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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15화
PAYLUA ORIGINAL · 제15화

15화. 마계 감사관의 장부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960자

오프라인 책장
마계에서 온 감사관은 검을 차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람 키만 한 영수증 묶음을 끌고 왔다. 검은 껍질로 장정한 책을 바닥에 내려놓자 먼지가 아니라 작은 별빛 같은 가루가 피어올랐다. 루카스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브란트는 감탄 대신 방패를 더 단단히 잡았다. “세르나라고 했습니까?” “세르나 벤 카일. 밤의 궁정 계약 감사관이다.” “강태준. 아델리온 왕국 왕실 징수관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임명장을 확인했다. 세르나의 문서는 검은 종이로 되어 있었고, 글자를 손으로 가리면 아자르켄의 인장이 희미하게 빛났다. 카르디온이 준 용의 비늘처럼 진위 확인에 쓸 수 있을지 몰랐지만, 나는 그 마법 자체를 증거로 단정하지 않았다. 왕궁 보존 문서와 인장의 형태가 일치하는지부터 비교했다. “당신이 마왕의 세금을 걷으러 왔다고 들었다.” 세르나가 말했다. “실제로 누가 납세 의무자인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적어도 질문은 옳군. 인간들은 늘 빚을 세금이라고 부르고, 세금을 벌금이라고 부르니까.” 나는 웃었다. “우리 쪽도 그런 실수를 자주 합니다.” 그는 무너진 돌기둥부터 살폈다. 검은 손가락이 문양을 훑더니 한숨을 쉬었다. “정비가 필요한 건 맞다. 그러나 지난 열두 달 동안 마계는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 “왕국 장부에는 매달 예순 금화를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급한 것으로 기록했다는 거겠지.” 세르나가 책 한 권을 펼쳤다. 왕국과 마계의 거래내역이 달력처럼 이어졌다. 방벽 유지 계약의 월별 청구는 있었지만 지난 열두 달의 ‘입금 확인’ 칸은 비어 있었다. “그럼 누가 돈을 가져갔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그건 돈을 보냈다는 쪽에 물어야지.” 세르나는 거래 계정 하나를 가리켰다. 수취인 이름은 아자르켄이 아니라 ‘제삼 보증인 수탁 계좌’였다. 세 갈래 깃털 모양의 봉인이 찍혀 있었다. 왕국 재무청에서는 마왕에게 돈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마계는 받은 적이 없었다. 중간 계좌에서 금이 사라졌다면 양측 모두 속았을 수 있었다. “계좌 운영자는 누굽니까?” “옛 조약의 보증인이 관리한다. 삼백 년 동안 그 자리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세르나의 얼굴이 굳었다. “이름이 아니다. 계약 속 직위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 “세습입니까?” “원래는 아니다. 임명 절차가 있는데 최근에 그것이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누군가 삼백 년 동안 살아서 돈을 훔친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보증인의 직책을 물려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과정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가 핵심이었다. 나는 왕실 회계 법정이 마계 장부를 증거로 받아들이는 조건을 설명했다. 원본 검증, 당사자 진술, 대조 가능한 송금 지시서. 세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에서 검은 잎 한 장을 분리했다. 잎에는 거래마다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사본이다. 원본은 마계에 있다. 네 법정이 요구하면 공식 감정사를 보내겠다.” “감사합니다. 대신 저희 쪽 자료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공유하겠습니다.”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적에게 장부를 주겠다는 건가?” “지금 서로 전쟁 중인 건 아니잖습니까.” “인간들이 신문에서는 그렇게 말하더군.” “신문은 계약 당사자가 아닙니다.” 그 말에 세르나가 처음 웃었다. 그날 밤 우리는 교역소 사무실을 임시 조사실로 만들었다. 나디아는 상인들을 위한 잠자리와 따뜻한 수프를 마련했다. 돈을 걷는 건 내 일이지만 국경을 지키는 건 이곳 사람들의 일이었다. 나는 먼저 무너진 돌기둥의 수리 비용을 확인했다. 세르나는 부품 세 개와 기술자 두 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왕국이 미납한 정당한 유지료가 있다면 정산 방식도 논의해야 했다. “수리부터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 다만 누가 지급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왕국이 정당하게 계약한 서비스라면 왕국이 부담해야죠. 착복한 돈을 돌려받는 일은 별도로 해야 합니다.” 세르나는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서도 그런 말은 귀하다.” 밤사이 나디아가 마을의 오래된 장부를 찾아왔다. 손때가 묻은 종이는 소금과 밤꽃 약재의 가격을 계절마다 나눠 적은 것이었다. 좋은 약재가 흉년에는 소금보다 비싸졌고, 전쟁 소문이 돌면 마차 수가 줄었다. 왕실의 비공식 방벽세가 생긴 뒤에는 소규모 상인들이 줄줄이 떠났다는 메모도 있었다. “왕국은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는데 장사는 오히려 줄었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세율을 높인 것과 실제 세수가 늘어난 건 다를 수 있어.” 나는 소년에게 간단한 계산을 시켰다. 하루에 은화 한 닢을 남기는 상인이 열 명 있으면 총 열 닢이다. 그중 다섯 명이 징수인의 횡포를 피해 떠나면 남은 상인에게 두 배를 걷어도 장터가 번창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한 번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세금이 적을수록 좋아요?” “꼭 그런 건 아니야. 방벽을 고치려면 돈이 필요하고, 길을 닦으면 상인도 안전해지지. 중요한 건 법으로 정한 만큼만 걷고, 어디 썼는지 보여주는 거야.” 나디아는 창고 뒤편 작은 판자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상인들이 공동으로 모아 만든 수리비 목록이 있었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누가 목재를 가져왔는지, 누가 도로 구덩이를 메웠는지가 적혀 있었다. 금액은 작았지만 빠진 칸이 없었다. “나라 장부보다 이게 낫겠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나디아가 빙그레 웃었다. “거기다 돈 안 적으면 바로 옆 상점 주인이 찾아와요. 도망갈 데가 없거든.” 나는 왕국에도 이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시민이 기밀 군수 서류까지 볼 수는 없어도, 도로와 약재와 안전에 쓰는 돈의 큰 흐름은 알 수 있어야 한다. 의혹을 막는 가장 싼 방법은 매번 뛰어난 조사관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물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잠시 뒤 작은 뿔이 난 마계 소녀가 수프 그릇을 들고 왔다. 그녀는 국경 학교가 마계산 칠판 분필을 쓰는데 최근 가격이 세 배가 됐다고 불평했다. 분필 하나에도 통행료가 여러 번 붙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부할 수가 없어요.” “학교에서 분필이 그렇게 중요해?” 내가 물었다. “글씨를 써야 하잖아요. 안 그러면 왕국 숫자도 못 배우는데.” 루카스가 자기도 학교에서 곱셈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거들었다. 두 아이는 금세 장터 바닥에 막대기로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마계 숫자와 왕국 숫자는 기호가 달랐지만 곱셈의 답은 같았다. 나는 웃었다. 저렇게 계산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무역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양쪽 장부의 같은 거래를 서로 비교하는 날도 오겠지. 나디아가 물었다. “징수관님은 정말 마왕에게 고지서를 보낼 겁니까?” “보낼 수 있는 세금이 확인되면요.” “그분이 화내면요?” “그땐 제가 법전을 더 크게 읽어야겠죠.” 세르나가 옆에서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은 법전보다 두꺼운 걸 싫어하신다.” “그럼 요약본을 준비하겠습니다.” 교역소 안이 잠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웃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새벽에 다시 송금 원장을 펼쳤다. 다음 날 새벽 국경 관리 일지와 왕실 송금 원장을 대조했다. 에리카는 월별 날짜를 나란히 놓고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찾았다. 지난해 여섯 번째 달부터 지급 승인 도장은 바뀌지 않았는데, 금고 출납자는 매달 달랐다. 돈을 실제로 확인한 담당자가 없었던 것이다. “상단이 대신 결제한 걸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어. 지급 대행 계약부터 찾아보자.” 왕실 장부의 적요에는 ‘청동왕관 상단 선지급 정산’이라는 단어가 반복됐다. 마르켈의 상단이 왕국 대신 방벽 유지료를 마계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마계 수령 장부가 비어 있었다. 선지급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장부상 숫자만 만들었는지를 구분해야 했다. 나는 하루 세 번의 정밀 열람 중 첫 회를 쓰기로 했다. 질문은 좁혔다. '지난 열두 달간 왕실이 방벽 유지료 명목으로 청동왕관 상단에 지급 승인한 돈의 실제 최종 수령 흐름은 무엇인가.' 손목이 저렸다. [정밀 열람 1/3] [왕실 지급 승인액: 720금화] [청동왕관 상단이 대행 증빙을 제출한 금액: 720금화] [마계 유지 계정 실제 입금: 0금화] [중간 정산 계정: 제삼 보증인 수탁 계좌] [최종 인출인: 신원 미확인] 열두 달 곱하기 예순 금화. 숫자는 맞았다. 하지만 사람은 빠져 있었다. 권능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 돈의 경로만 보여주었다. 나는 정밀 열람으로 얻은 숫자를 외부에 말하지 않았다.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구간부터 확보하려 했다. 대가도 왔다. 한국의 첫 월급으로 무엇을 샀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웃던 모습은 남아 있는데 그날 봉투를 어디에 두었는지가 사라졌다. 나는 개인 수첩에 기억이 흐려진 항목과 사용한 권능의 질문을 적었다. 장부가 범인을 찾아주는 대신 내 삶을 조금씩 가져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합니다.” 에리카가 말했다. “지급 승인 날짜가 삼 년 전 광산 계약의 갱신 날짜와 같습니다.” 나는 그녀가 표시한 잉크 선을 보았다. 두 문서에는 같은 관리 번호가 있었다. 제삼 보증인이 방벽 유지료와 광산 사용료의 정산을 함께 관리했다는 뜻일 수 있었다. 중간 계정 이름을 적으려는데 글씨가 자꾸 흔들렸다. 나는 책상 위에 팔꿈치를 고정했다. 에리카는 내가 느끼는 피로를 단순한 잠 부족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억을 잃는 속도가 이곳의 시간을 따라잡고 있다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는 수첩을 펼쳐 아직 또렷한 이름들을 써보았다. 어머니. 예전 동료들. 오래 살던 동네. 글자로 적자 잠시 안도감이 들었다. 기억이 사라져도 내가 남긴 기록을 통해 다시 내가 누구였는지 읽을 수 있을까. 세르나가 옆에서 물었다. “인간들은 왜 지나간 날을 그토록 기록하나?” “잊고 싶지 않은 게 있어서요.” “마계에도 그런 자가 있다. 잊히는 일을 죽음보다 무서워하지.” 나는 그가 더 말하기 전에 수첩을 덮었다. 지금의 일에 집중해야 했다. 사라진 기억을 붙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멋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때 경비병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북쪽 마계 초소에서 보낸 전달문이었다. 밤사이 돌기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르나가 사람을 보내 임시 수리를 마쳤다고 했다. 나디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들이 다시 교역소 문밖에 나갈 수 있게 됐다. “비용은 계산서로 보내 주세요.” 내가 말했다. 세르나는 붉은 도장을 찍힌 청구서를 내밀었다. 수리비는 12금화. 기술자들의 인건비와 부품값이 따로 적혀 있었다. “마왕의 선심으로 처리해도 된다. 대신 인간들이 감사했다고 말하게 하고 싶다면.” “선심으로 기록하면 다음 달엔 누가 비용을 냈는지 모르게 됩니다. 실제 일한 사람에게 돈을 주겠습니다.” 그는 청구서를 접으며 말했다. “너는 참 재미없는 인간이구나.”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세르나가 돌아갈 준비를 하던 순간, 노파 하나가 교역소에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어젯밤 폭행당한 약재 상인이었다. 손에는 낡은 영수증이 쥐어져 있었다. “관리님! 저 사람이 마계에서 물건을 사 온 게 아닙니다. 제 아들한테서 빼앗아 간 거예요.” “누가요?” “방벽세 걷던 검은 외투요. 우리 아들 이름으로 거래장을 만들었어요.” 영수증에는 소금 서른 자루의 수출 대금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수취인란의 이름은 놀랍게도 아자르켄이었다. 바로 옆에는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대리 매입인: 셀딘.’ 레온하르트 군무차관의 보좌관. 창고 화재 당시 일용직 이름을 지운 기록에 등장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영수증에 적힌 거래일을 확인했다. 삼 년 전 화재가 나기 이틀 전이었다. 세르나가 종이를 보고 얼굴빛을 바꾸었다. “그 이름은 우리 계약 장부에 없다.” “아자르켄이요?” “아니. 셀딘. 그 이름으로 물건을 들여온 자는 마계에서 한 번도 정식 대리권을 받은 적이 없다.” 왕실에서 마왕의 이름을 쓴 서류가 하나 더 나왔다. 이번에는 누가 그 이름을 썼는지 확인할 실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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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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