억을 법정의 필적감정처럼 다루라고 요구하는 건 잔인하다. 하지만 추억을 증거로 바꾸는 일도 다른 종류의 잔인함이 된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문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검은 장부의 뒷부분에는 낯익은 숫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왕실 방벽 유지료 승인 720금화, 그중 출금 확인 480금화, 옛 조폐소 봉인 보전 260금화, 아직 최종 수령처가 확인되지 않은 140금화와 80금화. 차액 240금화는 승인과 출금 사이의 간격이지 그 액수만큼 누군가 훔쳤다는 결론이 아니었다. 나는 돈의 줄을 그을 때 서로 다른 분류를 섞지 않았다. 카르디온의 신탁 금고 관련 340금화는 평가 서식의 수치로 남겨 두었다. 한 장부에서 모든 금액이 튀어나온다고 모든 돈이 같은 주머니에 들어간 건 아니다.
루카스가 제2권의 아래쪽에 적힌 자그마한 표기를 발견했다. ‘보관료 정산 기준일.’ 그 옆에는 30일이라는 계산표와 화재 삼 주년을 맞추는 기계 눈금 번호가 있었다. 앞서 법원은 그 출력만으로 조세권이나 강제징수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나는 눈금 번호가 있다는 이유로 보관료 전체를 불법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왜 실제 수령이 확인되지 않은 자료에 정산 기준일이 먼저 입력됐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테오른은 제2권의 그 페이지가 자신의 오 년 전 필사 대조표와 용어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제삼 결제소에서 자문을 맡고 있으므로 의견을 낼 때마다 이해관계를 밝혔다. ‘확인됨’과 ‘확인 예정’이 뒤바뀐 부분, ‘수령인’이 ‘승인권자’로 바뀐 부분은 별도 자료에서 교차 확인해야 했다. 사일라는 그의 발언을 기술적 참고 의견으로만 기록했다.
오후에는 부친의 사망 관련 소방기록 사본이 도착했다. 첫 번째 창고 화재와 두 번째 보존실 발화의 시기를 구분한 표가 있었다. 오래된 소방 기록의 결락 부분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나는 최근 가열판 과열 사고와 두 화재를 한꺼번에 같은 범인의 행동으로 꾸며 내지 않았다. 같은 곳에 불이 여러 번 났을 때는 오히려 서로 다른 원인을 숨길 가능성이 있었다.
에리카는 혼자 잠시 복도에 나갔다. 내가 따라나서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도둑이었으면 어쩌죠?”
“그 가능성을 배제할 증거도, 인정할 증거도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은 왜 늘 그런 대답만 해요?”
“지금 제가 위로하겠다고 한쪽을 확정하면, 나중에 당신이 사실을 확인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이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대신 정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창문에 비치는 왕도의 지붕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화를 내고, 서류 때문에 울고, 그런 날에도 가게를 열었다. 왕국은 판결문 밖에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기록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두 권을 교차 대조하던 사일라에게서 얇은 책갈피를 건네받았다. 책갈피에는 '인계 불성립을 이유로 증언자의 권리가 소멸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작성 시기와 필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12석의 빈 의자가 왜 비어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해석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장부에 끼워 넣지 않고 별도의 봉투에 보존했다. 누군가가 나중에 발견했다는 이유로 원래 장부의 일부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록실에서는 같은 번호의 서류를 묶는 방식도 의견이 갈렸다. 오렐은 보관 번호가 같으면 한 사건으로 처리하기 쉬울 거라고 했다. 사일라는 그 방법이 보전 과정에서는 편리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권리관계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는 사건번호는 공유하되 자료의 출처와 법률 효력 칸은 분리하도록 했다. 파일 이름 하나를 줄이기 위해 판단의 독립성을 지울 수는 없었다.
에리카는 오래된 감사원 서고의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을 가리켰다. 부친이 퇴근할 때 늘 그 길로 걸어왔다고 했다. 어느 날은 손에 장갑 한 짝을 들고 와서 수선을 맡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기억을 듣고도 보관실 장갑이 부친의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장갑은 오래된 업무 표식이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가 기억한 개인의 장갑과 법정에서 다루는 보관 장갑은 구별해야 했다.
사일라는 검은 장부 제2권의 제본 실이 한 차례 교체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책을 보수하는 일 자체는 부정행위가 아니다. 보존 업무의 필요 때문에 책을 해체했다 다시 엮기도 한다. 다만 교체 전후의 페이지 순서를 기록한 작업표가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기록이 없으면 서류가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그 서류를 근거로 타인의 권리를 옮기겠다는 주장은 더 엄격히 검증해야 했다.
나는 장부 표지에 금액 하나를 적으려는 루카스를 말렸다. 그는 전체 의심 금액을 한 줄에 표시해 상관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보전금과 지급처 미확인 금액, 미출금 승인 잔액을 합산하면 마치 이미 사라진 현금이 되는 문제가 있었다. 루카스는 붉은 선으로 제목을 지우고 대신 '서로 다른 단계의 금액'이라고 썼다. 숫자 하나를 줄이는 일보다 숫자를 늘어놓고 오해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웠다.
밤에는 재무청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시장의 ‘공동 보관 질서 유지비’ 청구서를 들고 온 사람이 열여섯 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지불을 증명하는 영수증은 아직 두 장뿐이었고 그마저도 실제 수령자를 확인해야 했다. 나는 검은 장부의 표지를 덮었다. 오래된 문구를 해석하는 동안 현재의 돈이 움직이고 있었다. 빈 의자를 조사하는 이유는 결국 거기에 앉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제16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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