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 회계 법정의 재심리 날, 사람들은 우리가 마침내 범인을 밝혀낼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날의 의제는 좀 더 좁았다. ‘빈 승인란을 근거로 한 예비 인계 문서의 효력과 보전 조치’. 기계가 무슨 출력을 만들었는지와 그 출력이 사람의 권리를 바꿀 수 있는지는 별개였다.
나는 서류 세 묶음을 들고 입장했다. 첫 번째는 화재 현장 수거 종이의 감정 결과, 두 번째는 외주 인쇄와 자동 출력 설정의 기록, 세 번째는 실제 민간 피해 및 반환의 확인서였다. 세 묶음을 하나의 범죄 증거라고 표지에 쓰지 않았다. 각각 다른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였다.
재판장은 첫 장의 이름을 읽었다. ‘강태준’. 방청석이 술렁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제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로 이 이름의 작성 시기와 승인 효력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관 티르센은 그을음 위에 겹쳐진 최근 필기 가능성과 일부 최근 활자 일치를 설명했다. 오래된 종이와 최근 이름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소견으로 이세계 소환이나 삼 년 전 예언을 증명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리엔 모브의 변호인은 감정 범위가 좁다고 지적했다. 그는 옳은 부분이 있었다. 감정은 이름 작성자를 확정하지 못했고, 모든 판의 사용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재판장은 그 한계를 기록했다. 나는 상대가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감정 결과를 부풀리지 않았다.
두 번째 묶음에서는 더 실용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구형 서식의 동의·거절·미응답은 서로 다른 상태였다. 최신 전송판은 세 상태를 하나로 줄였고, ‘거절 보존’ 기능을 해제한 작업 흔적이 있었다. 자동 출력 장치는 빈칸을 ‘예비 수령 가능’으로 표시했다. 그 표시는 특정 사람의 실제 서명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도 그 장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장치가 보여 주는 것은 기계가 처리한 상태입니다. 사람의 동의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원은 이미 문제의 인계권 추가 조항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동 조세권 이전과 미확인 강제징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오늘 그 판단을 더 넓히려면 새로운 근거가 필요했다.
세 번째 묶음은 가장 조용한 심리가 되었다. 라니아는 보호된 사건번호로 한 노인이 구리화 두 닢을 실제로 돌려받았다고 보고했다. 그 돈은 민간 수납자가 반환한 것이며 국고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명시했다. 다른 청구서 수십 장은 여전히 실납부 확인이 필요했다. 부정확한 거액의 피해 총액을 발표하지 않았다.
“두 닢이네요.” 로웬 대신이 낮게 말했다.
“두 닢을 돌려받은 사람에게는 두 닢입니다.” 에리카가 대답했다.
그녀의 말에 누구도 웃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이 낸 작은 돈을 사소하게 여기는 나라에서는 큰돈을 누가 가져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재판장은 잠정 결정을 읽었다. 본인 확인 없는 예비 인계 출력은 타인의 증언·재산에 대한 동의나 대리승인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제12단위와 미확인 보관료에 관한 종전 보전 명령을 유지한다. 다만 정상적인 민간 보관 서비스 계약의 대금, 적법한 세금, 개별 피해자에 대한 환급채권, 과거 문서 작성자의 책임은 별도 판단한다.
나는 곧장 기록했다. 국고 신규 회수액 영. 자료 보전과 임시 권리 보호는 현금 수입이 아니다. 마계 방벽 유지료의 720·480·260·140·80금화 문제도 기존대로 미결이었다. 납세자가 내야 할 정상 세금은 내고, 국가가 돌려줘야 할 돈은 따로 돌려줘야 했다.
심리 뒤 리엔이 복도에서 나를 불렀다. “결제소의 모든 사람을 도둑처럼 만들었군요.”
“정당하게 보관료를 받는 사람의 권리를 없앤 결정이 아닙니다.”
“당신은 언제나 글자 하나 뒤에 숨습니다.”
“그 글자 하나가 사람의 이름일 때가 있으니까요.”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등을 보고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책임이 확정되려면 다음 심리가 필요했고, 나는 아직 30호 계수판의 실제 지시자조차 찾지 못했다.
에리카는 마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부친의 검은 장부 제2권을 다시 덮었다. “아버지가 왜 두 권을 따로 남겼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받았다는 주장과 실제 받았다는 기록은 갈라놓아야 했던 거겠죠.”
“그것도 아직 해석입니다. 하지만 오늘 법원은 그 차이를 지켰어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마지막 밤을 알기까지는 멀었다. 두 번째 불을 누가 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조금 지킨 것을 너무 큰 결말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법정이 끝났는데도 기자들은 복도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강태준의 이름이 삼 년 전 화재 문서에 있었다’는 제목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서의 첫 문장을 보여 주었다. 종이의 오래된 흔적과 글씨의 작성 시기는 구분된다. 그것은 소환에 관한 결론이 아니라 문서의 제작 순서에 관한 설명이었다.
루카스는 왜 짧고 대단한 문장으로 말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유명해지면 다음 증언자를 찾기도 쉬워질 텐데요.”
“유명한 사람이 찾는 증언은 사람들이 맞춰서 하려 할 수도 있어.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실제로 본 사실이야.”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럼 누구를 잡을 겁니까?”
“아직 범죄 책임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조작 가능성과 인쇄 오류, 실수납 피해를 각각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미없는 답이라고 했다. 그날 내가 들은 가장 큰 칭찬 같았다. 재미없는 문장이 누군가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저녁 무렵 사일라가 경계 공동 보관함의 안전 조치 결과를 보냈다. 30호 자동 출력 장치는 독립 보존 상태로 옮겼고, 보관함 문은 사람의 입회 없이는 열리지 않도록 추가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이 조치는 보관함의 소유권을 국가에 넘기는 일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삼우 문서대행의 예약 작업 목록에서 마지막 파일 하나가 발견됐다. 제목은 ‘외부 후보 자동 대체 문안—강태준’. 파일 내부에는 사람의 필적이 아니라 빈칸 목록과 선택 규칙이 적혀 있었다. ‘본인 승인 없음’ 뒤에 ‘대기’가 와야 하는데, 새 규칙은 그 다음 칸에 ‘예비 책임자 지정’ 문구를 채우도록 돼 있었다.
“그 규칙이 지금도 작동합니까?” 내가 물었다.
기술관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설정 파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실제 자동 발송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우선 외부로 나간 출력 목록을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법원 감독 아래 시험 단말을 분리하고 복사본으로 검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왕궁 정문에서 봉투 하나가 전달됐다. 발신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문서청은 수령 시각과 전달자를 따로 기록했고, 나는 내용부터 뜯지 않았다. 최근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봉투 한 장도 보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입회자가 모인 뒤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새 감사 통지서가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 151이 찍혀 있었다. 오래된 기관의 통지 순번인지, 최근 인쇄판 규격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본인 승인’ 칸은 빈 채였고, 옆에 손으로 쓴 문장이 붙어 있었다.
‘후보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가 대신 증명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누군가 답을 요구하는 걸까. 아니면 답을 얻기 위해 새로운 서류를 만들려는 걸까. 적어도 내게는 그 질문에 답할 방법이 있었다.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 말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을 누군가 대신 가져갈 수는 없다.
나는 법원 기록관에게 종이를 넘겼다. “출처를 확인해 주십시오. 내용에 답하기 전에 발신자의 권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접수 봉투를 봉인했다. 내 이름은 다시 어딘가에 쓰여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서명은 없었다.
그날 개인 수첩의 끝에는 네 줄만 적었다. 장부 정밀 열람 없음. 기억 대가 인증 없음. 타인에 대한 대리 승인 없음. 국고 신규 수입 없음.
그리고 그 밑에 한 줄을 더했다.
‘다음에 누군가 빈칸을 보이면, 먼저 그 빈칸이 누구의 것인지 묻는다.’
제15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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