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 왕실 회계 법정의 기술 보전관들은 제12석 회의실에 들어왔다. 나는 문 앞에서 명부를 확인했다. 참석자는 재판관 대리인, 양측 장치 감정인, 보존 담당자, 시설 관리인, 에리카의 법률 대리인, 그리고 나였다. 에리카는 오지 않았다. 본인의 신청이 없다고 밝힌 사람이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회피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일이었다.
회의실 한쪽에는 빈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름표를 떼지 않은 이유를 재판관 대리인이 물었다. 나는 증거 상태 보전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름표가 출석 사실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는 별도 공고를 입구에 붙이도록 했다. 그러자 시설 관리인이 보존용 천을 이름표 위로 덮었다. 덮어 둔 종이는 여전히 증거였고, 덮어 둔다고 내용이 승인되는 것도 아니었다.
기술감정은 사람을 의자에 앉히는 대신 나무 인형을 놓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로흐가 연결 장치의 아래쪽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의자 다리의 쇠고리는 고대 의식 장치가 아니라 압력 감응판의 덮개였다. 누군가 앉으면 미약한 전류가 통하고, 별실의 기록용 인쇄판에 숫자 하나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리엔은 전류 경로를 추적하며 두 개의 선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좌석 점유 확인, 다른 하나는 구형 대조함의 예약 작업을 깨우는 신호였다.
“누가 설치했습니까?” 재판관 대리인이 물었다.
“시설팀에 접수된 설치 의뢰서는 있습니다. 최종 결재자란은 아직 공란입니다.” 관리인이 말했다.
“그럼 결재되지 않은 장치가 법원 시설에 들어왔다는 겁니까?”
“그렇다는 주장과, 공란이 남은 사본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구분해 주십시오.”
나는 기록관이 그 문장을 그대로 적는 것을 보았다. 질문의 속도보다 증거의 속도가 느린 날이었다.
인형을 의자 위에 올렸다. 인쇄판은 ‘제12석 점유’라는 표시를 내보냈다. 다음 줄에 ‘대조 진행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법률상 출석 완료, 동의, 인계 승인이라고 적힌 부분은 없었다. 그런데 별도의 민간 주문 견본에서는 같은 두 줄이 ‘제12석 입회 확인’으로 축약되어 있었다. 글자가 줄어드는 순간 뜻이 바뀌었다. 나는 두 출력을 나란히 촬영했다. 무엇이 기계의 원래 정보였고 무엇이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편집된 안내인지 확인할 실마리가 생겼다.
루카스는 실험을 멈추지 않고 의자 위의 인형을 치웠다. ‘점유’ 표시는 사라졌지만 예약 인쇄판은 여전히 ‘대조 진행 가능’을 유지했다. 기록 초기화에 늦게 반영되는 구형 장치의 특징일 수도 있었다. 반면 누군가 그 지연을 이용해 실제 참석자 없이 입회록을 생산하려 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나는 실험의 성공을 수사 성공으로 착각하지 않았다. 방금 확인된 것은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지 누가 틈을 이용했는지가 아니었다.
기술관은 종전 예약 작업을 별도 전원에서 재현했다. 입회록이 인쇄되기 직전 ‘제12석 기록을 첨부할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가 나타났고, 이어 ‘일단 보류’라는 선택지가 떴다. 여기서 보류를 누르면 서류가 삭제되지 않고 대기함에 쌓였다. 그런데 시험 설정 중 한 개에서는 보류가 ‘잠정 확인’으로 출력됐다. 리엔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 기능은 제가 고친 거절 문구와 닮았지만 장치 자체는 다릅니다. 동일한 지시자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닮은 것은 어디입니까?”
“상태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사용자는 많은 글자를 입력하는데, 바깥으로 나갈 때는 한 단어만 남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잘 기억했다. 이 사건을 만든 것은 마법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짧은 말들의 구멍이었다.
재판관 대리인은 실험에서 출력된 입회록을 공개 문서로 유통하지 못하게 하고 시험 표시를 남겼다. 관련 민간 전송판의 예약 자료도 보전됐다. 에리카의 이름은 복제본에 일부만 표시했다. 증명하기 위한 복제가 또 다른 위조 도구가 되는 역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법원은 기술 검증 결과를 본안 책임과 분리한 채 시설 장치 사용을 중지했다.
그날 낮, 시장에는 이미 ‘제12석 출석 완료’라는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 빈 의자 사진을 그려 붙인 선전지를 돌린 것이다. 그림 속 의자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제 모든 미결 보관료가 확정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선전지 한 장을 회수해 제작소 표시와 유통 시간을 기록했다. 실제 채무가 확정됐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가게 문 앞에서 작은 금고를 들고 서 있었다. 종이가 종이를 증명하는 동안 누군가는 돈을 먼저 챙기려고 했다.
나는 재무청의 공고문을 직접 작성했다. ‘오늘 법원은 인형을 이용한 장치 시험을 시행했습니다. 실제 사람의 출석이나 동의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보관료 및 세금에 대한 새 징수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문장은 재미없었다. 재미있는 선전지와 경쟁하기에 한참 모자랐다. 그래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시장 입구와 보관청 양쪽에 같은 글을 붙였다.
에리카는 공고문 사본을 받고 짧은 회신을 보냈다. ‘빈 의자에 앉지 않은 사실도 기록해 주세요.’ 나는 그녀가 요청한 만큼만 공식 기록에 추가했다. 비공개 사유를 묻지 않았다. 거절의 이유를 설명해야만 거절이 유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험에 쓰인 나무 인형을 치우자 시설 관리인이 작은 천을 꺼내 감응판을 닦았다. 그가 남긴 물수건의 수분 때문에 숫자가 한 차례 흔들렸다. 리엔은 즉시 시험을 멈추고 습기에 따른 오작동 가능성까지 기록했다. 같은 장치라 해도 설치 환경과 유지보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우리가 본 한 번의 재현을 모든 과거 출력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공고문을 붙이러 나갔을 때 아이들이 의자 그림을 보고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빈 의자 그림 위에 조약돌을 놓더니 '이제 앉았다'고 소리쳤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어른들의 장치가 하는 일도 비슷했다. 무언가 올라갔다는 감각을 사람이 온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이가 끝나면 돌을 내려놓았다. 어른들은 그 돌을 근거로 타인의 돈을 청구하려 했다.
시장 게시판에서는 조합을 지지하는 상인도 만났다. 그는 정말로 물품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업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요구까지 부정하지 않았다. 정상 보관 비용을 지급하고 계약을 이행할 권리와, 동의하지 않은 서류로 재산을 이전당하지 않을 권리는 함께 지킬 수 있어야 했다. 잘못된 청구를 막기 위해 시장 전체의 물류를 멈춰 세우면 결국 작은 가게부터 손해를 입는다. 그래서 법원의 명령도 특정 자동 승인 절차를 중지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오렐은 공고문을 붙이고 돌아와 인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누군가 사진을 그려 갔다고 말했다. 나는 누가 그림을 옮겼는지 추측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문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고문 맨 아래에 두 문장을 덧붙였다. '빈 의자는 사람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청구서를 받았다면 실제 계약과 지급 기록을 확인하십시오.' 어려운 심리 내용을 요약하기엔 부정확할 위험이 있었지만 법원 결정의 범위 안에서 필요한 경고였다.
해 질 무렵 리엔은 의자의 감응판 아래에서 작은 금속판을 발견했다. 부착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생산 표기가 있었다. 그러나 금속판의 규격이 30호 계수판과 닮았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설치한 것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쇄된 주문 문구였다. ‘시험용 좌석. 열두 번째는 비워 둘 것.’ 장치가 사람이 앉는 순간만 작동한다면 왜 열두 번째를 비워 두라는 지시가 필요했을까. 나는 그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원본 시설 장부를 다시 요청했다. 의자 아래의 쇠고리에는 누군가 새로 칠한 검은 기름이 묻어 있었다. 근처에는 지우려다 남은 손가락 자국이 하나 있었다.
제1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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