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공동 보관함에서 영번 기록봉의 외형 대조가 허가됐다는 소식이 왔다. 허가 내용은 명확했다. 봉인의 손상 여부와 재질, 옛 기록과의 규격만 비교한다. 사람의 귀환이나 신원 이전을 증명하는 의식은 허가되지 않았다.
사일라는 아침부터 보관함 앞에 두 명의 증인을 세웠다. 마계 감사관 세르나와 드워프 사절 로흐였다. 왕국 법원에서 나온 감독관도 한 명 더 있었다. 세 나라의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세 나라가 물건의 소유권을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명란에는 각각 ‘입회’라고 적혔다.
“서명 하나로 세상이 달라지면 난 벌써 왕이 됐겠군.” 세르나가 말했다.
“그렇다면 왕이 되어도 세금부터 내셔야 합니다.”
그는 마계 감사관답게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과 일하는 게 때로는 편했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하니까.
구형 목록에서 영번 기록봉은 ‘공동 증언을 보전하는 물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전사본에서는 ‘제0호 입국기록’으로 바뀌었다. 나는 목록의 양쪽 제목을 그대로 읽었다. 원래 무엇이 옳은지 정하려는 게 아니었다. 제목을 바꾼 시점과 그 이유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로흐는 기록봉을 감싼 금속띠의 무늬를 살폈다. 드워프 장인의 표시와 닮았지만 그것만으로 제작자가 확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같은 표식은 오래전 여러 공동 창고에서 쓰였고, 일부는 최근에도 복각됐다고 했다.
“그럼 안에 사람이 들어 있진 않은 거군요?” 루카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로흐가 껄껄 웃었다. “금속봉 안에 사람을 어떻게 넣겠나.”
“마법이 있는 세계라 여쭤본 겁니다.”
“마법이 있다고 사람을 물품처럼 대우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
나는 로흐의 말을 기록했다. 법률가의 말이 아니어도 핵심을 찌르는 문장은 있었다.
사일라는 낡은 반송 목록을 한 장 펼쳤다. 맨 아래 줄에는 ‘잘못 받은 봉투는 담당 보관소로 돌려보내되 당사자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물건을 되돌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최근 출력물에서는 ‘잘못 받은 사람을 담당자로 돌려보낸다’는 어색한 문장이 나타났다.
에리카가 두 글자의 위치를 짚었다. ‘봉투’와 ‘사람’. 넓은 종이에 끼워 넣은 사각형 전사판 때문에 낱말 하나가 뒤집힌 듯했다. 그러나 최근 인쇄 작업의 실수만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단어를 바꿨을 가능성도 있었다.
오후에는 마계 치료소의 익명 보관 기록 일부가 전달됐다. 마이렌의 치료 확인서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화재 당시 익명 환자들 사이에서 사용된 봉투 표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보는 자료였다. 치료소는 환자 이름을 지웠고, 그 결정은 그대로 존중됐다.
기록에 따르면 화재 직후 일부 물품이 ‘수령 거절’ 상태로 접수됐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처리된 사람이 실제로 살아 있을 수도 있으므로 재산과 증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말라는 표시였다. 나는 그것이 70화 무렵 확인했던 ‘생존 대조’라는 주석과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만 지금 확인한 자료는 같은 원본이 아니었다.
“생존 대조가 진짜 사람의 생존을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군요.” 루카스가 말했다.
“그래. 권리를 함부로 소멸시키지 말라는 분류일 수 있다는 거지.”
메라가 보낸 비공개 쪽지도 도착했다. 그의 보호 담당자는 내용 전체를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허용된 문장만 우리에게 전달했다. ‘내가 수령하지 않았던 물건을 받은 것으로 쓰지 말 것.’ 그것은 물건에 관한 거절이었다. 그가 누구의 마지막 증언자인지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세르나는 접경 기록을 확인하겠다며 서둘렀다. 왕국 기록과 마계 기록의 날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세 가지 시각을 구분했다. 마계 접경 반입, 드워프 쪽 임시 인계, 왕국에서의 적법 수령. 이 셋이 같은 날이 아니라면 ‘30일 뒤 자동 이전’이라는 주장의 출발점은 더 불확실해졌다.
그때 사일라가 오래된 보관함 안쪽에서 작은 명패를 발견했다. 보관함을 고치던 장인이 떼어 두었다가 수리 목록에 붙여 둔 것이었다. 명패에는 ‘영번은 사람 번호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제작 시기 감정 전이므로 원래 규약의 일부인지, 후대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명패를 근거로 소환이 거짓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다. 내 한국 기억이 흐려져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실제였다. 이 세계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기록을 내 과거에 맞춰 해석할 수는 없었다.
로흐가 보관함의 작은 흠집을 보여 주었다. 금속봉에는 물품을 넣었다 빼낸 순서를 알 수 있는 이중 고리가 있었다. 겉고리는 여러 번 교체됐지만 안쪽 고리는 오래돼 보였다. 드워프 장인은 그 사실로 물품의 제작 시기를 단정하지 않았다. 교체한 겉고리를 누가 언제 손봤는지 기록이 남아 있어야 했다.
사일라는 수선대장을 찾아왔다. 보관함을 마지막으로 손본 날짜는 최근이었지만 그때 고리의 기능을 바꿨다는 기록은 없었다. 그럼에도 기계가 뒤늦게 연결됐을 가능성은 남았다. 옛 물건이 안전했다는 사실과 지금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한 문장으로 합칠 수 없었다.
“저는 보관함을 고칠 책임이 있습니다.” 사일라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안의 물건을 대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 말에 세르나는 드물게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계의 서리들이 당신에게 배웠으면 좋겠군.”
“왕국의 서리들도요.” 내가 덧붙였다.
사일라는 작게 웃었다. 그러나 보호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기록은 더 깊은 서랍에 넣었다. 우리는 필요한 부분만 대조한 뒤, 나머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영번 기록봉의 외형을 확인한 것만으로 실종된 사람의 행방을 찾았다고 발표하는 일도 없었다.
보관함을 떠나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세 나라의 표식이 낡은 문의 위쪽에 걸려 있었다. 그 표식이 전쟁을 끝낸 약속이었는지, 단지 물품을 안전하게 두겠다는 약속이었는지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약속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말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에리카와 함께 검은 장부 제2권을 대조했다. 제1권은 실제 인계를, 제2권은 인계 주장과 미비한 증빙을 구분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최근 삽입된 표에는 그 둘이 모두 ‘완료’라고 인쇄돼 있었다.
“아버지가 이런 표를 봤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예요.” 에리카가 말했다.
“그런 뜻으로 남긴 기록일 수 있죠. 하지만 누가 최근에 바꿨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녀는 창가의 촛불을 낮췄다. 잠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뜻을 추측하는 일에도 살아 있는 사람의 조심성이 필요했다.
다음 날 열릴 심리를 준비하던 루카스가 마지막 쪽을 가져왔다. 경계 보관함 구형 목록에는 ‘반송 대상’이라는 칸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봉투 번호, 두 번째는 전달 오류의 책임 기관. 최근 전사본은 두 번째 칸의 제목을 ‘반송 책임자 신원’으로 바꾸고, 거기에 내 이름을 입력했다.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아니었군요.”
“원래부터 사람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일러. 하지만 적어도 옛 목록의 두 번째 칸은 기관을 가리켰어.”
누군가 내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 그 칸이 사람을 부르는 자리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실제로 이 세계에 온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빈칸에 적당한 이름 하나였을 것이다.
제14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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