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근처의 건물은 언제나 거창한 이름을 얻는다. 중립 보관함, 경계 보관실, 공동 증언고. 그러나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것은 결국 누군가의 종이와 물건이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권한도 그 종이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것이지,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할 힘이 아니었다.
나는 사일라에게 공식 방문 일정을 다시 알렸다. 이번에는 왕국 법원 보존관과 마계 측 서식 감정인, 드워프 보관 규약 담당자가 각자의 관할에 따라 동행했다. 누구도 다른 나라의 영장을 대신 내세우지 않았다. 사일라가 보여 주기로 한 것은 공개 가능한 오래된 관리 규정과 보관 시설의 안전 기록뿐이었다.
“세 나라의 사람이 한꺼번에 오면 보통 다투는데요.” 사일라가 말했다.
“오늘은 각자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건 더 오래 걸리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녀는 웃고 문을 열었다. 목조 건물 안쪽에는 서늘한 공기와 마른 약초 냄새가 감돌았다. 책꽂이 한쪽은 곰팡이를 막기 위해 비워 두었고, 구석의 돌함 위에는 사용하지 않는 잉크받침이 놓여 있었다. 어느 것에도 왕실 국고의 소유 표시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 민간인의 재산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보관 중인 물건의 소유와 시설의 관리권, 비용을 청구할 권리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
사일라는 관리 규정 사본을 테이블에 올렸다. 오래된 조약에서 독립 보관을 맡았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정식 연장은 오래전이었고 현행 공동 관리위원이 누구인지 적힌 칸은 비어 있었다. 이르덴의 이름도 그 목록에는 없었다.
“당신은 이르덴을 압니까?” 내가 물었다.
“옛날부터 편지를 나르던 사람입니다. 그런 뜻에서만 압니다. 대표 자격이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그 한마디로 이르덴의 신원은 조금 명확해졌지만 법적 권한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세르나는 규정의 마계 판본과 대조해 ‘보관’이라는 단어가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현상 유지’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말했다. 로흐는 드워프 판본의 마지막 항이 훼손됐다며 현재 규정의 전부를 확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 이곳은 아무 권한도 없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건 아니야.” 내가 답했다. “건물을 관리하고 당사자의 동의 아래 물건을 보관한 권리는 있을 수 있어. 그 권한이 왕국의 세금을 걷을 권한과 같지 않을 뿐이야.”
사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바로 그 틈을 노렸다고 했다. 몇 달 전 제삼 결제소의 대리인이 찾아와 이곳의 낡은 장부를 새 기계에 옮기면 보관비가 자동으로 지급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사일라는 계약서를 요구했고, 상대는 오래된 규정에 이미 허용돼 있다며 원본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설치는 거절됐다.
“그런데 밖에 30호 고리가 있던데요.”
“그 사람들은 문짝 보강이라면서 달았습니다. 관리위원회 승인서를 보여 주겠다고 했지만 가져오지 않았어요. 제가 막았어야 했죠.”
나는 사일라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신청서와 그때의 대화, 부품 설치 날짜를 각각 확인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녀가 위험을 알리고 후속 사용을 막으려 했다는 사실 역시 기록했다.
보관함 안쪽 공개 목록에는 출처가 달라 보이는 네 종류의 기록이 있었다. 인계할 물품 자체의 명세, 보관 비용에 대한 합의, 증언 보관 요청, 그리고 보관 거절 요청이었다. 결제소의 최근 안내문에는 이 네 범주가 ‘최종 수령 대기 자산’이라는 하나의 줄로 합쳐져 있었다. 그 표기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류를 섞는 것만으로 재산의 의미를 바꿀 수 있었다.
“거절 요청도 보관합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당신이 동의한 적 있다’고 말할 때 보여 줄 수 있도록요.” 사일라가 대답했다.
“그럼 제12단위에도 거절 요청이 있습니까?”
사일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당사자 신원이 확인돼야 답할 수 있어요. 이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건 과거 거절 접수 방식의 존재뿐입니다.”
우리는 거절권이 존재한다는 규정 사본과 제12단위의 실제 의사가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혼동하지 않기로 했다. 마이렌의 보호 담당자가 직접 보내온 봉투 또한 당사자가 공개 허락을 하지 않은 한 열 수 없었다.
점심 뒤 호른델이 돌함을 살피다가 작은 금속판을 발견했다. 물건을 열지 않고 겉면의 눈금만 확인한 결과, 30호 계수판의 톱니 배열과 닮은 구형 규격이 있었다. 네일이 즉시 원래 형식이 무엇인지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기계는 동일한 눈금을 무게, 수량, 날짜 계산에 모두 쓸 수 있었으므로 문양이 같다고 목적까지 같을 수는 없었다.
사일라가 말했다. “그건 오래전에 물품 개수를 기록하던 것이라 들었습니다.”
“전해 들은 설명인가요, 직접 사용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전해 들은 겁니다. 저는 고장 난 뒤에 이곳을 맡았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정확하게 적었다. 말 한마디로 고대의 기계가 되살아나는 세계라 해도, 전해 들은 기억이 기술 감정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한편 세르나는 마계 쪽의 수령기관 공란 표시를 다시 설명했다. 오래된 문서의 점 세 개는 ‘승인 미완료’라는 뜻일 수 있었고, 결제소 사본에서는 그것이 ‘이의 없음’으로 번역돼 있었다. 어느 쪽이 원래 뜻인지 감정이 필요했지만 공란이 자동 동의로 바뀐 것은 매우 중대한 차이였다.
이르덴은 오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 대표가 아니라며 보관 중인 ‘접수 거절 목록’의 존재만 인정했다. 그리고 목록의 일부는 지금 손에 들고 있지 않다고 했다.
“어디에 있습니까?”
“분실한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들이 원할 때만 열람할 수 있는 별도 함에 있습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정돼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더 이상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그 태도를 존중하면서도 목록의 안전 상태를 법원에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보관자가 사람의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법률상 의무를 전부 거부할 수 있는지 별개 문제였지만, 당사자 보호를 무시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녁 무렵 사일라가 지붕 수리비 장부를 내밀었다. 몇 달 전 익명의 후원금이 들어왔다는 기록이었다. 금화가 아니라 은화로 적혀 있었고 실제 수령 내역과 사용 영수증 일부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왕국 세입으로 적지 않았다. 공동 보관함의 독립 운영비로 들어온 돈은 국가 세금이 아니었다.
그런데 후원금 입금 의뢰서에는 익숙한 약어가 적혀 있었다. ‘삼십 일 종료일 자동 유지보수.’ 관리비를 대주는 대신 보관함 밖에 30호 부품을 달게 했다는 설명과 닮아 있었다. 기부가 조건부 계약이었는지, 별개 두 사건을 누가 묶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저희가 돈을 받은 게 잘못입니까?” 사일라가 물었다.
“필요한 수리를 위해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누가 어떤 조건을 붙였는지, 당신이 그 조건을 알고 동의했는지 살펴봐야겠죠.”
건물 문을 나서자 세르나가 낮게 웃었다. “자네는 여기 와서도 세금을 하나도 걷지 못했군.”
“오늘은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잃지 않게 하는 쪽이 더 중요합니다.”
“마왕 폐하께 보고하면 좋아하시겠어.”
나는 웃었다. “그분은 약초방 거래세를 정당하게 납부하셨으니까요. 다음 신고도 제때 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그러자 세르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께서 더 무서워하실 대답이군.”
마차에 오르기 직전, 사일라가 나를 다시 불렀다. 그녀는 나무문 안쪽의 오래된 문구를 가리켰다. 최근 칠한 글자 아래에 손톱만 한 원래 글씨가 남아 있었다.
‘미수령은 소멸이 아니다.’
그 아래 누군가 새로운 붉은 잉크로 덧썼다.
‘미수령은 서른 날 뒤 결제소 귀속.’
두 문장 사이에는 삼백 년의 간격이 있을 수도, 어젯밤의 장난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사람의 거절권을 빌려 돈을 걷는 기술을 만들려 했다는 의혹은 더는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13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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