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렌의 봉투는 보호기관 입회 아래 보존되었다. 나는 내용을 궁금해했지만 뜯어 보자고 요구하지 않았다. 법원이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때때로 달랐다. 봉투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발송 기록을 확인하고, 그 종이가 정당한 통지인지 확인하고, 보호받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마이렌이 아예 응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보호 담당자가 전했다.
“그 결정을 보존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본인의 비공개 지시서를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다만 외부에 이름과 장소를 밝히지 않고도 효력이 있어야겠죠.”
법전에는 거절 통지의 원본 보관 규정이 있었다. 반면 새 기계에는 거절 버튼이 없었다. 동의와 미응답만 남기는 전송판을 누가 사용했는지도 조사 중이었다. 한쪽에선 종이가 말을 하고 다른 쪽에선 기계가 그 말을 지웠다. 서명하지 않은 순간을 남기려면 남겨진 말과 지워진 기록을 분리해야 했다.
재무청 조정실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세 장의 문서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마이렌이 출석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지받은 기록, 두 번째는 출석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비공개 의사 표시, 세 번째는 해당 의사가 보호 담당자에게 언제 도착했는지의 수령 기록이었다. 세 장은 목적도 보관자도 달랐다. 제삼자가 세 번째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해서 두 번째의 뜻을 바꾸지 못하도록 각 장의 상단에 그 사실을 명시했다.
루카스는 도장을 세 개나 찍으며 투덜거렸다. “서류를 덜 만들려고 한 수사였는데 종이가 더 늘었어요.”
“서류가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권리를 한 장에 몰아넣어 문제가 생긴 거야.”
에리카가 시범 서식을 들고 왔다. 서식에는 ‘확인된 범위’라는 별도 칸이 있었다. 본인의 의사는 보호기관이 확인하지만 공개 법정에는 ‘보호된 대상자가 법적 절차에 따라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만 알린다. 누가 거절했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해당 사건에 꼭 필요한 재판부와 담당자만 열람한다. 이런 구분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재판장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만 다른 소송에서 자동으로 적용되는 일반법이 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마이렌의 이미 인정된 열하루 임금 은화 여덟 닢과 구리화 일부는 별도 지급기록에 남아 있었다. 출석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 임금을 다시 돌려줄 의무가 생기지 않는다. 미확정 이틀치 임금과 야간수당 심리는 그대로 진행된다. 나는 그 내용을 보호기관에 분명히 전했다. 누군가 거절권의 가격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그 사람이 잃을까 두려워하는 생계였다.
오후에는 메라의 보호 담당자도 왔다. 메라의 제12단위 후보 원문에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 원문이 누가 작성한 것인지와 적법한 최종 수령이 있었는지는 아직 다투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비공개 진술은 유지하되 새로운 공개 재현 실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사를 못 하는 것 아닙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다른 증거를 찾으면 돼.” 나는 말했다. “필요한 증거를 사람에게서 끌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사람에게 빚을 지운 것처럼 굴면 안 된다.”
조정실 창가에 앉은 모의 신고인이 말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제 거절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마법국에서 파견된 기록 기사는 그 문장을 읽어 들이는 수정 구슬을 가져왔다. 구슬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소리가 잠깐 남았지만 그 기록만으로 법적 동의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실제 피해자를 실험에 부르지 않았다. 구슬을 통해서도 거절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음을 확인하는 데는 모형 진술이면 충분했다.
기사는 네 가지 경우를 시연했다. 거절을 한 적이 없는 경우, 거절했으나 문서가 분실된 경우, 거절이 제때 도착했으나 접수자가 기록하지 않은 경우, 거절을 접수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 표식을 바꾼 경우. 신형 전송판은 네 가지 모두를 한 가지 ‘미도착’으로 처리했다. 루카스는 숫자 네 개를 적고 그 옆에 굵게 ‘사람은 넷, 출력은 하나’라고 썼다.
“그럼 모든 거절을 구슬로 녹음하면 해결되지 않나요?” 그가 물었다. 기술자는 고개를 저었다. 구슬은 가까이 있는 목소리를 남길 수 있지만 발화자의 신분과 자발성을 무조건 알 수 없었다. 녹음에 이름이 들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직접 말했는지, 누군가 흉내를 낸 것인지, 강요받았는지는 분리해야 했다. 나는 장부의 기억을 열어 진실을 확인하자는 유혹을 느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법정에 제출할 수도 없는 능력의 결과로 타인의 권리를 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내가 피하려던 길이었다.
기록관은 보호기관에 쓰는 봉인 서식을 보여 주었다. 외부 공개용에는 개인의 거절 문구가 아니라 보호된 의사가 접수됐다는 정보만 남고, 원문은 법원의 제한된 심리에만 제공된다. 나는 해당 원문을 내 사무실에 복사해 두지 않았다. 중요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모든 개인정보를 모아 두고 싶어지는 순간이야말로 위험했다. 훗날 누군가 나를 믿지 않게 되었을 때도 그 자료를 회수할 수 있도록 보관 책임을 명확히 했다.
점심에 루카스가 모의 봉투 두 장을 들고 와서 손으로 짚어 보였다. 거절 통지는 비싼 봉투에 들어 있었고, 아무 말도 없는 종이는 싼 봉투에 들어 있었다. 그는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물었다. 나는 안에 든 뜻이 중요하지 종잇값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조합은 왜 종잇값을 그렇게 비싸게 받나요?”라고 했다. 나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종이로 사람이 행사할 권리를 대신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의 반송 대장을 보기 전, 우리는 제삼 결제소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거절을 미도착으로 재분류한 기록의 원본과 수정 요청 주체를 묻는 문서였다. 답변 기한을 정했지만 즉시 자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잘못 분류한 기록이 발견될 경우 정정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별도 안내도 넣었다. 조사와 처벌을 같은 줄에 놓지 않고, 절차를 고칠 수 있는 통로를 남기려 했다.
저녁 무렵 바르크가 낡은 견본의 뒷면을 읽어 주었다. 원래 ‘거절의 도달’은 문서를 받은 기관이 수령 사실만 확인하는 항목이었다. 그런데 삼우 문서대행이 전달한 새 판형에는 ‘거절의 미도달’이라는 다른 항목이 생겼다. 그 아래엔 작은 글씨로 ‘다음 후보 확인 절차 개시 가능’이라고 적혔다. 도달하지 않은 이유가 편지 분실인지, 주소 오류인지, 본인이 대답하지 않은 것인지는 구분하지 않았다.
나는 북문 배달소의 반송 대장을 요청했다. 그동안 거절 의사를 전달하려던 사람들이 종이와 주소 문제 때문에 얼마나 실패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반송 대장에는 수취인 부재, 잘못된 표제, 배달 지연이 서로 다른 항목으로 있었다. 기계의 판형에서는 그 모든 항목이 ‘거절 미도달’ 한 줄이 되었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은 것과 말을 했으나 전달되지 않은 것이 같은 의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연을 위해 문서청 직원은 익명 모형 봉투를 두 개 만들었다. 하나에는 ‘거절’이라고 적었고, 다른 하나에는 아무 말도 적지 않았다. 둘 다 일부러 존재하지 않는 창구 번호로 보냈다. 구형 기록에는 두 봉투 모두 배달 불능으로 남았다. 새 전송판에선 둘 다 ‘예비 인계 가능’이라고 뜨는 경우가 재현되었다. 나는 그 출력 화면이 실제 인계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감정서에 넣었다.
“그럼 다음 후보라는 것도 가짜인가요?” 루카스가 물었다.
“문구가 출력된 건 사실이야. 후보 지정이 적법했다는 건 아직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어.”
오늘의 검사에서 사람의 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기계가 사람의 거절을 어떻게 지웠는지 설명할 수 있는 길 하나가 생겼다. 사실을 알리자 마이렌의 보호 담당자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보낸 것은 허가를 구하는 편지가 아니었다. 거절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목적지에 닿지 않았다고 해서 거절한 사람이 동의한 것으로 바뀔 수는 없었다.
나는 개인 수첩을 펼쳤다. 한국에서 누군가 이의신청 기간을 놓쳤다고 한숨 쉬던 날을 기억했다. 그날 내가 어떤 답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모호한 기억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불확실’이라고 적었다. 진실의 장부를 정밀 열람하지 않았으므로 그 흐림을 오늘의 대가로 계산하지도 않았다.
밤이 깊은 뒤 반송 대장을 옮기던 기록원에게서 짧은 소식이 왔다. 세 달 전 ‘거절’로 접수된 봉투 하나가 같은 날 ‘무응답’으로 재분류되어 있었다. 그 봉투의 수신 창구는 왕실도 마계도 드워프도 아니었다. ‘제삼 결제소 외부 대조실.’ 그리고 수정 이력 맨 끝에는 사람 이름 대신 짧은 부호가 찍혀 있었다.
‘장갑 0.’
제15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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