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석 회의실은 법원 뒤편, 오래된 보관청과 이어지는 복도 끝에 있었다. 의자를 예약한 사람을 찾으러 갔지만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높은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긴 탁자 한쪽에만 닿았다. 열두 개의 의자 중 하나만 남았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열한 개가 창고로 돌아간 자국까지 바닥에 드러나 있었다. 남은 의자는 다른 의자보다 조금 낮았다. 오래된 어린이용 의자를 고쳐 만든 것처럼 등받이 아래에 낡은 보강목이 있었다.
의자에 붙은 이름표는 에리카 벨란이었다. 다만 이름 아래에는 ‘출석 예정’이 아니라 ‘도착 예정 확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다르게 읽었다.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준비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앉을 사람이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렐이 이름표를 떼려 하자 나는 먼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람을 모욕하는 표식이라도 증거물이 된 이상 성급히 없애면 누가 붙였는지 찾기 어려워진다.
회의실 관리인은 늦은 밤 호출된 데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름표를 보자 화를 접었다. “그건 제가 주문받은 글자가 아닙니다.” 그는 예약장이 아닌 작업장 지시표를 보여 주었다. ‘빈 자리 한 개 유지, 등받이 회수 금지.’ 이름을 인쇄하라는 주문은 별도로 없었다. 의자를 창고에 되돌리지 않은 이유도 단순했다. 마지막 자리의 보강목이 바닥에 묶인 쇠고리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쇠고리는 고대 유물처럼 보였지만 나사를 풀자 최근 표준 규격이었다. 로흐가 웃었다. “오래돼 보이는 것을 만드는 건 오래 걸리지 않네.”
“그럼 최근에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실험하려고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자리를 실제로 쓰려고 했을 수도 있지.”
나는 로흐의 대답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명확하지 않은 질문에 명확한 악당을 집어넣는 것은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지만 수사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관리인의 기록에는 두 가지 주문번호가 있었다. 의자 이동비와 이름표 인쇄비. 의자 이동비는 왕실 문서청의 시설비 예산으로 처리됐으나 아직 실제 지급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름표 인쇄비는 삼우 문서대행의 민간 주문장에 적혀 있었다. 비용이 다른 곳에서 나왔다고 지시자도 반드시 다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같은 사람이 두 주문을 낸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삼우 문서대행의 출고장에서 나디아를 만났다. 그녀는 이전 서류 묶음의 재단 크기를 대조해 준 적이 있었다. 오늘은 반송 상자에서 나온 종이띠 두 장을 펼쳤다. 한 장은 에리카의 신청서를 포장한 것으로 보이는 좁은 띠였고, 다른 하나는 ‘입회 대상 확인’ 표기가 인쇄된 작업 견본이었다. 두 띠가 같은 작업에서 나왔는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견본에는 주문번호 끝자리가 신청서 자동 전달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견본이면 누군가 실제 서류를 만들어 보기 전에 시험 인쇄했다는 뜻이죠?” 내가 물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린 종이의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본 주문과 같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디아가 답했다. 그녀는 내가 듣고 싶은 결론보다 공정의 실제 절차를 설명했다. “시험지에는 가짜 이름이 많이 올라와요. 문제는 그걸 진짜 서류에 쓴 사람이 누군지입니다.”
창고에서 일하는 청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름은 이드렌이었다. 임시 운송표를 분류하는 일꾼으로, 그날 저녁 출입패를 반납한 것으로 기록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출입패가 낮에 관리함으로 돌아간 것까지는 확신했다. 저녁에 다시 빌려 간 사람은 보지 못했다. 청년은 자신의 진술이 누군가를 바로 체포하게 만들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남의 죄까지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이드렌은 작은 일을 하나 더 기억했다. 출입패를 반납하기 전, 관리자가 말해서 뒷면에 두 줄을 적었다는 것이다. 첫 줄은 반납 시각, 두 번째 줄은 번호를 돌려받는 서랍이었다. 평소처럼 쓰고 돌아섰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장부에는 그날 임시 방문자 출입패가 아니라 '미반환 전송패'라는 별도 계정으로 처리돼 있었다. 이름을 바꾼 이유와 계정을 바꾼 사람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드렌이 물었다.
“지금 확인된 건 당신이 패를 반납했다는 진술과 장부 표시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반납했다고 쓴 게 없어질 수도 있나요?”
“있을 겁니다. 그래서 원본과 보관 경로를 확보할 겁니다. 당신의 말도 빠지지 않게요.”
그는 한참 후 자신의 업무수첩을 꺼냈다. 반납 시각이 적혀 있었지만 잉크가 번져 마지막 숫자가 읽히지 않았다. 나는 청년에게 남겨 두고 가라고 요구하지 않고, 동의를 얻어 사본을 찍었다. 원본을 가져가지 않은 이유와 사본의 한계도 적었다. 약한 사람의 유일한 증거를 빼앗아 오는 것으로 수사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에는 메라의 보호기관으로부터 통지가 왔다. 제12석 입회 요청서가 에리카뿐 아니라 비공개 증언자 목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메라는 공개 출석을 원하지 않았고, 마이렌 역시 새 호출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회의실을 꾸며 놓았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부르지 않았다. 보호기관에는 위조 의심 문서의 문구 중 필요한 부분만 전달했다. 문서 원문을 통째로 보내면 보호 대상의 비공개 부호가 다시 다른 전송함을 지나게 된다.
그날 저녁, 이드렌의 반납장 원본이 발견됐다. 서랍 번호 옆에는 연필로 작은 사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보관 담당자는 그게 ‘다시 쓸 수 있는 패’ 표시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나 붙일 수 있는 연필 표시였다. 그때 루카스가 예약 시스템의 출력 목록을 들고 뛰어왔다. 출입패 번호로 묶인 작업은 하나가 아니었다. 신청서 한 장, 이름표 한 장, 그리고 아직 출력되지 않은 입회록 한 장이 예약돼 있었다.
“입회록이라고?”
“네. 아직 의자에 앉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요.”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나는 회의실 예약장과 인쇄소 작업장을 따로 방문했다. 시설 직원은 열한 개 의자를 반납시키는 작업을 정상적으로 완료했다고 말했다. 그의 보수는 의자 개수와 운송 거리로 계산됐고, 의자에 어떤 이름이 붙는지는 결재 범위 밖이었다. 이런 작고 정직한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사건의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손쉽게 의심의 한복판에 서곤 했다. 나는 그가 남긴 영수증 사본에 '운송 완료'라고만 기록했다.
인쇄소의 오래된 절단 칼 옆에는 이름표 자투리가 모여 있었다. 누군가 연습한 듯 '에리카'의 두 번째 글자만 반복된 줄이 보였다. 하엘은 그런 자투리가 하루에 수백 장씩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자투리의 봉인 경로를 확보하기 전에는 동일 사건에 속한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름을 붙이는 일을 서둘렀던 누군가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남의 이름을 오탈자 없는 표준 문구로 만들겠다는 집착이 섬뜩했다.
나는 이드렌에게 일을 잃을까 두려운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불안해 보였다. 대신 보호기관의 무료 법률 상담 창구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었다. 자신의 일을 증언하는 사람에게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의심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이드렌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제가 죄인이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런 판단을 받기 전에도, 받고 난 뒤에도 절차는 있어야 하죠.”
문서청의 낡은 시계는 새 기록판보다 6분 늦었다. 보딘이 예전에 남긴 정비 표를 대조하니 정비 완료 시간도 실제 기록과 몇 분 어긋났다. 따라서 오전과 저녁의 순서가 분명한 일부 물건 외에는 분 단위 기록만으로 전후를 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자료가 절대 시간에 가깝고 어떤 자료가 단순 장치 내부의 순서인지를 분리했다. 사건의 범인이 시계를 속였는지, 시계가 원래 느렸는지부터 달랐다.
나는 출력 기한을 확인했다. 다음 날 정오였다. 누군가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사건의 기록을 준비해 놓았다. 기록 자체가 거짓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기록이 사실처럼 유통되기 전에, 무엇을 보고 ‘완료’로 처리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정오 전 법원의 감독 아래 예약 작업을 중지하고 자료를 복제할 허가를 신청했다. 회의실의 빈 의자는 그날 밤에도 그대로 두었다. 부재를 기록하는 자리에 누군가의 이름을 얹어 두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불길했다.
제16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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