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내게 임시 감사관 증서를 내밀었을 때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증서에는 ‘제삼자 보관 분쟁 자료 대조 담당’이라는 직무가 적혀 있었지만, 뒷장에는 ‘기존 미수령 물품에 대한 임시 인계 승인권 포함’이라는 항목이 붙어 있었다. 앞장의 직무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뒷장의 권한은 별개의 문제였다.
“저는 자료를 대조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증언과 물건을 대신 받겠다는 서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담당 서기관은 당황했다. “징수관님께서 원하신 독립 감사 절차인데요.”
“그래서 더 확인해야죠. 누가 이 문구를 추가했습니까?”
서기관은 자신이 받은 문서는 하나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문서청의 서식 대장에 처음 접수된 버전과 법원에 전달된 버전을 대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는 그제야 두 문서의 첨부 순서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쪽에는 인계 승인권 조항이 없었다.
에리카가 서류를 살폈다. “131호 통지가 징수관님을 감사 대상으로 부른 게 아니라 감사 책임자로 만들려 했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편지와 지금 문서를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어요.”
그때 루카스가 문서 뒤쪽을 들추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인쇄판 코드가 있어요. 131.”
그 숫자는 여러 번 봤던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북문 인쇄소에서 납품한 압인판의 규격이었다. 문서가 같은 계열의 출력 장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인쇄소가 곧 권한 조작의 주범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의뢰한 사람과 최종 내용을 작성한 사람을 따로 찾아야 했다.
왕실 회계 법정은 오후에 제한된 대조 심리를 열었다. 쟁점은 세 나라 밖의 보관기관이 법적으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최근 서류에 누가 인계 승인권을 더했는지였다. 제12단위 원본의 소유권이나 고대 증언의 진실 전체를 오늘 판단할 계획은 아니었다.
리엔 모브는 결제소의 대리인으로 나와 말했다. “긴급한 보관 공백을 해결하려면 임시 관리인이 필요합니다. 강태준 징수관은 누구보다 중립적으로 사건을 조사해 왔습니다.”
내 이름을 칭찬하는 말이 갑자기 나오는 순간에는 특히 조심해야 했다. 나는 그가 왜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지보다, 그 믿음으로 무엇을 서명하게 만들려 하는지 보았다.
“징수관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권한을 부여해도 됩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법원이 부여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설명하십시오. 구형 협약의 보관 권한이 현행 조세권이나 타인의 증언에 대한 대리권을 자동 발생시키지는 않습니다.”
리엔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대신 테오른이 증빙철을 내밀었다. 오 년 전 공동 보관에 관한 자문서였다. 자문서는 임시 보관 절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지만, 직접 수령인이 없는 증언을 누구나 대신 승인해도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자문서가 인정한 것은 자료보전의 가능성입니다.” 테오른이 스스로 덧붙였다. “저는 오늘 제출된 인계 승인권 문구의 작성자도 승인자도 아닙니다.”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자기 책임을 부인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죄가 확정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결제소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모든 위조의 주범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티르센은 서식 감정 결과를 설명했다. 131호 통지에 쓰인 문양, 반송료 영수증, 오늘의 감사관 증서가 동일한 규격 계열의 압인판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서로 다른 제작 시기의 종이가 섞여 있었고, 원본 판의 보관 경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감정이 입증한 것은 제작 방식의 연관 가능성이지 작성자의 정체나 고대 권한의 존재가 아니었다.
법원은 이르덴의 진술도 들었다. 그는 경계 보관실의 역사와 접수 거절 절차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 공동 보관위원회의 임명장이 없음을 다시 인정했다. 재판장은 그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법원 명령을 대신 할 권한은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분리가 좋았다.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됐다는 사실과 그에게 타인의 권리를 넘기는 일은 전혀 달랐다.
“마지막 수령인이 없는 경우 보관 책임은 어떻게 합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사일라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임시 보관을 계속할 수 있는 범위부터 확인하고, 비용은 합의가 된 것만 청구해야 합니다. 제가 관리를 한다고 해서 물건을 가진 사람의 말까지 제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법률가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날 법정에서 가장 정확한 문장 중 하나를 말했다. 루카스는 그 말을 그대로 적고 맨 아래에 작은 별표를 했다.
심리가 끝날 무렵 왕궁 문서청에서 긴급 대조 결과가 도착했다. 감사관 증서의 뒷장 조항은 법원 신청이 접수된 뒤 민간 인쇄소의 전송 서식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였다. 원래 법원 직원이 작성했는지, 외부 의뢰인이 끼워 넣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원본 신청서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본 대조로 확인됐다.
“그럼 그 문구를 빼면 징수관님이 감사관이 되시는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건 또 다른 판단이야. 오늘은 문서가 달랐다는 걸 확인한 거지.”
법원은 문제가 된 뒷장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분쟁 물품의 이전과 새로운 강제 징수는 기존 임시 제한을 유지했다. 동시에 필요한 자료 대조는 적법한 별도 신청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알렸다. 제삼 결제소의 모든 계약을 무효로 선언하지 않았고 정상 보관료를 없애지도 않았다. 나는 결정문에 새 국고 수입이 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적었다. 잠정적으로 지킨 권리를 돈으로 환산해 성과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 무렵 나는 제삼 결제소의 창구에 정식 감사 요청서를 제출했다. 누구를 체포하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네 가지를 확인하자는 요청이었다. 30호 계수판 발주 권한의 원본, 원 세 개 봉투의 인쇄 의뢰인, 이름 반송료의 실제 수납·지급 경로, 그리고 감사관 증서에 추가된 문구의 최초 작성자.
리엔이 서류를 받으며 말했다. “징수관님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보관료를 걷어 국고를 채울 기회가 있는데 왜 계속 말리십니까?”
“법적 근거가 있는 돈은 걷어야죠. 그런데 증명할 수 없는 돈을 먼저 가져오면 나중에 돌려줄 사람도 나라를 믿지 않게 됩니다.”
“나라가 굶어 죽을 판인데도요?”
“굶어 죽는 사람의 돈부터 뺏으면 나라가 더 오래 살 것 같습니까?”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자백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전달 확인서를 받아 나왔다. 그 역시 법적으로 정해진 답변 기간과 절차를 가질 권리가 있었다.
재무청에 돌아오니 에리카가 검은 장부 제2권의 대조 결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 제1권은 실제 인계를 기록하고 제2권은 인계 주장과 그 증빙 부족을 구분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삽입된 날짜표가 그 구조를 악용했을 수 있었지만, 부친이 모든 페이지를 작성했다는 확인은 여전히 없었다.
“아버지가 지키려던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에리카가 말했다.
“받았다고 적은 사람이 있다면, 실제로 받은 사람을 확인하라는 질문이겠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게는 그 미소가 오늘 재판의 승리보다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명령을 내리려 해도, 남은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한국 수첩을 펴고 오늘의 마지막 기록을 썼다. 진실의 장부 정밀 열람 없음. 기억을 대가로 하는 인증 없음. 타인의 증언 대리 승인 없음. 실제 국고 신규 수입 없음.
그때 루카스가 문을 두드렸다. 왕궁 보존실에서 압인판의 원래 납품 대장 일부를 찾았다는 것이다. 131호가 새로운 감사 통지의 순번이라는 가설과 달리, 오래된 장치의 관리 번호에 같은 숫자가 있었고 ‘반송 처리’라는 용도가 적혀 있었다. 둘이 같은 기계를 가리키는지는 앞으로 조사해야 했다.
“이제 신비한 숫자가 아니네요.” 그가 말했다.
“숫자가 신비하지 않아도 사람은 충분히 이상한 일을 할 수 있어.”
봉투에 다시 눈을 주려던 순간, 오렐이 봉인된 작은 종이 조각을 가져왔다. 법원의 기존 보존 목록에서 이제야 대조 가능한 범위로 분리한 것이었다. 삼 년 전 화재 현장의 손상된 기록 중 하나라고 했다. 정확한 작성 날짜와 필자는 감정 전이었다.
종이에는 처음 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반송 책임자는 외부인으로 지정하되, 본인의 승인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칸이 있었다. 첫 번째는 ‘후보 신원 확인’, 두 번째는 ‘본인 승인’. 두 번째 칸은 비어 있었다.
첫 번째 칸의 필기에는 익숙한 발음이 적혀 있었다. ‘강태준’.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삼 년 전에 쓰였다는 증거도, 내 세계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는 증거도 아직 없었다. 최근에 이름을 끼워 넣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조사해야 할 새로운 질문이 있었다.
내 이름을 써 넣은 사람은 왜 항상 승인의 칸을 비워 두는가.
그리고 그 빈칸을 채우게 만들려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말을 지웠는가.
제14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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