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 결제소의 장부에는 ‘장갑’이라는 사람이 자주 등장했다. 장갑이 직접 돈을 받아갔다는 영수증도 있었고, 기계를 검사했다는 확인서도 있었다. 하지만 장갑은 이름이 아니었다. 공동 보관 관리자에게 주어진 직책 표식이었다. 그것마저도 현행 권한을 자동으로 증명하지 않았다.
“만약 제가 장갑을 끼고 세금을 걷겠다고 하면요?” 루카스가 물었다.
“일단 장갑값부터 영수증을 받겠지.”
“농담이시죠?”
“반은.”
우리는 제삼 결제소에서 임의로 사본을 넘겨받지 않았다.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에 따라 장갑 0호와 2호 관련 발급 기록, 수령 인계증, 근무표, 사용 중지 명령을 구분해 받았다. 수십 장의 종이에는 모두 비슷한 그림이 있었다. 장갑의 손등에 세로줄 두 개, 그 옆에 작은 네모 하나. 마치 같은 손이 매번 서명한 것처럼 보였다.
에리카가 종이를 나란히 펼쳤다. “같은 필체라면 동일인일까요?”
“고무판이나 인쇄판일 수도 있어요. 필체와 실사용자는 별도입니다.”
네일이 가져온 작은 실험판으로 같은 모양의 손도장을 찍어 보았다. 문양은 쉽게 복제됐다. 나는 시연 과정의 모든 도구를 별도 보존하고 증거 원본에 닿지 않게 했다. 실험의 결론은 단순했다. 동일한 표식만으로 동일한 사람을 지목할 수 없다는 것.
로흐는 오래된 드워프 제작 규격을 설명했다. 장갑 0호는 공동 관리단의 초기 수령 책임을 맡는 교대 직책으로, 2호는 일시적 현물 보관 담당자의 구분 번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자신도 모든 시기에 같은 규칙이 적용됐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한계가 오히려 믿음직했다. 세 나라의 조약을 한 장의 장갑 그림으로 끝내려는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결제소 대리인 리엔 모브는 정식 심리 전 의견서를 보냈다. ‘관리권이 불명확하므로 당분간 현행 결제소가 보관비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장의 앞부분에는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관리권이 불명확하다는 이유가 결제소의 과세권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의견서에 반박하지 않고 증빙 목록을 작성했다. 누가 실제 보관 서비스를 했는지, 그 비용을 누가 승인했는지, 어느 당사자에게 어떤 청구 근거가 있는지 따로 물었다.
오후에 왕도 외곽의 세탁소 주인이 보호기관 직원과 함께 찾아왔다. 그녀는 삼 년 전 공동 관리단의 장갑을 세탁했던 인물이었다. 증인 신변 보호 때문에 공개 이름 대신 진술 번호를 부여했다.
“장갑은 열두 켤레였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돌아온 건 열한 켤레뿐이었죠.”
“사람도 열한 명이었습니까?” 루카스가 묻자 내가 손을 들었다.
“질문을 나눠야 합니다. 장갑의 숫자와 착용자의 숫자는 별개일 수 있어요.”
세탁소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 두 켤레를 맡기기도 했고, 세탁 후 소유자가 아닌 전달원이 찾아가기도 했다. 사라진 장갑 한 켤레의 책임을 자동으로 누군가에게 씌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보관한 세탁장에는 낯선 주기가 보였다. 장갑을 수선해 돌려주는 날짜와 공동 보관함의 접수 날짜가 엇갈렸다. 삼 년 전 화재가 일어난 주에만 장갑 한 켤레가 ‘세탁하지 않고 보관’으로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이름 대신 ‘청구서 동봉’이라는 글이 있었다.
“누가 청구서를 넣었습니까?”
“모릅니다. 봉투를 열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그녀의 모른다는 대답을 그대로 기록했다. 오래된 증언에 빈칸이 있다고 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넣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문제의 청구서는 사본 형태로만 남아 있었다. ‘계수판 수리 준비금’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금액은 없었다. 뒷면에는 외부 납품처로 보내는 의뢰 번호가 있었다. 네일이 그것을 보더니 놀랐다. “이건 제가 다루던 수리번호가 아닙니다. 주문 접수 대기 번호입니다.”
주문을 받았다는 사실과 물건을 실제로 설치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그런데 검은 장부 제2권의 영수증은 설치 후 정상 작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날짜를 만드는 사람들은 수리 의뢰가 접수되기도 전에 기계가 돌아갔다고 주장한 셈이었다. 혹은 날짜를 서로 다른 시점에 다시 써 넣은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오후 내내 순서를 대조했다. 세탁장에서 청구서가 붙은 날, 주문 대기 번호가 발행된 날, 실제 부품이 출고된 날, 계수판 30호가 작동했다는 영수증의 표기일. 아직 원본 감정과 타 기관의 기록이 필요했지만, 어떤 서류도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럼 조작한 사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서류의 모순을 찾은 거야. 범인을 찾았다는 건 아니지.”
브란트는 재무청 직원 한 사람이 장갑 번호표를 최근 들고 다녔다는 제보를 전했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도 당장 불러 추궁하지 않았다. 번호표를 우연히 맡았을 수도 있고, 업무상 전달했을 수도 있다. 대신 결제소와 왕궁에서 해당 번호표가 어떤 절차로 발급됐는지 공식 자료를 요청했다.
해 질 무렵 티르센의 감정실에서 결과가 왔다. 검은 장부 제2권의 ‘장갑’ 서명과 최근 131호 통지에 찍힌 원 세 개의 문양은 서로 다른 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판의 재료를 절단한 도구의 치수는 북문 민간 인쇄소의 기구와 일부 일치했다. 같은 제작 시설일 가능성은 있지만 같은 작업자라는 증거는 없었다.
“계속 한 걸음씩만 가까워지는군요.” 에리카가 말했다.
“한 걸음씩이 좋아요. 너무 빨리 범인에게 도착하면 나중에 돌아갈 길이 없어집니다.”
그날 밤 세탁소 주인의 추가 진술을 확인하던 중 특이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맡았던 마지막 장갑은 바늘질이 겉으로 나 있었다. 오른손용을 왼손용으로 뒤집어 쓴 흔적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실제 사용자가 누구인지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실물을 찾아 감정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오렐이 낡은 보존 기록을 보내 왔다. 화재 당시 벨란 감사관이 보존 신청을 했던 물품 목록에도 ‘뒤집어 낀 장갑 하나’라는 표현이 있었다. 같은 장갑인지 확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갑 표식으로 사람을 바꿔치기하려는 의혹과 오래된 화재 현장이 다시 가까워졌다.
나는 잠시 부친의 이야기를 듣는 에리카를 보았다. 그녀는 종이를 움켜쥐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책상 위에 놓았다.
“이번엔 제가 증거를 먼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아버지가 누구를 지키려고 장갑을 남겼는지 알게 되면…….”
“그때도 당사자의 말을 먼저 들어야겠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는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이 누구인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 손에 권한이 있다고 적은 사람은 반드시 기록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에리카는 장갑 번호표를 보관한 사람들의 업무 분장을 따로 그렸다. 봉투를 운반한 직원, 표식을 만든 기술자, 물품 인계대장을 보관한 서기관, 승인 여부를 결정할 담당자였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부정한 일을 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네 사람이 각각 자기 업무만 하다가 잘못된 결과가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책임 범위를 처음부터 하나로 묶지 않았다. 실제로 제삼 결제소의 확인서에는 기계를 작동시킨 사람의 서명칸은 있었지만, 그 출력물을 법적 승인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정한 사람의 칸은 따로 없었다. 빈칸은 우연한 양식 결함일 수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도피로일 수도 있었다.
루카스는 말했다. “모두 자기 일만 했다고 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야. 각자의 행위를 분리해야 어떤 책임이 존재하는지 보이는 거지. 모두를 범인이라 부르면 진짜로 거짓말한 사람도 군중 속에 숨는다.” 그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나는 그 수첩이 언젠가 그의 판단을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갑 0호 발급대장의 여백을 확대해서 보았다.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작은 표식 옆에 읽을 수 있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대리 수령 거절.’
지워진 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어쩌면 누군가 거절했다는 사실 자체였을지 모른다.
제1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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