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거절을 대신 보관해 주는 건 적법할 수 있습니다.” 재판장이 말했다. “그 보관증을 이용해 남의 권리를 처분하는 건 별개의 주장입니다.”
그날의 임시 심리는 법률 수업처럼 시작됐다. 경계 권리 복구 조합의 대리인은 새로운 판매 서식을 제출했다. 제목은 ‘미동의 사실 확인 보관 계약’. 거절 통지와 배달 기록을 관리해 주고 수수료를 받겠다는 내용만 읽으면 꽤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계약서 중간에는 위험한 조항이 있었다. 본인에게 연락할 수 없거나 본인이 응답하지 않을 경우, 조합이 거절의 도달 여부를 확정하고 다음 인계 후보를 선정할 수 있다는 문구였다.
나는 그 문구를 크게 읽었다. 방청석에서 몇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민간 업체가 우편물 도착 여부를 알려 줄 수는 있어도, 그 통지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증언자를 정할 수는 없다. 조합은 자신들이 절차를 관리할 뿐 누구의 권리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실제 광고에 ‘미수령 재산의 우선 대조권’이 쓰였음을 제출했다.
“우선 대조라는 말이 인계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조합 대리인이 항변했다.
“그렇다면 두 뜻을 혼동하게 만든 광고를 정정할 의사는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계약 상대방에게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재판장은 그 답변을 회의록에 그대로 남겼다. 그의 침묵이 곧 유죄 증거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민간 고객들이 무엇을 사는지 알 수 있도록 정확한 설명을 요구할 이유는 충분했다.
조합의 대리인은 다른 논리를 꺼냈다. “본인의 거절을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면 결국 누구도 일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공동 보관은 멈춥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렌의 보호기관이 만들어 준 세 장의 분리 기록을 냈다. 본인의 거절, 거절의 도달, 물품의 현상 보존. 세 장이 별도여도 기록은 움직였다. 증언자 개인의 의사를 공개하지 않아도 법원이 보전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절차가 모든 거래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완전한 해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는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만 말했다.
세르나는 증인석에 섰다. 마계에서 보증인이 서류 접수를 대신하는 일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보증인이 상대의 거절을 받고도 자기 마음대로 동의로 바꿔서 보고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코웃음 쳤다. “보증인을 다시는 고용하지 않지. 경우에 따라서는 재판도 받겠고.”
드워프 로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래된 신탁 금고에선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사람의 의무가 남는다고 했다.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은 시간을 세금처럼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는 말이었다.
에리카는 장부 숫자를 제시했다. 드래곤 카르디온 관련 340금화는 과거 평가액일 뿐 새로 납부한 세금이 아니다. 방벽 유지료 승인 720금화, 출금 확인 480금화, 그중 보전 260금화와 나머지 지급처 추적 문제는 민간 조합의 증명서 판매와 서로 다른 계정이다. 오늘 다투는 것은 조합의 미동의 확인 상품과 해당 서류에 따른 권리 이전 주장이다. 모든 미확인 돈을 한꺼번에 범죄수익이라고 발표할 수 없었다.
심리 도중 방청석에서 늙은 드워프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 경계 창고에서 물품을 맡긴 적이 있다고 했다. 허가를 받아 진술대에 선 그는 작은 영수증을 꺼냈다. 원본은 아니고 수십 년 전의 사본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인계가 연기될 경우 물건을 추가로 보관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는 그 비용을 냈지만 그때 돈을 받은 사람이 지금 조합인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
조합 대리인은 그 증언을 반겼다. “보시다시피 보관료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보관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 되는 건 보관물 번호도 없는 청구서입니다.” 재판장은 두 사례를 별도 심리하도록 기록했다. 드워프가 과거에 동의하고 낸 비용은 지금 다른 시민에게 낯선 채무를 붙일 근거가 아니었다.
그다음엔 북문 인쇄소의 바르크가 견본을 들고 나왔다. 원래 판에는 ‘보관자 확인 후 지급’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새 판에는 ‘보관자 미응답 시 확인 후 지급’이라고 되어 있었다. 누가 ‘미응답 시’를 더했는지는 주문 기록으로 확인해야 했다. 바르크는 자신에게 온 주문서에 따라 판을 만든 건 맞지만, 해당 문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검사하는 역할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의 책임도 제작 사실과 지시 내용, 고의 여부를 분리해 판단해야 했다.
나는 재판장에게 실제 고객 한 명의 사례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그 고객은 조합에 사진 한 장을 맡긴 적이 있을 뿐, 물품 상속권이나 감사관 지정권을 위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새 계약서에는 고대 보관물 인계 우선권이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고객은 그 문구가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계약했다. 조합이 그 권한을 줄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피해의 출발이 강제 수납이 아니라 잘못된 기대를 파는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 서기가 물었다. “진술한 사람들이 모두 돈을 돌려받는 겁니까?” 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숫자표를 펼쳤다. 납부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과 청구서만 받은 사람, 대리점을 통해 낸 돈의 최종 귀속이 미확정인 사람을 구분했다. 일부 계약은 실제 물품 보관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재판장이 이 구분을 확인한 뒤 환급 결정을 본안과 따로 두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방청석에서 불만 어린 탄식이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성급한 희망을 팔고 싶지 않았다. ‘오늘 무조건 돌려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멈추려는 업체의 광고 문구와 다를 게 없었다. 대신 납부 사실을 알 수 있는 영수증 보전 창구와 법원 심리 일정을 안내했다. 항의하는 상인에게도 언젠가 당신이 옳다는 말 대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설명했다. 그 설명이 지루하더라도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재판장이 조합 대리인에게 물었다. “그 계약으로 인해 다음 후보가 실제 인계를 받은 사례를 제시할 수 있습니까?”
대리인은 예비 승인 목록 여섯 건을 냈다. 실제 인수증 대신 자동 전송 기록이었다. 그중 두 건은 배달 실패, 한 건은 대상자가 거절 의사를 밝힌 기록이 있었다. 나머지 세 건은 확인이 필요했다. 숫자는 정직했다. 여섯 건의 종이가 있다는 것과 여섯 건의 인계가 있었다는 것은 다르다.
재판장은 명령을 내렸다. 조합이 미응답을 동의나 인계 승인으로 표시해 새로운 거래를 진행하는 행위를 기존 보전 범위 안에서 중지하고, 광고 문구를 임시로 바로잡도록 하라는 결정이었다. 적법한 순수 기록 보관 서비스까지 전부 금지하거나 모든 과거 계약을 무효로 판정하지는 않았다. 본안과 개별 반환은 따로 심리한다고 명확히 했다.
심리가 끝나자 루카스는 조합이 망한 것처럼 환호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눌렀다. “우리가 오늘 얻은 건 어떤 사람의 권리를 멋대로 거래할 수 없다는 임시 방어선이야. 아직 실제 접속자도 주문자도 모른다.”
재판장에게서 나온 정식 공문을 보며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 법적 승인을 얻어 내기 전에도 충분한 피해를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종이의 겉모양을 팔고, 기다림을 돈으로 바꿨다. 법원이 멈추게 한 것은 새로 움직이려던 권리 이전이었다. 이미 수수료를 낸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잃고 있었다.
청사 밖에서 낡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나를 기다렸다. 그녀는 확인서에 돈을 낸 시장 상인의 아내라고 했다. 남편이 수령하지도 않은 상자를 찾으러 다니다 가게 문을 닫은 날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그 상자가 무엇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연체료가 붙었다고만 해요.”
나는 그녀에게 아직 모든 청구가 불법으로 확정된 건 아니라는 말부터 하지 않았다. 먼저 실제 받은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물품의 무게도, 보관 주소도 없었다. 대신 ‘거절 확인 지연료’라는 이름과 금액이 있었다. 아래엔 익숙한 작업 부호가 찍혀 있었다.
‘장갑 0.’
제1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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