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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136화
PAYLUA ORIGINAL · 제136화

136화. 서류를 훔치지 않는 도둑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3,942자

오프라인 책장
도둑이 창고를 털면 물건이 사라진다. 장부를 훔치면 기록이 사라진다. 그런데 어떤 도둑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거기에 없던 ‘승인’ 한 줄을 놓고 간다. 제삼 결제소의 민간 인쇄 의뢰서를 대조하면서 나는 그 생각을 했다. 북문 인쇄소에 발주한 작업은 표면상 모두 합법적으로 보였다. 봉투 재단, 계수판 부품표, 안내문 인쇄. 그러나 주문마다 발주자 이름이 달랐는데 결제 계정은 같은 외부 관리 번호를 거쳤다. 같은 계정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공동 범행을 단정할 수 없었다. 대행사가 여러 고객의 비용을 한꺼번에 지급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부를 세 묶음으로 나눴다. 실제 돈이 빠져나간 지급 내역, 계약만 작성된 주문서, 그리고 발송이나 설치를 주장하는 확인서. 루카스는 각각 잉크 색을 다르게 칠했다. “이건 회계가 아니라 미술 수업 같아요.” “미술 수업이면 제목은 ‘돈이 없어도 돈이 나간 척하는 사람들’ 정도겠지.” “그림이 안 팔릴 것 같은데요.” “제삼 결제소에는 비싸게 팔렸나 봐.” 인쇄소 주인 바르크는 우리가 찾아가자 두 손을 들었다. 법원에서 자료보전 명령이 왔다고 말하니 더욱 굳었다. 나는 먼저 그에게 대리인의 입회권과 제출 범위를 설명했다. 그는 봉투를 자르는 칼과 인쇄판의 주문 대장에 대해서는 협조하겠다고 했다. 고객의 다른 사업 문서를 무조건 공개하라는 요청은 거절할 수 있었다. “누가 원 세 개를 찍으라고 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원 세 개는 제가 가진 옛 견본집에 있습니다. 고객이 주문한 건 원형 문장 인쇄판이었어요. 어떤 기관의 인장인지는 몰랐습니다.” “그 견본집은 어디서 났습니까?” “사 년 전 폐업한 문구점에서 샀습니다. 사온 날짜와 값을 적어 놨어요.” 바르크는 거래 장부를 내밀었다. 법원 감정관이 나중에 실제 대조할 수 있도록 우리는 봉투의 크기와 견본집 페이지 번호만 기록했다. 인쇄판이 여기서 만들어졌다는 가능성이 높아져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 “131호 편지를 인쇄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같은 모양의 봉투를 여러 번 만들었습니다. 내용물은 손님이 넣었어요. 일련번호를 적는 주문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부터 검증해야 했다. 번호 없는 봉투 인쇄 명세가 있었고, 칼날 자국의 폭도 티르센의 예비 보고와 맞는 범위였다. 반면 누가 131호 숫자를 썼는지는 아직 빈칸이었다. 점심 무렵 가게로 한 청년이 들어왔다. 짙은 회색 작업복에 손가락 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바르크는 그가 계약 고객의 물품을 찾으러 온 심부름꾼이라고 소개했다. 청년은 우리를 보고 물러섰지만 브란트가 길을 막지는 않았다. 법적 근거 없는 체포는 원본보다 사람을 먼저 망가뜨릴 수 있었다. “오늘 찾아가려던 물건이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다. “빈 봉투입니다. 번호가 적히지 않은 것들요.” “누구에게 주나요?” “의뢰서를 내민 사람에게요. 저는 주소를 몰라요.” 그가 내민 주문서는 과거 결제소가 쓰던 외부 관리 번호와 맞았지만 구매자 이름 칸은 ‘보관 종료일 안내 담당’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업무 제목이었다. 청년은 서명한 적이 없다고 했고, 바르크도 청년에게 현금 대신 운송증을 줬다고 했다. 우리는 필요하면 다시 진술을 요청할 연락처만 확보했다. 이때 루카스가 주문 대장 오른쪽 모서리를 가리켰다. 한 줄에는 같은 날짜의 주문 취소가 두 번 적혀 있었는데, 취소 뒤에 새 주문이 들어온 시간이 원래 인쇄 완료 시간보다 빨랐다. 시간이 뒤섞인 이유는 단순한 필기 착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네일이 보았던 30호 계수판의 수동 초기화 시각과 같은 숫자가 반복된 것은 이상했다. “인쇄소의 시계가 느린 겁니까?” 내가 물었다. 바르크가 벽의 시계를 가리켰다. “기계 시계는 따로 있습니다. 손님들이 맞춰 달라고 할 때도 있어요.” “주문서에 적힌 시간은 어느 쪽입니까?” “그건 기계가 찍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바뀌어도 오래된 주문이 자동으로 수정되지는 않아요.” 우리는 시간을 조작했다는 결론을 쓰지 않았다. 대신 주문 기록의 작성 순서, 종이 위치, 잉크 경화 정도를 감정해 달라고 했다. 정확한 시각보다 먼저 만들어진 문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편이 더 안전했다. 저녁에 법원은 제삼 결제소의 자료 보전 범위를 일부 확대했다. 공적 과세권 이전을 주장하는 신규 발급문서에 한해 발주·인쇄·운송 기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간인의 다른 사적 계약이나 보호된 증언은 제외됐다. 나는 그 경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범인을 잡으려는 의욕 때문에 우리의 절차가 결제소의 강압과 같아진다면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다. 바르크의 직원이 가져온 마지막 납품대장에서 낯선 주문이 나왔다. 원 세 개가 겹친 표식을 쓰는 봉투의 안쪽에, 작성자도 모르게 글자가 남도록 압인하는 장치였다. 내용은 주문 사양에 적혀 있었다. ‘미동의 표식 자동 출력 기능.’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바르크는 정말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글씨 없이 찍히게 하는 장치였어요. 종이를 꺼내야 보이는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설치됐습니까?” “납품서가 있습니다. 실제로 쓰였는지는 모릅니다.” 그가 보여 준 납품서에는 ‘네 번째 주소 보관함 개보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일라가 문짝 보강이라고 설명했던 작업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 기능을 알고 있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속았을 가능성도, 일부만 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사일라에게도 연락을 보냈다. 그녀는 외부 수리 작업이 끝났다고 듣고 보관함을 평소처럼 관리했으나 자동 표기 기능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진술은 진술일 뿐이었다. 사일라가 받은 견적서와 수리 완료 통지, 실제 공사 현장을 보았던 사람의 말을 각각 대조해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계약서를 찾으려고 위험한 창고에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밤에 누군가 물건을 옮기려 한다면 경비와 보호 담당자를 먼저 부르는 편이 안전했다. 에리카는 법원에 별도 안전 점검을 신청했다. 기계가 실제로 물품을 옮기거나 봉인을 해제하는 구조인지, 단지 종이를 인쇄하는 구조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물건을 지키는 일과 물건이 움직였다고 거짓말할 종이를 막는 일은 서로 다른 방어가 필요했다. 우리는 두 위험을 한 문장으로 합치지 않고, 각각 확인 가능한 증거와 긴급 조치 범위를 써 냈다. 밤이 깊어져 재무청으로 돌아오자 티르센의 예비 기술감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 장치는 낡은 문서에서 ‘미동의’라는 글자를 지우는 기능이 아니었다. 접수 칸이 비어 있을 때 기계가 별도 표시를 찍어 후속 처리자가 ‘확인 완료’처럼 읽도록 하는 기능으로 추정됐다. 실제 출력은 견본 단계에서만 재현됐다.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류를 훔친 게 아니군요.” 루카스가 말했다. “그래. 사람이 해야 할 말을 기계가 한 것처럼 보이게 한 거지.” 에리카는 인쇄판의 설계도를 한참 보았다. ‘미동의’가 출력되도록 한 사람은 왜 그 글자를 지우지 않았을까. 아니, 왜 지우지 못했을까. 장치의 구조를 보니 조금 달랐다. 겉으로는 승인 표시가 찍히지만, 종이 뒷면에는 작은 흔적이 남아 원래 빈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증거를 남긴 것 아닐까요?” 에리카가 물었다. “아니면 제작 규격상 지울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나는 그 흔적을 보존해 다음 날 법원에 제출하기로 했다. 아직 범인의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거짓된 승인을 만들어 낸 종이가 스스로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리고 봉투를 거꾸로 들었을 때, 압인 장치의 모서리에서 아주 작은 숫자가 보였다. ‘131.’ 그 숫자가 서한의 순번인지, 인쇄판의 규격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미확정이었다. 다만 누구도 신의 이름을 빌릴 필요 없이, 사람이 만든 도구만으로 그 번호가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처음으로 눈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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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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